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장 원 목사 방주교회 원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북한의 강량욱 목사는 학교의 선생님으로 ‘김일성’을 가르쳤던 분이어서 김일성과 강량욱은 사제지간이 되는 것이다. 일제에서 해방이 되어 김일성은 외국에서 돌아왔고, 강량욱은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고 있었다. 김일성은 귀국 후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석’이 되었고, 강량욱 목사는 발탁이 되어 공산당정권하에 기독교연맹의 수령이 되어 김일성 주석의 오른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강량욱 목사를 앞장세워 막강한 권력으로 정권이 교계도 장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조선기독교연맹에 가담을 거부한 목사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교인들과 함께 월남하여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강량욱 목사는 인민공화국과 공산당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협조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남쪽에서는 박수쳤지만 북한에서는 별 하나가 사라졌다고 했다. 강량욱 목사의 아들이 다시 대를 이어 목사가 되었고 충성을 바쳤던 ‘강영섭’ 목사다. 강영섭 목사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요, 목사다. 그 강영섭 목사가 돌연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의 아들인 ‘강명철’이 목사가 되어 조선인민공화국 조선기독교연맹의 위원장이 되었다. 강명철 목사는 북조선의 인민위원회 대의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조선그리스도연맹’(이하 조그련)의 위원장이다. 우리나라의 ‘국회’와 똑같은 인민위원회의 의원으로 현직에 있는 막강한 실력자인 강명철 위원장은 조부(祖父) 강량욱 목사의 손자이면서 삼대(三代)를 이어오는 목사인 것이다. 그러한 기독교가장의 목사인 ‘강명철’ 조그련 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것이다. 북한국민 전체뿐만 아니라 유치원 어린이들 까지도 미국에 대해서는 이를 갈고 치를 떨고 있었다. 그 사정의 내용을 지상으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 첫째의 원인은 6.25 당시 평양의 인구(人口)가 40만 명이 살고 있었는데 미국의 폭탄은 42만개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그 당시에 기독교의 교회건물이 77개 교회가 평양시내에 있었는데 77개 교회 중 하나도 남아있는 교회가 없이 모두다 폭격에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 후 재건사업의 일환으로 ‘봉수교회’가 세워졌고 현재 담임목사는 ‘송철민’ 목사(46세)가 당회장으로 주일날 10시에 한번만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250명에서 300명 정도) 또 한곳에 교회가 있었는데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권사를 기념하여 건축한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의 이름은 ‘칠곡교회’라고 한다. 약 50명 정도가 앉으면 꽉 찰 정도의 자그마한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의 교회였다. 그 교회 목사의 체구도 자그막 했고 담임목사의 이름은 ‘백봉일’ 목사(60세)였다. 눈만은 살아서 날카로웠다. 현재 평양시에는 신학교(5년제)가 한곳에 있는데 학생수는 12명이라고 대답해준다. 평양에 머무는 동안 나는 주머니를 모두 털고 끼고 갔던 금반지도 뽑아서 주고 시계도 풀었다. 퍼주고만 싶다. 도와야 한다고 새삼 느꼈다. 평양을 방문하기 전에는 마음이 정 반대였지만 막상 사람들을 만나고 난 후에는 마음이 바꼈다. 40층의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었으나 사람들이 사는 것 같지가 않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봉수교회’ 장로가 몇 명이냐고 물으니 일곱분이라고 말한다. 주일날이 아니었어도 예배를 드리게 되어 있어서 동원된 수가 백명 이상은 되었을 것이며 성가대들이 가운을 정장하고 25명 가량의 성가대원들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나 같은 죄인 살리신)를 부를 때 천사들이 하강해 부르는 것 같아서 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이 젖었다. 안내를 받아 몇 군데 둘러보기로 하고 안내자(서기장)의 안내를 따라 간 곳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사진이 걸려있는 소장품실에 들어가는데 신발을 벗으라고 명한다. 신발을 벗고 진열된 소장품을 돌아보았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하여 역대 대통령들이 보낸 선물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선물은 없었기에 ‘아이러니’한 이상야릇한 심정으로 벗고 들어간 구두를 찾아 신고 문을 나섰다. 안내했던 곳 모두 합쳐서 네 곳에서 신발을 벗든지 구두에 커버덧신을 신고 들어가는 곳이었다.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차 안에 홀로 남아 기도할 기회로 삼고 조국의 통일을 기원했다. 봉수교회 예배시간이 되어 사회자, 기도자, 설교자, 기타 목사들이 카펫(빨강색)을 깔아놓은 제단에 구둣발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은의 대형사진이 걸린 소장품 건물에는 모두다 신발을 벗고 들어갔었는데 하나님의 제단에는 돌아다니던 구둣발로 올라가고 있으니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혼자 ‘못난이’ 같아 보이고 촌스러워 보였겠지만 하나님이 ‘모세’를 향하여 “모세야! 네가 서 있는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명령하신다. 양의 똥과 오줌으로 질퍽거리는 곳이었으나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이 계시었기에 거룩한 땅이기에 신을 벗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임재하시는 강단에 ‘카펫’을 깔았음에도 구둣발로 올라가는 양심 없는...! 하나님을 두렵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얕보지 않고서야 어찌 더러운 구둣발로 올라가느냔 말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거대한 초상화가 걸려있고 저들이 지니고 있던 소장품의 전시관에서도 신발을 벗었는데 말이다. 전쟁 포화속의 예배라면 몰라도... 자기 집이나 아파트 현관에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서 하나님 제단에는 구둣발로 올라가??? 대표 기도자는 여자 장로였다. 길고도 낭랑하게 은혜 있는 조리 있는 기도이기에 눈을 뜨고 바라보니 낭독이 아닌 기도문이 아닌 원고 없는 간절한 기도를 합장하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기도문 낭독이 아니었기에 말이다.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것이 기도지 축문 읽듯이(이방인들의 신 앞에서) 읽는 것이 어찌 기도라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어찌하여 우리네들이 이런 형식과 의식의 예배가 되었는지... 어찌하여 교회의 제단이 이지경이 되었는지... 명예박사요 돈 몇 푼주고 산 가짜박사며 세줄박이 가운을 입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설치고 날치고 있다.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이다. 하나님 자랑 예수님 자랑이 아니라 자기자랑 자기위장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가슴아파온다. 세상귀신들에게 축문을 읽듯이 기도문을 적어 가지고 나와 읽고 있으니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기도는 잘하든 못하든 짧든지 길든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기도지요...! 하나님 들으시라는 기도가 아니라 사람들 들으라는 낭독이다. 평양을 다녀와서 할 말이 태산같지만 통일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얼마남지 않았음을 느끼며 기도하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자료제공 복음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