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2026. 모던포엠 9월호)
프린터와 잉크통이 있는 작업실
마경덕
프린터기에 투명한 네 개의 잉크통이 붙어있다. 몸 밖으로 노출된 장기臟器처럼 분리될 수 있는 잉크통은 왠지 더부살이 느낌이 든다. 잉크는 프린터의 혈액이다. 핏줄처럼 엉킨 선으로 잉크가 주입되면 잠잠하던 프린터의 심장이 철컥, 쇳소리로 반응한다. 첫 음절音節은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며 지시에 따른다는 약속이다. 나는 익숙한 제스처에 안도한다.
기계에도 감정이 있어 가끔 궤도를 이탈한다. 잉크통 하나가 비었거나 백지 조각이 틈에 끼면 앙칼진 목소리로 경고를 보낸다. 흘려들으면 막무가내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요구조건에 만족하면 목소리도 사근사근 부드럽다.
프린터의 첫 신호음에 하루의 중력이 가벼워지는 시간, 불이 켜지면 피댓줄이 돌아가듯 분위기는 활력을 찾고 찻물도 팔팔 끓는다. 누워있던 시간이 벌떡 일어나 제 근육을 보여준다. 예감이 좋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어젯밤 흘리고 간 생각이 키보드로 모여들고 어설픈 문장이 완성된다. 키를 잃은 상상들이 창밖 직박구리 부리에 물려 마침내 도달하지 못한 너머를 넘어간다. 검노빨파 네 가지 잉크가 뒤섞여 백지에 생각의 지문을 빠르게 찍어낸다.
프린터는 오타, 탈자, 절뚝거리는 문장, 감춰둔 비밀도 그대로 보여준다. 방심의 틈으로 뛰어든 흔적을 증거로 내미는 프린터 앞에서는 한마디 변명도 할 수가 없다.
밀린 게으름을 한꺼번에 맡기면 프린터의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간간이 끊어지는 몇 초의 정적으로 벅찬 숨을 고른다. 그때는 잠시 일손을 놓고 기계의 고된 노동에 공감해야 한다. 정상치를 넘어 과부하가 되면 왜곡歪曲이 생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모든 씨앗이 유전인자를 지니고 있듯이 프린터는 프린터만의 DNA가 있다. ‘반복의 힘’ ‘복제複製의 힘’ ‘속도의 힘’이다. 몇 사람의 몫을 거뜬히 해내는 능력으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는 신 스틸러 (scene stealer)인 셈이다.
작업실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대여한 시간을 가방에 주섬주섬 담고 스위치를 끄면 프린터도 지친 눈을 감는다. 어둠은 잉크처럼 사방으로 쏟아지고 좁은 뒤란을 돌아 나오는 내 발끝도 검게 물든다.
공간을 차지한 사물들은 어둠 속에서 제빛을 찾는다. 6인용 테이블엔 빈 커피잔, 반쯤 접힌 페이지, 호명을 기다리는 내일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요함 속에서도 또 다른 침묵으로 소리를 내는 것들은 야행성이다. 하루 종일 외면당한 쓸쓸함도 그곳에 두고 온다.
그동안 문장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늘 백지 앞이었다.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을 백지가 다 받아주었다. 어쩌면 백지의 꿈을 내가 이행한 셈이다. 여백을 메운 검은 글자는 백지의 용도를 이해하고 실천한다. 프린터 역시 백지 앞에서 의무를 다한다.
글자들의 최종 도착지는 어디일까. 무언가를 기록할 때 한 장의 백지는 사건의 현장이 되고 증인이 된다. 기억의 지층에서 과거를 도굴하고 현재와 미래의 시간까지 채굴해 보존하는 방법으로 종이만 한 것이 없다. 가출한 기억을 찾는다는 실종 안내문자가 매일 휴대폰 퇴적층에 순서대로 쌓인다. 기록은 최선의 방법이다.
사소한 글에도 질감이 있다. 건조한 문장은 파쇄기에 버려지고 감성적인 촉촉한 문장은 개인의 서사書史가 되기도 한다. 백지는 기록하고 프린터는 끝없이 배설한다. 잉크통은 수혈하듯 빠져나가는 제 피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차례대로 한 장 한 장 쏟아지는 질서의 이행履行으로 기계와 인간은 교류한다. 무엇을 하든 결정권은 사용자에게 있다.
잉크는 압축된 언어이다. 한 통을 다 쓰면 몇 페이지의 글이 나올까. 잉크통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있다. 용기 안의 잉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지의 언어를 품고 침묵한다. 사건의 지평선에 갇혀 망설이는 단어를 곱씹으며 처마 끝 찰랑거리는 풍경소리를 듣는다. 허공으로 번지는 바람의 파문과 마주친 후, 끊어진 문장은 잉크의 지지를 업고 앞으로 나아간다.
[출처] 프린터와 잉크통이 있는 작업실 / 마경덕|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