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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장: 메시아의 고난과 대속사역
[1절]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메시아의 속죄의 죽음과 그 속죄사역은 모든 성도와 전도자들이 전하는 내용이며 전해야 하는 내용이다. 메시아의 속죄사역은 복음의 중심내용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말했고(고전 1:22-24), 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라고 말했다(고전 15:3).
[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사야는 메시아의 외모를 예언하며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외모를 조금 상상케 만든다. 메시아의 모습은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으시며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으시고 외모로 사람들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시다고 묘사되었다.
[3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艱苦)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疾苦)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메시아께서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시고 버림을 받으시며 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실 것이다.
‘간고를 많이 겪었다’는 원어(이쉬 마크오보스)는 ‘고난의 사람’(a man of sorrows)(KJV, NASB, NIV)이라는 뜻이다. 또 ‘질고’라는 원어(콜리)는 ‘병’ 혹은 ‘병으로 인한 고통’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다.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병과 고통]를 지고 우리의 슬픔[간고, 고난]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고난이 우리를 위한 고난, 곧 대속(代贖)의 고난임을 증거한다. 메시아께서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메시아께서는 사람들의 보기에 아름답지 않으셨다고 보인다.
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피부가 곱고 이목구비가 조화로운 자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가 마음이 곱고 사리분별력과 판단력이 있지 않다면 그 외적 아름다움의 가치는 그렇게 크지 않다.
우리는 사람의 외적인 조건, 즉 그의 외모, 학력, 재산, 사회적 신분 등으로 그의 가치를 판단치 말고 그의 경건성과 그의 도덕성과 인격성이 더 가치 있는 요소임을 알고 그것으로 그를 평가해야 한다.
둘째로, 메시아께서는 고난의 종이셨다.
구약시대에 짐승의 피 흘리는 제사는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을 예표했다. 그의 모친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그를 낳았고 그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웠다(눅 2:6-7).
헤롯은 그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였고 그래서 요셉은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했다(마 2:13-15). 예수께서는 어릴 때부터 고난을 당하셨다.
또 그는 삼십 세가 되어 전도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제자들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고(마 8:20), 또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예언하셨다(마 20:18-19).
복음서들이 증거하는 대로,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신했고 그가 잡히시던 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쳤다.
그는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파송한 자들에게 잡히셔서 공회 앞에서 침뱉음과 주먹과 손바닥으로 침을 받으셨고 모욕과 희롱을 당하셨고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불의한 재판을 받으시고 정죄를 당하셨고 가시면류관을 쓰셨고 또 채찍질을 당하셨고 십자가 사형장에서 겉옷과 속옷의 벗김을 당하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고전 1:23),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계 5:12)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다.
셋째로, 우리는 메시아의 고난의 길을 본받아야 한다.
주께서는 친히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고 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교훈하셨다(눅 9:23).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행 14:22), 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였다(빌 1:29).
히브리서 13:13은, 우리가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말했고, 베드로전서 4:12-13은, 우리에게 닥치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교훈하였다.
우리는 신앙의 길에 있는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 심지어 비방과 학대를 두려워 말고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자.
5-9절, 메시아의 고난의 이유
[5-6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메시아께서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찔림을 당하시고 상함을 받으실 것이다. 그는 우리의 죄의 형벌을 담당하실 것이다. 그의 속죄의 고난 때문에 우리는 죄사함과 평안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다 길 잃은 양같이 우리 자신의 뜻대로 그릇된 길로 갔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실 것이다.
이와 같이, 본문은 메시아의 중요한 사역이 속죄사역일 것을 증거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이 일이셨다.
[7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괴롭힘을 받고 고난을 당하였으나](KJV, NASB, NIV)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屠獸場)[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라켈 ל������������)[암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메시아께서는 괴롭힘과 고난을 당하실 것이나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암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않으실 것이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잘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모임인 공회 앞에서 거짓 증인들의 거짓 증거들을 들으셨으나 잠잠하셨다. 그가 잠잠하시자 대제사장은 일어서서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말하였고(마 26:63) 그는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분명하게 대답하셨다.
[8절] 그가 곤욕[고통]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처단되셨으니](NASB)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가 처단되셨다”는 말은 그가 죽임을 당하셨다는 뜻이다.
메시아께서는 고통과 심문을 받아 죽임을 당하시고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지실 것이다. 그는 많은 고통을 당하시고 공적으로 정죄받으시고 죽으실 것이다.
이사야는 메시아의 죽음을 속죄의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말하기를,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한다.
메시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또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죄 때문에 대신 벌을 받으실 것이며 그들의 죄를 담당한 속죄제물로 죽으실 것이다. 메시아의 죽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위한 대속(代贖)의 죽음일 것이다.
[9절]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메시아께서는 강포를 행치 않으시고 그의 입에는 거짓이 없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악인과 함께 되고 그의 묘실은 부자와 함께 될 것이다.
이 예언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신기하게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악인들과 같이 무덤에 묻히시되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다.
마태복음 27:57, 59-60,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메시아의 고난의 속죄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5-6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8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속죄적 의미를 밝히 증거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하였다(요 1:29).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0:28).
사도 베드로는 “[저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라고 말했다(벧전 2:24-25).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했고(갈 3:13), 또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했다(엡 5:2).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시며 그의 죽음이 속죄의 죽음이었음을 밝히 증거하였다(히 9:11-12).
둘째로, 우리는 메시아의 속죄사역을 감사해야 한다.
메시아께서는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죄들 때문에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다. 그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의 고난과 죽음 때문에 우리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고 그의 대속의 피밖에 없다.
죄인은 오직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항상 감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메시아의 속죄사역에 보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속죄의 죽음을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억만분지 일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며 헌신하며 충성해야 한다.
고린도후서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10-12절, 메시아의 고난의 결과
[10절]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가]24)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메시아의 고난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이었다. 어린양께서는 자기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실 것이다. 속건제(아솸)는 속죄제(캇타스)와 비슷하나 죗값의 보상이라는 뜻이 강조된다고 보인다.
그가 자기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이 길 것이다. ‘그 씨를 본다’는 말은 구원 얻은 자녀들을 본다는 뜻이며, 그 날이 길 것이라는 말은 메시아 왕국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 나라는 영원할 것이다. 또 메시아께서는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이다(요 6:39-40).
[11절]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메시아께서는 하나님의 의로운 종 곧 죄가 없으신 신적 구주이시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제물이 될 수 있으셨다. 의로우신 메시아께서는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실 것이다.
‘자기의 지식으로’라는 원어(베다토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의 지식으로’라는 뜻이든지, ‘[택자들의] 그에 대한 지식으로’라는 뜻일 것이다.
‘의롭게 한다’는 원어(야츠디이크)는 ‘의롭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메시아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는 대속(代贖)의 죽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 정확히 말하면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들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다(요 1:29).
그가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하심이 아니고 섬기려 하시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하심이었다(마 20:28).
주께서 마지막 유월절 식탁에서 나누신 포도즙 잔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그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를 상징했다(마 26:27-28).
사도 바울은 교회를 주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표현하였다(행 20:28). 사도 요한은 24장로들이 부르는 새 노래를 환상 중에 들었는데, 그 가사 중에 그리스도에 대해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다”는 내용이 나온다(계 5:9).
[12절]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기도하느니라, 중재하느니라]25) 하시니라.
메시아께서는 자기의 영혼을 버리시고 범죄자 중 하나처럼 죽으시고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심으로써 많은 사람을 구원하실 것이며 그들 중에는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과 강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또 메시아께서는 구원하신 자들을 위하여 중보사역을 하시며 그의 중보사역은 지금도 계속되신다.
로마서 8:34,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브리서의 두 구절은 이 진리를 밝히 증거한다.
히브리서 7:25,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브리서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메시아의 죽음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었다.
갈라디아서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메시아께서는 죽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둘째로, 메시아의 죽음은 속건제물이었다.
10절,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메시아께서는 하나님의 택자들의 죄를 짊어지셨다.
11절,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리라.”
12절,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5-6절,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요한복음 1:29,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히브리서 9:12,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10:12,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셋째로, 메시아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실 것이다.
11절,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고린도전서 1:30,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셨으니.”
로마서 3:2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넷째로, 메시아께서는 지금도 중재하신다.
12절,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느니라[중재하느니라].”
로마서 8:34,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브리서 7:25,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속죄사역을 이루셨고 지금도 중보사역을 하신다. 우리는 그의 대속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를 위해 살고 의와 선을 행하고 그에게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