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내 한 점
홍신선
파란시선 0183∣2026년 7월 30일 발간∣정가 12,000원∣B6(128×208㎜)∣103쪽
ISBN 979-11-94799-38-2 03810∣(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신간 소개]
막장 끝판다워 더 아름답게 저무는 봄날
[향내 한 점]은 홍신선 시인의 열두 번째 신작 시집으로, 「삶이 위대한 것을」 「찬 꽃 한 채」 「벚꽃 엔딩」 등 56편이 실려 있다.
홍신선 시인은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으며, 1965년 [시문학] 추천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서벽당집] [겨울섬] [삶, 거듭 살아도](선집) [우리 이웃 사람들] [다시 고향에서] [황사 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위하여] [우연을 점찍다] [홍신선 시 전집] [마음經](연작시집) [삶의 옹이] [사람이 사람에게](선집) [직박구리의 봄노래] [가을 근방 가재골] [향내 한 점], 산문집 [실과 바늘의 악장](공저) [품 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다] [사랑이란 이름의 느티나무] [말의 결 삶의 결] [장광설과 후박나무 가족], 비평에세이집 [하프를 잃은 시인들], 저서 [현실과 언어] [우리 문학의 논쟁사] [상상력과 현실] [한국 근대문학 이론의 연구] [한국시의 논리] [한국시와 불교적 상상력]을 썼다. 서울예술대학, 안동대학교, 수원대학교,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노작문학상, 문덕수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홍신선 시인은 1961년에 등단했다. 그러니 이번에 펴내는 시인의 열두 번째 신작 시집 [향내 한 점]은 65년의 시력을 헤아리는 셈이다. 물론 1960년대에 등단해 여전히 시를 발표하고 시집을 펴내는 시인들이 없지는 않지만, 홍신선 시인만큼 시와 삶에 두루 염결하고 자신의 시 세계를 흐트러짐 없이 견결하게 유지하고 있는 시인은 단언컨대 드물다. 이번에 홍신선 시인이 발간한 [향내 한 점] 또한 간결하고 옹찬 필세로 생과 사를 겸해 다독이고 아우르는 도저한 깊이를 보여 준다. 특히 홍신선 시인이 마침내 다다른 심경이라 이를 만한 “수백 톤 적막이 수몰”된 “물 깊은 연못 하나”는 자못 장엄하고 아연하기까지 한데(「시간 속에도 거울이」), 더욱 그러한 까닭은 [향내 한 점]에 실린 시편들 모두가 이런저런 시적 조사(措辭)를 훌훌 털어 버리고 시인이 귀촌해 정착한 가재골의 곳곳에서 몸소 경작한 바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향내 한 점] 이전에 상재한 또 다른 가재골 시편들이랄 수 있을 [직박구리의 봄노래](2018)나 [가을 근방 가재골](2022)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바이지만, 이번 [향내 한 점]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말하자면 [향내 한 점]에 등장하는 가재골은 시인이 직접 땀을 흘려 경가하면서 나날을 도모하는 곳이자 도처에 깃든 죽음을 끌어당겨 감싸안고 달래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요컨대 갖은 생멸의 현장이자, ‘따시한 향내 한 점’으로 족한(「향내 한 점」) ‘으늑한 절집 한 채’다(「찬 꽃 한 채」). 홍신선 시인이 적었듯 “삶이 거대한 것”은 “그날그날이 이 자잘한 것들 덕분”이라는 말은(「삶이 위대한 것을」) 곧 저 소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생명들 하나하나가 견디고 버틴 그 하루하루가 종국엔 더할 수 없이 위대하다는 뜻으로 새겨야 할 것이다. “막장 끝판다워/더 아름답게 저무는 봄날”이다(「벚꽃 엔딩」).
[추천사]
뭇 생명들이 살아온 위대한 시간과 생이 다하고 흘러갈 다음 세상에 대해 생각한다. [향내 한 점]은 죽음에 대한 비애의 표상을, 아프게 아름다웠던 생의 궤적을 현시한다. 영겁회귀하는 만상의 흐름을 계시한다. 생의 끝자락을 노래하는 시인의 시가 때로 아프게 진동한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는 “맹목의 푸른 절규”가(「바랭이풀」), “막장 끝판다워/더 아름답게 저무는” 벚꽃의 종언이(「벚꽃 엔딩」) 뭉클하게 몸을 훑고 지나간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서늘한 증언에는 즉자적 진경과 자유로운 상상이 거침없이 물결친다. “이제 그만 너덜너덜해진 옷은 벗어 버리고” “물이나 바람 한 줄기 기(氣)로 되돌아가/건곤을 자유로이 누비”고자 하는 소망에도 그러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와병이 깊고 보니」). 그러고 보면 죽음 이후에 펼쳐질 상상의 장면들은 역설적이게도 장쾌하고 역동적이며 활달하다. 죽음은 저 “십만억 평 광활한 하늘”로의 도약이므로, ‘대동’ 세계로의 진입이므로 슬퍼할 건 없으리. 한 생의 소멸은 결국 “일망무제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 “수수만 분해된 원자들로” 떠도는 과정이자 끝없이 몸을 바꾸는 과정이기에.(「끈」) 그리하여 여기 무한히 열린 ‘으늑한 절집 한 채’ 지어진다(「찬 꽃 한 채」). 그 속에서는 세속의 집착에서 벗어난 자유가, 영겁회귀의 시간이, 생의 열락과 허무, 생에의 긍정이 뒤섞인 채 무한 흘러간다.
―주영중 시인
[시인의 말]
시를 따라나선 지 햇수로 60여 년, 그동안 나는 줄곧 내 얘기들을 해 왔다. 시는 장차 나를 또 어디로 무슨 얘기 속으로 끌고 갈 것인지. 그런데 이제 서서히 깃발을 내릴 때가 오는 것 같다.
종착의 여기까지 나를 이르게 한 많은 이들과 모든 것에 두루 무한 감사한다.
2026년 이른 여름에
지은이
[저자 소개]
홍신선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1965년 [시문학] 추천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서벽당집] [겨울섬] [삶, 거듭 살아도](선집) [우리 이웃 사람들] [다시 고향에서] [황사 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위하여] [우연을 점찍다] [홍신선 시 전집] [마음經](연작시집) [삶의 옹이] [사람이 사람에게](선집) [직박구리의 봄노래] [가을 근방 가재골] [향내 한 점], 산문집 [실과 바늘의 악장](공저) [품 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다] [사랑이란 이름의 느티나무] [말의 결 삶의 결] [장광설과 후박나무 가족], 비평에세이집 [하프를 잃은 시인들], 저서 [현실과 언어] [우리 문학의 논쟁사] [상상력과 현실] [한국 근대문학 이론의 연구] [한국시의 논리] [한국시와 불교적 상상력]을 썼다.
서울예술대학, 안동대학교, 수원대학교,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노작문학상, 문덕수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삶이 위대한 것을 – 11
유거(幽居) – 12
일비 오는 날 – 14
꽃망울 부푸는 뜨락에서 – 16
찬 꽃 한 채 – 17
끈 – 18
영겁회귀 – 19
경칩 어름에서 – 20
모루는 내 안에도 있다 – 22
호두나무 아래서 – 23
풀싹의 노래 – 24
봄 산에 들면 – 25
해토머리 – 26
누가 저녁놀을 내버렸나 – 27
지조론 – 28
12. 10, 2024―황동규 시인께 – 29
벌의 행각 – 30
제2부
향내 한 점―먼저 떠난 그대를 생각하며 – 33
달개비 혹은 파킨슨을 위해 – 34
벚꽃 엔딩 – 36
도사리 송(頌) – 38
노근을 보며 – 40
헌 신발 – 41
고요 감옥 – 42
늦가을 떼 기러기를 보며 – 43
생의 기쁨 – 44
죽은 새끼 고양이를 묻고서―구하는 게 더는 없으니 나고 죽을 일이 없네 – 46
인간이나 짐승이나―사람도 검정 비닐봉지에 산 영아를 담아 버린다 – 47
문패 – 48
나무도 채근담을 읽는다 – 50
백비(白碑)를 읽으며 – 51
어떤 한 수작 – 52
그 고양이 – 53
매미의 시 – 54
제3부
북녘 집 – 57
바랭이풀 – 58
추석날 아침 – 59
시의 길 – 60
제물인 듯 아닌 듯 – 62
가객 – 63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 – 64
가을, 밤이 길어지면 – 66
세상 뜰 준비를 하는 – 68
감을 따며 – 69
그 – 70
삶이 아름다운 것은 – 71
안항(雁行) – 72
뒤돌아본 기억의 문턱이 닳는다 – 73
늦겨울 산에서 – 74
분꽃 필 무렵 – 75
제4부
야단법석(野壇法席) – 79
납설(臘雪) – 80
도깨비바늘 – 81
기억만이 전부인 세월에 – 82
한식 근방 – 84
확증편향설 – 86
초겨울 나준녘 – 87
바위 – 88
복대 – 89
체취 – 90
희망 한 줄 – 91
귀촌 일월 – 92
봄날의 작문 – 93
낫을 갈며 – 94
시간 속에도 거울이 – 95
와병이 깊고 보니 – 96
시인의 시화 오류헌 시화 – 97
[시집 속의 시 세 편]
삶이 위대한 것을
신새벽부터 뒷산 골짜기를 통째 등에 지고
울며 다니는 꾀꼬리
무엇이 저를 저리 내모는가.
학교 문턱에는 아예 들어선 적 없어
배움이 없던 아버지는 자식들 학비 조달에 쪼들려
왼 생을 탕진했지
오늘 해외직구로 받아 든 약병을 들여다보며
영문을 더듬더듬 읽던 나는 문득 당신의 수고에 소름 돋았다.
터앝 밭이랑에 한참 전 묻어 둔 종자가 싹을 틔워 올라올 때
하루 일 마치고 모처럼 땀 들이며 그늘에서 쉴 때
해 막 진 뒤 땅거미 전까지 환한 박명 속에 앉아 멍때릴 때
그날그날이 이 자잘한 것들 덕분이란
문득 든 터득에
나는 그저 턱없이 고마운 것을
삶이 거대한 것을…… ■
찬 꽃 한 채
간밤 내 누가 와 달그럭대며 문고리를 땄는가.
새벽녘 한기에도
빗장 풀고 꽃부리 활짝 열어젖힌 매화 한 송이.
거기 저 안쪽 내당에선 정근(情勤)이라도 하는지
간밤 내내 흘러나왔노니
뮤즈여 뮤즈여 시의 딸이여
명호 되뇌어 읊는 소리.
이제 나는 저 시린 찬 꽃으로
으늑한 여기 절집이나 한 채 지어 두고 가려 한다.
*절집 한 채: 서정주의 시 「가벼이」에서 가져왔음. ■
벚꽃 엔딩
한 사흘 왁자지껄 난장판이더니
무슨 즐거움들인가
까르르 까르르……
더러는 스크럼 짜 서로 붙안고 더러는 제각각 입 가리고 키들대더니
저 경쾌한 웃음소리 허공 너머로 사라진다.
까르르 까르르……
가물가물 뒤태를 보이며
바람의 목덜미를 꼭 붙안고 가는 축도 있다.
그러다 문득
일시에 네 가닥 꽃잎을 짜갠
일시에 만발한 벚꽃들이
폭파당한 건물 내려앉듯 그 자리에
뭉글뭉글 흙먼지 아닌 자욱한 낙화가 되어 솟구쳐 날아오른다.
보아라 봐
마치 종언이란 이렇다는 듯 이거 보라는 듯
왕벚나무 우듬지로부터
눈부신 부실 덩어리 한 동 건물이
때아닌 초강풍에 붕괴하고 있다.
막장 끝판다워
더 아름답게 저무는 봄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