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화위 김광동위원장은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이하 유족회)의 면담요청을 취임후 1년6개월여 기간 거부하여 왔다. 이에 지난3월12일 유족회는 진화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진화위를 규탄하고 면담을 위해 6층 김광동위원장실 앞 복도에서 11시경부터 연좌농성을 시작하자 오후 15시경 김광동위원장이 나타나 80여분시간 유족과 대화를 시작하여 4월2일 간담일정을 확정하고 유족과 3개월(분기별) 단위로 간담회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고 진화위의 올바른 운영을 요구하고 그날의 당일즉석 간담회는 마쳤다.
2. 3/12일 결과에 따라 4/2일 유족과의 간담회가 실시되었고 간담회결과는 실망적 이였고 빨갱이 몰이 조작등 파행적 운영에 대한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3. 3/12일 합의에 따라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와 유족회는 6월4일 각각의 명의로 진화위 김관동위원장 앞으로 간담회요청 공문을 발송하였음 진화위는 답변공문이 없었고 이에 다시 국가폭력피해 범국민연대 명의로 재차 6월18일 공문을 발송하여 감담회 요구 공문에 대한 답변 없음에 유감을 표하며 7월2일 11시에 간담회를 진행하자고 일정을 통보하였다.
4. 그럼에도 또 다시 진화위로부터 회신을 받지 못해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와 유족회는 위 통보한 시간에 감담회를 진행하기 위해 진화위를 찾아간 것이고 진화위가 진화위사무실 5.6층 건물의 출입문 전체를 봉쇄하고 1개의 화물용 에레베이터 만 운행하고 유지한 채 요원3~4명을 배치하여 유족의 출입을 막았고 부득이 복도 벽 양측에 붙여 앉아 복도중앙에는 통행로가 확보 되었고 진화위 직원들과 정보과 경찰들의 통행은 자유롭게 지루어지고 있었다.
5. 김광동 위원장은 24시간후 7/3일 오전11경 관계자를 통해 5층 휴게실에서 잠깐 만나자고 하였으나 이미 진압을 위해 경찰을 불러 들였고 유족측은 건물봉쇄먼저 풀어줄 것을 요구하고 전례에 따라 김광동위원장 집무실이 있는 6층 대회의실에서 진행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진화위는 거부하고 곧바로 경찰진입을 단행한 것이다.
6. 유족은 이옥남 상임위원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면담을 요구했던 유족들은 복도 양편에 앉아 있었기에 복도를 통해 정보과 경찰과 송상교처장등 진화위 직원들이 수시로 자유롭게 통행하였고 이옥남의 감금 주장은 실소를 금치 못할 헐리우드액션이자 코메디임. 퇴근시 촬영된 동영상을 보면 경찰과 진화위직원등 7~8명을 대동하고 유유히 퇴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음.
7. 김광동진화위위원장은 상식적 면담요구를 교묘히 거부한 채 70~90세 몸이 불편한 면담요구 유족을 경찰을 동원 사지를 들어 강제로 끌어내고 고발까지 감행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8. 더 이상 진화위의 파행과 조작 이념몰이를 방치할 수 없고 130만 학살된 영령들을 부역자로 낙인찍는 진화위에 대해 국회는 국정조사와 김광동일당의 탄핵을 즉각 추진해주기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