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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노끈 맨 / 양 원 옥
진부한 말이지만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다. 과거는 섬이다. 나는 지난 두 달 동안 육지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아주 작은 섬을 보고 있다.
전에는 가능한 한 나중으로 미루던 일들을 이제는 일부러 찾아 나서도 시간의 여유는 많다. 고삐가 풀리면 나갈 방향도 없다. 딱히 하는 일 없이 한나절이 허망하게 지나간다. 가구의 위치를 조금 바꾸거나 책에 낀 먼지를 털고 책장을 정리하기도 했다. 언제 구했는지 모르는 책이 있고 무슨 책인가 있을 것 같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슨 책을 찾으려 했는지조차 잊기도 했다.
습관은 문신처럼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남들의 출근 시간에 덩달아 나가서 잠깐 산책을 하고 들어온다. 베란다에 깔린 햇볕이 금방 줄어든다. 처음 몇 주 동안은 동료나 후배를 불러 저녁에 술자리도 가졌다. 화제는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무실 내의 분위기나 새로 부임한 지점장의 태도 등이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내 책상과 의자와 컴퓨터를 머릿속에 그렸다. 그들은 마치 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상사에게 보고하듯 내게 말했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 매번 습관적으로 끼어들다가 나의 처지를 깨닫고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내가 있었을 때가 좋았었다고 빈말을 하는 횟수가 늘어가더니 어느 순간 자기들끼리만 떠들었다. 한 후배는 그의 누나가 하나님의 계시로 위암을 일찍 발견했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11월 첫째 주 월요일 정오, 흐린 하늘이다. 오늘은 며칠째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동차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닦았다. 시트 밑 틈새에는 이쑤시개나 은단 알들이 박혀 있었다. 무선 진공청소기로 깔판에 낀 가는 모래까지 빨아들이고 건성으로나마 광택도 내고 나니 마치 먼 길을 떠날 준비를 마친 것 같다. 나는 불현듯이 사막이나 초원을 달리는 상상을 한다. 엔진 오일을 갈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니 이 기회에 아예 자동차를 처분해야 하나. 두 중년 여인이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내 차 곁을 지나간다.
나는 내 일상적인 일들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단순 건망증은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라지만 이러다가 치매가 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티브이 리모컨이 왜 화장실에 있는 거지? 가스 밸브는 잠갔던가? 조금 전에는 자동차 창문을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내려갔다가 들어왔다.
내가 만약 치매에 걸려 기억의 대부분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 잃어버린 부분을 빼면 현재의 내 삶은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제 혹은 어제 나는 무엇을 했던가. 내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 '나'는 누구일까.
기억이 사라지면 육체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억에도 온도가 있을까. 기억은 따뜻한 생명이다. 기억이 없다는 것은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다. 이성과 감정에 따른 행동마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 있다고 보기 힘들 것이다. 거실 구석에 커버를 씌운 에어컨이 관처럼 세워져 있다. 커튼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린다. 나는 베란다 유리문을 닫았다. 창밖 소음이 무 토막처럼 잘린다.
오후에 자동차의 엔진 오일을 교환하러 정비소에 갔다. 거의 십여 년간 다닌 단골이다.
어서 오세요. 그런데 오늘은 왜 이 시간에…….
정비소 사장은 내가 은퇴했다는 것을 모른다. 늘 토요일에나 오던 손님이 평일 낮 오후에 나타났으니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냥 웃기만 했고 그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지나치는 척하면서도 한눈에 차의 상태를 파악한다. 타어어의 마모 상태나 엔진의 소리가 그에게는 빅 데이터가 된다. 지난번 점검 이후로 차를 거의 운행을 하지 않아 마일리지는 큰 변동이 없다. 그는 정비소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색이 하얀 사내다. 목소리는 낮고 굵고 무겁다. 그는 컴퓨터에서 내 차의 파일을 열고 마일리지를 수정한다. 별로 안 다니셨네요. 그가 말했다.
직원은 타이어 회사에서 제공한 짙은 청색의 오버올을 입고 있다. 그는 장갑을 벗어 뒤집어 호주머니에 넣고 내 차에 올라 차를 작업대에 올린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탁자에 놓인 신문을 뒤적거리고 자동차 회사에서 발행한 월간 잡지를 펼친다. 레이싱걸들의 비키니 화보가 요란하다. SUV의 트렁크 문까지 열어 올린 채 네 명의 비키니 모델이 셀카를 찍는 사진도 있다. 잠자리 날개옷을 걸친 모델이 눈웃음을 짓고 있다. 배경은 모래 언덕의 완만한 곡선들이 끝없이 이어진 사막이다. 타이어나 엔진 오일 광고도 비슷하다. 비키니 여인의 젖가슴이 터질 듯하다. 사장이 들어오자 나는 잡지를 덮었다.
사장은 내 차의 작업이 삼십 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은행나무의 노란 잎사귀들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린다.
정비소 옆 개울가로 내려가면 산책로가 가꾸어져 있다. 개울은 동천으로 이어지고 더 내려가면 옥천과 합류한다. 그래서 지명이 이수(二水)다. 나는 징검다리를 건너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물비린내가 은은하게 풍긴다. 산책하는 이들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개에 끌려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세상만사 다 필요 없다는 듯 양팔을 상하좌우로 아무렇게나 휘젓고 걷는 사람도 있다. 후드를 쓰고 조깅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대개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어 산다. 나는 문득 물속을 자맥질하는 수달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두어 마리의 물오리가 후다닥 수면을 차고 도망간다. 물속으로 들어갔던 수달이 저만치서 고개를 내밀자 나는 반가워서 수달을 불렀다. 수달아! 수달을 보고 수달이라고 부르니 이상하다. 나는 숨바꼭질을 하는 수달과 한동안 속도를 맞춰 걸었다. 어느 순간 수달이 보이지 않았다.
산책하고 돌아오니 내 차는 이미 도로변 저만치에 세워져 있다. 계산하려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밖을 내다보니 내 차의 운전석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처음엔 그가 직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직원은 다른 차의 엔진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가. 내가 깜짝 놀라 사장에게 물었다.
어? 저기 내 차에 누구예요?
신용카드를 손에 든 채 사장은 고개를 돌려 내 차를 바라보더니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저 친구가 언제 들어갔지?
사장이 밖으로 나가 소리를 질렀다. 한 사내가 차에서 내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손에는 무언가 들려 있었다. 나는 사장에게 항의했다. 도대체 누군데 남의 차에 함부로 올라가는 걸 그냥 두었느냐고 했다. 귀중품은 아니지만, 선글라스와 음악 시디 몇 장 그리고 동전 몇 닢도 눈에 걸렸다. 사장은 일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그 친구요, 외제 차를 보면 가끔 그래요. 매번 혼내 주는데 소용이 없어요. 아직 모르셨어요? 이 거리의 명물인데…….
사장은 내게 신용카드와 함께 타이어 회사의 기념품이라며 블루투스 스피커를 선물로 주었다. 선물은 많이 주는 것보다 제때 주는 것이 낫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손버릇이 나쁘거나 하진 않는데……. 참 딱한 친구예요. 참, 타이밍 벨트도 교환할 시기가 된 것 같은데 언제 시간 나면 바꾸시죠.
사장은 종이컵에 현미 녹차 티백을 넣으며 말했다.
그 친구 별명이 뭔지 알아요? 노끈 맨이라고 이 거리 사람들은 다 알아요. 아까 봤지요? 손에 들고 다닌 게 노끈인데 한시도 놓지 않아요. 가끔 로프도 들고 다니지요.
왜요?
모르지요.
자주 오는가요?
매일 이 시간에 다녀가지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기에서부터 저기 남교오거리까지가 그 친구 순찰 코스예요. 하루에 딱 한 번 만 왕복하는데 올 때마다 똑같이 인사하고 그냥 세수하고 가요. 사람들은 그가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도 하지만……. 한번은 여기로 데려다 차도 권하고 이것저것 물었더니 멀쩡히 다 대답하는 거예요. 이름 김 남훈, 1967년생 그리고 생일까지 말했는데 잊었네요. 집은 남교오거리 부근이라며 번지도 정확하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그다음 날 뭐가 좀 이상하기에 전날 했던 질문을 다시 했지요. 그랬더니 대답을 기가 막히게 똑같이 하는 거예요. 겉으로는 멀쩡한데 어찌 사람의 기억력이 하루도 못 가요, 글쎄.
다음날, 나는 승용차를 처분하고 픽업트럭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리고는 타이밍 벨트 때문인지 노끈 맨 때문인지 나는 어느새 정비소에 들어가고 있었다. 어제보다는 좀 이른 시각이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어제처럼 신문을 뒤적거리고 자동차 모델들을 훑어보면서 사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사장의 말처럼 그는 거의 제시간에 나타났다. 그가 사장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고개까지 다소곳이 숙이는 모습만 보면 잘 아는 사이처럼 보인다. 사장은 부하 직원 대하듯 고개만 조금 끄덕인다. 사내는 곧장 수돗가로 가서 세수한다. 사장이 저것 보라는 듯이 내게 미소를 보낸다. 세수를 마친 그가 세워 놓은 차들을 둘러보더니 내 차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다. 내가 급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여기요, 잠깐만…….
내가 그를 불러 세웠다.
어제도 이 차에 들어갔었지요? 내 찬데 왜 들어갔어요?
예? 모르겠는데요. 내가 왜요?
나는 사장의 말을 확인한 셈이었다. 더 이상 어제 일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저어, 우리 처음 만나는데 인사나 합시다. 차나 한잔 하실래요?
사무실로 따라 들어온 그가 실내를 둘러보고는 사장에게 다시 인사를 한다. 그는 외견상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약간은 단정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머리는 희끗희끗하게 세었고 정수리 숱은 엷었다. 눈가의 잔주름이나 탄력을 잃어가는 얼굴 피부가 전형적인 중년의 모습이다. 깍듯한 태도가 조금 과장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경계심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탁자에 올려놓은 그의 왼손에는 박스 포장용 파란 노끈이 감겨 있다. 내가 그에게 현미 녹차를 한 잔 건네고 명함을 내밀었다. 이제는 폐기해야 할 명함이다.
아, 지점장이시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명함이 없습니다. 제 이름은 김 남훈입니다.
내가 악수를 청하자 그가 마치 손윗사람을 대하듯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만나서 무척 반가워요.
말하고 나니 '무척'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초면에 무척 반가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베리 나이스 투 미츄. 외국어 영향인지 모른다. 나는 직장 초년 시절에 배운 중국어 인사말도 떠올렸다. 헌가오싱 지엔다오니. 꽤 열심히 했었지만 이제 기억에 남은 건 인사말 정도이다.
중국에 가 본 적 있어요?
나는 불쑥 엉뚱한 질문을 했다.
아뇨, 근데 가 보고 싶어요. 이제 수교도 했으니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수교라니! 나는 의자를 끌어당겨 자리를 고쳐 앉았다. 나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맺은 그해 1992년을 확실히 기억한다.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의 갑질 때문이었다. 한중수교 이전 중국은 적성국가이기 때문에 여행 전 신원조회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몇 시간에 걸친 안보교육을 받은 후, 나는 정보부 직원과 다방에서 만났다. 그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잡답처럼 이것저것 캐물었다. 딸만 둘이라… 으음… 아들 낳고 싶은 생각 없어요? 나는 마치 피의자가 된 기분으로 그의 질문에 고분고분 답했다. 같은 질문을 다시 하기도 했다. 나중에야 들었지만 그때 기름을 쳐야 한다고 했다. 막상 출국은 수교 직후였다. 사내에게는 한중수교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이제'라고 말하는 거로 보아 그 시기를 바로 직전의 일로 여기는 듯했다.
혹시 몇 가지 물어봐도 돼요?
내가 물었다. 그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지만 몇 년생이에요?
67년생입니다. 생일은 음력으로 4월 25일이고요.
그럼 올해 몇 살이에요?
답을 뻔히 알면서 하는 질문이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나는 별로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잡지를 펴서 비키니 모델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28살입니다.
사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누가 봐도 중년을 훨씬 넘어가는 얼굴인데 28살이라니,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사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오, 정말이에요? 아직 젊은 나이네요.
그는 약간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는 진지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곳이 고향이라면서 자기가 태어난 집의 약도까지 그렸다. 그때는 밭이었는데 지금은 온통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했다. 초등학교를 이곳에서 다녔으며 당시의 집 전화번호까지 기억했다. 그는 학창시절의 일도 아주 세세히 이야기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대도시에서 다녔는데 특히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할 때는 무슨 생각을 되새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더 이상은 말을 하지 않았다. 기억을 못해서가 아니라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의 침묵은 꽤 길었다. 나도 그의 입만 바라보며 기다렸다. 마침내 그가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대개 시간의 유연성을 경험하면서 산다. 여흥과 고통은 같은 시간을 짧게도 길게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는 시간의 방에 갇혀 있다. 그의 과거는 철저한 섬으로 현재와는 단절되어 있다. 현재의 순간들은 파편이다.
다음날 나는 일부러 정비소에 갔다. 나는 사무실에서 역시 티백 현미 녹차를 한 잔 마시고 그를 기다렸다. 사장이 내게 뭔가 알아낸 게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내가 밖으로 나가 그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그도 내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을 만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먼저 인사를 하니 으레 하는 대꾸인 것이다.
저어, 잠시 시간이 있으면 저 카페에 가서 차나 한잔 하지 않으실래요?
내가 정중하게 말하면서 길 건너편 카페를 가리켰다. 나는 그가 거절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러자고 했다.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무슨 느낌 같은 건 있는 성싶었다. 카페 안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대형 티브이 화면에는 어느 걸그룹이 현란하게 춤을 추고 있다. 볼륨을 낮춘 탓에 음악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갓 볶은 커피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김 남훈 씨, 올해 몇 살이에요?
나는 마치 말을 갓 배운 어린아이에게 묻듯이 다시 나이를 물었다. 이런 질문에 아이들은 대개 왜 또 묻느냐고 하지 않는다.
예? 내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어제 만났잖아요.
사내는 고개를 약간 갸웃했지만 전혀 기억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어제, 나이가 28살이라고 했는데 오늘도 28살이에요?
사내가 무슨 질문을 그렇게 하느냐는 투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켜며 물었다.
28살이 확실해요? 거울도 안 보고 사진도 찍지 않아요? 잠깐만요. 사진 한 장 찍어도 되죠?
나는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사진을 찍어 화면을 그에게 보여 주면서 말했다.
자 봐. 이게 네 얼굴이야. 이런데도 네가 28살이야?
사내는 내가 갑자기 반말을 했는데도 거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핸드폰의 화면을 잘 보기 위해서 고개를 약간 뒤로 젖혔다. 노안이 오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얼굴빛이 변했다.
아저씨, 이게 누구예요? 도대체 무슨 장난을 친 거예요? 이게 진짜 나란 말이에요? 뭐가 잘못된 거죠?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눈썹이 실룩거렸다. 나는 순간 그가 핸드폰을 던져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전화기를 내게 돌려주고 나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아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표정이 차분해졌다.
나는 내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밖으로 그의 시선을 돌리게 했다. 창밖에는 젊은 남녀가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셀카봉을 뻗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기 좀 봐요. 은행잎이 참 곱지요? 요즘 애들은 저렇게 자기 사진을 찍어요, 셀카로…….
나는 다시 높임말을 쓰며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 2분 정도 지난 후 다시 자리에 돌아오니 사내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의자에 앉자 그가 몸을 내 쪽으로 돌려 앉았다. 그때 호출 벨이 울리고 내가 커피를 가져왔다. 그는 카페라테에 설탕 봉지를 찢어 마지막 한 알갱이까지 털어 부었다.
저한테 무슨 할 말이 있으신가요?
어제 내가 준 명함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아니오. 무슨 명함인데요? 내게 명함을 주셨다구요?
나는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불과 하루 전의 일도 기억 못하는 사내를 마주하는 것이 무슨 허깨비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사내에게 과거는 어떤 의미일까.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뭔가 인상 깊거나 자신에게 흥미진진한 대상은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혹시 야구 좋아해요? 올해 타이거즈가 우승했는데…….
그럼요. 야구하면 타이거즈잖아요. 내가 얼마나 해태타이거즈를 좋아하는데요. 우승을 연속 네 번이나 했잖아요.
사내의 목소리에 힘이 묻어났다. 프로야구에 관한 한 사내의 기억력은 뛰어났다. 1986년부터 연속 4회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록은 물론 당시의 투수 선동렬, 타자 김성한의 기록도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평균 자책점 2.86을 기록한 철벽 마운드에 김봉연, 김종모, 이순철, 한대화 등의 성적을 수치까지 언급했다. 19년 동안 무려 9번의 우승을 차지하여 우승확률이 거의 50%에 가까웠던 사실을 제 일처럼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2001년 기아자동차가 해태타이거즈를 인수하여 이름도 기아타이거즈로 바뀐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최고의 팀인데 왜 해태가 망해요?
망한 게 아니라 구단주가 바뀌었단 말입니다. 이름을 바꾼 후로 오랜만에 올해 우승을 했잖아요.
사내는 고개를 약간 젖히고 뭔가를 기억해 내려는 표정을 지었다. 눈동자가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그 표정이 하도 진지해서 만약 연기라면 천부적 소질을 타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현실을 깨달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하고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확실히 당시 20대 후반 젊은이로 멈춰 있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일어났던 커다란 사건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며,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을 예측이나 상상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2002년에 열린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확실히 그는 1995년을 경계로 그 뒷부분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촛불 시위로 정권이 바뀔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1967년생의 28살은 1995년이다.
계산해 보니 1995년 당시 내 나이는 33살이었다. 나는 그해를 어느 해보다도 분명히 기억한다. 사춘기 때, 나는 33살까지만 살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입에 권총을 물거나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그런데 살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는 게 달콤했다. 은행원으로 일찍 자리를 잡아 대학 시절 연극을 할 때 만났던 여자와 연애결혼을 했고 남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아파트에 자가용을 갖고, 주말마다 드라이브를 즐기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저녁 식사를 즐겼다. 게다가 애인까지 생겼다. 그즈음 어느 봄날, 나는 한 여자를 하산 길에서 만났다. 아내와 달리 키도 나와 비슷하고 가슴이 무척 발달한 건강한 여자였다. 카우걸 같은 그녀에게 나는 발목이나 접질린 불쌍한 송아지였다. 그녀가 내 앞에 섰다.
그녀가 나를 곁부축해 주었다. 불과 1Km도 되지 않은 짧은 거리였지만 나는 간간이 그녀의 젖가슴 탄력을 내 오른쪽 위팔과 팔꿈치로 은밀하게 즐겼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지혜였다. 지혜는 유치원 보모였다. 마치 어린 유치원생이 울고 보채면 가슴에 안아주어 그 탄력으로 잠재워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마 후 실제 내가 그렇게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끈질기게 보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와의 외도는 동물적 본능 이외에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아무튼 나는 어린 유치원생처럼 그녀의 팔을 베고 잠이 들었다. 몇 번인가 기억이 분명하지 않지만 그녀와 나는 매번 초원을 격렬하게 달렸다. 내 두 무릎을 양손으로 짚고 달리는 그녀의 등에 긴 머리채가 출렁거렸다.
질주에는 낙마의 위험이 있다. 위험성과 양심의 가책을 동시에 느끼기 시작하자 먹이를 보고 왈칵 달려들 수 없었다. 보이지 않은 무엇인가 흐르고 있었던가 싶었다.
모텔 방은 한낮에도 두꺼운 커튼을 치면 한밤중처럼 어둡다. 당시 텔레비전에서는 매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생중계했다. 20초도 못 되어 지상 5층 지하 3층의 백화점 건물이 폭삭 내려앉아 오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몰되었다. 구조작업은 연일 계속되었다. 개가 사람을 찾고 염력으로 생존자들을 수색했다. 17일째 되는 날이었다. 열아홉 처녀가 암흑 속에서 377시간을 버티고 구조되었다. 온 국민이 환호성을 울렸다. 그날 이후 지혜는 연락을 끊었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내가 했던 말도 기억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말이 그녀의 성적 충동과 감정을 얼어붙게 만들었을까? 혹시 구조된 그 처녀의 끈질긴 생명력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태도를 걱정하며 내가 한마디 했을 수도 있다. 온갖 불법과 부패 그리고 탐욕의 덩어리 삼풍백화점의 붕괴 후 세상이 달라진 것도 내가 달라진 것도 별로 없었다.
회수대에 가져가려고 내가 그의 머그잔을 쟁반에 얹었다. 탁자에 올려놓은 그의 손에는 여전히 노끈이 감겨 있었다. 쟁반에 얹으려는 것처럼 내가 슬쩍 그의 노끈을 잡아당겨 보았다. 순간 그의 표정이 확 변했다. 그는 벌컥 화를 내며 노끈을 채서 허리 뒤로 감추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사장의 말을 떠올리며 예상은 했지만 결과는 더 심했다. 그는 나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뭔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결연한 의지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태연한 척 미안하다고 말하고 빈 잔을 회수대에 두고 왔다. 그는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창밖의 거리를 보고 있었다. 옅은 갈색의 썬팅 때문에 밖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의 얼굴에 조금 전의 피곤함이나 불안한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사람은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지난 일은 모두 망각의 세계에 묻힌다. 그리스 신화에서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는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의 경험을 특정 형태의 정보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불러내도록 했다. 인류의 모든 지적 활동과 진보는 그 기억 능력을 토대로 발전해 왔다. 물론 왜곡되고 재구성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람에겐 기억의 왜곡도 없는 듯하다. 더구나 자신이 매 순간에 고립되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일정한 과거만 있고 현재는 순간만 있을 뿐이다. 기억이 끊겨서 연속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사내의 얼굴을 쳐다보며 문득 나무 한 그루를 머릿속에 그렸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그가 나무와 하나가 되었다. 순간 나무는 중간이 싹둑 잘려나간 모습이 되었다. 가지와 잎사귀가 없는 그의 시간의 나무는 28년이라는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몽둥이일 뿐이다.
88올림픽 개막식의 굴렁쇠에 대해 몇 마디 나누고 나서 그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썩 잘했다고 약간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뜻밖에 낮은 소리로 무언가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워즈워스의 초원의 빛이에요. 초원의 빛, 꽃의 영광이여/ 그 시간을 그 어떤 것도 되불러올 수 없다 한들 어쩌랴/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본원적인 공감에서. 초원의 빛, 한때 정말 좋아했었어요. 그런데요…….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을 이었다.
절대로 1등을 하지 말라고 했어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면서요.
그의 할아버지가 그에게 자주 했던 말이라고 했다. 그는 그 말의 의미를 대학에 가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밤낮으로 세상이 바뀌던 지리산 기슭 마을에서 할아버지가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1995년 이후 23년이라는 엄청난 공백을 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큰 사건에 극심한 충격을 받았거나 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닐까. 나는 사내에게 삼풍백화점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깐 생각하는 척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비교적 최근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당한 사건도 몰랐다. 그의 멀쩡한 지성이나 능력에 비하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집에 가야겠어요. 배가 고파요.
화제가 끊겨서가 아니었다.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혀끝을 내밀어 입술을 핥더니 약간 미세한 미소만 보이고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 남문 오거리를 향해 사라졌다.
혼자 남자 나는 가슴이 꽉 막히는 걸 느꼈다. 그가 조금 전에 앉았던 빈 의자를 물끄러미 보면서 나는 그가 정말 여기에 있었던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내를 만나지 못한 지난 3주 동안 나는 아무 변화도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사내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나인 이유를 알지 못했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직장도 없다. 만나는 사람도 없다. 나는 아파트 주위를 산책할 때나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도 내 모습이 비친 유리창을 유심히 살피곤 했다. 낯선 내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돈 보낼 테니 계좌번호 문자로 찍어라.
10여 년 전, 은퇴하면 모여서 여생을 우아하게 보내자는 취지로 시골에 땅을 함께 샀던 친구였다. 팔기 어렵게 하자고 다섯 명의 이름으로 공동 등기를 해 놓았다. 그런데 그게 얼마 가지 않아 시들해지고 말았다. 공인중개사에게 맡겨 매각하게 한 지 얼마가 지났는지 기억에 없다. 그런데 그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세상에 공돈이란 없는 것인데 공돈처럼 느껴졌다.
친구를 못 본 햇수를 얼추 헤아려 보니 오륙 년은 된 것 같았다. 그 사이 그의 몰골이 형편없이 변해 있었다. 엷은 피부에 잔뜩 진 목주름을 보니 축 처진 닭의 볏이 생각났다. 그런데 외모와는 달리 생각이나 말투는 변한 게 거의 없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난 후 그가 내게 물었다.
앞으로 뭐 할 거냐?
아직 몰라.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할 거 아냐.
뭐? 니가 무슨 소크라테스냐? 세상에 그거 아는 놈 없어. 알면 오이디푸스처럼 제 눈 쑤시고 집 나가야 해. 뭐로 눈 쑤셨는지 알아?
몰라. 시끄럽고…… 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 이상한 사람을 만났어. 기억이 멈추어 버린 사람이야.
그럼 미친놈이잖아.
아니 멀쩡해. 그냥 바로 직전의 일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 것 빼곤…….
그럼 정상이네, 뭐. 누구나 건망증이 있잖아.
그 친구는 달라. 과거 한 순간 이후로 모든 기억이 다 녹아 없어진 거야. 세 차례 만났는데 매번 하나도 기억을 못하는 거야.
치매 아냐?
아닌 것 같아. 치매는 자기가 누군 줄 모르잖아. 그런데 이 친구는 28살 이전까지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어. 특히 학교 다닐 때 일은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어. 친구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했던 일이나 깡패들에게 돈을 뺏긴 일들을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는 거야. 깡패들이 극장 뒷골목에서 앞니 사이로 침을 찍찍 뿌리며 붉은 벽돌 담벼락을 송곳으로 긁어 대던 장면, 돈의 액수까지……. 사귀었던 여자가 둘이었는데 모두 왼손잡이였대. 그런데 나를 만나면 매번 초면인 거야.
오호, 그럼 마누라가 날마다 새 여자로 보이면 재밌겠다, 흐흐.
실없는 소리 말고 더 들어봐.
나는 사내의 증세를 약간은 과장해서 말해 주었다.
혹시 해마가 이상한 거 아닐까?
내가 물었다.
해마? 그거 책에도 이미 있는 이야기야.
그는 잘난 체하지는 않지만 잡다하게 아는 게 많았다.
기억을 못한다는 말은 맞지 않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야. 아예 없는 거야.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란 무수히 잡다한 감각의 경험 혹은 그 경험의 연결로 존재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 경험들이 큰 줄기 혹은 벽에 걸린 그림이나 사진처럼 듬성듬성 남아 있다. 누구에게나 저장되지 않은 기억은 기억으로 재생되지 않는다. 기억한다는 것은 일단 시각, 후각, 청각 등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피질을 거쳐 해마로 들어와 유사한 경험과 결합하여 저장되어 그 개별 경험 하나하나가 독립된 실체로 굳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기억력이 좋다는 말은 기억의 마지막 단계인 인출 단계가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의 흔적이 활성화되어 기억이 복원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은 처음부터 입력과 저장이 되어 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회상이라는 기억의 인출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의 중언부언이 계속되었다.
간질을 치료하려고 뇌 양쪽에 있는 해마 두 개를 다 제거한 경우도 이야기했다. 발작은 줄었지만 그의 기억은 불과 몇 분밖에 지속하지 않았다. 해마는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 아니라 기억의 4단계 중 처음의 부호화와 맨 나중의 인출에만 관여한다.
그렇지, 해마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모른다.
그럼 해마에 노끈만 남아있다는 말이야?
노끈? 무슨 노끈?
나는 사내가 들고 다니는 노끈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지, 그럴 수 있어. 사람은 누구나 어떤 부분이 어느 정도 상실되어 있거나 손상당한 상태에서 적응해 가는 과정을 겪으며 살아가는 거야. 망각의 혜택도 누리면서 말이야. 노끈은 기억이 아니라 습관일 거야.
초원의 빛을 외우던 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며칠 후 나는 여권을 갱신하러 나왔다가 거리에서 노끈 맨을 보았다. 전에 늘 입던 갈색 옷이 아니라 검은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걸었다. 미행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미행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그를 따라 걸었고 그는 나에게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가게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연석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근처 가게 주인이 웃으며 손짓을 하면 그는 마치 아는 사이처럼 손을 들어 미소를 보였다. 우리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나란히 앉기도 했다. 남이 보기엔 마치 중년의 친구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참 후 그가 일어나 길을 걸었고 나도 따라 걸었다.
얘, 노끈 맨이다!
지나가던 여고생들이 뒤를 돌아보며 소곤거렸다.
학생들, 저 사람 알아요?
내가 물었다.
그럼요. 얼마나 유명한데요. 그냥 노끈만 들고 다녀요. 호호. 어머 어머, 이 애 좀 봐. 왜 이래.
하찮은 일에도 까르르 웃는 나이다. 대가리에 리본을 단 말티즈가 꼬리를 치면서 다가와 앞발을 들어 학생의 종아리를 껴안으려고 했다. 주인이 목줄을 끌어당겼다.
사내는 남교오거리 모퉁이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팥죽을 파는 집이었다. 나는 사내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내가 돌아보며 어서 오세요, 라고 건성으로 인사를 했다. 사내는 여전히 내가 누군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식사시간이 아니어서 가게에는 사람이 없었다. 주인 여자는 카운터에 앉아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손짓으로 사내를 불러 눈짓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사내는 탁자를 정리하고 의자를 밀어 넣고 ……. 묵묵히 자기 일을 했다. 사내가 주방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주인 여자에게 사내가 동생이냐고 물었다.
저 애요? 그래요. 불쌍하지만 어쩌겠어요.
주인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내는 어느 해 갑자기 머리가 이상해지기 시작했고 바로 직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식구들은 처음엔 술 때문인 줄 알았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취직한다고 하더니 언제부턴가 알코올중독 증세까지 보였는데 어느 순간 술도 뚝 끊어버리더라고 했다.
다행이다 싶었지요. 다른 증세는 별로 이상한 게 없어요. 시키는 일 잘하고 말썽도 없어요.
오늘 옷에는 세월호 리본도 달았네요.
그녀를 통해서 들은 바로는 세월호 침몰 때 그는 날마다 티브이를 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안타까워했으나 다음날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더라고 했다.
그때부터 죽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는데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병원에도 가 보았지요. 코르사코프 증후군이라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병이래요. 알코올 때문에 유두체가 파괴되어 영구적인 기억손상이 일어났을 거래요. 미국 가도 못 고친대요. 쟤는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그냥 기계적으로 살아가요. 사실 사는 데는 별로 이상 없어요.
주인 여자의 이야기에서도 나는 더 이상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럼 노끈을 들고 다니는 것은 왜랍니까? 무얼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요?
나는 윤동주의 시 <길>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물었다. 잃어버린 무엇을 찾으면 묶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노끈을 움켜쥐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를 체포하기 위해서? 아니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도 학생들을 밧줄로 묶어 20여 명을 구한 파란 바지의 의인, 50세 화물기사 김 동수 씨처럼 어느 순간에 필요할지 몰라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다닌 것은 아닐까.
모르겠어요. 잘 때도 쥐고 자는 것 같아요.
주인 여자가 대답했다.
분노나 집착으로부터 자유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 살면서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끝없이 반복되면서 기억은 점점 줄어든다. 확실히 사내는 과거라는 시간의 화석이 되어 과거 속에서만 판단을 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아온 인생은 화려하지도 장엄하지도 엄숙하지도 않은 그저 하찮은 일들의 기억뿐이다. 내게도 중요한 기억을 묶어둘 노끈이 필요한 건 아닐까.
저 동생은 내일 무엇을 꼭 하겠다고 말하기도 합니까?
그럼요. 다음 날은 그것도 잊어버리지만…….
나는 사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일지,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는지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심하게 화를 내거나 누구와 싸운 적이 있는가도 궁금했지만 나는 그냥 팥죽의 새알만 입에 꾸역꾸역 처넣었다. 벽걸이 달력의 12월 22일에 붉은 사인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일주일쯤 지난 후 나는 건전지를 사러 나왔다가 혼자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오후 2시 5분 전,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여전히 노끈이 감겨 있었다. 이번에도 박스 포장용 파란 노끈이었다. 그가 내 곁을 지나간다. 내가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여전히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2시 정각.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민방공 대피훈련이 시작된 모양이다. 처음 1분간 평탄한 소리가 퍼지자 어디서 대기하고 있었던지 노란 모자에 노란 상의를 입은 민방공 대원들이 거리로 나와 사람들에게 대피를 지시한다. 교통경찰들도 붉은 막대를 휘저으며 차량을 갓길로 유도한다. 사람들은 머뭇머뭇 가게로 들어가거나 지하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우에엥우에엥우에엥.
이번에는 긴박한 공습경보가 일정한 높낮이로 물결치듯 울려 퍼졌다. 3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귀가 마비될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사이렌 소리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 있다. 확성기에서는 지금은 훈련 상황이라며 우리가 지키는 안보 의식이 평화롭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지키는 길이라는 방송이 반복되어 흘러나온다. 어디선가 심한 폭격을 당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도로에 은행잎만 무심히 뒹군다.
그를 따라 들어간 뚜레쥬르의 유리창은 엷은 갈색이었다. 밖의 정적이 지극히 비현실적이었다. 빵 냄새가 구수하게 퍼졌다. 사내는 진열대의 빵을 들여다본다. 내가 낱개 포장의 찹쌀도넛을 사서 그에게도 몇 개를 건넸다. 이거 하나 맛 좀 봐요. 내가 말했다. 그가 뜻밖이라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냥 받아요. 맛있게 보이잖아요. 내가 봉지를 내밀자 그가 씨익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감사합니다. 그뿐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사이다.
경보해제를 알리는 방송이 들리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차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일상이 잠시나마 정지되었다가 소생하는 것은 기적 같은 현상이다. 그걸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다. 씨발, 바뻐 죽겠구만……. 누군가가 욕설을 하면서 급히 지나간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분주하다. 그가 한 손에 빵 봉지, 다른 손에 노끈을 움켜쥐고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대개 욕망과 기억이 뒤섞인 삶을 살아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거의 표가 나지 않는다. 바람이 제법 살랑하다.
나는 그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빵집의 쇼윈도에 비친 키 작고 배 불룩 나온 사내의 모습이 낯설다. 오종종한 얼굴, 처진 어깨에 등도 조금 굽었다. 나는 허리를 펴고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윈도에 비친 사내가 나를 따라 한다. 나는 약 10초간 허공에 앙상히 떠 있는 빈손을 올려다본다. 한 중년 여인이 한발 옆으로 나를 피해 지나간다. 그녀가 몇 발짝 걸어가다가 뒤돌아서서 츠츠 혀를 차며 나를 쳐다본다. 허전하게도 하늘이 희부옇다. *
양원옥
단편소설 「잠복기」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2
단편소설 「산불」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4
작품집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