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궁금했다. '옆반의 신규 선생님은 어떻게 저렇게 화장을 한듯 안한 듯 자연스럽고 자기 얼굴형에 맞게 잘 하지?' 궁금했다. 물어보니 '그냥 해요. 별거 없어요.'라고 한다. 달인들은 꼭 물어보면 그렇게 말한다. ''어떻게 그렇게 잘 할 수 있어요?'' 라고 물으면 거의 설명을 못하며 ''그냥 한다고.'' 달인의 조건이 '자기가 잘하는 걸 자기 자신은 모른다.'는 점이란다. 드디어 달인에게 화장법을 배울 기회가 왔다. 연수 일정으로 거북선 호텔에서 1박을 하는 기회를 화장을 배우는 절호의 찬스로 삼기로 했다. 강의 마치기 전에 옆 반 신규선생님에게 ''내일 아침 일어나면 선생님처럼, 꼭 선생님처럼 화장을 해 주세요. 만약 화장을 해 주지 않으면 그건 내가 화장을 했을 때 선생님 보다 훨씬 예쁘기 때문에 해 주지 않는 걸로 여길거예요.'' 옆반 신규선생님과 같은 방으로 배정된 5학년 신규 선생님도 웃는다. 동학년 신규선생님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이때쯤이면 일어나겠지 생각해서 7시 반에 카톡을 넣었다. 열어 보지도 않는다. 물론 답장은 없다. 그렇다고 옆 방에 노크를 할 수도 없다. 7시 40분에 우리 방 선배선생님과 조용히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선배선생님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나는 혼자 창가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코발트 블루의 통영대교가 지척이다. 손을 뻗기만 해도 잡힐거 같이. 비가 온다. 바람도 인다. 창가 쪽에 앉아 바다를 본다. 예고된 폭풍주의보 방송에 선박들이 내항인 해양과학대학 안쪽으로 줄을 지어 향하고 있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피항을 하는 모습이 무척 재미있다. 어깨동무를 한 배들이 사열을 하듯이 줄지어 선다. 혼자 창가에 따로 앉아서 신규 두 명을 기다렸다. 그런데 8시 반이 되었는데도 내려 오질 않는다. 늦잠을 자거나 꽃 단장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른 학교에서 온 선생님이 내 앞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묻는다. 물론 됐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육아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식사를 하고 있다. 내가 구은 토스트에 단호박 샐러드와 감자 샐러드, 양상치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빵 두쪽을 꼭 입을 다물게 했다. 커피와 함께 먹었다. 앞에 앉은 선생님들이 "어, 그렇게 하면 샌드위치가 되네요. 아! 몰랐어요. 우리도 그렇게 먹어 봐야 되겠네요."라고 말하며 얼른 빵을 다시 구우러 간다. 역시 나는 음식에 대해서 만큼은 내 나름대로 레시피가 있다. 지난번에 학습연구년 교사들과 해외여행을 갈 때도 그랬다. 잘게 썰어 소스가 잔뜩 뿌려 버무러진 양배추 샐러드가 갖 구운 모닝빵과 같이 나왔었다. 사람들은 전부 빵에 쨈과 버터를 발라 먹었는데 나는 모님빵을 가로로 반을 잘라 그 안에 양배추 샐러드와 과일을 집어 넣어 야채버거로 만들어 먹었다. 그랬더니 너도 나도 ''진작 그렇게 해서 먹을 걸. 그러면 맛있게 야채 버그를 먹었을 텐데.'라며 날 부러워 했었다. 조식을 다 먹을 무렵, 신규 두 명이 내려 왔다. 아니나 다를까 둘 다 꽃단장을 하고 왔다. 내가 눈을 꼴치니 옆반 신규샘이 '문자 이제서 봤어요.' 라고 말한다. 태풍 상륙 예보로 한산도에 가는 오전 일정이 취소 되었다. 9시 전까지 한산도로 들어가는 배는 있으나 나오는 배가 없단다. 당연히 실내 강의로 대체 되었다. 그래서 연수도 10시부터 실내에서 강의를 한단다. 아침 시간 2시간이 거의 공백이 생긴 거다. 이 절호의 찬스? 우리는 천천히 조식을 먹고 신규들 방에 갔다. "강샘표 화장 해 주실 거죠?" 또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득인다. 가방에서 주머니를 꺼낸다. 무슨 생전 처음 보는 도구들이 나온다. 먼저 비비크림을 내더니 손등에 조금 짠다. 네번 째 손가락으로 마치 녹두알 크기만큼 살짝 찍어 내 광대뼈를 따라 점.점.점. 그런 다음 이상하게 생긴 커다란 붓을 꺼내더니 살살살살 펴서 색칠한다. '비법은 바로 이거 였구나!' 나는 로션이나 썬크림을 무조건 손바닥에 국 짜서 세수 하듯이 얼굴 전체에 펴 바르는데. 비법이 완전 다르다. 얼굴 전체적으로 펴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일정 부분만 화장품을 바른다. 내가 요걸 몰랐네. 열심히 봤다. 혹시라도 놓칠까 봐 말을 하면서 화장을 시켜 달라고 했다. 또 웃는다. 옆에 있던 5학년 신규도. 이번에는 눈썹 펜슬 뒷꼭지에 붙어있는 코딱지 만한 솔빗으로 눈썹을 빗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눈썹을 그리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눈썹을 잘 정돈해야 해요. 그런 다음 눈썹 펜슬로 눈썹의 주된 선을 따라 살살살살 그려요.'' 방법 있었다. 그걸 몰랐네. 그 다음 순서는 아이 섀도우다. 베이지색으로 눈두덩이 위에 조금 넖게 펴서 바른다. 그 위에 베이지 보다 채도가 높은 갈색 톤으로 속눈썹 위에 살살살살 펴서 바른다. 끝. 화장을 마치고 거울 보니 내가 탤런트처럼 예쁘다. 물론 나는 화장 하기 전에 비포 사진과 화장한 후에 애프터 사진을 당연히 찍게 했다. 완전 인상이 다르다. 깊고 또렷하고 야무져 보인다. 어디에서 그런 도구들을 사냐고 물어보니까 올리브영에서 산단다. 얼른 도구들도 사진으로 찍었다. 나는 오늘 비가 오든지 말든지 성당 마치고 나서 올리브영에 갈거다. 가서 사진으로 찍어 둔 거를 점원에게 보여주며 꼭 살거다. 이제부터 나도 옆반 선생님처럼 화장을 한 듯 안한 듯 살포시 해 볼거다. 그런데 달인과 아마추어의 차이가 날 게 분명 해서 걱정이다. 혹시 내가 17번 아가씨 춘심이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