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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핑크타이드 현단계
원영수 (국제포럼/프닉스)
0. 들어가며
2023년 코로나 19 판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요동치는 정세 속에서 미래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조용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메리카 제국이 자신의 뒷마당으로 여겼던 라틴 아메리카에서 더 이상 미국의 정치군사력만으로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를 넘어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13년 우고 차베스의 사망 이후, 특히 2010년대 중후반 이후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와 연이은 좌파 정부의 정권 재창출 실패로 핑크타이드의 실패가 가시화됐지만,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좌파의 연이은 선거승리로 핑크타이드가 부활하고 있다.
특히 2009년 쿠데타로 좌파정부가 축출당한 온두라스, 좌파의 선거승리 가능성이 희박해 핑크타이드의 외부로 여겨졌던 페루나 콜롬비아 등에서 연이은 좌파 후보의 승리는 예상 밖의 역사적 반전이었다. 칠레에서는 좌파 내에서 세대 교체가 이뤄지면서 핑크타이드의 새로운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 글은 2010년대 중후반 위기 이후에 주로 2020년대에 일어난 주요한 변화를 중심으로 핑크타이드의 흐름을 간략히 점검하고자 한다.
1. 핑크타이드의 간략한 역사
1) 핑크타이드의 역사적 흐름
1990년대: 상파울루 포럼(FS) 결성, Castro-Lula 주도
2000년대: 핑크타이드 1단계, Hugo Chavez(1954-2013)의 등장
2010년대: 핑크타이드의 위기
2020년대: 핑크타이드 2단계
2) 핑크타이드의 주요한 특징
- 핑크타이드: 좌파 선거혁명의 동학
- 역사적으로 20세기 칠레 Salvador Allende의 민중단결(Unidad Popular: UP) 선거혁명(1970-73)과 9/11 쿠데타의 재현
- 베네수엘라: Hugo Chavez와 볼리바리안 혁명의 중심성
-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의 결합
- 급진블록과 온건블록의 형성: 반신자유주의 대 반자본주의(?)
3) 쿠데타의 정치학
- 2002년 베네수엘라 쿠데타와 Hugo Chavez의 복귀
- 2009년 온두라스 쿠데타 & 2020년 Xiomara Castro의 복귀
- 2012년 파라과이: 탄핵으로 Fernando Lugo 퇴진
- 2016년 브라질: 의회탄핵으로 Dilma Rousseff 퇴진, 2022년 선거로 Lula 복귀
- 2019년 볼리비아: 쿠데타로 Evo Morales 퇴진, 2020년 선거로 Luiz Arce 복귀
2. 2차 핑크타이드의 흐름
2018년 멕시코 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AMLO)
2019년 아르헨티나 Alberto Fernandes
2020년 볼리비아 Luis Arte
2021년 페루 Petro Castillo, 온두라스 Xiomara Castro, 칠레 Gabriel Boric
2022년 브라질 Lula da Silva
1) 멕시코: 멕시코 혁명 이후 첫 좌파 대통령
2018년 7월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가 1988년 이후 처음으로 과반을 넘긴 득표로 승리했다. 멕시코 혁명 이후 집권한 제도혁명당(PRI) 외부의 좌파 후보의 첫 승리였다.
후보 | 정당 | 연합 | 득표 | 득표율 |
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 민족재생운동 (Morena) | Juntos Haremos Historia | 30,112,109 | 53.19 |
Ricardo Anaya | 국민행동당(PAN) | Por México al Frente | 12,609,472 | 22.28 |
José Antonio Meade | 제도혁명당(PRI) | Todos por México | 9,289,378 | 16.41 |
2018년 7월 멕시코 대선 결과
2) 볼리비아: 2019년 쿠데타의 전복
임기연장 개헌 논란 속에 치러진 2019년 대선에서 에보 모랄레스가 승리했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의 대대적 반정부 쿠데타 공세로 사회주의운동(Movimiento al Socialismo–Instrumento Político por la Soberanía de los Pueblos: MAS-IPSP or MAS) 정부가 붕괴하고 모랄레스는 망명길에 올랐다.
쿠데타 이후 수립된 우파 과도정부는 모랄레스 정부(2006–2019)의 흔적을 지우면서 신자유주의로의 복귀를 추진했다. 그러나 MAS를 중심으로 한 민중진영은 2020년 10월 대선에서 루이스 아르세 후보를 중심으로 대응해, 결선투표 없이 역사적 승리를 거뒀다.
2020년 볼리비아 대선-총선 결과
정당 | 후보 | 득표 | % | 하원 | 상원 | ||
의석 | +/– | 의석 | +/– | ||||
MAS | Luis Arce | 3,393,978 | 55.10 | 75 | +8 | 21 | 0 |
CC | Carlos Mesa | 1,775,943 | 28.83 | 39 | –11 | 11 | –3 |
Creemos | Luis Fernando Camacho | 862,184 | 14.00 | 16 | - | 4 | - |
Front For Victory | Chi Hyun Chung | 95,245 | 1.55 | 0 | 0 | 0 | 0 |
3) 페루: 페드로 카스티요의 역사적 승리
2021년 4월 11일 무명의 교사 출신 페드로 카스티요 후보가 대선 1차투표에서 승리해 결선에 진출했다. 7월 6일 열린 결선투표는 박빙의 승부였고, 자유페루의 페드로 카스티요는 케이코 후지모리 우파후보에 맞서 4만여표 차이로 박빙의 승리를 거뒀다.
후지모리 측의 집요한 방해공작 때문에 카스트요는 7월 19일에 당선이 확정됐고, 7월 28일 카스티요의 좌파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2021년 4-6월 페루 대선 결과
후보 | 정당 | 1차투표 | 2차투표 | ||
득표 | 득표율 | 득표 | 득표율 | ||
페드로 카스티요 | 자유페루(PL) | 2,724,752 | 18.92 | 8,836,380 | 50.13 |
케이코 후지모리 | 민중세력(FP) | 1,930,762 | 13.41 | 8,792,117 | 49.87 |
카스티요의 승리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교사파업 외에 뚜렷한 정치적 경력도 없고, 자유페루 역시 국회의원을 배출한 적 없는 지역정당에 불과했다. 대선과 동시에 열린 총선에서 자유페루는 일거에 37석을 얻어 제1당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낮은 득표(1,724,354표, 13.41%)로 130석 가운데 37석으로 과반에 못미쳐 반정부 우파의 전방위적 공세에 시달리다 2022년 12월 국회에서 탄핵당했다.
4) 칠레: 제헌의회와 가브리엘 보리치, 새로운 좌파의 승리
2021년 11월 21일 열린 칠레총선에서 가브리엘 보리치 좌파 후보가 결선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고, 12월 19일 결선투표에서 55.87%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리치의 승리는 2019년 지하철 요금 인상에 항의하는 도시폭동이 전민중항쟁으로 발전한 정치적 과정의 결과였다. 동시에 칠레 좌파 내에서 포스트 피노체트 시대를 지배한 기민-사회당 블록을 대체하는 새로운 좌파가 등장해 집권에 성공한 역사적 성과를 냈다.
2021년 11-12월 칠레 대선 결과
후보 | 정당 | 1차투표 | 2차투표 | ||
득표 | 득표율 | 득표 | 득표율 | ||
가브리엘 보리치 | 존엄승인(AD) | 1,815,024 | 25.82 | 4,620,890 | 55.87 |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 기독사회전선(PLR) | 1,961,779 | 27.91 | 3,650,088 | 44.13 |
가브리엘 보리치의 존엄승인(AD: Apruebo Dignidad)은 2000년대 반신자유주의 교육개혁투쟁을 주도한 새 세대 학생운동의 정당인 광역전선(FA)와 칠레공산당(PCCh) 주도의 가치있는 칠레(Chile Digno) 선거연합으로 이번 대선을 앞두고 2021년 1월 출범했다.
2019년 칠레항쟁의 역사적 결과는 바로 제헌의회이다. 전민중적 항쟁 결과 2020년 제헌의회 설치를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됐고, 압도적 지지(찬성 78.31% 대 반대 21.69%)로 제헌의회 설치가 결정됐다. 2021년 5월 15-16일 선거로 제헌의원 156명을 선출해 7월 4일 제헌의회가 설치됐다.
피노체트 없는 피노체트주의를 완전히 청산할 새 헌법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고, 초안이 작성됐다. 2022년 9월 22일 새 헌법초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됐지만, 부결됐다.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는 제헌과정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5) 온두라스: 시오마라 카스트로, 2009년 쿠데타를 뒤집는 역사적 승리
2021년 11월 28일 열린 온두라스 대선에서 시오마라 카스트로 후보가 과반 득표로 승리해 우파 국민당 12년 지배를 종식시켰다. 시오마라 카스트로는 2009년 쿠데타로 축출당한 마누엘 셀라야 전대통령의 부인으로, 2011년 반정부 세력을 규합해 결성한 리브레(Libre: Libertad y Refundación 자유와 재건당)의 후보였다.
2021년 11월 대선 투표결과
후보 | 정당 | 득표 | 득표율 |
시오마라 카스트로 | 자유와 재건 | 1,716,793 | 51.12 |
나스리 아스푸라 | 국민당 | 1,240,260 | 36.93 |
시오마라 카스트로의 승리는 핑크타이드를 뒤집는 첫 반동이었던 2009년 쿠데타를 다시 뒤집어 정권에 복귀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2002년 우익 쿠데타를 카라카스 민중의 투쟁으로 뒤집었던 베네수엘라의 민중항쟁만큼의 역동성은 다소 못 미치지만, 미국과 우익이 시도한 쿠데타를 극복할 수 있는 역사적 승리가 중앙 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온두라스에서 일어났다.
6) 콜롬비아: 구스타보 페트로의 역사적 승리
2022년 5월 29일 열린 콜롬비아 대선에서 좌파 선거연합인 역사적 타협의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40.43%의 득표로 1위를 차지해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2,3위 우파후보의 연합으로 승리가 불확실했지만, 6월 19일 결선투표에서 구스타보 페트로는 50.44%의 득표로 승리해 콜롬비아에서도 마침내 좌파 대통령이 탄생하게 됐다.
2022년 5-6월 대선 투표결과
후보 | 정당 | 1차투표 | 2차투표 | ||
득표 | 득표율 | 득표 | 득표율 | ||
구스타보 페트로 | 역사적협약(CH) | 8,541,617 | 40.34 | 11,281,013 | 50.44 |
로돌포 에르난데스 | 반부패동맹(Liga) | 5,965,335 | 28.17 | 10,580,412 | 47.31 |
콜롬비아는 1960년대 시작된 게릴라 투쟁으로 50년 넘는 내전을 겪어 정상적인 정치가 불가능한 나라였고, 그 결과 우익독재 아래서 군부와 우익 무장단체의 폭력이 일상이었다. 2012년 평화협상이 시작됐고, 2016년 주력 반군인 FARC(콜롬비아 혁명군)와 평화협정이 체결돼 2016년 10월 국민투표로 승인됐다. 이로써 사망자 22만 명과 피난민 700만 명이 발생한 52년 내전이 종결됐다.
아직 무장투쟁을 지속하는 반군이 존재하지만, 콜롬비아 정치는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비록 여전히 전 게릴라 전사들과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불법 우익무장 세력의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선거과정을 통해 게릴라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7) 브라질: 룰라의 화려한 복귀
2022년 10월 브라질 대선에서도 이냐시오 룰라 다 시우바 후보가 승리했다. 2016년 쿠데타로 정권을 상실한 뒤 룰라까지 구속됐지만, 2022년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인 보우소나루를 꺽고 승리를 거뒀다.
2022년 10월 대선 투표결과
후보 | 정당 | 1차투표 | 2차투표 | ||
득표 | 득표율 | 득표 | 득표율 | ||
룰라 다 시우바 | 노동자당(PT) | 57,259,504 | 48.43 | 60,345,999 | 50.90 |
자이르 보우소나루 | 자유당(PL) | 51,072,345 | 43.20 | 58,206,354 | 49.10 |
3. 간략한 분석: 2차 핑크타이드의 주요한 특징과 한계
1) 주요한 특징
- 선거혁명의 확장: 멕시코(2018년 AMLO)까지 북진, 핑크타이드의 외부로 여겨졌던 콜롬비아(2012년 Petro Castillo) 등 전대륙적 현상으로 확장
- 역쿠데타 동학의 확장: 대중적 투쟁을 통한 탄핵과 쿠데타의 극복, 2020년 볼리비아 Luis Arte의 승리, 2021년 온두라스 Xiomara Castro의 승리, 2022년 브라질 Lula da Silva으 승리 등
- 좌파 내부의 변화: 칠레 Gabriel Boric 정권, 칠레 신좌파의 등장
- 제헌의회 전술
2) 한계: 포스트 Chavismo 시대의 핑크 타이드
- 후계문제: 1차 핑크타이드의 정치적 약화를 가져온 핵심 요인, 우파의 집요한 공격을 불러온 Hugo Chavez와 Evo Morales의 연임허용 국민투표
- 문제는 경제!: 포스트 신자유주의의 대안, 일국적 대응을 넘어선 대륙적 포스트 자본주의의 구체화
- 좌파 정당의 공고화
-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상대적 약화: 좌파정권과 노동/사회운동의 관계
3) 2023년 핑크타이드의 돌발 상황
# 페루 민중항쟁
- 2022년 12월 7일 탄핵 쿠데타 및 Dina Boluarte 정권 수립
- 이후 3개월 넘게 전민항쟁: 볼루아르테 퇴진, 국회해산, 조기선거 실시, 제헌의회 소집 등을 요구하면서 전국적 시위와 도로봉쇄, 수도진격투쟁으로 저항하는 중
# 브라질: 브라질리아 점거
- 대선결과에 불복한 보우소나루 극우지지파의 돌발적 정부청사 점거
4. 핑크타이드와 21세기 사회주의
2023년 현재 핑크타이드는 라틴 아메리카의 주요 국가에서 모두 좌파가 정권을 잡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멕시코까지 포함해 라틴 아메리카 주요 나라에서 좌파 정권이 출범해 1차 핑크타이드에 비해 더 폭넓고 더 강력해진 양상이다.
미국과 우익의 전방위적 공세 속에서도 핑크 타이드 좌파는 선거를 통한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20세기 후반 냉전 시기의 무장투쟁에서 쿠바와 니카라과 외에는 무장혁명에 실패했지만, 포스트 냉전시대에 우고 차베스와 피델 카스트로, 룰라가 출범시킨 상파울루 포럼(SF)의 선거혁명 프로젝트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핑크타이드를 추동한 급진블록의 우고 차베스(1954-2103)와 피델 카스트로(1926-2016)가 사망하고,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 속에서 핑크타이드의 급진블록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볼리비아와 온두라스에서는 쿠데타로 전복된 좌파가 완강한 투쟁을 통해 정권에 복귀하는 역사적 성과를 거뒀다.
칠레나 볼리비아를 제외하면 민중-사회운동의 동력과 선거정치의 유기적 결합이 취약하거나, 대선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좌파정당의 정치조직적 공고화가 여전히 취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라틴 아메리카에서 범좌파의 강세는 제국의 뒷마당에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