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유럽인가
북대서양의 큰 섬에서 온 사람들이 호주 남쪽의 큰 섬을 정복했다는 사실은
역사상 가장 기괴한 사건 중 하나다.
쿡의 탐험이 있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국 제도와 서유럽 전반은
지중해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벽지에 지나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 일어난 적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근대 이전 유럽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제국이었던 로마 제국도 대부분의 부를 북 아프리카, 발칸, 중동지방에서 얻었다.
로마에게 서유럽은 초라하고 황량한 서부에 지나지 않았고, 광물과 노예를 제외하면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는 곳이었다.
북유럽은 워낙 황량하고 미개해서 심지어 정복할 가치조차 없었다.
유럽이 중요 한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발전의 온실이 된것은 15세기 말에야 생긴 일이었다.
1500년에서 1750년 사이 서유럽은 세를 얻고 '외부세계"(남미와 북미의 두 대룩과 대양을 의미)의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심지어 그때도 유럽은 아시아 강대국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유럽이 어찌어찌 미 대륙을 정복하고 바다의 패권을 획득한 것은
주로 아시아의 강대국들이 그런 지역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덕분이었다.
근대 초기는 지중해의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의 사파위 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 중국의 명과 청 왕조의 황금시대였다.
이 제국들은 영토를 크게 확장했으며, 인구와 경제가 전대미문으로 성장했다.
1775년 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80퍼센트를 차지했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 규모를 합친 것만으로도 세계 총생산의 3분의 2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유럽은 경제적 난쟁이였다.
세계의 권력 중심이 유럽으로 이동한 것은 1750년에서 1850년 사이에 이르러서다.
이때 유럽인들은 일련의 전쟁에서 아시아 강대국들에게 모욕을 안기고, 그 영토의 많은 부분을 점령했다.
1900년이 되자 유럽은 세계 경제와 대부분의 땅을 확고하게 지배했다.
1950년 서유럽과 미국을 합친 생산량은 세계 전체 생산량의 절반이 넘었고,
중국이 차지하는 몫은 5퍼센트로 축소되었다.
유럽의 방패 아래 새로운 세계 질서와 세계 문화가 등장했다.
요즘 사람들은 당사자들이 통상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수준으로 유럽식 복장을 하고
유럽식 사고방식과 취향을지니고 있다.
말로는 격력한 반유럽 정서를 드러낼지도 모르지만,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은 ㅜ정치, 의학, 전쟁, 경제에 대해 유럽식 시각을 견지하며,
유럽식으로 작곡된 곡에 유럽 언어로 된 가사가 붙은 음악을 듣는다.
오늘날 급성장하는 중국 경제, 머지 않아 세계1위 자리를 탈환할지도 모르는 그 나라의 경제도
유럽식 생산 및 금융 모델 위에 건설되었다.
어떻게 유라시아 변방에 있던 이들은 그 오지에서 뛰쳐나와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보통은 그 공의 큰 부분을 유럽 과학자들에게 돌린다.
물론 1850년 이래 유럽의 세계 지배가
군사-산업-과학 복합체와 기술의 묘기에 크게 의존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근대 후기의 성공한 제국들은 목두가 기술적 혁신을 이루리라는 희망을 품고 과학연구를 장려했으며,
많은 과학자들은 제국주의 주인을 위해 무기, 의학, 기술을 개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아프리카인 적을 맞이한 유럽 군대가 흔히 했던 말은
"뭐가 오든 상관없다. 우리에게는 기관총이 있고 그들에게는 없다" 였다.
인간기술의 중요성도 군사기술 못지 않았다.
통조림은 벙사들을 먹여 살렸고, 철도와 증기선은 군대와 장비를 수송했다.
그러는 동안 병참 부분에서의 이 같은 진보는
유럽인의 아프리카 정복에 기관총보다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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