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문협 문학기행] 정병경.
ㅡ메밀 씨앗에 새긴 가을ㅡ
흐리고 스산한 가을 하늘에 먹구름이 낮게 내려앉는다. 광주문인협회 문우들과 함께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봉평으로 문학기행을 떠난다. 주말이어서 도로는 약간의 차막힘으로 정체가 반복이다.
산중턱에 자리한 이효석 문학관은 봉평뜰을 굽어본다. 계절의 순환 속에서 초록의 아쉬움은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이다. 산기슭엔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정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문학관 주위는 고즈넉한 한 편의 문학작품이다.
'달빛언덕길'에 들어서니 예술의 극치이다. 봄이면 하얗게 펼쳐진 메밀꽃을 상상해본다.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은 지고 없어도 가지에 매달린 씨앗들이 내년봄을 기약한다. 꽃의 화려함마저 사라진 자리에 메밀 씨앗이 침묵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
메밀꽃은 한철의 피어남에 연연하지 않는다. 꽃은 지고 없지만 꽃대에 남아있는 까만 씨앗이 견딜 겨울을 상상해본다. 척박한 땅에서도 다시 뿌리를 내릴 삶의 야성이자 순응의 결실이다. 이효석 작가가 그려낸 낭만과 서정 또한 이와 닮아있다고 여긴다. 일제강점기와 근대의 혼란이라는 서슬 푸른 시대적 아픔이 있다. 작가는 문학이라는 씨앗을 품고 인간 본연의 순수성과 자연의 섭리를 노래한다.
평양의 집을 재현한 '푸른집'에서 작가가 손때 묻은 집기들을 바라본다. 짧은 생이지만 영원으로 기록하려 한 문학가의 고독과 철학적 집념을 유추해 본다.
가랑비가 살짝 뿌리는 한낮에 원미식당에서 따스한 메밀국수 향이 문학관을 적신다.
메밀꽃이 전하는 진정한 교훈은, 척박한 땅에서도 꿋집하게 피어남을 보여준다. 꽃이 진 뒤엔 묵묵히 씨앗을 품어 다음해를 준비하는 겸손과 순응의 삶이다. 스산한 가을비 속에서도 따사로운 문학의 온기를 가슴에 담아온다. 내 마음의 밭에도 따스한 시향(詩香) 한 포기가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ㅡ달빛언덕 메밀밭ㅡ
산중에 번진 향기
단풍빛 물이 들고
스산한 바람 결로
가을은 깊어 가네
꽃 떠난 씨앗 하나가
홀로 바람 맞누나
ㅡ푸른집에서ㅡ
근대의 혼란 속에
시절을 기록하니
정갈한 꽃향 내음
은은히 번져오네
담쟁이 하늘로 향해
언젠가는 만나리
ㅡ메밀꽃밭에서ㅡ
척박한 땅에서도
하얗게 피어나네
순수의 정신 세계
가슴에 스며온다
내리는 가랑비 사이
문학 향기 적시고
2026.10.24.
첫댓글 글 실력이 좋으시네요.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