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 박선애
졸업하고 가끔이지만 꾸준히 연락하던 영은이가 한동안 조용한 것이 생각났다. 직장에는 잘 다니고 있을까, 혹시 빨리 결혼한 건 아닌가, 궁금했다. 카톡을 남겼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반가웠다. 영은이도 좋아한다. 서로 근황을 말하다가, 보고 싶다고 학교로 한번 찾아오겠다고 한다.
10여 년 전 근무한 곳은 새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함께 세운 학교였다. 민원이 잦아 근무하기 힘들다는 소문이 날 만큼 학부모의 관심이 많았다. 생활 환경은 거의 부유한 편이라 학기 중에도 체험학습 신청하고 해외여행 가는 일을 흔하게 볼 수 있고, 개학 후에는 외국에 다녀온 경험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사교육을 받으며 다져와서 학력 수준이 높았으나 수업 시간에는 교사의 눈을 피해 학원 숙제를 하거나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고 하니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부모의 기대에 못 미쳐 갈등을 일으키거나 학원에서 강요하는 지나친 학습량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가 많았다. 그러면 그것을 엉뚱하게 풀어서 문제 행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 학년에 8~9학급으로 학생 수가 많다 보니 아이들의 특성도 다양했다. 예쁜 아이들이 더 많았지만 영악하고 무례한 아이들 때문에 내가 상처받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개교한 지 2년째에 그곳에서 3학년 없는 2학년 담임으로 시작해 3학년까지 같이 올라가 졸업시켰다. 그 학년 애들은 여학생은 한 반에 몇 명 빼고 대부분 착하고 조용했는데, 남학생들은 악의는 없지만 아주 개구쟁이였다. 종이를 뭉쳐서, 교실에서 쓰려고 갖다 놓은 테이프 하나를 다 감아서 단단하게 공을 만들고, 그것과 빗자루로 교실에서 야구를 했다. 운동장이 좁아 한 팀이 축구 경기하면 나머지 애들은 넘치는 힘을 풀 곳이 없어서 그러려니 이해는 되지만 교실은 부서지고 깨지고 난장판이었다. 야단치면서도 속으로는 우스웠다.
그 다음해 새로 올라온 3학년을 맡았다. 남학생은 선배와 비슷했다. 장난치다 싸우고, 규칙 잘 지키지 않다가도 지도하면 서로 기분 상하지 않을 정도로 반응하고, 다시 또 하고 그렇게 지낼 만했다. 여학생이 어려웠다. 2학년일 때 몇 명이 뭉쳐서 지도를 따르지 않으니 수업을 할 수가 없다는 체육 선생님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아이들이었다. 우리 반에 일곱 명이 있었다. 이 아이들은 구성원 중 한 명이 미워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감정으로 대하고 욕하고 그러면서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그들 중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아이가 영은이였다. 이 아이는 담임 말이라면 먼저 거부 반응부터 보였다. 그러면 그 패거리들이 같이 호응해 줬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까지도 끼어들면서 나를 괴롭혔다. 예를 들면 지각한 아이에게 왜 늦었냐, 빨리 다녀라 등의 지도를 하면 “별 걸 다 뭐라고 하네, 짜증나겠다.” 이런 식의 말을 내게 들릴 듯 말 듯한 크기로 하는 것이었다. 같이 뭉치니 무서운 것이 없었다. 교복은 변형하거나 아예 사복을 입고, 한 사람이 늦으면 기다려서 함께 지각하고 수업 중에는 선생님들의 지도에 잘 따르지 않는 등,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도 지도하려면 반발했다. 고지식한 나와 이 아이들은 날마다 전쟁을 치르듯 학기초를 보냈다.
그 중에 진이는 키가 작고 귀여운 아이였다. 평소 애교도 많고 예쁜데,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제멋대로 할 때가 있었다. 교복은 변형해서 몸에 꼭 끼게 입고, 화장도 진하게 하고 다니면서 말해도 잔소리로만 듣고 흘렸다. 청소 시간이면 제 할 일은 안 하고 다른 반 친구를 찾아가 놀아 버린다. 종례할 때까지도 안 와서 아이들은 짜증을 낸다. 그날도 모두 기다리고 있는데 미안한 기색도 없이 앞문으로 들어온다. 친구들이 다 너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늦게 오면 되냐고 한마디 했다. 진이는 목소리도 경쾌하게 손까지 흔들며 “얘들아, 미안.” 하는 것이다. “행동이 변해야지 매번 입으로만 미안하다고만 하면 되겠냐?” 했더니 이번에는 “얘들아, 미안 미안!” 하는 것이다. 지각도 자주했다. 늦은 이유를 물었더니 “늦잠 잤는데.” 한다. 엄마가 안 깨워 주시느냐고 했더니 “깨어 줬는데.”라고 끝을 올려서 말마다 반말이다. “어른하고 말할 때는 ‘요’로 끝내라.”라고 했더니, 휙 돌아서면서 “요!”라고 한다. 그렇게 진이한테는 내가 번번이 깨지면서 화를 낼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에 울분이 쌓였다.
민이는 혼자 떼어 두면 성격이 모질지도 않고 착한 아이였다. 그 애들과 함께 있으면 내 말에 대놓고 ‘짜증나네, 어이없네’ 등의 말로 기분을 상하게 하는 역할을 나서서 했다. 그것을 지도하면 쌩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한 건데요.”라고 한다. 담화 상황으로 봐서 그건 상대방의 말에 반응하는 거라고 가르쳐도 혼자 말한 거라고 우기면서 매번 이렇게 나오니 미칠 지경이었다. 한 번쯤 혼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담실로 데리고 가서 이런 말버릇을 고치라고 타일러 보고, 설명도 해 보지만 일부 청소년들은 논리가 소용없다. 자신이 뭐가 잘못이냐고 우긴다. 작심하고 아주 짧고 굵은 욕을 낮게 내뱉었다. 당연히 발끈하면서 “왜 저한테 욕하세요?”라고 따진다. 그동안 당한 대로 “혼잣말했는데.”라고 받아쳤다. 민이는 분해서 우는데, 나는 조금 통쾌했다.
이 일곱 명 외에도 교복 입으라고 했더니, 대놓고 왜 그렇게 교복에 집착하냐고 사이코냐고 하던 ㅈ도 있었다. ㅇ은 수업 끝종이 울렸지만 마무리하느라 조금 더 하고 나오는 내 뒤에 대고, “성질이 더러우면 수업이라도 잘 해야지”라고 했다. 데리고 와서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냐고 했더니, 수업을 늦게 끝내 줘서 짜증나서 그랬다고 별로 미안해하지도 않고, 그냥 한 말에 왜 신경쓰냐고 한다. 공부를 잘하는 ㅅ은 친구들이 공책 좀 보여달라고 해도 절대 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불러서 이야기를 한참 동안 했지만, 그 애들은 놀 때 자신은 열심히 했는데 그걸 보여 주면 손해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하고 화났다.
날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싸우고 오는 것 같아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아직 일어날 시간이 먼 새벽에 눈이 떠졌다. 의식이 돌아오면서 바로 전날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아마 자면서도 생각이 이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억울하고 화났다. 이렇게 대답할 걸 더 강하게 나갈 걸,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뒤늦게 분해하거나 되갚아 줄 방법을 궁리하느라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화병이 생길 것 같았다.
고전을 겪고 있자 교장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피자를 사 주며 달래기도 하고, 특강도 하셨다. 학교에서는 생활지도의 방편으로 그 무렵 유행하던 상벌점제를 썼다. 체벌이 없어져 그 대안으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상점보다는 주로 벌점을 많이 줬다. 점수가 높아지면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토요일에 나오게 해서 봉사 활동을 시키고, 또 부모님을 불러서 면담했다. 그때마다 학부모한테 담임을 추켜세워 주시는 듯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지도의 어려움을 알리고, 담임의 교육관, 지도 방법 등을 좋게 말씀해 주셨다. 면담이 끝나면 반드시 담임을 찾아 인사하고 가게 했다. 엄마들은 면담 전과 후의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뀌어 가정에서의 어려움도 털어놓으며 아이 문제를 같이 고민했다. 교장 선생님의 도움과 부모님들의 협조로 일 년을 그럭저럭 잘 마무리했다.
돌이켜 보면 그해는 그 후의 내 교직생활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부끄럽게도 그전까지 교실에서 나는 아이들 위에 군림했다. 아이들이 내 뜻대로 안 따르면 눈을 부릅뜨고 화내고 윽박지르고, 심지어는 매도 자주 때렸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바꾸려고만 했다. 그동안 내 방식이 맞는 줄 알고 달려오다가 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학생도, 학부모도 더 이상 내 화를 받아줄 약자가 아니었다. 가족이나 학생 등 만만한 사람에게 화를 자주 내는 비겁한 나를 보게 되었다. 그 후에 청소년의 특성을 더 이해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처지를 배려하려고 힘쓴다. 아직도 아이들에게 화내는 나에게 좌절하고 반성하지만, 또다시 욱하는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서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철들자 망령 난다더니 어느새 퇴직까지 남은 햇수가 한 자리로 떨어진 지도 몇 년 지났다.
첫댓글 속병이 나고도 남았겠어요. 성질이 더러우면 수업이라도 잘해야지 라는 말에 글을 읽는 나는 웃음이 터졌지만 상상도 못할 말을 던지는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참.
북한이 중2가 무서워서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농담이 괜한 게 아니었네요.
구체적인 교실의 모습에 공감합니다.
오래전 여동생이 영어교담하면서 그러더라고요.
씨씨티비 교실에 달기를 희망한다고요.
수업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학부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요.
어려운 시대네요.
제가 하는 일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중학교 선생님도 극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사랑의 힘으로 잘 가르쳐 주시니
졸업 후에도 소식을 주고 받는 선생님 모습 존경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중 3 남학생을 둔 학부형으로서 선생님께 고맙고, 존경한다는 말씀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