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딸로 그를 ‘지성에서 영성의 세계’로 인도한 이민아 목사가 15일 오후 1시44분 서울강북삼성병원에서 암 치료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4세.
변호사이기도 한 이 목사는 위암 말기로 올 초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상태가 호전돼 각종 간증 집회에 강사로 나섰다. 그러다 두 달여 전부터 복수가 차오르는 등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일체 활동을 중단하고 병원치료를 받다 이날 결국 소천 받았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조기 졸업하고 결혼과 함께 미국에 건너간 이 목사는 미국 LA지역 검사를 역임했던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었며 결혼과 이혼, 암 투병, 실명, 첫 아이의 사망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992년 세례를 받은 그녀는 2009년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
이 목사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부친 이 전 장관을 영성의 세계로 인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전장관은 지난 2007년 7월 도쿄의 한 호텔에서 세례를 받으며 “딸의 믿음이 나를 구원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지난해 7월 펴낸 신앙간증집 ‘땅끝의 아이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를 사랑했던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후 이 목사가 인도하는 집회 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했다. 이 목사는 최근 두 번째 간증집 ‘땅에서 하늘처럼’(시냇가에심은나무)에서 하늘의 소망을 갈구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결국 이 책은 유작이 됐다.
'땅에서 하늘 처럼' 살았던 이민아 목사 추모예배
15일 저녁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안내 전광판에 적힌 ‘고인 이민아’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삶과 죽음이 이렇게도 가까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며칠 전까지도 전화 통화를 했던 사람인데…. 영정 속 이 목사는 웃고 있었다. 암 투병을 하면서 부었던 얼굴, 고통스러웠던 표정은 찾을 수 없었다. 영정 속 그녀는 기품 있는 웃음을 던지면서 문상객들에게 “땅에서 하늘처럼 사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목사의 부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문상객을 맞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이 전 장관과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온누리교회 서빙고담당 반태효 목사 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전 장관의 빨갛게 된 눈시울을 보자마자 가슴에서 와락 치솟아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그 아인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어요. 마지막 가는 길에도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잖아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후에 나와 아내는 그 아이와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아인 참으로 ‘땅에서 하늘처럼’ 살았어요.”
이 전 장관은 딸이 마지막 순간에 너무나 행복해 했다고 말했다. 이 목사가 어릴 때부터 평생 제대로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그였다. 언제나 바빴다. 그러나 시한부 판정 받은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딸과 함께 이 전 장관은 그동안 못 나눴던 ‘부녀(父女)의 정’을 만끽했다.
“딸은 평소 나에게 ‘하늘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어요. 하늘 아버지를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서요. 한국에 돌아온 딸에게 내 카드를 주면서 ‘마음껏 쓰라’고 했어요. 딸은 아버지 카드를 ‘긁는 대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서 웃었어요. 그러면서 하늘 아버지도 ‘긁는 대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하더군요.”
옆에서 침통하게 앉아있던 소 목사는 “고 이 목사님은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장관님, 마음을 굳게 잡고 하늘 소망 간직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추모 예배에서 반 목사가 설교했다. “고인은 에녹과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다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보다 더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인은 이 땅에서 하늘처럼 살면서 ‘땅끝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 고귀한 사랑을 이어갑시다.”
도처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이 전 장관과 부인 강인숙 전 건국대 교수는 추모예배 내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자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던 강 전 교수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소설가 서영은 선생 등도 따라 울면서 위로했다.
문상을 마치고 나오면서 “하늘 아버지를 만나면 됩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을 만난 이후 제 인생의 매일은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라고 말했던 고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민아 목사. 이 땅에서 하늘처럼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사람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