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제 순서
1. 제물차리기
돼지머리, 시루떡, 제주(술: 탁주), 양초, 향등을 준비하고
앞줄부터 과일, 나물과 포, 탕, 적과 전, 메(밥)순으로 상을 차린다.
제수 진열은
홍동백서(紅東白西),
생동숙서(生東熟西),
어동육서(漁東肉西),
두동미서(頭東尾西),
조율시이(棗栗枾梨),
제주(술)는 제상 오른쪽에 놓는다.
....준비물....
돼지머리, 시루떡, 제주(탁주), 양초, 향,
북어통마리3개, 밤, 대추, 곶감, 배, 사과,
술잔, 자리, 접시,
문종이 5장 , 위패,
2. 제례절차
산제(山祭)도 가정의 의례와 같이 참신(參神) 혹은 강신(降神)부터 시작한다.
초헌관이 산신에게 산제를 지내게 된 연유를 고하고 지상으로 내려오게 한다.
산신님 인간 세계로 오십시오하고 초헌관이 손짓을 해가며 산신을 모셔오는 시늉을 할때
산제 참가자 모두 탈모하고 옷깃을 여미는등 예의를 갖추는데 이런 순서가 참신이며
참신 다음에는 초헌이다.
산신에게 제주가 첫잔을 올리고 절을 올리고 난 후
독축(이때 모든 회원들은 무릎꿇고 엎드린다). 독축은 제관이나 축관이 읽는다.
독축이 끝나면 두번째 아헌이다.
이순서는 부회장이나 중요인사가 올리고
세번째 종헌은 열성회원이나 초청인사가 잔을 올린다.
종헌후 산제 참가자중 잔을 올리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잔을 올리고 예를 표한데 이 순서가 헌작이다.
헌작을 마치고 제수를 나누어 먹는 음복을 마지막으로 산제가 끝나며
이때 축문을 불사른다
3,산신제에 대해서......
《국조보감(國朝寶鑑)》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덕적산(德積山)·백악(白岳)·송악(松岳)·목멱산(木覓山)의 산신에게 매년 봄·가을에 내시(內侍) 및 무당과 여악(女樂)으로 제사하게 하였는데, 이를 기은(祈恩)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산신제의 풍속은 계속되었는데, 사악신(四岳神)으로 남은 지리산, 중은 삼각산(三角山), 서는 송악산(松岳山), 북은 비백산(鼻白山)을 정하여 제사하였다.
또 산천신(山川神)으로서 동은 치악산(雉岳山), 남은 계룡산(鷄龍山)·죽령(竹嶺)·우불산(于弗山)·주흘산(主屹山)·금성산(錦城山)·한라산(漢拏山), 중은 목멱산, 북은 감악산(紺嶽山)·의관령(義館嶺)·백두산(白頭山)에 제사하였다.
위의 산악신과 산천신 제사는 나라에서 관장하였는데, 대개 제단을 마련하거나, 단이 없으면 3칸의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모두 각각의 신위(神位)를 두어 신좌(神座)는 북남향으로 하고, 중춘(仲春)·중추(仲秋) 두 번씩 한재·수재·병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사하였다.
한편 민간에서는 각 주·읍에 반드시, 그 북쪽에 진산(鎭山)을 정하고 그곳에 산신당을 지어 진호신(鎭護神)을 모시고 봄·가을과 정초에 제사하는 풍속이 있었다. 지금은 정초부터 대보름 사이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봄·가을에 지내기도 한다.
제를 지내기에 앞서 먼저 제관을 선정하는데 집안에 초상이나 해산 등 부정한 일이 없는 모범 주민 중에서 결정한다. 제관은 1~3명, 또는 5명에서 많게는 12명까지도 뽑는다.
그 외 축문이 있으면 축관을 선정한다. 제일이 정해지면 마을 입구와 산신당, 제관의 집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부정을 막는다. 제물비용은 집집마다 추렴을 하거나 동답(洞畓), 마을 공동재산에서 낸다. 제례는 밤에 마을대표들이 모여 제물을 올리고 절하고 축문을 읽거나 비손을 한 뒤 소지(燒紙)를 올린다.
제사가 끝나면 음복을 하면서 마을회의를 하여 종교적 일체감을 생활로 연결시키는 기능을 가진다.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부락제(部落祭)》에 의하면 전국의 부락제 522개 중 산신제에 해당하는 것이 176개나 되는데, 산신제의 풍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4,고사 지낼 때 돼지머리를 사용하는 이유
결론부터 말하자면, 돼지머리가 소머리보다 값싸기 때문에 공물(신에게 바치는 물건)로 바쳤던 게 관습이 되었습니다.
고사에는 돼지머리가 반드시 등장하는데, 이것은 무속 신화에 그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옛날 하늘 세계의 옥황상제 밑에 '업'장군과 '복'장군이 있었습니다. 두 장군은 서로 아웅다웅하는 사이로, 옥황상제는 그들의 시기 다툼을 싫어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탑을 쌓게 하여 그들 중 먼저 탑을 쌓은 사람을 가까이 하겠다고 언언했는데, 업장군이 잔꾀를 부려 복장군에게 이겼습니다.
하지만 옥황상제가 업장군을 가까이 하려 했으나 곧 업장군이 잔꾀를 부린 것이 탄로났습니다. 옥황상제는 복장군을 돼지로 환생하게 하여 사람들이 옥황상제께 소원을 빌 때 중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었고, 이 때부터 돼지가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돼지가 자주 소원의 전달자로 진짜 정해진 이유는 경제적 현실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소머리를 공물로 바치려면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야 하는데, 옛날과 같이 소가 귀한 시기에 그것을 구하여 공물로 쓰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그보다는 구하기가 쉬운 돼지머리를 자주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즘에는 고사 지낼 때 절을 한 뒤 돼지주둥이에 돈을 물리기도 하는데,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인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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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제 준비물......
돼지머리=
시루떡=
제주(탁주)=
양초,향=
북어통마리3개=
밤=
대추=
곶감=
배=
사과=
술잔, 자리, 접시, 문종이 5장 , 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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