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
291쪽
춤춰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책 맨 끝에 위의 詩가 나온다.
물론 위의 글처럼 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그렇게 정열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남의 눈치 보기 바빠서 자기 의지를 펼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어떻게 독불장군처럼 혼자 제 맘대로 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저자는 자기 인생을 자기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나도 한두 가지씩 실천해 나가려고 한다.
행복도 배우고 자유도 배웠지만,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자기 주도적으로 바꿔보려고 한다.
물론 그렇게 많이 하고 살아왔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다.
가벼우면서 전혀 가볍지 않은 이야기가 그득하다.
질문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일상생활을 하려고 한다.
63쪽: 그렇다면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바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지요.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독립적으로 알아내기 위해서 인문학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인문학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을 때 어떤 새로운 사태나 사건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하나요? 대개는 일단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이렇게 우선 정치적 판단을 합니다. 이 정치적 판단을 해주게 하는 것, 이것은 뭡니까?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이념이나 신념들 때문이지요. 그것들을 기준으로 사용하여 새로운 사태를 만나고, 그 기준에 맞으면 좋다 하고 맞지 않으면 나쁘다고 하는 것일 뿐이에요. 그래서 자기에게 있는 이념, 신념 그리고 가치관 등이 자기의 독립성보다 강하여 자기를 지배하면 지배할수록 인문적 통찰은 불가능하고 더듬이는 없어져요.
그럼 관건은 뭐냐? 도대체 인문적 통찰을 하는 관건은 뭐냐?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일’입니다.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신념을 뚫고 이 세계에 자기 스스로 우뚝 서는 일, 이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을 얻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