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공경은 축복받는 지름길이다. 출20:12 엡6:1-3
5월은 가정의 달로 두 번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로 나에게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주일입니다.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도록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주시는 방법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복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생업의 복을 주십니다. 시편 128편 1절은 주를 두려워하며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자는 복이 있도다. 그렇습니다.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경하고 섬기는 그런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민족이나 가정은 복을 받도록 하나님이 약속을 해 놓으셨는데 그들이 받는 복은 네 손이 수고한 것을 네가 먹으리라는 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생업에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복은 가정의 형통한 복입니다.
시편 128편 3절에는 내 아내는 네 집 곁에서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 같으며 네 자식들은 네 상 둘레의 올리브묘목 같으리라는 말씀은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정의 충만한 복을 증거하고 있는데 감람나무는 기름을 짜는 유익한 나무로 자녀들을 감람나무 묘목으로 이야기 하고 아내들은 마치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아름다운 가정의 형통한 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또 자식들의 자식들을 볼것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는 장수의 복도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받게 될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의 중심은 부모 공경에 있다고 에베소서 6장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순종이란 윗사람의 지시나 말을 잘 따르는 것으로 자녀들이 부모님 말씀을 잘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고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지음 받은 인간은 주님을 공경하듯이 우리를 낳으신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이 순종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이 공경입니다. 그래서 2절은 공경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엡6:2-3)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것은 약속 있는 첫째 명령이니) 3 이것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인데 여러분 공경이란 말은 웃어른을 받들어 모시는 것인데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님들을 공손한 마음으로 잘 받들어 섬기는 것이 바로 공경입니다. 그러므로 순종과 공경은 의미가 조금 다르지만 같은 뜻이에요. 순종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부모의 말씀을 잘 따르는 것이고 공경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부모를 잘 받들어 섬기는 것이 바로 공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부모공경 잘 안할 것을 알고 계셨으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에게는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할 것이라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약속이 왜 첫 계명일까요? 이웃 사랑의 계명은 5계명부터 있는데 5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에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준 땅에서 네 날들이 길리라.”(출20:12) 아멘. 사도 바울이 5계명을 인용해서 에베소서에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을 우리들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시편128편에서 말씀했듯이 사람들이 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기를 낳으신 부모를 공경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은 부모 공경을 하면 약속대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을 알면서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게시므로 우리들은 반드시 지켜야 될 계명인줄 믿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 다를 바 없는데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고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으니 인간의 고유한 자산이지만 이것은 자연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가르쳐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식들로부터 부양 받으려면 내가 먼저 부모님께 효도하는 삶을 통해 생활속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예로부터 부모님에 대한 공경을 인륜의 중요한 덕목이라 하면서 "효"를 말할때 "반포지효"를 비유하곤 하지요. 이는 "젊은 까마귀가 어미한테 먹이를 씹어 다시 먹인다"는 뜻으로 반포지효의 유래는 明나라 말기의 본초강목(명나라의 이시진이 질병의 치료에 쓰이는 약물을 관찰·수집하고 분류한 자연과학서)에 까마귀 습성을 살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 어미가 새끼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새끼들이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는 습성을 반포(反哺)라고 하는데 이런 연유로 반포지효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극진한 효도를 뜻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 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옛날 외딴 시골마을에 덕망 있는 할아버지가 동산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까마귀 둥지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까마귀 둥지속에는 죽어가는 까마귀 두마리가 보였는데 주위에 있는 까마귀들이 어미까마귀를 살리기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첫째 까마귀는 개울에서 입에 물을 잔뜩 물고 와서 어미까마귀 입에 넣어 주었으며 둘째 까마귀는 들과 산에서 먹을 것을 잡아다가 주었고 셋째 까마귀는 까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 주었고 넷째 까마귀는 물고기를 잡아다 주었고 다섯째 까마귀는 동네 사람들이 버린 음식을 물어다 주는 것을 할아버지가 보았다. 동네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천대를 받던 까마귀가 어미에게 지극정성으로 효도하는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무릎을 탁 치면서 반포지효라는 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버이 날 기원
어버이날 시작은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웹스터 교회에서 오랫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자비스 부인이 세상 떠난지 1년이 되었던 1908년 5월 10일 교회학교 제자들과 그녀의 딸이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던 카네이션 꽃을 어머니 영정에 헌화하면서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않고자 기념하였던 것이 어머니날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시작한 어머니날이 마침내 미국 제28대 윌슨 대통령이 재임하던 1914년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해서 교회는 5월 둘째 주는 어머니 주일 또는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교사들에 의해 교회에서 5월 두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지키게 되다가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이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확정 공포하였고 1974년 정부에서 이날을 어버이 날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효도는 우리 인간의 진정한 유산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속담에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효도하지 못하고 돌아가시면 안타까운 후회만 남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살았을 때 효도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기일에는 제사 상을 잘 차려서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효도를 하고 싶겠지만 제사상을 차리는 것이 부모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신에게 제사드리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0:20) 이방인의 제사는 마귀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막12:27). 효도는 살아계실 때 부모님의 뜻을 잘 받들어 부모님을 마음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물질적으로 봉양하는 것으로 좀 더 편안하게 해드린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할 것이고 부모님은 정말 행복해 하실 것입니다. 성경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공경은 인간의 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부모공경하는 것을 계명으로 정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앞서 눈에 보이는 네 부모를 먼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리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공경하라’는 헬라어 ‘티마오(timao)로 값을 지불하다’입니다. 어버이날에 자식이 부모님께 선물을 했다면 부모로 받은 것 중에 일부를 지불한 것입니다. 여러분!! 효도란 값을 지불하다라는 것인데 부모님이 낳아 키워준 그 값을 어떻게 지불하시겠습니까? 우리말에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는데 돈으로, 물건으로 갚으라는 것이 아닐텐데 말 한마디, 행동 하나라도 값을 갚지 못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값을 지불하셨나요? 아니면 갚고 계신 중에 있으십니까? 인간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10가지 계명은 5계명을 빼고는 하라 또는 하지말라고 하셨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 대해서는 상급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부모공경한 자들에게는 형통과 장수한다는 상급을 약속하셨고 불효한 자들에 대해서는 징계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를 공경한 몇 사람만 살펴볼까 합니다.
2. 부모를 공경한 실화
(1) 요셉의 효도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여 복 받은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여 복받은 사람들 중에 우선 생각나는 사람이 이삭과 요셉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모리아 산을 향해 가는데 모리아 산을 올라갈 때는 번제에 쓸 나무를 지게에 지고 갈 정도로 어젓한 소년이었습니다.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110살이 훨씬 넘은 늙은 아버지가 아들 이삭을 결박한 후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데도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힘으로 하면 능히 아버지를 뿌리치고 달아날 수 있었지만 아버지를 믿었고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믿었던 효도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버지 아브라함을 공경한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십자가를 지신 것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 아브라함을 공경한 이삭을 하나님께서 축복을 넘치게 주셨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주셨고 또 창26:12-16에 보니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고 흉년이 들었을 때 그 아내와 함께 블레셋 땅 그랄에 거주하였을 때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100배나 얻었고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다고 하였고 또 우물을 파는데 마다 생수가 터져 나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삭의 아들 야곱, 야곱의 아들 요셉은 얼마나 효도를 한 아들이었던가요? 요셉은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형들에 비해 많이 받고 자란 아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가진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꿈 때문에 그의 인생 또한 굴곡이 심하였다. 한번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요셉은 자기를 시기하는 형들이 양치고 있는 그 거리가 60여 km나 떨어진 세겜으로 보냈는데 요셉이 아버지가 지시한 세겜으로 갔었을 때는 이미 형들은 세겜에서 북쪽으로 30km까지 더 올라가 양을 치고 있었으므로 물어 물어 도단까지 가서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미워하는 형들에 의해 애굽상인에게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요셉의 나이 17세였는데 아버지 심부름을 충실하게 한 결과가 노예로 팔리는 운명이 된 것입니다. 노예로 팔린 요셉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며 온갖 고생 끝에 시험과 환란을 모두 이겨내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30세가 되었을 때 애굽 총리의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성경은 요셉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언제 어디서 있든지 함께 하여서 그가 형통했다고 말합니다(창39:21). 요셉은 애굽의 총리지만 세월이 흘러가는 가운데 인간적으로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한 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동안 아버지 야곱에게 효도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다가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에 기근이 들자 요셉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에 온 형들을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형들과 동생 베냐민을 보면서 너무도 감격스러웠고 지난 세월을 생각 할 때에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마음 중심에는 자신을 노예로 판 형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요셉을 알아보고 두려워 떠는 형들을 향하여 따뜻한 말로 위로합니다.
(창45:5,7) 5 이제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존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앞서 보내셨나이다. 7 하나님께서 큰 구출로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고 당신들을 위해 후손을 땅에 보존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와 사랑을 깨달아 형들에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요셉의 마음은 먼저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애굽나라의 치리자로 삼으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45:8) 그런즉 나를 여기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분께서 나를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의 온 집의 주가 되게 하셨으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가 되게 하셨나이다. 그러면서도 요셉의 부모에 대한 공경의 마음이 간절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고하기를 속히 올라가서 요셉 자신의 소식을 알리고 아버지와 남은 가족들도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1) 아버지를 지체 말고 내려오시라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빨리 보고 싶었습니다. 자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껴주셨던 아버지의 목소리와 모습들이 눈에 선하게 스쳐지나갔을 것이고 아버지는 얼마나 늙으셨을까? 지금까지 못난 자식을 위해 마음고생은 얼마나 하셨을까? 매일 자식 생각에 눈물 마를 날이 없으셨을 아버지를 속히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아버지가 지체 말고 내려오시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입니다. 창45장 27절과 28절에 보면,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 기운이 소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말합니다.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는 야곱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마음은 자식 얼굴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누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 내가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당시 애굽에는 이미 흉년이 시작되었고 요셉의 꿈 해몽으로 흉년이 아직도 다섯 해나 남아 있었습니다. 아비와 형제들 모든 가속들이 결핍할까? 하는 마음에 요셉의 마음은 부모사랑과 형제사랑으로 뜨거워져 있었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후 아버지 이스라엘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봉양하게 됩니다. 요셉의 순종이 훗날 아버지와 형제들을 애굽으로 초청하여 애굽에서 기근을 면하게 됩니다.
(창46:29) 요셉이 자기의 병거를 예비하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자기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이하며 그에게 자기를 보이고 그의 목을 껴안으며 그의 목에 기대어 얼마동안 울매
전혀 못만날 것 같은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났다는 것은 우리들이 천국가서 이 땅에서 이별하였던 부모를 만나는 상황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셉은 아버지의 아들(형)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서 함께 더불어 평안히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고센 땅은 아버지가 평안히 거하며 형들이 목축하기에 아주 좋은 땅이었다. 요셉은 부모와 형제를 살기 좋은 곳에 모셨던 것입니다. 봉양한다 함은 받들어 모신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받들어 섬기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가깝게 하는 것이 효도인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에게 순종했던 사람들은 언제나 형통했을 뿐만 아니라 장수의 복도 누렸는데 이삭은 180세 야곱은 147세 요셉은 110세를 장수했습니다.
(2) 효부 룻의 효도
물론 성경에서 너를 낳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기를 낳지 않은 시부모까지도 그것도 남편도 죽었는데 홀로 남아 있는 시어미를 공경했던 나오미의 자부 룻이 있습니다. 룻기 1장 15-18절의 말씀을 통해 시부모를 자기 친어머니처럼 공경한 룻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룻이라는 모압여인은 누구보다 불행한 여자였습니다. 왜 룻이 불행하였냐 하면 룻은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온 유대인 남자와 결혼한 여인인데 남편은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자식도 두지 않고 죽었습니다. 자기 남편만 죽었던 것이 아니라 결혼하기 전에는 이집 시아버지가 죽었고 얼마전에는 시아주버님까지 죽어서 이집에는 이제 남은 사람이라고는 나이많아 홀로 된 시어머니, 생과부 된 동서 그리고 자기까지 과부만 셋이 남은 정말로 희망이라고는 눈을 비비고 봐도 볼 수 없는 불행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이었습니다. 롯의 시어미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잘 살아 보겠다고 이곳 모압땅에 이주했는데 불과 10년도 안되어 이지경이 되었으니 이제는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자기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두 며느리에게 각자 친정으로 돌아가 재가하여 행복하게 살 것을 말하였습니다. 첫째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친정으로 돌아갔으나 둘째 며느리인 룻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고 시어머니와 함께 어디든지 같이 가겠다며 고집을 부립니다.
(룻1:16-18)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마침내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며느리 룻의 뜻이 확고함을 알고 둘째 며느리 룻을 데리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룻은 불행한 삶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직도 젊은 나이에 또 자식도 없는데 또 희망도 없는 비극적인 가정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편 잃고, 두 아들마저 잃은 슬픔에 젖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 자신 운명이라 믿고 시어머니를 봉양할 것을 자청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6-17). 룻의 이러한 마음은 그녀가 시어머니로부터 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생명이 길리라는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방 모압여인으로서 시어머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한 고백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룻은 지금 놓인 상황이 불행한 상황인데 그대로 감수하려 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더 큰 어려움도 감내할 각오를 하였습니다. 그녀의 고향 모압을 떠나면 친정부모를 영영 보지 못할 곳으로 가는 것인데 그리고 장래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가난하고 늙은 시어머니를 무조건 따라 나서겠다는 그녀의 결단과 각오는 보통의 여인들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룻의 선택은 자기를 희생하더라도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겠다는 뜻이니 착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이런 며느리는 동서고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더 이상 볼 것 없고 얻을 것 없다 싶으면 마음 정리하고 스스로 떠나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 텐데... 룻은 처음 시집올 때 가졌던 마음이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남편이 죽고 남편에 의해 남겨진 자식도 없지만 남편의 어머니가 곧 자기의 어머니임을 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친 자녀들도 가정 형편 운운하며 돌아보지 않는 이 세태에 남편도 없는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겠다는 룻의 진정한 효부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난으로 고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시어머니를 봉양하고자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따라 나서는 룻의 결단과 희생적인 모습에서 오늘 우리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에 온 룻은 낯선 땅에 와서 가난과 고독을 묵묵히 이겨가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룻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곡식추수할 때는 남의 밭에 가서 곡식 이삭을 주우면서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그녀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데...이렇게 늙은 시어머니를 따라 이 먼 곳까지 와서 저렇게 시어머니를 봉양하다니 그저 입이 닳도록 칭찬들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룻을 어떻게 축복 하셨을까요?
1) 룻이 다윗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다
나오미의 효부 룻이 나이는 많지만 지역에서 명망있고 부유한 나오미 남편의 친척 보아스와 결혼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시모 나오미를 통해 새 가정을 갖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입니다. 남편 잃은 여인으로서 일생동안 외롭게 살 줄 알았던 룻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깨고 그녀는 존귀한 가문의 보아스의 아내가 되는 큰 복을 받아 다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나온 아이가 오벳입니다. 오벳이 누구냐고요 바로 다윗왕의 할아버지입니다.
(마1:5-6)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이방여인 룻이 시모 나오미에게 효도하였더니 그녀가 낳은 아들이 다윗왕의 할아버지 오벳이었으며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았다고 기록을 하였으니 이방모압 여인으로서 룻이 받았던 축복이야 말로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오르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3) 어머니날을 국가 기념일로 공포한 윌슨 대통령
조금 전 어머니날의 유래에서 어머니날의 시작은 한 작은 교회에서 시작했는데 이 어머니 날이 전국적인 행사로 지켜진 것은 미국의 28대 윌슨대통령이었을 때 국가적인 기념일로 정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윌슨대통령의 어린시절부터 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약 백이십년 전에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한 가난한 과부와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과부는 낮에는 양계를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들도 어머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졸업식을 앞두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졸업식에 입고 갈 만한 변변한 옷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누추한 모습 때문에 아들이 얼마나 민망해 할지 생각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너의 졸업식에 가야겠지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가지 못하겠구나! 네가 이해하렴.” 그러나 아들이 울면서 매달립니다. “아니, 어머님! 어머님 없는 졸업식이 제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만사를 다 제쳐놓고서라도 어머님이 졸업식에 꼭 참석을 하셔야만 됩니다.” 할수없이 매달리는 아들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어머니는 가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드디어 졸업식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전 학생들을 대표해서 멋있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금메달을 목에 걸고서 많은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서 내려 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는 한쪽 구석에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기를 바라는 듯이 앉아 있는 그의 어머니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 앞에 서서는 자기 목에 걸려 있는 금메달을 벗어서 그의 어머니의 목에 걸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님이 아니셨으면 제가 어떻게 오늘의 이 영광을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서 모든 공을 어머니에게 돌렸습니다. 이 아들은 그 후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의 제 28대 윌슨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재임하던 1914년 그는 국회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은 전 세계의 교회가 5월 둘째 주일은 어머니 주일로, 또는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부모가 나를 낳아준 은공에 보답하기 이전에 주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 부모공경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는 약속있는 첫 계명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조건은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로부터 받았던 것 중의 일부를 값을 지불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인 줄 믿습니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꽃을 부모님에게 달아드리는데 초기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또 부모에게 꽃처럼 아름다운 자녀가 되겠다는 뜻으로 자식들이 카네이션 꽃을 달았었는데 나중에는 자녀가 달지 않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붉은 카네이션 꽃에 담아 부모님께 달아드리게 된 것이 지금의 어버이 날의 전통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날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날 낳으시고 기르신 것만으로도 사랑과 존경을 받기에 마땅하신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할 수 있는 특별한 이 어버이주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통해 내게 귀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부모님 없이 지금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또한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3. 부모공경은 첫 번째 되는 하나님의 계명이다
부모 공경은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계명 중에서 제일 처음 주어진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으뜸으로 강조되고 있는 까닭은 부모의 DNA를 받고 태어났으므로 부모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의 외모나 성격도 부모와 많이 닮았다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사회에서 제일 처음 관계를 맺는 사람이 부모이므로 부모와 관계를 잘 맺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는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나중에 부모 공경하는 사람이 되며 다른 사람들도 존중하게 되는 것이지 부모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 리 없습니다. 제5계명이 무너지면 이후 다른 계명들 살인 간음 도적질이나 거짓증거 탐심도 모두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계명들은 타인을 존중하라는 것인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타인을 존중할리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타인을 무시하는 것은 부모를 무시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1)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단순히 부모이기 때문에만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까닭은 그 부모가 바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실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는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갈보리 산에서 지신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들을 이토록 사랑하셨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까지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셨고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보여주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수십번 잘못했다하더라도 자식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는 부모는 없다는 것처럼 부모의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버림을 당했던 부모라도 그 부모는 자식을 경찰에 고발하지 않습니다. 그런 부모들에게 경찰이 와서 자식에 대해 수사를 하여도 행여 자식에게 무슨 해라도 생길가봐 끝까지 자식을 보호하는 부모들을 보노라면 부모가 얼마나 자식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데 하나님 사랑은 이보다 더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떠나 죄를 밥먹듯이 지었어도 회개만 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집나간 자식이 집에 돌아오기만을 고대하면서 기다리시는 분이 부모님이시며 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무조건 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 땅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가페 사랑의 일부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부모는 자녀에게는 최초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교육을 받고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서 최초의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삶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고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모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교육을 가르치는 최초의 교사이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은 자녀들은 커서도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부모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언젠가는 자녀들도 부모의 신앙을 본받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면 반드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들 셋을 두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예수님을 잘 믿었지만 막내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제 멋대로 살았는데 마지막 어머니의 임종이 다가왔었을 때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합니다. 첫째와 둘째는 천국에서 다시 보자고 말했는데 막내에게는 굳 바이 라고 합니다. 막내아들은 왜 나에게 그렇게 말하느냐고 묻습니다. 너와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없으므로 지금이 마지막 작별하는 순간이라는 말에 막내 아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숨넘어가는 순간까지 자식들을 예수님에게로 안내하는데 누구보다도 가장 영향력을 가진 스승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 공경하라는 것을 계명으로 주셨으니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부모의 가르침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요한도 보이는 자기의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까지 말하였다(요일4:20).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우선 눈에 보이는 육신의 부모를 잘 섬겨야 합니다.
(2)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이란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더군다나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명령은 부모의 명령도 아니고 모세의 명령도 아니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잊지 않기 위해서 돌판에 계명을 새겨서 주셨습니다. 제5계명인 부모공경하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지켜야 할 약속있는 첫 번째 계명이라고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6:1-3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형통한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엡6:2-3)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첫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이 다음의 계명까지도 잘 지켜서 인간관계가 잘 유지가 될 수 있고 범사에 축복도 받고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상위의 법과 하위의 법이 부딪힐 때는 상위 법을 따르게 되듯이 부모의 명령에 순종한다고 하여서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된다면 가족 모두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없으므로 사후의 세계는 불행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가장 큰 명령으로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부모까지도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주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선 이므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매우 성경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장수와 형통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섬기는 명령(제1계명부터 4계명)에는 어떤 축복의 약속도 안하셨지만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식들에게는 땅에서 오래살게 되는 장수복과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특히 가정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값진 최상의 선물인데 이 가정이 이제는 성경 본래의 의미에서 이미 변질되어졌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윤리와 원칙은 구시대 발상이 아닙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흘러도 이 진리는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지켜져야 할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의 근본은 부모공경, 즉 효도에서 시작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셉의 효도처럼 우리의 효도가 우리의 가정과 이웃과 민족과 사회 가운데 아름답게 향기가 되어 퍼져나가는 축복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3) 불효한 자는 죽여 마땅한 죄라고 하였습니다.
요즘세상은 자식을 낳아 양육하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가는 시대가 우리가 사는 시대입니다. 작은 일에도 부모가 자식에게 맞거나, 존속살해당하는 일들이 심심잖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였지만 실은 불효한 자식들로 넘쳐난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 이제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들을 성경은 어떻게 다스리라고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효도하는 자들과는 반대로 장수하는 복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신21: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신21: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출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죽여도 되고 안죽여도 된다는 불분명한 입장이 아니라 반드시 죽이라는 것입니다. 죽이는 방법도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또는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고 참으로 끔찍한 죽음입니다. 물론 이런 부모가 있겠느냐만은 공경하지 않고 배은망덕하는 자녀에게는 인간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치 않는 죄만을 거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는 죄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요 그 권위에 불순종이나 거역으로 도전하는 자녀는 부모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악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불순종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죄가 되는 것이며 부모를 공경치 않는 불효한 죄는 죽음으로 밖에 다스릴 수 없는 중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은 이 시대는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상급을 걸어놓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합니다.
우리는 고려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나이든 연약한 부모를 먹을 것과 함께 생매장하기 위해 지게로 짊어지고 산에 가서 내려놓고
온다는 고려장이 현대판에도 방법은 다르지만 여전히 존재합니다.
젊은 자식들이 부모가 짐이 된다고 하여 버리는 경우는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니 그런 것이 지금은 뉴스거리도 안되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늙은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은 전혀 흠도 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자식이 늙은 부모를 학대하는 것은 너무도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치 못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부모를 공경하는 책임을 지지않는 가정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는 가정이요 이미 천국백성임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치매걸린 아버지를 여의고 통곡하는 한 아들이 있습니다.
** 치매걸린 아버지에 무관심했던 아들
늙으신 아버지를 귀찮아하던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병 들어 모든 것을 잊어버리셨고 똑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은 병원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옆에 계신 아버지가 나무위에 새를 보시더니 갑자기 저건 무슨 새냐고 물었다. 아들은 힐 끗 쳐다보며 저건 참새라고 말했다. 잠시 후에 아버지는 다시 한번 저건 무슨 새니? 하고 물었을 때 아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버지 말했잖아요? 저건 참새라고 하면서 귀찮아했다. 아버지는 그 새에 눈길이 계속 가시더니 또 다시 저건ㅡ 무슨 새니? 물었다. 아들은 책을 내던지면서 아버지 참새예요 참새라고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냐고요?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들의 화난목소리에 아버지는 깜짝 놀라서 아들을 쳐다보더니 시선이 멍하니 땅으로 향하더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아들은 빚 바랜 아버지의 일기장을 우연히 펼쳐보던 아들은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그 일기장에 젊은 시절 3살 된 아들과 공원에 갔을 때의 일기가 기록되었다. 참새 한마리가 아들 머리위로 한 바귀 돌더니 나뭇가지 위에 가서 앉았다. 아들은 나에게 물었다. 아빠 저건 무슨 새요? 아들아 저건 참새란다. 조금 있다가 아들은 다시 한번 아빠 저건 무슨 새요?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그럴 적마다 아버지는 우리 아들 천진난만 하기도 하지 저건 참새란다. 그날 그런 질문을 아들은 21번이나 물었다고 기록했다. 아버지가 참새라고 말해줄 때 마다 아들은 흥미를 갖고 키득거리며 즐거워했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그 순간 그 아들은 눈물을 뚝뚝 일기장에 떨어뜨리면서 목놓아 울었다. 왜 치매걸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는가? 적어도 부모님이 당신에게 베푼 사랑의 절반만이라도 실천한다면 치매걸렸던 그 아버지는 잠시나마 기분이 좋았을 것을 그리고 외로와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끝으로ㅐㅐㅐ 여러분의 자녀들 위에 부모공경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공경을 통해 얻게 되는 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이 여러분 가정 위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