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顯忠祠) 이야기
충남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현충사는 1706년 숙종 임금 때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그 후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어 그 자취가 사라져 버리고 유허비만 남게 된다,
1967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성역화 지시로 순 한국식 콘크리트 구조로 된 현재의 현충사로 세워졌고,
기존의 건물은 서편 참배로 옆으로 이전하여 ‘구 현충사’라 부르고 있다.
▲ 현충사 약도
▲ 현충사 정문
버스주차장에서 걸어가면서 찰칵 했는데, 사진을 잘못 찍어 정문이 담장같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더 가서 내부가 보이도록 찍었어야 되는건데 ..
▲ 충무공이순신기념관과 왼쪽의 전시관이 아주 이색적이다.
▲ 충무공이순신기념관 앞에서
.
▲ 전시관
전시관은 기획전시실, 1전시실, 2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1전시실 해전실은 임진왜란과 해전의 승리를 조명하는 전시실이다.
2전시실 충무공실은 이순신장군의 생애와 후대의 추모를 다룬 전시실이다.
▲ 충무공 이순신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 중 전라좌수사와 삼도수군통제사로
조선 수군을 이끌고 왜군을 물리친 우리 민족의 성웅이다.
인조 때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 무과급제교지(武科及第敎旨)
-보물 제1564-7호-
충무공이 1576년 무과에 급제하고 받은 교지이다.
이순신은 무과합격자 29명 중 12등을 했다.
▲ 서간첩(書簡帖)
-국보 제76호-
이순신이 친척들에게 보낸 편지 6편을 모아 엮은 것이다.
▲ 난중일기 초고본
-국보 제76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 충무공 장검
-보물 제326호-
칼의 길이는 197.5cm, 무게는 4kg이다.
▲ 충무문
이순신기념관을 지나면 충무문으로 들어간다.
▲ 진입로를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정려가 보인다.
현충사 경내는 전체가 잘 관리되고 있어 아름다운 공원으로도 손색이 없는 성역이다.
▲ 정려(旌閭)
현충사 정려에는 이충무공 장군과 공의조카 이완 외에, 후손들의 효자 편액이 걸려있다.
정려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 에게 임금이 편액을 하사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걸어두는 건물을 말한다.
▲ 반송(盤松)
반송은 소반과 비슷하다고 하여 반송이라고 부른다.
반송은 소나무의 변종으로 줄기가 밑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옆에서 보면 부채꼴로 보이는게 특징이다.
염치초등학교에서 70년생 반송을 이식했는데 사진의 사람 키에 비하면
아주 큰 반송이다.
현충사에는 반송이 눈에 많이 띤다.
▲ 홍살문은 사당 경내를 표시하는 정문이다.
▲ 홍살문을 지나면 계단 양쪽으로 고귀함을 뽐내는 반송이 도열하고 있다.
▲ 현충사 사당
사적 제155호
▲ 현충사 내부에는 이충무공 영정을 모셔놓았다.
▲ 현충사 앞뜰에서 바라본 전경은 누가 보아도 명당자리임을 느끼게 한다.
▲ 잘 가꾸어진 정원수들이 주위의 숲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고택 입구에 있는 충무정 우물
▲ 이충무공의 고택
이 집은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의 딸 상주방씨와 21살에 결혼하여 32살 무과에 급제할 때 까지 살았던 집이다.
▲ 고택의 내부와 외부의 모습
▲ 고택 위쪽으로는 은행나무 고목 두 그루가 서 있다.
여기에서 이순신장군이 활쏘는 연습을 했다.
▲ 활터
숲의 중앙에 보이는 과녁판은 활터에서 남방으로 145m떨어져 있다.
이순신 장군이 연습하던 당시에는 200m의 거리였다고 한다.
매년 4월28일 이순신 장군 탄신일에는 전국 시·도 대항 궁도대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 이충무공 후손의 묘
후손묘는 충무공 이순신의 3대, 4대, 8대, 10대손의 묘이다.
이순신의 묘소는 이곳으로부터 서북쪽으로 9km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어라산에 있다.
▲ 연못과 아치형 다리가 아름다워 발길 멈추고 한컷!
▲ 이번에도 구현충사는 들리지 못하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