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 -78
“대한민국족구협회의 신선한 시도가 체육계 및 전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TV뉴스에서 족구협회의 선수등록에 관한 뉴스에 이어 대담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 주목 받지 못하던 족구가 한 순간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마을단위 예선전이라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선보인 족구협회가 이번에는 키오스크를 이용한 현장 선수등록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체육회 최덕규 이사님을 모시며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화면에 최 이사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최 이사도 당황하고 있었다.
“예, 반갑습니다.”
“예,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사님께서도 많이 당황하신 것 같던데 이번 시도를 어떻게 보십니까?”
“예, 새로운 시도라는 점을 신선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을단위 예선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시도였습니다. 정말 참신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 선수등록이라는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솔직히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오~ 그런 일이 있었던 겁니까?”
“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족구협회 회장도 당황하며 새로운 시도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 당황해 하며 해결책을 찾던 중 키오스크를 이용한 현장등록을 생각해 내게 되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마을단위에서 예선전을 펼쳐 전국 우승자를 가리는 경우가 예전에도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경우입니다. 여담이지만 전국노래자랑이 이런 경우겠죠. 마을 우승자가 년 말에 전국대회에서 최종 우승자를 가리지 않습니까?”
“예, 정말 그러네요.”
사회를 보던 여자 아나운서가 잠시 웃음을 보였다. 스포츠 경기에 전국노래자랑이 비교된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러면 이렇게 마을단위 예선전부터 전국 우승자를 가리는 경기방식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예, 분명히 있습니다. 우선 족구라는 종목을 세심히 들여다 봐야 합니다. 족구는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발만 사용해 공을 네트너머로 넘기기만 하면 됩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할 수 있는 운동종목입니다. 물론 고 난이도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선수가 될 수 있는 종목입니다.”
“예, 맞는 말씀 같습니다. 저도 대학교 엠티 때 그리고 방송국 야유회에서도 몇 번 해본 적이 있습니다. 제 기억에도 무척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단지 놀이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예, 바로 그겁니다. 경기를 하기 위해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거든요. 또 열광하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마을단위 예선전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나누는 아나운서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 올랐다. 분명히 그녀의 기억 속에도 족구에 대한 추억이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보고 즐겼던 감동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며 즐겼던 감동이었다.
“그런데 선수등록이 문제가 되었다는 건 무슨 말이죠? 규칙상 누구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예, 그게 좀 복잡합니다. 특정종목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협회나 단체에 가입된 팀에 소속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내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 그렇군요. 그렇다면 족구선수 등록도 팀에 소속이 되어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나운서의 질문은 집요하게 이어졌다. 집요하다기 보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전체적인 궁금증이 터져 나왔다.
“우선 한가지 말씀 드리면 우리 한국체육회는 대한민국의 스포츠를 이끌어가는 조직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국가올림픽 조직위원회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계올림픽위원회 WOC의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겁니다.”
“아~ WOC에서 허용을 안 한 거 군요. 등록된 선수가 아니면 경기를 할 수 없다고 했겠군요?”
“예, 맞습니다. 무조건 등록이 되어있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회에 가입된 팀 소속이어야 하고요.”
“그러면 경기가 이루어질 수 없어야 하는데, 지금 선수등록을 하고 경기에 참여하고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경기가 열리고 있죠. 이유는 족구협회의 과감한 결정이었습니다. 팀을 만들고 협회에 등록한 후에 선수를 등록하는 기존의 절차입니다. 그런데 선수로 등록한 사람들이 모여 나중에 팀을 결성하고 협회에 가입하도록 정관을 변경한 겁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예, 정관을 변경하고 선수등록도 접근성이 용이한 키오스크 단말기를 사용하도록 한 겁니다. 물론 기존의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직접 협회를 방문해서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등록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죠.”
“예, 엄청난 도전이었군요. 그런데 WOC에서는 이 방법을 승인한 겁니까?”
“예, 바로 승인했습니다. WOC에서 우리 한국의 위상이 예전과는 다르거든요. 한국의 의견을 쉽게 무시하지는 못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단순하게 보고 즐기는 스포츠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스포츠 종목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족구협회의 도전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긴 인터뷰가 마무리 되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속도를 내며 질주를 시작하고 있었다.
□ D. -77
지역별 예선전이 열리자 기찬은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하지만 며칠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예, 이사님.”
대한민국족구협회 류 실장이 정중하게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니 왜 연락이 안 되는 거야? 류 실장은 홍 회장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아~ 급하게 해외 출장을 가셨습니다.”
“해외출장?”
“예, 해외출장입니다. 아마 당신 회사일 때문인 거 같습니다. 저도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그래? 얼마나 급하길래 연락도 없이 간 거야. 지금 어떤 상황인데……”
최 이사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있었다. 평소와 달리 서두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신데요? 급한 일입니까?”
“아니, 급한 일은 아니야. 그런데 연락은 되는 거야?”
“직접 음성통화는 안 되고 문자로만 연락이 가능합니다. 항상 해외 출장을 가면 문자로만 연락을 합니다.”
“으음~ 일은 벌려놓고…… 바쁜 친구야. 그러면 협회 일은 누가 하는 거야?”
“예, 급한 일은 제가 처리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결정이 필요한 내용만 연락을 취합니다.”
“그래…… 류 실장이 일은 다하는구먼. 고생이 많아. 내가 조만간 소주 한 잔 살 테니까 시간 비워놓을 수 있지?”
“예~ 그럼요.”
“그래, 잘됐다. 그렇다면…… 혹시 왕인베스트 진 대표 잘 알고 있어?”
“아니요, 그냥 통화만 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시죠?”
“으응, 언젠가 진 대표가 류 실장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했거든. 잘됐네 이번에 만날 때 진 대표도 함께 만나면 좋잖아. 어때 괜찮아?”
“그럼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 없는 통화였다. 하지만 류 실장도 진 대표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족구협회에 과감히 지원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 잘됐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류 실장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컴퓨터 자판에 손을 올려놓았다.
□ D. -76
기찬과 정균은 항공기에서 내려 입국 심사대를 향했다.
“외국에 나오면 항상 불안해. 그런데 네가 있으면 전혀 그렇지가 않아.”
심사대를 통과한 기찬이 정균을 바라보았다. 예상하지 못한 연락을 받고 급하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혼자는 외로운 거야. 특히 외국에서는 더 그런 거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렇지? 그런데 갑자기 왜 연락이 온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혹시 우리가 해외 단체들에 보낸 공문 때문인가?”
“글쎄…… 나도 모르겠다. 공문에는 별 내용이 없었는데. 그래도 효과는 있었나 보네.”
이야기를 나무며 걷는 동안 입국게이트를 통과했다. 주변을 둘러볼 필요도 없이 게이트 바로 앞에 ‘JOK-KU’라고 쓰여진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WOC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국제공항이었다.
기찬은 개인 전자메일로 미팅을 원한다는 WOC관계자의 연락을 받았다. 공식적인 미팅이 아니라 개인적인 미팅을 원한다는 WOC 종목채택위원장의 전자메일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기찬과 정균은 사내의 안내에 따라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제네바국제공항을 출발한 차량은 속도를 올리며 목적지인 로잔을 향해 달려갔다.
얼마를 달렸을까 언덕아래에 커다란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제네바 호수였다. 제네바 호수는 정균에게 많은 기억을 만들어준 장소였다. 스포츠 마케팅을 국제스포츠의 중심인 WOC가 있는 로잔은 그에게는 성지나 마찬가지였다. WOC회의가 열리면 무작정 이곳 로잔을 찾아왔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명함을 전달하며 한국에서는 낯설던 스포츠 에이젼트 사업을 시작했다.
“정균아, 감회가 새롭지?”
기찬도 정균의 그런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여기에 왔고 낯선 도시라는 이질감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 벌써 20년이야. 20년 전에 무작정 여기에 와서 명함을 돌렸었는데……”
호수와 조화를 이루는 구 시가의 옛 건물들은 그들에게 이질감보다는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장면이었다.
로잔 시가지로 들어온 차량이 호텔정문에 멈춰 섰다. 기사와 인사를 나누고 기찬과 정균은 자신들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ㅎ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