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를 지켜라 (守 信義하라): 임사실천 십 개조 두 번째
(풀이)
대신사님께서는 좌잠에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別無他道理 誠敬信三字
(오도박이약 불용다언의 별무타도리 성경신삼자)
우리 도는 넓고도 간략하니 많은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별로 다른 도리가 없고 성·경·신 석자이니라.
這裏做工夫 透後方可知 不怕塵念起 惟恐覺來知
(저리주공부 투후방가지 불파진념기 유공각래지)
이 속에서 공부하여 터득한 뒤에라야 마침내 알 것이니, 잡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우쳐 「지」에 이르도록 염려하라.”
좌잠의 가르침을 함께 다시 한 번 헤아려 보십니다.
수운대신사님께서 계해년 4월에 당시 용담으로 찾아 온 姜洙(강수)라는 제자가 수도의 절차를 물었을 때, 그 대답으로 유념하도록 당부하며 지어준 시가 좌잠입니다. 5言詩(5언시)로 되어 있는 이 글은 수련하는 사람의 좌우명이 될 수 있는 잠언과 같은 시라는 의미에서 좌잠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특히 이 시에는 한울님을 믿을 수 있는 信(신)과 이 믿음을 통하여 한울님에 대하여 공경해야 한다는 敬(경), 또 그 마음으로 정성을 드려야 한다는 誠(성)등의 천도교 동학의 수행자세가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도의 교리는 천도 전체의 근본원리를 설명한 교리이므로 그 크기와 넓이가 한량없이 넓고 커서 모든 철학, 과학, 종교 사상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는 교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요점과 닦는 법은 간단합니다. 많은 말과 글로써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별히 다른 도리가 없고 정성, 공경, 믿음 이 세 가지만 지극하면 진리를 깨닫고 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한울님을 내 몸에 모시고 있다고 해서 한울님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과 도를 통하게 해 주시는 것도 한울님이요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는 것도 한울님이십니다. 만일 한울님이 내 몸에서 떠난다고 한다면 나는 단 한 순간이라도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한울님을 두렵게 생각하고 경외지심을 가지고 늘 잊지 않고 모앙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지극하게 해야만 깨달음이 오는 것입니다. 신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나운 호랑이가 앞에 있고 큰칼이 머리 위에 와 있고 벼락이 머리 위에 떨어진다고 해도 두렵지 아니하나 오직 소리도 없고 형상이 없는 한울님이 항상 두렵고 무섭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게 되면 신사님께서 한울님을 얼마나 두렵게 생각하셨는가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 우리들은 진리를 연구하여 한울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잠깐 동안이라도 모앙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입니다. 그 방법이 시천주 주문을 항상 맥박뛰는 것과 같이 외우j야 하는 것입니다. 경외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수덕문10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침을 주셨는데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당부를 하셨습니다.
“대저 이 도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정성이 되느니라. 믿을 신자를 풀어 보면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니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을, 그 중에서 옳은 말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어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 한번 작정한 뒤에는 다른 말 을 믿지 않는 것이 믿음이니 이와 같이 닦아야 마침내 그 정성을 이루느니라. 정성과 믿음이여, 그 법칙이 멀지 아니하니라. 사람의 말로 이루었으니 먼저 믿고 뒤에 정성 하라. 내 지금 밝게 가르치니 어찌 미더운 말이 아니겠는가. 공경하고 정성 들여 가르치는 말을 어기지 말지어다.”
다만 사람의 말은 먼저 믿되 거듭 거듭 생각하고 마음을 정하라는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신사님 법설 성 경신 중 제 4절에서 信 즉 믿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인의예지도 믿음이 아니면 행하지 못하고 금목수화도 토가 아니면 이루지 못하나니, 사람의 믿음 있는 것이 오행의 토가 있음과 같으니라. 억 천만사가 도시 믿을 신 한 자 뿐이니라. 사람의 믿음이 없음은 수레의 바퀴 없음과 같으니라.
믿을 신 한자는 비록 부모형제라도 변통하기 어려운 것이니라. 경에 말씀하시기를 「대장부 의기범절 信 없으면 어디 나며」하신 것이 이것이니라. 마음을 믿는 것은 곧 한울을 믿는 것이요, 한울을 믿는 것은 곧 마음을 믿는 것이니, 사람이 믿는 마음이 없으면 한 등신이요, 한 밥주머니일 뿐이니라.”
위의 말씀을 다시 되새겨보십시다.
사람들이 일을 이루는 것은 지극한 정성과 공경이 있어야 되겠지만 정성 공경을 드리기 앞서 먼저 믿음이 있어야 되는데 만약 믿음이 없다면 정성도 드릴 수 없고 공경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마음기둥을 세워야 합니다. 유교에서는 인의예지를 행하라고 가르쳐 왔는데 인의예지를 행하는 것도 믿음이 없으면 행할 수가 없으며 금목수화의 네 가지가 있어도 토가 아니면 오행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람들이 일을 하는데 있어 믿음이 없다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마치 자동차의 양쪽 바퀴와 같은데 만약 차바퀴가 없다면 그 차는 쓸모없는 차가 되는 것과 같이, 사람에게 믿음이 없다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기에게 있는 것이니 다른 것들은 남에게 서로 빌려주기도 하고 빌려 쓰기도 하지만, 믿음이란 것은 비록 부모나 형제 사이라고 해도 빌려주기도, 빌려 쓰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서로서로 믿고 살아갑니다. 부모형제도 믿지 못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은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신사님께서 도수사에 “대장부 의기범절 신 없으면 어디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이 있어야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으니 대장부가 일을 하는데 있어 먼저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믿음이 없다면 아무 일도 못하는 등신이요 밥이나 축내는 밥주머니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마음이 곧 한울이요 한울이 곧 마음이니, 마음을 믿는 것이 곧 한울을 믿는 것이요 한울을 믿는 것이 곧 마음을 믿는 것입니다.
신의와 신의에 대하여 음성신문에 게재한 반영섭 칼럼니스트님의 글을 통하여 오늘 날 사회현상을 반추해보고 헤아려보시면서 천도의 운행이 바르게 되도록 천도교 도인들께서 더욱 더 큰 정성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시일입니다. 비록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만 시간을 내시어 가까운 교당으로 가셔서 즐거운 시일 날 만드시길 심고드립니다. 저는 고성교구에서 봉행하겠습니다.
포덕167년 8월 2일 부암 심고010.2664.2530
신의(信義)를 몸에 익혀 신뢰(信賴)를 쌓아가야 한다.
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2022년 음성신문에 게재한 글)
음성신문(주) 입력 2022.10.19
“요즈음 각종 매스컴에 온갖 불신의 뉴스가 판을 친다. 더군다나 여야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은 가관이다. 상대방을 헐뜯고 각종 비리폭로, 유언비어 날조 등으로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머리가 어지럽다. 이런 불신 풍조 조장에는 정치권이 으뜸이요, 경제계, 공무원, 종교계까지 불신의 비리가 터져 나온다. 콩으로 메주를 쒀도 곧이듣지 않는다는 옛 속담이 있다.
이젠 종교인도 못 믿는 세상이 되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고 만 것일까? 우선 책임은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교육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인성교육을 하였으나 별로 효과가 없는 듯하다. 하루속히 불신 풍조를 타파하여야 한다. 신의(信義)가 믿음을 심는 일이라면 신뢰(信賴)는 그 결과로서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덕목에 공통된 것은 바로 믿음인 것이다. 이 심각한 불신 풍조를 믿음이 충만한 사회로 바꾸려면 우선 어른들이 신의와 신뢰라는 덕목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청소년들이 인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신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진실해야 한다.
그의 등 뒤에서 험담해서는 안 된다.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 사이에 그것을 지켜가는 일도 쉽지 않지만, 아직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들 간에 신뢰를 쌓기는 더욱 어렵다. 이때 그 누군가 다소간 손해를 각오하고 먼저 신뢰를 주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상대방도 믿고 신뢰를 보낼 것이다. 신뢰하는 관계는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는 가운데 신뢰가 쌓여감으로써 비로소 모든 인간관계도 공고해질 것이다. 교육자들은 지속해서 인성교육에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교육자뿐만 아니라 우리 성인들도 앞장서야 한다.
특히 정치인, 경제인, 종교인, 심지어 예술인들까지 지도자급에서부터 모범을 보이고 앞장서야 한다. 지관스님께서 세간에 유행시킨 ‘수평불류(水平不流)’라는 말이 있다. 물도 평평한 곳을 흐를 때는 소리를 내지 않는 법이다. 사람 역시 공평하고 신뢰가 가는 사람은 뒷말이 없기 마련이다. 하여 이를 ‘인평불어(人平不語)’라 하였다. 또한, 조선 선조 때 충남 공주에 살던 서기(徐起)라는 학자가 쓴 시대를 한탄하는 한시에서 형수인심다고성(形獸人心多古聖) 형인심수진금현(形人心獸盡今賢)이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다.
그 뜻은 생김새는 짐승이나 마음은 사람다운 자는 옛날 성인 가운데 많고 생김새는 사람다우나 마음은 짐승인자는 오늘날 지성인이며 지도자급이라는 인간들이 다 여기에 속한다고 하며 세상을 한탄한 기록이 있다. 요즈음 모두가 다 똑똑하니 모두가 후자에 속하지 않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보아야 한다. 불신 풍조를 하루빨리 없애기 위해선 너와 나가 따로 없다. 우리 모두가 일상생활 속에서 신의를 지켜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신의가 믿음을 심는 일이라면 신뢰는 그 결과로서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덕목에 공통된 것은 바로 믿음인 것이다. 신의는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 진실한 것을 말한다. 어떤 일이 있든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신의는 거센 물살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바위와도 같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알고 실천하는 데서 나온다. 신의가 있으면 믿고 의지할 수가 있다. 신의는 자신의 믿음과 원칙에 충실하고 그것을 지키는 일이다. 신의는 기본을 지키고 원칙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신의가 없는 사람은 배신할 가능성이 크다.
왜 신의가 필요한가? 믿음이 없다면 모든 것을 일일이 우리 스스로 확인해야 하며 직접 통제할 수밖에 없다. 타인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자유롭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할 수가 있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대신 행여 과오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이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용맹정진하는 가운데 성장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으며 자기실현의 길도 열리게 된다. 신의가 있을 때 진실을 말하고 본분을 지키며 최선을 다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신의는 결혼이나 성과 관련해서도 소중한 가치를 갖는다. 이 경우 신의는 정
조와 순결을 지키는 것과 관련된다.
어떻게 신의를 익히나? 부모들이 분명하고 알아볼 수 있게 신의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어른들이 신의라는 덕목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자녀들이 인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가 부부일 경우 한쪽이 다른 쪽에 속해 있고 서로서로 절실히 필요로 하는 까닭에 신의는 더욱 소중해진다. 신의를 지킨다는 것은 약속한 것을 지킨다는 뜻이다. 우선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한 것은 반드시 행해야 한다. 실천할 수 없는 일을 미리 떠벌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 신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진실해야 한다. 그의 등 뒤에서 험담해서는 안 된다.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면 상대방을 직접 찾아가 조용히 사적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새 친구가 생겼다고 오랜 친구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 사이에 그것을 지켜가는 일도 쉽지는 않지만, 아직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들 간에 신뢰를 쌓기는 더욱 어렵다.
이때 그 누군가 다소간 손해를 각오하고 먼저 신뢰를 주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상대방도 우리를 믿고 신뢰를 보낼 것이다. 신뢰하는 우정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는 가운데 신뢰가 쌓여감으로써 비로소 우정도 공고해지는 것이다. 서로 신뢰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결국 서로 손해를 보면서 손해를 끼치는 불신의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출처 : 음성신문(https://www.u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