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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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6 23:16
889회 시 토론ㅡ 빅 브라더/조르바님
조르바
조회 수 399 댓글 1
빅 브라더
조르바
집을 나서면 누군가 따라 오고 있는 것 같아요 보이진 않아요 차를 타고 가면 차를 타고 쫓아와요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가라고 하면 가는 신호등의 지시처럼 말할 때도 누군가가 원하는 말을 하게 돼요 이건 아닌데, 라고 썼다가 찢어버렸어요 벌금 물릴까봐 누군가의 입맛에 맞추고 있는 나를 봐요
빵도 양념통닭도 원조할매 감자탕도 어딜 가나 똑같은 맛이에요 집 떠나 살아도 불편할 게 없어요 같은 회사가 같은 아파트를 계속 지어서 너나없이 몸 포개는 위치도 같아요 오, 그렇다면 우린 같은 형제 그런데 통일을 좋아하나 봐요 꿈에도 소원은 통일 수상하면 신고 정신 들쭉날쭉한 사람들은 보기 싫은가 봐요
어둠 속에서 환히 들키고 있어요 내가 움직이면 어둠은 밀리는 척하지만 더 캄캄한 어둠에 먹히고 말아요 한 점 빛의 감옥 안에서 오늘도 무사히 나 살아 있나 봐요
첫댓글 조르바 21-01-27 00:22
1. "찡긋"이란 눈이나 코를 약간 찡그리는 모양인데요.
그 부사가 "웃는다"와 연결되면서 생소한 듯하면서도 오히려 의미층을 한층 두텁게 하는 묘미를 주었습니다.
만일 "씽긋" 웃는다고 했더라면 의태어로서의 기능밖에는 없었겠지요.
2. 화자와 '그'는 기차여행 중입니다. 공간을 이동하는 중에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에 있습니다.
이건 심리적 시간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그는 / 아무것도 모르는 채 / 유희처럼 슬픔의 / 씨를 뿌리는 주인공의 / 젊은 날을 지나고 있고"
책 내용이 그러하다는 것으로 읽은 독자도 있었고
교수님께서는 '그'를 책 내용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 젊은 청년 정도로 '아름다운 오독'을 해 주셨습니다. ㅎㅎ
3. "가벼움과 무거움이, / 시작과 결말이 / 인사를 한다" 부분에서
'시작과 결말'은 소설의 도입부와 결말 부분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단어가 조금 추상적이지 않나 하는 의문을 보였습니다(조르바).
4. "또아리를 튼 생의 / 머리와 꼬리가 슬쩍 스치는 / 순간이다"는 이 시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똬리.
이른바 불교적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윤회 혹은 순환하는 시간이
머리와 꼬리가 스치는(만나는) 순간으로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놀라운 표현이라고 칭찬을 주셨습니다.
5. 하이디님께서는 사소한 사물이나 그런 정황에서 본질을 사유하는 힘이 대단하시다고
또 일상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에 깊이가 있으시다고 칭찬을 주셨습니다.
6. "그는 가끔 / 고개를 들어 푸를 하늘을 / 눈부시게 올려다 보고"
"나는 계속 아래를 보고 / 눈시울을 붉힌다"
--- 이 두 연을 한 연으로 만들자는 제안(서강님).
"가끔씩 우린 마주보고 / 찡긋 웃는다"라는 연은 '표정 안에 뜻이 들어 있는 웃음'이라는 점에서 쉽고 좋은 표현이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7. 행복하게 읽히는, 의미가 깊은, 멋있는 詩였음에 모두가 공감하며 하트를 날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