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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원문 글과 사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십시요.ㅠㅠ
https://blog.naver.com/ktusjye/221658703863
삼 개월 여, 집에서만 머물렀다.
무더위와 여름, 가을 장마가 발길을 묶어
어쩔수 없었다, 자위해보지만
부끄러운 핑계에 불과함을 잘 안다.
그나마 해 질 무렵,
주 서 너번 호수공원 한바퀴 이상을 뛰지만
자책하기를 멈출수 없다.
다음 주 쯤
영남알프스 신불산 산행계획을 잡고
국립 신불산 자연휴양림 숙소 예약을 했다가
여의치않은 사정으로 취소했다.
지난 금요일 호수공원을 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전에 걸려왔던 지인 전화를 운전중이라 받지못하고 잊고 있었다.
갑자기 기억이 나 전화를 거니
다음 날 회사 산악회에서 계룡산 산행을 한다고
다른 약속이 없다면 동행하자 한다.
19일, 오키나와에서 발생한 태풍 '타파'가
여섯번째로 한반도를 관통한다는 소식에 순간 망설였지만
그동안 잠재워두었던 욕망이 꿈틀거린다.
가겠다는 전언에 옆에 있던 와이프는
불순한 일기를 근거로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여러가지 맞물린 내 의지를 꺽을수 없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투덜대면서도 집사람은 배낭과 등산복 등을 꺼낸다
토요일 새벽 네 시 반, 불필요하리라 짐작하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맞춰놓은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기 전
잠에서 깨어 집사람이 깰까봐 끈다.
조심스레 안방을 나서는데
부스럭거림에 잠에서 깬 집사람이 투덜댄다.
집을 나서 3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집합장소를 향해
가뿐한 걸음으로 정발산을 넘는다.
여섯시 조금 지나
나 포함 산악회 회원 열 명을 실은 45인승 버스가 출발한다.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단잠에 빠진 사이 두 시간 반을 달린 버스가
동학사주차장에 주차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많은 비를 머금었다는 태풍영향으로
잔뜩 흐린 하늘이 불안한 한편
산행하기엔 선선한 기온이 나쁘지 않다.
등산로 입구를 따라 동학사를 찾아간다.
국립공원답게 잘 정비된 길 양 옆으로
가로수가 적당한 간격으로 도열해있다.
동학사매표소에서
'문화재보호구역 입장료' 매표를 한다.
입구 검표소 오른쪽,
잘 쌓은 돌탑 댓기가 눈에 들어온다.
검표소 앞 탐방로 안내도를 보며
잠시 코스를 설명한다.
계획은 남매탑으로 해서 삼불봉, 연천봉, 갑사로 잡았지만
즉석에서 동학사를 지나 은선폭포, 연천봉, 금잔디고개, 갑사 방향으로 의견 일치를 본다.
매표소를 지나자
동학사가는 포장도로에 홍살문이 서있다.
아마도 동계사, 삼은각, 숙모전 등,
동학사 경내에 왕과 충신들을 모셔놓은 제단이 있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가면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을 만난다.
일주문 지난 왼쪽으로
'계룡팔경 선정기념 조형물'로 소개된
작품 석 점이 자리잡고 있다.
중생과 모든 생명의 행복을 염원하는
미륵반가사유상을 표현한 '생각하는 여인상'이다.
그 오른쪽으로
'자연과 인간', '계룡의 얼굴'이 전시되어있다.
동학사를 사백미터 앞둔 계곡,
징검다리를 놓아 동학계곡 옛길을 정비하여
숲속 탐방로를 조성하였다.
징검다리에서 상류쪽 계곡 바위에
돌탑 몇 기가 위태롭게 서있다.
이번 태풍이 동반한 강풍에
잘 견디기를 소망해본다.
부도탑군을 지나
다시 포장도로와 합류하며 동학사를 마주친다.
혼자였다면 사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다양한 모습을 담았을테지만
동행이 있어 아쉬움을 접고 끄트머리 도로를 벗어난다.
본격적으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계곡을 가르며 나아가는 길,
태풍전야의 고요처럼 바람 한 점 없다.
상대적으로 완만한 길을 따라 올라
곧추선듯 가파른 계단 앞에 선다.
딛기에 부담스러울 만큼 높은 간격 계단을
한동안 올라 전망대에 다다른다.
'은선폭포전망대'다.
계룡 7경으로 지정된 '은선폭포'다.
경치가 아름다워
옛날 신선들이 숨어들어 놀고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는 46미터에 이른다.
지난 태풍이 뿌려놓은 폭우는 이미 고갈되어
가느다란 물줄기만 바위를 타고 흐른다.
계룡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쌀개봉'이다.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이
쌀개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쌀개'란 디딜방아나 물레방아 허리 양쪽에 가로얹어
방아를 걸수 있도록 만든 Y자 나무막대기를 말한다.
전설에 의하면 그 곳에서 쌀이 나왔다고 하는데
어느 스님이 욕심을 부린 다음부터 멈췄다고 한다.
현재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일반인은 출입 할 수 없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뒤쳐진 일행이
가쁜 숨을 내쉬며 도착한다.
암벽에 걸린 전망대
휑한 허공으로 몰아치는 바람이 시원하다.
잠시 주변 경치를 둘러보고 단체사진을 찍는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산길을 오르는데 비가 오락가락한다.
가파르고 긴 계단을 올라선 뒤라
혹시나 하는 기대는 바로 어긋난다.
삼, 사십도를 넘나드는
너덜지대 돌 비탈이
관음봉 고개마루까지 이어진다.
관음봉 고개 못미친 등산로 위
울창한 나무그늘 아래 태양광패널이 놓여있다.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짙은 그늘이 질텐데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너덜지대 비탈 위, 나무데크가 보인다.
관음봉전망대로 보인다.
그렇게 만난 계단이 반갑다.
전망대에 서서 뒤를 돌아본다.
계곡을 따라 끄트머리 쯤,
버스를 주차하고 출발한 곳이 아득하게 보인다.
다시 등산로를 따라 오르니
짙은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드러난다.
선두로 오르막길에서도 잰걸음을 옮긴 덕분에
관음봉 고개마루에 도착하니 여유가 있다.
이 곳 갈림길에서 관음봉, 삼불봉 방향 능선으로 타려던 계획이
차츰 굵어지는 빗방울에 안전을 생각하여
연천봉쪽으로 하산하는 것으로 정해진다.
이정표는 관음봉까지 100미터를 표시하고 있다.
뒤따르는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여유가 있을 듯 하여
양해를 구하고 관음봉 방향 오르막을 따라간다.
관음봉 아래 데크를 지나
해발 766미터 관음봉에 도착한다.
계룡산 주봉인 천황봉은 846.5미터로
현재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계룡산은 대전, 공주, 논산을 연결하여 세모꼴을 그린다면
그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주봉인 천황봉에서 연천봉,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 볏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전한다.
계룡산은 풍수지리에서도 우리나라 4대 명산으로 꼽힐 뿐 아니라,
관광지로도 제5위를 차지하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계룡산>
계룡팔경 중 제 4 경 '관음봉 한운'은
관음정에 누워 한가로이 떠다니는 흰 구름을 바라보면
세상사가 한낱 물거품과 같다 한다.
사방이 먹구름으로 쌓여 암울한데
산 아래 너른 들판은 햇살이 가득 펴져 밝은 기운이 가득하다.
잠시나마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이 곳을 도읍으로 삼으려던 이유를 헤아릴 것도 같다.
또한 정감록에서 이씨 왕조 오백년이 지나면
계룡산을 도읍으로 하는 정씨 왕조 팔백년 시대가 온다는
그 신비로운 예언도 실현되지 않을까, 몽상에 빠져본다.
관음봉 고개마루로 내려서는데
일행이 전부 도착해 비옷을 꺼내입고 있다.
태풍 예보가 있으니
쉬 그치지 않으리라는 예상에 나도 비옷을 챙겨입는다.
준비해온 안주와 고량주로 정상주를 나눠마신다.
그리 급하지 않은 능선을 오르내리며
역시 선두로 연천봉 고개마루에 당도한다.
올라선 오른쪽 오르막 연천봉과,
세 시 방향, 왼쪽방향 갈림길이 나타난다.
근 삼 십 여년 전 계룡산을 한 번 올랐었으니
나에게는 초행길이나 다름없다.
선두로 도착한 일행 한 명과 방향을 가늠하며
세 시 방향 갈림길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아듣는다.
혹시 후미가 도착하면 먼저 출발하라 전하고
이백미터 거리 연천봉에 다녀오겠다고 양해를 구한다.
오르막을 올라서자 헬기장이 나타난다.
데크로 올라서자 연천봉이 펼쳐진다.
산봉우리라는 느낌보다는
조금 넓은 개활지에 선 느낌이다.
사방이 안개에 가렸으니
그런 느낌이 전혀 틀리지 않다.
게다가 표지석도 보이지 않는다.
해발 740미터 '연천봉 낙조'는
계룡팔경 중 제 3 경 이다.
사방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저녁노을이 물드는 해지는 모습이 가히 절경이라 안내한다.
봉우리 데크 안에
목책으로 보호하고 있는 암석이 있다.
음각 글씨가 있는 '연천봉 석각'이다.
예언적 의미(도참설)가 담긴
'방백마각(方百馬角)', '구혹화생(口或禾生)', 음각 글씨가 있는데
앞 네 자를 숫자로 풀면 482,
뒤 네 자를 합치면 '국이(國移)'로 조합된다.
조선은 개국 482년 만에 망하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해석된다 한다.
아마도 새로운 시대가
이 곳 계룡산에서 열린다는 의미이리라.
빗방울은 우의를 입을때 보다 잦아들었다
연천봉 고개마루로 돌아오니
일행은 이미 출발하고 텅비어있다.
세 시 방향 갈림길로 접어들어 걸음을 재촉한다.
등산로의 경사를 떠올리며
가파른 하산길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완만하다.
급한 걸음으로 십 여분을 내려간다.
먼저 출발한 일행을 따라잡을 때가 지났는데
인기척이 없다.
마침 올라오는 등산객이 있어
'안녕하세요', 인사를 주고 받고
8 ~ 9 명 내려가는 일행을 보셨느냐 묻자
서 너명 내려가는 사람만 보았다는 대답이 들려온다.
아차, 싶지만 다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그래도 하산길을 서두른다.
난간대가 설치된 비탈 바위가
비에 젖었다.
구입하여 처음 신은 트레킹화가
의외로 미끄럽다.
발길을 서두르지만 내딛는 걸음은 조심스럽다.
그나마 다행히 완만한 경사와
흙길이 오래 이어져 힘들지는 않다.
하산길 왼쪽에 기와지붕이 보인다.
신원사 부속암자인 고왕암이다.
고왕암은 백제 의자왕의 명으로
660년 건립을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하였을 때
왕자 융이 이 곳에 피난하였다가 붙잡혔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왕'이라는 이름을 얻었겠다.
고왕암을 벗어나는 곳에
대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갈림길에서 신원사 방향으로 하산한다.
계룡산 산세에 비하면
신원사 길은 대체로 완만하여 걷기에 편하다.
산길이 끝나간다.
신원사 부속암자인 금룡암 앞에서
포장도로로 올라선다.
사십 여분을 빠르게 걸었는데
이쯤까지 일행을 못만났다면 엇갈린 것이다.
동행에게 전화를 건다.
갑사까지 얼마 남지 않았단다.
황당하다.
스마트폰 지도를 확인하니
갑사가 산 너머에 있다.
경로 검색을 해보니
되돌아가 연천봉으로 넘어가는 길이 5.4킬로미터다.
그보다는 신원사로해서 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6.9킬로미터, 약 1.5킬로미터 더 멀지만
도로에서 택시를 호출하거나 버스를 탈 수 있다.
포장도로를 따라 한동안 걷다보면
신원사의 부속 건물인 '소림원' 를 지난다.
곧 신원사 나즈막한 돌담 앞에 선다.
돌담을 들어서니 머리 부분이 훼손된
오층석탑이 보인다.
원래 석탑 서있던 곳이 신원사의 중심이었는데
현재는 중심부가 옮겨가면서 변두리가 되었다.
이중삼문을 지난 곳에 웅장한 건물이 보인다.
신원사 경내에 있는 '중악단'이다.
통일신라 이후 이른바 ‘신라 5악’ 중
계룡산을 '서악'으로 정하여 제를 올려 왔다
조선 시대에는 묘향산 '상악단', 지리산 '하악단'과 함께
계룡산에 '중악단'을 설치하고 봄, 가을에 산신제를 올렸다.
경내 당우 배치가 촘촘하지 않아
여늬 사찰과는 달리 아늑한 느낌이 좋다.
길가 붉은 빛을 띤 석산, 꽃무릇이
눈에 들어온다.
신원사 대웅전이다.
동학사, 갑사와 더불어 계룡산 3대 사찰로 불리는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11년(651년) 보덕화상이 창건하였다.
보덕화상은 평양 영탑사를 창건하는 등 고구려 고승이었으나
당시 보장왕이 도교를 숭상하는 정책을 시행하자 백제로 건너와
전라도 완산주에 경복사를 짓는 등 백제불교를 중흥시켰다.
신원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경내 출입문인 사천왕문이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경내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조급한 마음은 허락칠 않는다.
사천왕문을 나서며 지도를 확인하니
오른쪽, 신원사를 끼고 걸어야한다.
길 아래 석탑과 부도, 공덕비가 보인다.
신원사를 출입하는 쪽문을 벗어난다.
동료에게 어디냐고, 갑사에 다왔다고
전화가 온다.
지도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다
다시 한 번 경로를 확인하니 6.4킬로미터다.
691번 지방도로, 보목고개로에 올라서며
카카오T를 실행시켜 택시를 호출하려는데
비밀번호 오류로 잠겨버린다.
오류 해제를 하려고
안내를 따르지만 헛도는 바퀴와 같다.
결국 포기하고 길을 따라 걷다 뛰기 시작한다.
잠시 후 버스 정류장이 나타난다.
'보목(갑사, 반포방면)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검색하니 204, 205, 340,
노선버스가 세 개나 있다.
하지만 운행경로가 뜨질않는다.
마침 인근에 매점이 있어 주인에게 물어보니
버스는 세 시에 신원사에서 출발한단다.
혹시 택시회사 전화번호를 물으니
유리창에 붙은 렌트카, 택시 스티커를 보여준다.
전화를 거니 지금 공주에 있다고
올수가 없단다.
하는수없이 도로를 뛰다 걷는다.
뒤에서 차소리가 나면
손을 뻗어 위아래로 흔든다.
너댓대가 중앙선을 넘어 피해간다.
그들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해하는 마음이 더 크니 마음은 편안하다.
또 승용차가 온다.
손을 흔드는데 중앙선을 넘으려던 차가
앞쪽에 정차한다.
달려가 올라타니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뒷자리에 아들을 태우고 있다.
감사인사를 하고 다급한 사정얘기를 한다.
갑사방향 갈림길 아무곳에나 세워달라하니
네비를 따라가는 길이라 난감해한다.
스마트폰지도를 켜놓은 상태라
가시다가 알아서 말씀드리겠노라 하는데
갑사펜션 예약이 되어있다한다.
마침 갑사주차장에서 길이 갈라져
다시 한 번 인사하고 내려
갑사쪽으로 올라가 식당에서 동행들과 합류한다.
생전 처음 히치하이킹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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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 산행에 또 탄력이 붙었나봐요
태풍이 오는데도 위험하게시리
산행을 나서면 집에 있는 사람은 고문입니다
안전하고 좋은 날 다니세요
시골기차가 풍성합니다~~
숲길이 참 좋네요
계룡산 동학사계곡에서 사십년전 야영하다 벌하고 눈이 맞아 눈이 밤탱이가 된 아픈 사랑을 추억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