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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이사야 49: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이사야 49:8)
지난번 우리가 살펴본 바 이사야 49:1 이하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라고 불리는 단락입니다. 우리가 몇 주 전에 이 부분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앞 부분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인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태중에서부터 특별히 구별하셨고 그의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며 하나님께서 손 그늘에 숨기시고 날까로운 화살처럼 벼려서 쓰시며 그리스도를 두고서 하나님께서 자기 종이요 참 이스라엘이라고 약속하심을 1절과 2절에서 이른 바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너무나 많은 고난을 겪게 되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낙심할 수밖에 없어서 좌절하기도 하고 낙심되기도 하는 내적 위기를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4절 전반절에 그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실제로 그리스도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사역하실 때 많은 수고를 하였지만 자기 백성들인 유대인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고 도리어 그를 미워하고 트집을 잡고 귀신들렸다고 말하며 모세의 율법을 파괴한다고 비난하고 성전을 모독했다고 죽이려 들었고 일반 백성들은 기적과 이적을 맛보며 귀신에게서 자유함을 얻고 광야의 떡을 얻는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예수님의 약속하신 여호와의 종, 언약의 사자라는 사실에는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실제로 이 땅에서 많은 수고를 했지만 당장에 거두는 것이 별로 없었고 무익하게 공연히 힘을 다했다고 허탈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4절 후반절에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이르기를
“참으로 나의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고 고한 대로,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작정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심에 만족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까지 충성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만주의 주로 삼아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 이어진 8절 말씀 역시 지상의 사역을 감당할 때 낙심하고 지쳐 있는 그리스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로 이해함이 가장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상 사역 도중에 힘이 들고 낙심하기 쉬운 우리 주님께 이러한 약속의 말씀을 해주신 것이라고 8절 말씀을 파악함이 합당합니다. 함께 8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이사야 49:8)
“은혜의 때, 구원의 날”은 그리스도가 오시어 만민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구원의 때를 가리킵니다. ‘때’란 하나님의 주권적인 때입니다. 갈라디아서 4:4 말씀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의 말씀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오랜 세월 고통과 슬픔 아래 처한 인간들을 그 속박에서 건져내고 자유와 평안과 행복과 생명을 되찾고 충만한 은혜를 얻게 해줄 여자의 후손, 언약의 사람을 기다렸는데, 하나님께서 때가 찰 때에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때에 그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이전도 아니요 그 후도 아니요 딱 이천년 전 로마 치하에 유다 백성들이 신음하던 바로 그 때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때인 것입니다. 바로 그 때가 은혜의 때요 바로 그 때가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바로 그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보내신 그리스도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고, 그로 인하여 인간 구원을 이루기 위한 사역을 행할 때 도와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여기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동사 형태가 완료형으로서 일종의 과거형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어의 어법상 과거 시제를 가리키는 완료형이 종종 확정적인 미래를 가리키곤 합니다. 마치 장래에 이루어질 일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완료형의 시제를 통하여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바로 그러한 의미의 완료형 시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은혜를 구할 때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이며 그가 주의 백성을 위하여 일하며 구원을 청할 때 여러 기적과 이적을 통하여 적극 도와주시고, 또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할 때에도 그를 죽음에서 건져내어 영광의 생명으로 다시 살리시는 일을 해주시리라고 여기서 확정적으로 약속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은혜의 때에 하나님 아버지는 그에게 응답해주시고 구원의 날에 그를 도와주신다는 약속은 그리스도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한 예를 들자면,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돌문을 열어놓으라고 말씀하신 후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의 기도의 말에 이러한 확신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요한복음 11:41 이하에 이르기를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지금 죽어서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려내는 이 큰 일을 앞두고서, 하나님께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날이라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도와주시고 응답해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시고 주님께서 기도를 다 마친 후에 무덤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하시자 나사로를 벌떡 일어나게 하시어 문밖으로 나가도록 역사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는 모든 날이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종 그리스도를 도와주시고 응답해주심으로써 그의 모든 구원 사역을 완전히 성취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이후의 모든 교회 시대 내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주님 오실 그 날까지 계속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주어진 이 약속의 말씀이 그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게 하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6:1,2 말씀에 이르기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 시대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승천 후에 성령을 보내시고 사도들을 보내어 이방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세우고 주의 백성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시는 초대 교회 시대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주님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까지가 바로 이러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그 은혜의 때, 구원의 날에 우리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을 받아 구원의 복된 소식을 듣고 믿음을 선물로 받아 주의 백성이 되는 영광스러운 은총을 입은 줄 믿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무슨 선한 일을 행하였거나 의로운 행실을 행하였기 때문도 아닌데, 오직 구주의 전적인 수고를 인하여 값없이 은혜의 선물로 주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 값없는 구원의 선물을 소중한 줄 알고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하여 온갖 모욕과 멸시와 미움을 당하며 죽기까지 고생하신 수고의 열매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그 종이 눈물로 하나님께 호소하며 피 땀을 흘리며 간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고 그를 도와주신 까닭에 우리가 값없이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니, 우리들이 값없이 받은 구원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수고하고 애썼는가 고생했는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헛되지 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받은 은혜를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가꾸고 우리도 힘을 다하여 주님과 복음에 충성을 다하는 신실한 주의 백성이 됩시다. 할렐루야.
또한 8절 중반절 이하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계속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에게 또 다른 격려의 약속 말씀을 베푸십니다.
8절 중반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보호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에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계속하여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를 죽이려는 자들이 늘 기회를 엿보고 그의 고향 사람들인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들어가지고 높은 산에 올라가 절벽으로 밀어뜨려 죽이려 들었고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도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치려고 했고 마귀는 예수님이 탄 배를 전복시켜 죽이려고 거센 풍랑을 일으켜 흔들어대기도 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그토록 예수님을 죽이려고 힘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정한 때에 유월절 어린 양으로 잡혀 죽되 나무에 매달려 모세의 놋뱀처럼 들리워질 그 때까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늘 천군천사를 통하여 보호해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받은 주의 백성들인 우리들 역시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결코 악한 마귀가 손을 대지 못할 것이며 우리를 해치려는 원수들도 결코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은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성민 언약을 맺었으나 결국 그 언약을 깨뜨린 자처럼 행하였기 때문에 시내산 언약은 무효과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약속하신 자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언약이 되어주시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언약의 중보자가 되심으로써 새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8:6 이하의 말씀에 이르기를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히브리서 8:6~8)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새 언약 백성의 대표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우리는 이제 구약 시대 시내산의 언약 백성이 되었으나 못 지킨 이스라엘 백성과 달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죄가 하나도 없으신 완전한 의를 힘입어서 새 마음을 받고 성령을 받아 우리 마음에 거룩한 하나님의 법을 모시고 주를 알게 되고 죄를 다시는 기억되지 않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된 줄 믿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언약 자체가 되시고 모세보다 완전한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 의인이신 여호와의 종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덕분인 줄 믿습니다. 오직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히 버림받지 않는 하나님의 새 백성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께 장차 완전한 땅, 완전한 나라를 주어 그 땅을 상속하게 하신다는 약속도 주셨습니다. 8절 후반절에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원문에 보면 ‘나라를 일으킨다’라고 되어 있지 않고 ‘땅을 일으켜 세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범죄로 인하여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침략을 당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황폐하여져서 마치 소돔과 고모라 땅처럼 변화될 것인데 그들이 다시 바벨론에서 돌아와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겠다는 1차적인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게 주신 약속으로 본다면, 황무하였던 땅은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저주받은 땅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온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땀 흘려 수고하여 거두지 못하고 야생의 세계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작용하고 사람들의 세상에도 온갖 악과 저주가 가득하고 사람의 마음속에도 온갖 야수성이 가득하여 폭력과 압제와 수탈을 일삼는 지옥과 같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에게 황무화되고 저주와 악이 팽배한 세상의 땅 대신에 새롭게 된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베푸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곧 모든 아담 이래의 죄로 인한 저주가 사라지고 모든 세상에 질서와 평화와 안전과 행복이 가득한 새로워진 새 땅, 새 하늘, 새 예루살렘을 주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 약속은 이사야서 후반부에서 더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겠다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그러한 비전입니다. 주님이 보내신 성령께서도 사도들을 통하여 세상을 불로 정화시키고 죄를 없애고 깨끗하게 하여 완전하고 평화롭고 모든 약육강식이 사라지고 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고 장난치고 소와 사자가 함께 풀을 먹는 세상을 가져오신다는 목가적인 예언이 장차 실제로 성취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우리 구주 예수님을 통하여 장차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우리 구주께서 이 땅에서 고난과 역경을 만나 낙심할까 염려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우리 주님께서 그 수고를 다하였고 끝내 죽기까지 순종하고 끝내 승리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주님께서 받으신 이 축복의 약속을 우리도 동일하게 주님 안에서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충성하신 주님과 그 아들을 내어주사 죄많은 죄인들인 우리를 살리시고 은혜와 구원의 때에 도와주시고 붙들어주시고 끝까지 보호해주시고 언약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새 하늘 새 땅의 상속자로 삼아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하고자 이 은혜의 때, 이 구원의 날에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위하여 헌신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