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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reason
제4장 성인의 길 [經集]
2.4.1.비를 뿌리려거든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도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습니다.
나는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살고 있습니다.
내 움막은 지붕이 덮이고 방에는 불이 켜졌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성내지 않고 마음의 두터운 미혹을 벗어 버렸다.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쉬리라.
내 움막은 드러나고 탐욕의 불은 꺼져 버렸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모기나 쇠파리도 없고 소 떼는 늪에서 우거진 풀을 뜯어 먹으며
비가와도 견디어낼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뗏목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다.
거센 흐름에 끄떡없이 건너 벌써 피안(彼岸)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더 뗏목이 소용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내 아내는 온순하고 음란하지 않습니다. 오래 함께 살아도 항상 내 마음에 듭니다.
그 여자에게 그 어떤 나쁜 점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하고 해탈해 있다. 오랜 수행으로 잘 다스려졌다.
내게는 그 어떤 나쁜 점도 있지 않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놀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다 건강합니다.
그 애들에게 그 어떤 나쁜 점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 누구의 고용인도 아니다.
스스로 얻은 것에 의해 온 누리를 걷는다.
남에게 고용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소를 매놓을 말뚝은 땅에 박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문자 풀로 꼰 새 밧줄은 잘 꼬여 있으니 송아지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황소처럼 고삐를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나는 넝쿨을 짓밟았으니,
나는 다시 모태(母胎)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이때 갑자기 검은 구름이 엄청난 양의 비를 쏟더니 골짜기와 언덕에 물이 넘쳤다.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다니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거룩한 스승을 만나 얻은 바가 참으로 큽니다.
눈이 있는 이여, 우리는 당신께 귀의하오니 스승이 되어 주소서.
위대한 성자시여, 아내도 저도 순종하면서 행복한 분 곁에서 청정한 행을 닦겠습니다.
그러면 생사가 없는 피안에 이르러 괴로움을 없애게 될 것입니다.”
이때 악마 파피만[波旬]이 말했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사람이 집착하는 근본은 기쁨이다.
집착 할 데가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참으로 사람들의 근심은 집착에서 생긴다.
집착이 없는 이는 근심할 것도 없다.”
『經集』
2.4.2.무소의 뿔처럼
모든 생물에 대해서 폭력을 쓰지 말고, 어느 것이나 괴롭히지도 말며,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가까이 사귄 사람끼리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연정(淵靜)에서 근심이 생기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친구를 동정한 나머지 마음이 얽매이면 손해를 본다.
가까이 사귀면 이런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애착은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곳에 달라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 사는 사슴은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닌다.
그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은 홀로 있는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벗들과 함께 있으면, 머물거나 가거나 또는 나그네 길에 있어서까지 항상 간섭을 받게 된다.
어리석은 벗들이 좋아하지 않는 홀로 있는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벗들과 어울리면 유희와 환락이 따른다.
또 자녀들에 대한 애정은 헤아릴 수 없이 두텁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게 싫다면,
애초부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해치려는 생각 갖지 않고 무엇이나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온갖 고난을 이겨 두려움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총명하고 예의바르고 어진 동반자로 벗을 삼는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그러한 동반자를 벗으로 사귈 수 없다면,
마치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가는 왕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참된 벗 얻기를 바란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동등한 친구와는 가까이 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에는 허물을 짓지 말고, 무
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욕은 그 빛이 곱고 감미로우며 즐겁게 한다.
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산산이 흩트려 놓는다.
관능적인 애욕에는 이와 같은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내게는 질병이고 종기이며 재난이고 화살이며 공포다.
관능적인 애욕에는 이러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거나 남의 덕을 헐지도 마라.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의롭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그릇된 일에 사로잡힌 나쁜 벗을 멀리하라.
탐욕에 빠져 있거나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널리 배워 진리를 알고 고결하고 총명한 이를 벗으로 사귀라.
그리하여 온갖 이로운 일을 배우고 의혹을 떠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놀이와 환락을 즐기거나 구하지 말고 사치하지 마라.
허식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앉아 선정(禪定)을 게을리 하지 말고, 모든 일에 늘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라.
모든 생존에는 걱정 근심이 따르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經集』
2.4.3.나도 갈고 뿌린 후에 먹는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가다국 남산에 있는 한 바라문촌에 머물고 계셨다.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씨를 뿌리려고 밭을 가는 데에 오백 자루의 괭이를 소에 메웠다.
부처님께서 바리를 들고 그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는 마침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음식을 받기 위해 한쪽에 서 있는 부처님을 보고 바라드바자가 말했다.
“사문,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당신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소.”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당신의 멍에나 호미 그리고 작대기나 소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에 먹는다고 하십니까?
당신이 밭을 간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듣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믿음은 종자요 고행은 비며, 지혜는 내 멍에와 호미요 부끄러움은 괭이자루며,
의지는 잡아매는 줄이고 생각은 내 호미날과 작대기라오.
몸을 근신하고 말을 조심하며 음식을 절제하여 과식하지 않고 나는 진실로써 김을 매며,
온화한 성질은 내 멍에를 벗겨주오.
노력은 내 황소, 나를 안온의 경지로 실어다 주오.
물러남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 곳에 이르면 근심 걱정이 없어지오.
내 밭갈이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감로(甘露)의 과보를 가져오는 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되오.”
이때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커다란 청동바리에 우유죽을 하나 가득 담아 부처님께 올렸다.
“고타마께서는 우유죽을 드십시오.
당신이야말로 정말 밭을 가는 분입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감로의 과보를 가져다주는 농사를 지으십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를 사양하였다.
“시를 읊어 얻은 것을 나는 먹을 수 없소. 이것은 바르게 보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오.
눈뜬 사람들은 시를 읊어 생긴 것을 받지 않았소.
오로지 진리에 따르는 것이 눈뜬 사람들의 생활 방법이오.
번뇌의 때를 다 없애고 나쁜 행위를 소멸해 버린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을 드리시오.
그것은 공덕을 바라는 이의 복밭이 될 것이오.”
“그러면 고타마님, 이 우유죽은 누구에게 드려야 합니까?”
“신·인간·사문·바라문을 포함한 여러 중생 가운데서 완전한 사람[如來]과
그의 제자를 제외하고 이 우유죽을 먹고 소화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러니 이 우유죽일랑은 산 풀이 적은 곳에 버리시오.”
바라드바자는 그 우유죽을 생물이 없는 물속에 쏟아 버렸다.
그런데 그 우유죽은 물속에 버려지자마자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많은 거품을 내뿜었다.
이때 바라드바자는 모골이 송연하여 두려워 떨면서 부처님 곁에 다가섰다.
그리고 부처님 발밑에 꿇어앉아 말했다.
“놀라운 일입니다.
고타마님,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가르쳐 주듯이, 혹은 ‘눈이 있는 자 빛을 보리라’ 하여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고타마 당신께 귀의하고 진리와 그것을 수행하는 스님들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당신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밭을 가는 바라드바자는 이렇게 해서 부처님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를 받았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을 멀리하고 홀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더없이 청정한 행의 궁극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수행하는 것인데- 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經集』
2.4.4.천한 사람
불을 섬기는 한 바라문의 집에 성화(聖火)가 켜지고 제물이 올려져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사밧티 거리에서 탁발하면서 그의 집 앞을 지나가셨다.
바라문은 부처님을 보자 소리쳤다.
“비렁뱅이 까까중아, 거기 섰거라. 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
부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 당신은 도대체 어떤 것이 천한 사람인지를 알기나 하시오?
그리고 천한 사람을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
“어디 당신이 한번 말해 보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화를 잘 내고 원한을 품으며, 간사하고 악독해서 남의 미덕을 덮어 버리고
그릇된 소견으로 모함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생물을 해치고 동정심이 없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시골과 도시를 파괴하여 독재자로서 널리 알려진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마을에 살거나 숲에서 살거나 주지도 않는데 남의 것을 가지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빚이 있어 돌려달라고 독촉을 받으면 언제 빚을 졌느냐고 잡아떼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얼마 안 되는 물건을 탐내어 행인을 살해하고 그 물건을 약탈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증인으로 불려 나갔을 때 자신이나 남을 위해, 또는 재물 때문에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폭력을 써서 혹은 서로 눈이 맞아 친척이나 친구의 아내와 놀아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가지고 있는 재물이 풍족하면서도 늙고 쇠약한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부모나 형제자매 혹은 계모를 때리거나 욕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상대가 이익 되는 일을 물었을 때 불리하게 가르쳐 주거나 숨기는 일을 알리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나쁜 일을 하면서 자기가 저지른 일을 숨기는 사람,
그런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남의 집에 갔을 때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면서
그 쪽에서 손님으로 왔을 때는 예의로써 대하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바라문이나 사문 혹은 걸식하는 사람을 거짓말로 속이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바라문이나 사문에게 욕하며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세
속적인 어리석음에 덮여 변변치 않은 물건을 탐하고 사실 아닌 것을 말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며 스스로의 교만 때문에 비굴해진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남을 괴롭히고 욕심이 많으며 나쁜 야심을 지녀 인색하고,
덕도 없으면서 존경받으려 하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깨달은 사람을 비방하고 출가나 재가의 제자들을 헐뜯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사실은 존경받지 못할 사람이 존경받을 사람이라 자부한다면 그는 이 세상의 도적이오.
그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천한 사람이오.
내가 당신에게 말한 이와 같은 사람들은 참으로 천한 사람이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오.
태어나면서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오로지 그 행동에 따라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
내가 다음에 실례를 들겠으니 내 말을 알아들으시오.
찬다라[旃陀羅]족 출신의 백정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있었소.
그는 얻기 어려운 최상의 명예를 얻었소.
많은 왕족과 바라문들이 그를 섬기려고 모여들었소.
그는 신들의 길, 더러운 티끌을 떨어 버린 큰 도에 들어 탐욕을 버리고
범천(梵天)의 세계에 가게 되었소.
미천한 태생의 그가 범천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소.
베다 독송자(讀誦者)의 집에 태어나 베다의 글귀에 친숙한 바라문들도
때로는 나쁜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소.
이와 같이 되면, 현세에서 비난을 받고 내세에는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오.
신분이 높은 태생도 그들이 나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을,
그리고 비난 받는 것을 막을 수는 없소.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오.
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오로지 그 행동에 의해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불을 섬기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말했다.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혹은 눈 있는 자 빛을 보리라 하고 어둔 밤에 등불을 비춰 주듯이,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고타마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가르침과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고타마께서는 오늘부터 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저를 세속의 시자로 받아 주십시오.”
『經集』
2.4.5.평안한 사람
“어떻게 보고 어떤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평안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고타마님, 가장 뛰어난 사람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죽기 전에 애착을 떠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미래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런 성인은 화내거나 두려워 떨지 않고 우쭐거리지 않으며,
후회 하지 않고 주문을 외거나 허둥거리지 않으며 말을 삼간다.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추억하며 울적해 하지도 않는다.
감관에 닿는 모든 대상에서 멀리 떨어질 것을 생각하며,
여러 가지 견해에 이끌리는 일이 없다.
탐욕에 멀리 떠나 거짓 없고 욕심내지 않으며,
인색하거나 거만하지 않고 미움 받지 않으며 두말[兩舌]을 하지 않는다.
유쾌한 일에 빠지지 않고 교만하지도 않으며,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하며 잘못 믿는 일도 없고 버릴 욕심도 없다.
이익을 바라고 배우지 않는다. 이익이 없을지라도 성내지 않는다.
애착 때문에 남을 거역하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을 탐내지 않으며,
항상 평온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남을 자기 처지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뛰어났다거나 못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번뇌의 불이 타오르지 않는다.
걸림 없는 사람은 이치를 알았기 때문에 걸림이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생존을 위한 애착도 생존을 끊어 없애려는 욕망도 없다.
모든 욕망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평안한 사람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에게는 얽매임의 매듭이 없고 이미 모든 집착을 뛰어넘었다.
그에게는 자식도 가축도 논밭도 주택도 없다.
이미 얻은 것도 얻지 못한 것도 그에게는 찾아볼 수 없다.
범부와 사문 또는 바라문들이 그를 비난하여 탐욕이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는 욕심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힐난을 받아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 성인은 탐욕을 떠나 인색하지 않으며, 자기가 잘났다든가 못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분별을 두지 않으므로 망상 분별에 따르지도 않는다.
그는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다. 또 없는 것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어떤 사물에도 이끌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평안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經集』
2.4.6.성인의 길
친교(親交)가 있기 때문에 두려운 일이 생기고, 가정생활을 하기 때문에 더러운 때가 낀다.
친교도 없고 가정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성인의 생각이다.
이미 돋아난 번뇌의 싹을 잘라버리고, 새로 심지 않고 지금 생긴 번뇌를 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혼자서 행동하는 성인이라 불린다.
그 위대한 선인(仙人)은 평안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번뇌가 일어나는 근본을 헤아려 알고,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기르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생(生)을 멸해 구경(究竟)을 본 성인이다.
그는 망상 분별을 초월하여 윤회하는 무리 속에 끼지 않는다.
모든 집착이 일어나는 곳을 알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탐욕을 떠나 욕심이 없는 성인은 무엇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피안(彼岸)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온갖 것을 알며, 지극히 총명하고 여러 가지 사물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애착을 끊어 해탈한 사람, 그분이야말로 성인임을 현자(賢者)들은 안다.
지혜로운 힘이 있고 계율을 지키며, 마음이 잘 집중되어 선정을 즐기며,
생각이 깊고 집착에서 벗어나 거칠지 않고 번뇌의 때가 묻지 않는 사람,
그분이야말로 성인임을 현자들은 안다.
성인은 혼자서 행동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칭찬과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소리를 듣고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남을 이끄는 사람,
그분이야말로 성인임을 현자는 안다.
남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거나 욕을 하더라도 멱감는 강가[恒河]의 기둥처럼
태연하고 탐욕을 떠나 모든 감관을 잘 가라앉힌 사람,
그분이야말로 성인임을 현자는 안다.
성행위를 하지 않고, 젊어서도 여자에게 집착하지 않으며,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그분이야말로 성인임을 현자는 안다.
세상 일에 달관하고 최고의 진리를 알며 거센 흐름을 헤치고 바다를 건넌 사람,
속박을 끊고 의존하지 않으며 욕정의 흐름을 아주 끊어버린 사람,
그분이야말로 성인임을 현자는 안다.
출가자와 재가자는 사는 곳과 생활양식이 서로 같지 않다.
재가자는 처를 부양하지만, 출가자는 계율을 잘 지켜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다.
재가자는 용서 없이 남의 목숨을 해칠 때가 있지만, 성인은 자제하여 산목숨을 보호한다.
이를테면, 하늘을 나는 공작새가 아무리 애를 써도 백조의 흰빛을 따를 수 없듯이,
재가자는 세속을 떠나 숲속에서 명상하는 수행승의 그 덕에는 미치지 못한다.
『經集』
2.4.7.인간의 육체
걷고 서며 앉고 누우며 혹은 구부리고 편다. 이것이 신체의 동작이다.
신체는 뼈와 힘줄로 이어져 있고 살갗으로 덮여 있어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다.
신체 내부는 내장으로 가득 차 있고 위장·간장·심장·폐장·신장·비장이 있다.
콧물·점액·피·담즙·지방이 있다. 또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온다.
눈에서는 눈곱, 귀에서는 귀지, 코에서는 콧물, 입에서는 침과 가래, 온몸에서는
땀과 때가 나온다. 또 머리에는 빈 곳이 있고 뇌수로 차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명(無明)에 이끌려 그것을 깨끗한 것으로 안다.
죽어서 쓰러지면 몸은 부어 검푸르게 되고 무덤에 버려져 친척도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
개·여우·늑대·벌레 들이 파먹고 까마귀나 독수리가 쪼아먹는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깨달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것을 완전히 이행한다.
그는 있는 그대로를 보기 때문이다.
‘저 죽은 시체도 살아 있는 이 몸뚱이와 같은 것이고, 살아 있는 이 몸뚱이도
언젠가는 죽은 저 시체처럼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안팎으로 몸에 대한 욕망에서 떠나야 한다.
이 세상에서 애욕을 떠난 지혜로운 수행자는 죽음을 거치지 않고 평안하고
멸하지 않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다.
인간의 이 육체는 부정하고 악취를 풍기며, 온갖 오물로 가득 차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이와 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을 훌륭한 것으로 알고 또 남을 업신여긴다면
그는 소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동굴 속에 머물러 집착하고 온갖 번뇌에 덮이어 미망(迷妄)에 빠져 있는 사람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참으로 이 세상 욕망을 버리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욕망에 따라 생존의 쾌락에 붙잡힌 사람은 해탈하기 어렵다.
남이 해탈을 시켜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래와 과거를 생각하면서 현재의 욕망에 탐착한다.
그들은 욕망을 탐하고 부정에 친근하다가 죽을 때에는 여기서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고 후회한다.
무엇인가를 내 것이노라고 집착해 동요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의 모습은 메말라 물이 마른 개울에서 허덕이는 물고기와 같다.
어진 이는 양극단(兩極端)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고 감관과 대상의 접촉을 잘 알아
탐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비난할 그런 나쁜 짓은 하지 않으며, 보고 듣는 일에 팔리지 않는다.
생각을 정리해 강을 건너라.
어진 이는 갖고 싶어하는 집착에 물들지 않으며, 번뇌의 화살을 뽑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는다.
『經集』
2.4.8.출가는 안온한 길
눈이 있는 사람은 어째서 출가를 했는지, 그분은 무엇을 생각한 끝에 출가를 기뻐했는지,
그분의 출가에 대해서 나는 이야기하리라.
‘집에서 사는 것은 비좁고 번거로우며 먼지가 쌓이는 생활이다.
그러나 출가는 넓은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고 생각해 출가한 것이다.
출가한 다음에는 악한 행위를 하지 않고 입으로 저지르는 나쁜 짓도 버리고
아주 깨끗한 생활을 하였다.
눈뜬 사람은 마가다의 서울, 산으로 둘러싸인 라자가하로 갔다.
뛰어난 모습을 지닌 그는 탁발하기 위해 그 곳으로 간 것이다.
마가다왕 빔비사라는 높은 누각 위에서 그를 보았다.
뛰어난 모습을 가진 그를 보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저 사람을 보아라.
아름답고 건강하고 깨끗할 뿐 아니라, 행동도 의젓하게 앞만을 본다.
그는 눈을 아래로 뜨고 정신을 한군데로 모으고 있다.
저 사람은 천한 집 출신이 아닌 것 같다. 누가 뛰어가 그를 따라가 보아라.
저 수행자는 어디로 가는가.”
왕의 신하들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저 수행자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는 어디에 사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는 모든 감관을 억제하여 잘 지키고 생각하면서 집집마다 음식을 빌어
잠깐 동안에 바리를 채웠다.
거룩한 분은 탁발을 끝내고 그 성 밖으로 나와 판다바[白善山]산으로 향했다.
아마 그는 거기에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타마가 자기 처소에 가까이 이른 것을 보자 신하들은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고
한 신하는 왕궁으로 돌아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님, 그 수행자는 판다바산 앞쪽에 있는 굴속에 호랑이나 황소처럼,
혹은 사자처럼 의젓하게 앉아 있습니다.”
사신의 말을 듣고 빔비사라왕은 화려한 수레를 타고 판다바산으로 길을 재촉했다.
왕은 수레로 갈 수 있는 데까지 달려간 뒤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산을 올라가
고타마의 곁에 이르렀다. 왕은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드린 뒤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젊음이 넘치는 인생의 봄입니다. 용모도 빼어나고,
앉고 걷는 모습 또한 존귀하니 분명 왕족 태생인 것 같습니다.
나는 코끼리 떼를 앞세운 날쌘 군대를 정비해서 당신께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태생을 알고 싶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임금님, 저쪽 히말라야 중턱에 한 종족이 있습니다.
예부터 코살라의 주민으로 부(富)와 용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성(姓)은 ‘태양의 후예’라 하고, 종족은 사카族이라 합니다.
나는 그런 집안에서 출가했습니다. 그것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욕망에는 위험이 있으나, 출가는 안온하다는 것을 알아 힘써 정진합니다.
내 마음은 다만 이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經集』
2.4.9.번뇌의 화살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얼마를 살는지 알 수 없다.
사람의 목숨이란 비참하고 짧으며 고뇌로 엉켜 있다.
태어나면 죽음을 피할 길이 없으며 늙으면 죽음이 온다.
실로 생이 있는 자의 운명은 이런 것이다.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질 위험이 있듯이 태어난 자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려움이 따른다.
이를테면, 옹기장이가 만든 질그릇이 마침내는 모두 깨어지고 말듯이,
사람의 목숨도 또한 그와 같다.
젊은이도 장년도,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모두 죽음 앞에는 굴복하고 만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아비도 그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친척도 그 친척을 저 세상에서 구해낼 수 없다.
보라. 친척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지만
사람은 하나씩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사라져 간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은 늙음과 죽음으로 인해 사라져 간다.
그러나 슬기로운 이는 세상의 참모습[實相]을 알고 슬퍼하지 않는다.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또 간 사람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 두 끝을 보지 않고 부질없이 슬피 우는가.
미망(迷妄)에 붙들려 울고불고 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현자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울고 슬퍼하는 것으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
더욱더 괴로움이 생기고 몸만 여윌 따름이다.
스스로 자신을 해치면서 몸을 여위게 하고 추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울며 슬퍼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근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점점 더 고뇌를 겪게 된다.
죽은 사람 때문에 운다는 것은 더욱 근심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지은 업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라.
모든 살아 있는 자는 죽음에 붙잡혀 떨고 있지 않는가.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염원할지라도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기대에 어긋나는 것도 이와 같다. 보라, 세상의 저 모습을.
가령 사람이 백 년을 살거나 그 이상을 산다 할지라도
마침내는 친족들을 떠나 이 세상의 목숨을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존경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죽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그는 이미 내 힘이 미치지 못하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아,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마라.
이를테면, 집에 불이 난 것을 물로 끄는 것과 같다.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은 걱정이 생겼을 때는 이내 지워 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을 날려 버리듯이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은
슬픔과 욕심과 걱정을 버려라.
자기 번뇌의 화살을 뽑으라.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거리낌 없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걱정을 초월하고 근심 없는 자, 평안에 돌아간 자가 될 것이다.
『經集』
2.4.10.흔들리는 평안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화를 내고 남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마음이 진실한 사람이라도 남을 비방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성인은 비방하는 말을 들을지라도 그것에 동하지 않는다.
성인은 무슨 일에나 마음이 거칠어지지 않는다.
욕심에 끌리고 소망에 붙들린 사람이 어떻게 자기 견해를 초월 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행한다.
그는 또한 아는 대로 떠들어댈 것이다.
누가 묻지도 않는데 남에게 자기의 계율과 도덕을 선전하는 사람,
스스로 자기 일을 떠들고 다니는 사람,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거룩한 진리를 갖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편안히 마음이 안정된 수행자가 계율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하고 있노라 하면서
뽐내지 않고, 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번뇌로 불타지 않는다면
그는 거룩한 진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때묻은 소견을 미리 만들고 고치며 치우쳐 자기 안에서만 훌륭한 열매를 보는 사람은
흔들리는 평안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 대한 집착을 확실히 알고 자기 견해에 대한 집착을 초월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좁은 소견의 울타리 안에 갇혀 그것을 집착하고 진리를 등진다.
사악(邪惡)을 쓸어 없애버린 사람은 이 세상 어디를 가든 모든 생존에 대해 편견이 없다.
사악을 물리친 사람은 허위와 교만을 버렸는데 어찌 윤회에 떨어질 것인가.
그에게는 이미 의지하고 가까이할 아무것도 없다.
모든 일에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은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기대고 의지함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는 집착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서 모든 편견을 쓸어버린 것이다.
『經集』
2.4.11. 무엇이 최고인가
세상에서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보는 것들을 흔히 으뜸가는 것이라 하고,
그밖에 다른 것들은 여러 가지 견해에 붙들려 모두 뒤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논쟁을 극복할 수 없다.
그는 본 것, 배운 것, 계율이나 도덕, 사색한 것에 대해서 자신 안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고서 그것만을 집착한 나머지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뒤떨어진 것으로 안다.
사람이 어떤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하잘것없다고 본다면,
그것은 대단한 장애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수행자는
본 것, 배운 것, 사색한 것, 또는 계율이나 도덕에 구애를 받아서는 안 된다.
지혜에 대해서나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기를 남과 동등하다거나 남보다 못하다거나 또는 뛰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리에 도달한 사람은 이미 가지고 있던 견해를 버리고 집착하지 않으며
지혜에 대해서도 특별히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여러 가지 다른 견해로 분열된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 당파에 맹종하지 않고
어떤 견해일지라도 그대로 믿는 일이 없다.
그는 양극단에 대해서 여러 생존에 대해서 이 세상에도 저 세상에도 원하는 바가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해 단정할 만한 고집이 그에게는 조금도 없다.
그는 이 세상에서 본 것, 배운 것, 또는 사색한 것에 대해서 티끌만한 망상도 갖지 않는다.
어떠한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이 세상에서 망상 분별하겠는가.
그는 망령된 생각으로 분별하지 않고, 그 어느 한 가지 견해만을 유달리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가르침을 원하지도 않고 계율이나 도덕에 매이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피안(彼岸)에 이르러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經集』
2.4.12.연꽃처럼
아, 짧도다. 인간의 생명이여, 백 살도 못 되어 죽어버리고 마는가.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결국은 늙어서 죽는 것을.
사람들은 내 것이라고 집착한 물건으로 해서 근심한다.
자기가 소유한 것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집에 머물러 있지 말아라.
사람들이 ‘이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물건, 그것은 그의 죽음으로 해서 잃게 된다.
이를테면, 눈을 뜬 사람은 꿈속에서 만난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현명하게 이 이치를 깨닫고, 내 것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히지 마라.
누구누구라고 하던 사람들도 한번 죽은 후에는 그 이름만이 남을 뿐이다.
내 것이라고 집착하여 욕심부리는 사람은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안온함을 얻은 성인들은 소유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세속에서 물러나 청정한 행을 닦는 수행자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寂靜處]을 즐겨 찾는다.
그가 생존의 영역 속에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성인은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또 슬픔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못한다.
이를테면, 연꽃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듯이,
성인은 보고 배우고 사색한 어떤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사특한 악을 털어버린 사람은 보고 배우고 생각한 어떤 일에도
유달리 집착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것에 의해서 깨끗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탐내지 않고 탐욕에서 떠나려 하지도 않는다.
『經集』
2.4.13.수행자
“태양의 후예이신 위대한 선인(仙人)께
세속에서 멀리 떠나는 일과 평안의 경지에 대해서 묻겠습니다.
수행자는 어떻게 보아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평안에 들 수 있습니까?”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의 근본은 억누르고,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애착까지도 눌러 버리도록 항상 명심하여 배우라.
될 수 있는 한 안팎으로 이치를 알아 두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만한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진리에 도달한 사람은 그것이 평안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나는 뛰어났다든가 나는 뒤떨어졌다든가
혹은 나는 대등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 질문을 받더라도 자기가 잘 났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수행자는 마음이 평안해야 한다. 밖에서 고요함을 찾지도 말아라.
안으로 평안하게 된 사람은 고집할 것이 없다.
하물며 어찌 버릴 것이 있으랴. 바닷물 속에서는 파도가 일지 않고 잔잔하듯이,
고요히 멎어 움직이지 말아라. 수행자는 무슨 일에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눈을 뜨신 분께서는 몸소 체험하신 법, 위험과 재난의 극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건대 바른 길을 일러 주십시오. 계율의 규정이나 정신 안정의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에 탐내지 말아라.
저속한 이야기에서 귀를 멀리하라.
맛에 탐착하지 말아라.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내 것이라고 집착하지 말아라.
고통을 겪을 때라도 수행자는 결코 비탄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생존을 탐내서도 안 된다. 무서운 것을 만났을 때라도 두려워 떨어서는 안 된다.
음식이나 옷을 얻더라도 묵히거나 쌓아 두어서는 안 된다.
또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 해서 걱정해서도 안 된다.
마음을 안정 시켜라. 당황해서는 안 된다. 후회하지 말아라. 게으르지 말아라.
그리고 수행자는 한가하고 고요한 앉을 자리와 누울 곳에서 살아야 한다.
잠을 많이 자서는 안 된다. 부지런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게으름과 거짓으로 오락과 이성간의 교제와 겉치레를 버려라.
내 제자들은 아타르바 베다의 주문이나 해몽·관상·점을 쳐서는 안 된다.
수행자는 비난을 받더라도 두려워 말고, 칭찬을 받더라도 우쭐거리지 말아라.
탐욕과 인색과 성냄과 욕설을 멀리해야 한다.
수행자는 장사해서는 안 된다. 결코 남을 비방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가까이 교제해서도 안 된다.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지 말아라.
또 수행자는 거만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책략적인 언사를 써서도 안 된다.
오만 불손하거나 불화를 가져올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피하라.
조심해서 속이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생활에 대해서나 지혜에 대해서 혹은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
자기가 남보다 뛰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출가 수행자는 말 많은 세속인들한테서 욕을 먹거나 불쾌한 말을 많이 듣더라도
거친 말로 대꾸해서는 안 된다.
선한 사람들은 적대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
수행자는 이 이치를 알아 잘 분별하고 늘 조심해서 배우라.
모든 번뇌가 소멸된 상태가 평안임을 알아라.
그러므로 여래의 가르침에 게으르지 말고 항상 따라 배우라,”
『經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