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질 듯하면 “각하가 찾네~” 박정희 배신한 김형욱 인간성 (43)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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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여러 인연들 가운데 김성곤·김형욱·이후락은 악연에 속한다. 셋 모두 내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추천했고 한 시대를 누렸다.
그들은 나와 박 대통령 사이를 갈라놓기도 했다. 그 가운데 김형욱은 1973년부터 박 대통령과 조국을 배신하고 미국 망명객 행세를 하면서 죽을 때(79년 파리에서 실종)까지 대결 자세를 취했다.
김성곤은 그래도 사업과 정치, 사상 문제의 여러 고비를 겪으면서 인생무상을 맛봤던 인물이었다. 말년엔 나와 화해했다. 이후락은 재간을 부리며 권력을 추구했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성심(誠心)은 갖고 있었다.
김형욱은 왜 박 대통령에게 끝까지 대들었을까. 나는 그의 인간적인 문제에 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형욱은 자기가 힘이 있고 치밀하다는 터무니없는 자부심에 사로잡혔다.
권력으로 그러모은 돈을 해외에 빼돌리거나 미국 CIA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자만이 있었다. 육영수 여사도 그의 월권(越權)과 인간성에 위험을 느꼈다.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경질을 건의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3선 개헌(69년 10월 17일 개헌안 국민투표) 직후 김형욱을 그만두게 했다. 이것저것 종합해 보면 ‘언제 김형욱이 내게도 덤빌지 모른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박정희 “임자, 나 제친다며?” JP 손발 자른 김형욱의 보고 (44)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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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혁명 후 3~4년이 지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경험이 생기면서 권력 운용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1963년 10월 대선 때 민주공화당의 힘으로 당선됐지만 그 뒤 권력의 중심을 행정부나 청와대 비서실, 중앙정보부 등으로 분산·이동시켰다.
정치하는 공화당엔 입이 많고, 소신으로 무장된 신진 정치인들이 박 대통령에게 바른소리를 해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말 잘 듣는 행정부와 시키면 군소리 없이 일을 해치우는 중앙정보부, 청와대 비서실에 힘을 실어줬다. 이 같은 권력 이동과 함께 박 대통령은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 이른바 분할해 통치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권력의 요직에 앉은 사람들을 갈라놓고 서로 경쟁·감시하게 만들어 오직 자신에게만 충성을 바치게 하는 용인술이다.
박 대통령이 김형욱에게 “JP가 왜 그렇게 당신을 미워하나. 당신을 갈아치우라고 하던데”라고 하면 김형욱은 ‘아니, 지가 뭔데 나를 미워해. 어디 두고 보자’라면서 나한테 앙심을 품게 된다.
그다음엔 김형욱이 나의 약점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박 대통령한테 내 문제를 조작해 만들어 보고하는 식이다. 전부 그렇게 떼어놔 각자가 수직으로 대통령을 받들게 하는 것이다. 밑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 대통령을 넘보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고려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