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왜 딸을 데리고 다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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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열 북한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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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4 12:34 오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18일) 국가우주개발국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딸 김주애도 현지지지도에 동행했다. /사진=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은 지난 4월 18일 국가우주개발국을 방문해 “4월 현재 제작 완성된 군사 정찰위성 1호기를 계획된 시일 안에 발사할 수 있도록 비상설 위성 발사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최종 준비를 다그쳐 끝내”라고 주문했다. 김정은은 이번 시찰에서도 ‘주애’로 알려진 딸과 동행했다.
지난해 11월 19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보도 매체들은 흰색 패딩 점퍼를 입고 빨간 구두를 신은 한 소녀가 김정은의 손을 잡고 미사일 발사장을 돌아보는 사진을 일제히 게재했다. 그러면서 “전날(22.11.18)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시험발사가 이뤄졌다”라고 밝히는 한편 “(김정은이) 사랑하는 자제분과 함께 모든 과정을 직접 지도했다”라고 선전했다. 이른바 ‘백두혈통’ 4대의 얼굴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공개된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이 소녀가 “김정은의 둘째인 김주애”라고 확인했다.
김정은은 이후에도 미사일 시험발사를 비롯해 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과 김일성 생일 체육 경기 관람 등 중앙급 주요 행사에 딸을 데리고 등장했다. 딸과의 동행이 일상화된 것이다. 특히 열병식에선 군인들이 “백두혈통 결사 보위”란 구호를 외치는 한편 김정은의 권위를 상징하는 백마 뒤로 김주애의 백마(북한 매체는 ‘사랑하는 자제분이 제일로 사랑하시는 준마’로 설명)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김주애에게 ‘존귀하신 자제분’, ‘존경하는 자제분’이라고 호칭하는가 하면 김정은 부녀가 함께한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등 치기(稚氣)에 가까운 우상화 놀음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북한이 김정은 딸을 느닷없이 띄우고 나서는 데 대해, 내외 북한 전문가들은 나름의 근거를 내세우면서 그 이유를 평가하고 있다. 몇 가지 주장을 보면 ▲핵·미사일 개발이 미래세대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메시지 ▲김주애의 후계자 내정설 ▲심지어 올케(리설주)와 시누이(김여정)의 권력 갈등설까지 나왔다.
이런 여러 평가 중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후계자 문제이다. 김정은 딸이 모습을 드러낸 초기에는, ‘극존칭 사용’, ‘기념우표 발행’, ‘전용 백마 등장’ 등을 이유로 한 ‘김주애 후계자 내정’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음 몇 가지 이유로 ‘김주애의 후계자 단언은 다소 무리’라는 주장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첫째, 김주애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다. 김주애란 이름이 처음 알려진 건 2013년 9월이었다. 당시 김정은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이 영국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들의 딸 주애를 안았다”라고 밝히면서부터이다. 이에 따르면, 주애는 올해 고작 10세이다. 후계자로 지명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이다. 주애의 할아버지인 김정일의 경우, 실제 나이가 33세이던 1974년에 후계자로 내정됐고, 7년 뒤 39세인 1980년에야 공식화됐다. 또 아버지 김정은은 2010년 9월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 회의에서 후계자로 공식화됐다. 당시 나이 26세였다. 그것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다소 회복한 시기에 급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전례로 볼 때, 10살에 불과한 주애를 후계자로 내정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북한 선전매체에 따르면, 김정은은 현재 ‘잠이 그리울 정도’로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 김주애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여성이 국가, 경제, 문화,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남성과 평등권을 가진다’라는 내용의 ‘남녀평등권법령’을 제정, 공포(1946년 7월 30일) 함으로써 형식적으로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인식이 뿌리 깊다. 적지 않은 탈북 여성들이 자기 남편을 ‘세대주’라고 부르는 데서도 남녀 불평등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북한에서 남녀가 평등한 경우는 노력(勞力)을 제공할 때뿐이다. 이처럼 가부장적 전통이 뿌리 깊은 사회에서 여성을 최고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셋째, 부자세습의 전통을 파기하면서까지 딸을 후계자로 내세울 뚜렷한 이유가 없다. 정보 당국은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에 세 자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 아들(2010년생 추정)과 김주애(2013년생 추정), 그리고 성별이 불분명한 셋째(2017년생 추정)이다. 국가정보원이 주애를 후계자로 보지 않는 이유도 오빠의 존재 때문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첫째 아들이 병약하거나 지도자의 자질이 부족해서 주애를 내세운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하고 있으나, 공개석상에 등장하는 김정은 부부의 표정으로 볼 때, 첫째 아들이 후계자 지명에서 배제되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주애가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후계자로 지명될 경우, 차기 지도자의 자리는 ‘김씨’가 아닌 인물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정권의 역성(易姓)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이른바 백두혈통의 대(代)도 끊어질 수 있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2년 11월 1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날(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7형’의 시험발사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현지지도에는 김 위원장의 딸(하얀 점퍼)도 동행했다. 북한이 김 위원장의 자녀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이처럼 김주애가 후계자로 등장하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김주애를 후계자로 내정한 것이 아닌가?’라는 논란거리를 제공하면서 딸을 데리고 다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비록 부자세습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아직은 어정쩡한 상태에 있는’ 후계 체제 규범을 공식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심이 든다.
주지하다시피, 1972년 개정한 이른바 ‘사회주의헌법’으로 유일 지배 체제를 확립한 김일성은 아들인 김정일에게 절대권력을 세습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전례가 없었던 권력의 부자세습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주변의 비판을 의식하여 이른바 ‘자질론’을 내세워 김정일의 후계자 지명을 정당화하면서 김일성 생존 시에 ‘후계 문제를 빛나게 해결했다’라고 자찬(自讚)하고 있다.
이와 관련 북한 선전매체들은 “사상이론적 예지가 특출하고 혁명적 신념이 확고하며 뛰어난 실천력을 지닌 영도자를 모실 때 사상의 계승성이 확고히 보장되게 된다”라며, 김정일이 ‘정력적인 사상이론 활동과 실천 활동으로 김일성의 사상을 빛낸 것이 그의 최대의 역사적 공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김일성이 토양 속에 심어 놓은 주체사상을 김정일이 무성한 숲으로 가꾸어 ‘주체 시대의 전성기’를 펼쳤다고 김정일의 능력과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후계자 지위를 확고히 한 김정일은, 이후 ‘당은 수령에 의해 마련된 혈통을 계승해 나가면서 수령의 당을 끊임없이 강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라는 ‘혈통론’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백두산 3대 장군’(김일성, 김정숙, 김정일), ‘백두산 밀영 고향집’(양강도 삼지연시 소재), ‘구호나무’ 등을 선전 소재로 하여 이른바 백두혈통을 조작했다. 후계자의 자격을 자질론에서 혈통론으로 이행한 것이다. 그리고 혈통론에 따라, 별다른 자질 검증이나 가열한 권력 투쟁 없이 김정은에게로 권력이 세습된 것이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절대권력을 이양받은 김정은은, 집안의 유일한 어른이자 고모부인 장성택을 잔혹하게 처형(2013.12)한 데 이어 이복형 김정남을 독살(2017.2)하여 자신에게 도전 세력이 될 수 있는 싹을 잘라버리는 등 전광석화처럼 체제를 장악하고 확고한 위상을 확보했다.
북한은 헌법 서문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시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사실상의 왕조 체제나 다름없다. 다만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공식적으로 왕조 체제를 선언하는 것은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이를 유예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을 의식, case by case로 후계자 지명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정은은 선대 통치자와는 전혀 다른 류(類)의 고민을 안고 있다. 2대, 3대 후계자들은 나름대로 후계자 수업을 통해 경륜을 쌓는 한편 어느 정도 나이가 되고 나서야 후계자로 지명되었지만, 김정은의 자녀들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다.
만일 가까운 시일 내에 김정은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절대권력의 세습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규정한 규범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에서- 자신의 권력이 아무 문제 없이 이들 어린 자녀에게 이양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간계(奸計)의 하나가 ‘존귀하신 자제분’, ‘존경하는 자제분’이라는 호칭을 붙이면서 김주애를 공식 석상에 등장시켜 세간(世間)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상당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에게 10살 소녀의 얼굴이 각인-긍·부정 효과는 별개의 문제-되었고, 외부 세계에서는 주애의 등장을 후계자 문제로 연결하여 논란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앞으로 이런 효과를 면밀하게 측정하여 1) 나이·성별에 관계없이 지도자의 직계 후손만이 후계자 자격이 있다는 점과 2) 이런 원칙을 공식 규범화하는 선전 선동 활동을 적극 전개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바꿔말하면, 김정은이 어린 딸을 데리고 다니는 저의는 ‘새로운 방식으로 후계 문제를 빛나게 해결’하기 위한 또 하나의 교혜휼힐(巧慧譎黠, 간교한 속임수)이라 하겠다. 이런 교혜휼힐 수법은 김일성과 그 후손이 80년 가까이 독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준 김씨 가문 전래의 비급(祕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