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명산기행 197번째로 택한 광주 무등산
2018년 1월 편백나무휴양림을 들머리로 하여
안양산 낙타봉 서석대 중봉 중머리재 증심탐방지원센터로 하산하였는데
약 2년 만에 다시 찾은 무등산의 산행길은
원효사주차장에서 시작하여 무등산 옛길을 따라
목교까지 오른 후에 서석대와 입석대, 중머리재를 경유하여
증심탐방지원센터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 광주를 지키는 산, 무등산국립공원 *
광주광역시 북구와 동구, 전라남도 화순군과 담양군 지역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 무등산은 광주와 담양군·화순군과 경계에 있는 산으로
무악(武岳)·무진악(武珍岳)·서석산(瑞石山)·입석산(立石山)이라고도 한다.
높이를 헤아리기 어렵고 견줄 상대가 없어
등급조차 매길 수 없다는 산이 무등산이다.
해발 1,186.8m로 산세가 유순하고 둥그스름한 모습이다.
산정상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를 "정상 3대"라고도 한다.
정상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규봉, 입석대, 서석대 등의 이름난 기암괴석과
증심사, 원효사, 약사사 등의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무등산의 가을철은 규봉암의 단풍과 장불재, 백마능선의 억새풀이
절경을 이루고 겨울에는 설화와 빙화가 일품이다.
면적 75.425㎢. 1972년 무등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무등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무등산(1,187m)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고 큰 산이며
광주에서 동쪽으로 8㎞쯤 떨어져 있어 광주를 대표하며
예로부터 광주의 진산으로 이름난 산이다.
무등산은 低地(저지) 가운데 홀로 우뚝한 큰 산으로
호남의 신전(神殿)이라고도 했고
산세가 웅대하고 자애로와 성산 또는 신악으로 알려진 명산이다.
무등산의 특색은 서석대(瑞石臺), 입석대(立石臺) 등의 3대석경과
규인봉 등의 암석미에 있다.
이것들은 돌의 집단으로 암석 산사이에는 봄의 진달래가 유달리 아름답다.
활엽수 계통의 잡목과 송림이 우거지고 깨끗이 포장된 등산도로에는
많은 약수들이 솟아 나와 인기가 있고 정상쪽의 백마능선 일대에는
억새풀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매년 가을이면
무등산 갈대제를 지내고 있다,
암석은 대부분 중생대 백악기 중성 및 산성의 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고
화강암과 석영반암이 곳곳에 관입되어 있다. 화산암 지대는 높은 산지가
발달하여 있고, 화강암 지대는 낮은 구릉이나 평야를 이루고 있다.
기반암에 따라 풍화양상이 다르고 곡지모습이나
사면발달 모습도 차별성을 보인다.
이 산의 명물인 수박은 정갈하게 한 뒤 온갖 정성을 대하여 10㎏∼20㎏의
무등산 ‘푸렁이’를 생산해 낸 것이다.
이곳 삼애다원에서는 춘설차와 홍차를 생산하여 더욱 유명하다.
무등산에는 증심사(證心寺)·원효사(元曉寺)·규봉암(圭峰庵)·약사암(藥師庵) 등의
사찰이 있고 임진왜란때의 의병장인 김덕령(金德齡)의 사우인 충장사(忠壯寺)와
취가정, 정철(鄭澈)이 자랐던 환벽당(環碧堂), 식영정(息影亭)과
성산별곡(星山別曲) 시비(詩碑) 등이 산자락에 있다.
무등산국립공원 [無等山國立公園]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전을 출발한지 약 2시간 만에 도착한 원효사 주차장!!
주차장 인근에 무등산공유화 운동관련하여
땅을 기부하신 분들의 표석이 자리잡고 있다.
무등산 공유화운동은 무등산의 70%이상이 사유지인 탓에
재산권침해들의 문제 등이 발생해 시민들이 참여해 모은 돈으로
무등산을 사서 '시민의 무등산'으로 만들자는 의미에서
199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산행 들머리는 이곳 무등산탐방지원센터 원효분소에서
무등산 옛길을 따라 시작한다.
무등산옛길은 총 3개구간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무등산 옛길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탐방로를 제공하고자
광주 도심에서 원효사를 거쳐 서석대까지 옛사람이 오르던 길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무등산 옛길은 새로운 탐방로를 만들기 보다는
숨겨진 옛길을 찾아 복원하고 끊겨긴 길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탐방로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1구간 : 산수동~충장사~원효사(7.75km)
2구간 : 원효사~제철유적지~서석대(4.12km)
3구간 : 장원삼거리~덕봉~가사문화권(11.2km)
원효분소에서 시작하는 무등산옛길 2구간..
무등산옛길중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간은
2구간이 유일하다..
오늘은 이 구간을 따라 정상에 오른다.
처음 시작은 이렇게 대나무숲길을 걷듯
오솔길로 시작한다.
10분(754m)쯤 오솔길을 걷다가 나타난 삼거리
좌측은 원효사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우측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누군가가 열심히 암각을 해 놓았는데
도저히 내용을 알수는 없다.
1시간 20분(3.4km)만에 도착한 목교!
목교이면 나무교량을 뜻하는 듯 한데 이해불가!!!
저 멀리 중봉이 눈에 들어온다.
목교부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서석대를 향해 오른다.
목교에서 서석대까지는 이런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서석대를 오르다 본 중봉너머로 광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옛날 OBC교육을 받았던 상무지구는 찾지 못하겠다.
저멀리 무등산 정상이 눈에 아른 거린다.
저 곳은 공군부대가 위치해 있어 가지 못하고
일년중 3~4번 정도 개방시만 갈수 있다고 한다.
서석대 위에 따로 솟은 돌기둥!!
이 서석대의 돌기둥은 직경 1~1.5m이며
돌기둥이 약 30m의 높이라고 한다.
무등산의 화산암을 연대측정한 결과 화산활동은
약 4500만~8500만년 전 사이에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공룡시대가 종말을 고한 중생대 말에서 신생대 초까지의 기간이란다^^
서석대에서 바라본 공군부대가 위치한 정상부근이다.
많은 사람들이 왜 부대가 위치해서 정상을 통제하냐고 하지만
광주에 있는 공군비행장을 생각하면 될듯 하다.
국가 안보상 어쩔수 없는 일이다.
만약 남북통일이 된다면 이 공군부대도 폐쇄될 수 있을 듯 하다.
2시간 8분(4.1km)만에 도착한 무등산 서석대!!
어게인은 안하겟다고 하고선
블랙야크100명산 어게인 29좌 성공이다!!
오늘도 역시나 상고대나 설경도 보지못했다.
봄날 같은 따스한 날씨속에
미세먼지 없는 풍경으로만 만족한다.
중학생정도 되는 듯한 아이가 힘에 겨워
표지판에 기대어 있다.
힘내라 힘!!
천황봉의 아쉬움을 달래며 입석대로 하산중에 담아본
무등산 정상부근의 모습..
입석대 위에 있는 10개의 이층석탑 같은 돌기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입석대[立石帶]
무등산의 대표적인 절경의 하나로 장불재(長佛峙)에서
동쪽으로 약 200m 올라가면 정상의 서쪽에 있다.
높이 10∼15m의 돌기둥이 반달모양으로 둘러서 있는 석경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경관이다.
돌기둥은 5∼8면체의 각석(角石)이며, 하나의 암주(巖柱)나
3,4단의 석주(石柱)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 바위에 ‘立石(입석)’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축단을 통해서 이곳이 가뭄이나 질병의 전염이 심할 때
지방관리들이 하늘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제를 지내던 제천단(祭天壇)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하여도 이곳에 입석암(立石庵)을 비롯하여
주변에 많은 암자와 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입석대(해발 1017m)는 한 면이 1~2m이고 높이가 10~18m인
5각 또는 6각 기둥 30여 개가 동서로 40여m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높이에 있어서는 서석대 보다 낮다고 한다
2시간 29분(4.7km)만에 도착한 입석대
입석대의 주상절리
주상절리는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지표면에 흘러내리면서 식게되는데
이때 식는 과정에서 규칙적인 균열이 생겨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절리에는 쪼개지는 방향에 따라서 판상(板狀)절리와 주상절리가 있는데,
주상절리는 단면의 모양이 육각형, 오각형 등 다각형의
장주상(長柱狀:긴 기둥 모양)을 이루는 절리를 말한다고 한다.
입석대는 무등산의 정상 1,017m 지점에 있는 돌기둥의 무리이다.
서석대에서 입석대를 지나 내려오다 보면 넓은 평야에
자리잡은 장불재가 나타난다.
이곳 장불재에서는 비바람을 피해 휴식을 취할수 있는 시설물들이
몇채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다.
장불재에서 보이는 서석대(좌측)와 입석대(우측)
이곳 장불재까지는 약 2시간 37분(5.1km)가 소요되었다
장불재는 과거 주빙하기후의 영향으로 동결융해에 의한
사면평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곳으로, 무등산 정상부,
특히 입석대와 연결되어 있어 이 지역이 과거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가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장불재가 형성된 시기는 약 5만 년~6만 년 전 이며,
거의 평탄하면서 완경사인 장불재의 사면은 주빙하 환경에서
표토의 사면 이동이 일어나면서 토양 및 암괴 등
풍화 산물의 불규칙한 면들이 메워지면서 평탄하고 완만한 사면이 형성되었다.
장불재에서 좌측에 보이는 중봉을 경유하여 하산하려다
그냥 증심사로 바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장불재에서 증심사로 하산하는 길도 돌계단으로 인해
쉽지많은 않은 길이다.
중머리재에 도달하기 전에 있는 광주천 발원지..
샘물이 정말 꿀맛이다.
이곳은 광주천의 발원지인 샘골이라고 한다.
광주천은 폭이 넓은 상당히 큰 하천이었지만, 복개 및 직강화되면서
개울 수준으로 좁아졌다.
폭이 가장 길었던 곳은 300m로 현재의 10배 이상이었다.
그래서 한 번 범람하면 옛 전남도청 일대가 물에 잠기는 경우도 있었다.
천변에는 모래사장이 있어 현재 광주공원 앞 모래사장과
사직공원 앞 모래사장에 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제방과 둑을 쌓기 전까지는 물을 퍼 마시거나 강변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광주천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조선총독부의 방침으로
'광주를 지나는 강'이라 해서 지어진 것이다.
그보다 전에는 금계, 조탄, 서천, 한강(大江)등으로 구간마다 다르게 불렸다.
대동여지도에는 건천(巾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임진왜란 때 호남 의병장이었던 제봉 고경명(1533~1592)의 무등산 답사기
<유서석록>(遊瑞石錄)에 의하면 고경명 장군과 광주목사 임훈(1500~1584) 일행은
1574년 초여름에 무등산에 오른다.
여기 샘골에서 잠시 쉬는 동안 미숫가루를 타 마시며,
"금장옥례(金醬玉醴)에 비할쏘냐"라며 물맛에 감탄한다.
유서 깊은 샘이다. 광주의 시원(始原)이다.
3시간 15분(6.8km)만에 도착한 중머리재..
고갯마루가 넓은 초원지로 마치 스님의 머리를
닮아 '중머리[僧頭峯]'이라 한다.
이제 증심사까지도 2km밖에 남지 않았다.
유난히 대나무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무등산 등산로이다.
3시간 45분(8.5km)만에 도착한 당산나무
이 무등산 당산나무는 느티나무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어
증심사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 당산나무는 수령이 약 500여년 정도 되었다고 하고
2007년 고 노무현대통령이 무등산 등산시 이곳에서
시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붕어빵를 파시는 할머니와 악수를 하였다고 하는데
붕어빵을 사 주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그런 연유로 해서 증심사~장불재까지를 노무현 길이라고 한다.
당산나무에서 증심사로 내려가는 오솔길이다.
이 길을 내려가려면 당산나무 전 만난 화장실이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의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4시간(9.1km)만에 도착한 증심사!
증심사는 9세기 중엽 철감(澈鑑·哲鑑)선사가 초창한 고찰로
사지(寺誌)에 의하면 고려 선종 11년(1094년) 혜조국사(慧照國師)가 중창하였고,
조선 세종 25년(1443) 김방(金倣)이 삼창하였으며,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뒤 광해군 원년(1609) 석경(釋經), 수장(修裝),
도광(道光) 3대 선사가 4창하였다고 한다.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근년에까지 이르렀으나,
6․25의 전화(1951. 4. 22)로 오백전과 노전(사성전)을 제외한
대웅전, 명부전, 극락전, 회승당, 취백루 등
조선 중기의 건축물들이 모두 소실되었고,
이들 전각에 봉안되어 있던 불상과 정화를 비롯하여
범종, 탑 등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막대한 피해를 당하였다.
증심사의 현존 건물은 오백전, 대웅전을 비롯하여 지장전, 비로전,
종각, 일주문 및 승방 등이 있으나
전화를 피한 오백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970~80년대에 복원된 건축물들이다
오늘도 클린산행과 함께하였다.
아직도 산길에는 과거에 버린 쓰레기들과
요즘에 버린 쓰레기들로 넘쳐난다..
증심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금강산악회 회장님이 준비하신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막걸리가 기다린다.
산행후에 마시는 한잔의 막걸리의 맛은
그 어떤 맛보다 견줄수가 없다.
이렇게 한잔의 막걸리로 산행의 피로를 풀며
버스의 의자에 몸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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