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445) 부부가 사돈이 된다
어머니 일년 상을 치르고 열두살 박술은
불꽃에 휩싸여 한점 검정이 돼 하늘로 날아오르는 상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눈물 한방울을 똑 떨어뜨렸다.
가난한 선비 유 진사는 섧게 울더니 죽장과 두건을 불꽃 속에 던졌다.
마흔도 안된 유 진사는 대소가 어른들의 끈질긴 권유로 이듬해 재취를 들였다.
그녀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아들은 박술보다 두살 아래요 딸은 세살 위라나.
갑자기 식구가 셋 늘어나니 집안이 어수선해졌다.
박술은 새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세살 위 딸에게도 누나란 소리가 나오지 않아
아버지 유 진사에게 꾸중을 듣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름이 칠복이라 했던가, 두살 아래 데려온 아들은 싹싹하게 박술을 ‘형님’이라 불렀다.
박술이와 칠복이는 나란히 서당에 다녔다.
삼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던 박술 어미 약값으로 거의 가산을 다 날리고 몇 뙈기 남지 않은
논밭에 유 진사와 머슴이 매달려 그럭저럭 입에 거미줄은 치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 봄에 심한 가뭄으로 가을이 돼 추수라고 하고 나니 벼는 쭉정이뿐이요
콩은 아예 씨가 올라오지 않아 반타작도 못했다.
머슴 새경을 주고 나자 보릿고개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겨울날 일이 캄캄하다.
머슴을 보내고 새어머니가 서당에 찾아왔다.
훈장님과 얘기를 나눈 끝에 데려온 아들 칠복을 자퇴시켰다.
박술은 늘 궁금했다.
어느 날 훈장님께 물어봤다.
새어머니가 왜 친아들 칠복을 자퇴시켰는지.
훈장님 왈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 물어봐 칠복이보다는 네가 잘한다고 사실대로 말해줬다.”
박술은 서당 뒤 풀밭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에 고개를 묻고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 서당 다녀왔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라 부르자 새어머니는 박술을 꼭 껴안았다.
박술이 열여섯살이 돼 초시에 붙자 새어머니가 우물가에서 눈물을 씻으며 울었다.
칠복이 열네살이 되니 머슴만은 못해도 제법 의붓아버지 유 진사를 도와 농사일을 많이 거들었다.
데려온 누나 순복은 나루터 주막에서 일하며 꼬박꼬박 월급을 타서 집안을 도왔다.
박술은 초시에는 덜컥 붙더니 대과인 과거에는 연거푸 낙방했다.
설상가상 허약한 유 진사는 모심기를 한 후에 드러눕고 말았다.
이듬해 과거시험 날짜를 서너달 앞두고 누나 순복이 제법 무쭐한 전대를 박술한테 건네주며
“한양에 올라가 성균관 옆에 방을 얻어 선비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모아야 한다더라”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박술은 단봇짐을 메고 한양 길에 올랐다.
까치 고개 넘어 개울가에 앉아 단봇짐을 풀어 새어머니가 싸준 삶은 달걀을 먹으니 목이 메었다.
그해 가을 대과 합격자 명단이 나붙은 방(榜)을 보고 박술은 기나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중신아비들이 몰려와 에워쌌다.
“배를 열두척 갖고 있는 목포 최고 부자 오 첨지 외동딸, 얼굴도 양 귀비요.”
“마포 부자 셋째 딸은 혼수가 문전옥답 일백마지기요.”
박술은 모두 물리치며
“처자식이 있소이다”라고 외쳤다.
어사화가 꽂힌 사모관대를 쓰고 백마 탄 박술이 고향에 돌아왔다.
병석에 누워 있는 유 진사에게 큰절을 올리고 어사화를 꽂은 사모를 벗어
새어머니에게 씌워주고 큰절을 올리자 또 눈물이 흘렀다.
고을 사또가 잔치를 베풀어줬다.
잔치가 끝나고 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장원 급제를 한 박술이 손수 현청에 가서
호적부에 들러 아버지 유 진사의 재취로 들어온 새어머니의 호적을 파냈다.
이혼을 시킨 것이다.
호적만 파낸 게 아니다.
새어머니와 동생 칠복이 그리고 순복이 이렇게 세식구는 보따리를 싸들고 유 진사네 집을 떠났다.
동네 사람들은 수근거렸다.
유 진사가 아들이 장원 급제를 하니 고생한 재취를 쫓아냈다는 것이다.
꽃 피고 새 우는 봄날,
유 진사 집에서 삼십여리 떨어진 새어머니 친정집 마당에 차양이 처지고 혼례가 열렸다.
신랑은 스물두살 유박술이고 신부는 스물다섯살 노처녀 임순복이다.
박술이 현청에 가서 새어머니 호적을 파낸 연유가 드러났다.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이제 사돈이 됐다.
----- 노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