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인(同行二人)” 2020.042.16.토
“일상적자아(日常的自我)” 욕망과 감정대로 요동치는 자아
“본질적자기(本質的自己)” 그것에 호소하여 경종(警鐘)을 울리는 自己
공(空)과 고립자존(孤立自存)
『반야심경』중에는 “空”의 글자가 7회 등장.
“空”의 의미 중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것”
붙잡을 곳이 없는 마음이기 때문에 의지할 곳도 없는 것이다.
아니, 붙잡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실은 신기루 같이 실체가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럽인은 당초 “0제로”를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인도인은 제로를 기점(基点)으로 하고 있었다.
제로의 관념을 유럽인에게 가르친 것은 인도인.
그리고 인도인의 발상으로서는, 제로와 空이 완전히 같은 동의어가 아니라,
空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의미 중에 제로는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다.
곧,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하나는, “소극적인 空”
또 하나는, “적극적인 空”
소극적인 공은, “제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적극적인 공은, 모든 것은 단독으로는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것으로, “無我”
무아(無我)란 어떠한 것일까?
고립자존(孤立自存)이란, 사물은 사물 그것 자체만으로, 他와 관계없이 독립하여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생각이다. 無我의 “我”는, 즉 孤立自存에 해당한다.
그러나, “孤立自存이라고 하는 생각은 바른 것일까. 사물은 전부 他와 관계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는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출세한 것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훌륭하게 되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孤立自存의 생각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슈퍼맨은 없다. 부모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계에 의하여 사람은 성장한 것이다.
“空”이란 상관관계(相關關係)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空을 안다”라고 하는 것은 “사물은 많은 힘이 관련되어야만 존재한다”라고 하는 생각이다. 즉, 無我란 孤立自存의 否定이고, 他와의 관계를 깊이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덕분에~”라고 하는 생각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덕분을 안다”고 말하는데, 그곳까지 도달하기에는 상당히 無我라고 하는 생각(생활방식)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부채를 예로 들어본다.
“부채가 있다”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부채가 앞에 있는데, “부채는 없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부채가 있다”고 말한 사람은, 부채가 완성되어, 지금 참으로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는 부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반야의 사상이란, 이 완성된 부채가 아니라, 부채로까지 완성해가는 경과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부채, 부채라고 말하면서 소동을 부리고 있지만, 부채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부채는, 종이, 대나무, 풀, 칠, 그리고 사북으로 성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이 바란스 맞게 조합되는 것에 의하여 눈에 보이는 “부채”라고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눈에 보이는 것”을『반야심경』에서는 “色”이라고 말하고 있다. 形이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고, 눈에 보인다고 하는 것은 무언가
의 색채가 있기 때문이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