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1- 그리스도의 종(노예) 바울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서신서 맨 앞에 있기는 하나 바울의 첫 번째 편지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앞에 놓인 것은 바울의 편지의 전체를 대표할 만큼 포괄적이고 핵심적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초기에 사울이라 불리었고 점차로 바울로 바뀌어 불리었습니다. 바울의 이름의 뜻은 작다, 작은 자란 의미도 있지만 그런 의미 때문에 작다란 뜻의 바울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고 바울 스스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를 하는데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종은 헬,‘둘로스’는 노예라는 뜻입니다.
노예는 지금으로 말하면 인권이 전혀 없는 주인의 재산 목록에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헬라사람들은 노예라하면 모욕감을 느끼는데 우리나라로 하면 옛날에 갓 바치, 돼지, 소 잡는 사람들이 사회공동체로부터 천대 받는 계층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스스로 예수그리스도의 노예라고 말하고 그 노예라는 사실이 매우 영광스럽다고 생각하며 서두에 그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사상은 이 세상에 어떤 지위나 명예보다 귀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주’라는 의미의 퀴리오스의 반대 개념인 종‘둘로스’는 예수님을 퀴리오스라할 때 예수님의 소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소유물로서 자신의 소유권이 전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나는 말씀이 있지요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바울은,
‘둘로스’가 가지는 의미는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신 그리스도예수에 대한 순수한 사랑에 기인한 자발적인 책무입니다. 바울은 롬14:7,8.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했습니다. 바울은 말뿐만 아니라 실제로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순교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는 종의 영성을 살펴보고 본받기를 원합니다.
1,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
1장1절에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왜 종이란 사실을 부각시켰을까요? 그 당시에는 부자 집에 권세가에는 종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한집에 오래있었든 아니든 소속이 바뀌면 주인의 심부름을 갔을 때 오해가 없도록 자신의 소속을 밝혀야 합니다. 이 배경에서 자신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전에는 유대교소속이었는데 지금은 예수교라는 것을, 전에는 율법의 아들로 율법에 속했고 학문으로는 가말리엘에 속했으며 시민으로는 로마인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영적으로 말하면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잡혀(엡2:2)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자신의 신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사도 바울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요? 성경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6절에 보면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입은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여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사람들에게 분명히 인식하도록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과거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밝혀서 과거의 마귀에게 잡혀서 살던 삶을 청산해야 합니다. 이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임을 들어내고 해야할 일과 금할 일을 분명히 선을 긋고 행동하는지.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하려고 숨기고 있는지, 아니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했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아하고 간이 부어있지는 않는지, 오늘 우리는 예수 믿는다고 해서 죽음의 위기에 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시인은 생명의 위협이 있음에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3) 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둔다고 갈6:7, 또한 계시록22장에서도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반드시 주께서 우리에게 보상하신다고 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자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 것은 때가 되면 거두리라고 갈6:8-9,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는다 해서 손해를 보셨습니까, 핍박을 당했습니까,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너희의 상이 크다고 했습니다(마5:12).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주권으로 된 종 바울
바울이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 한 것은 단지 소속만을 위한 것일까요, 신약의 모델은 구약에 있다고 했습니다. 요셉을 보겠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의지로 돈에 팔려 노예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보디발 집에 가서 살았습니다. 그가 감옥에 간 동기가 무엇입니까. 여 주인의 청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옥에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죽을 때 까지 있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셨습니다. 바로 왕의 꿈에 메시지를 주셨는데 잠에서 깨어서 그 꿈을 해몽하려고 했으나 해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인도되어 왕 앞으로 갑니다. 무엇을 말하고 계십니까? 요셉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을 봅니다. 바로 이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죄와 사망에서 종노릇하고 살았는데 그곳에서 건져 내시어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삼으시고 생명과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사건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적인 주님의 은혜요 은총인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몰랐습니다. 예수님에게만 생명이 있다는 것을 몰랐고 예수님의 소유가 되어야만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반대로 그는 자신의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것을 몰랐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냥은 우리와 교제할 수 없어서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어서 예수님의 죽음을 십자가에 놓으신 것입니다. 죄의 값을 하나님은 피를 요구하십니다. 그 피 값을 주님이 나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어린양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 구속의 은총을 바울이 깨닫고 보니 그토록 헬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노예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주님의 은혜이지 나의 공로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격이고 감사인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을 만나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심령천국을 누려야 천국을 소유한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께서 우리의 심령안에 있어야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뒤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3.종이 될 때 그 안에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전에 뿌리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못 보신분도 물론 있겠습니다만 그 노예생활의 비참함을 폭로합니다. 미국의16대 대통령도 흑인노예해방을 시키려고 남북전쟁을 한 사건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종은 싫어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종은 아닙니다.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가말리엘 문하생이며 상류층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천막깁는 일을 했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매도 수없이 맞았고 감옥에 갇혔으며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유를 누렸습니다. 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는데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그는 모든 것에서 속박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는 자유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바로 예수님을 소유한 심령천국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돌을 던지자는 자들을 향하여 저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자기들의 하는 짓이 무슨 짓인지 알지 못해 하는 일이라고 기도하는 스데반이 바로 천국을 얻었기에 그것이 고통이 아니고 불쌍히 여김이 되어 예수님처럼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면 즉 믿으면 성령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내가 성전이 되어지면 다시 나는 죽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시면 모든 것에서 자유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착고에 채워져서 감옥에 갇혔을 때도 찬송을 한것입니다. 그는 그 감옥에서 기쁜 생활을 한 것입니다. 물질에서 권력에서 자유했습니다.
그 무엇보다 예수생명을 소유한자는 죄에서 자유하며. 사망에서 자유합니다. 예수생명이 없는 자는 모든 것에서 묶입니다. 물질에서 건강에서, 환경에서 눌리고 억압되고 묶입니다. 바로 창살이 없는 감옥인 셈입니다. 고전에서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자유자요(고전 7:22),“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고후3:17)
4.하나님은 주의 종을 미리 준비시킵니다.
1절에서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행9장에서 주님은 다멕섹으로 핍박하러 가는 바울을 만나십니다. 그리고 그를 불러 만나십니다. 아나니아라는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를 이방으로 보낼 나의 택한 그릇이라 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그를 돌이켜 복음 전하는 자로 훈련을 시키고 쓰시는 주님의 계획성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아무나 닥치는 대로 쓰시지 않고 택한 자들을 미리 고르시고 훈련시키십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를 최선을 다하여 하고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을 최선을 다하여 하면 때가 되었을 때 부리시어 쓰시는 것입니다.
환경을 통하여 연단하시고 그렇게 단련한 뒤에는 정금같은 믿음으로 승화시켜서 사용하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 주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주의 일을 하도록 구별 된것 주의 은총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예수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서 외부 환경에 눌리거나 억압되거나 상처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 자는 심령에 천국이 이루어진 자이고 이런 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입니다. 예수 생명이 있는 자는 주님과의 교제 기도생활, 말씀묵상...그리고 주님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늘 묻고 기도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자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하시도록 나를 주님의 그릇으로 드리는 자가 되며 주님께 영광 돌리고 주의 은총을 입어 하늘의 권세와 표적을 날마다 체험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