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세존께서는 그때 이런 감흥어를 읊으셨다.
"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이고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라.
도 가운데 불사(不死)로 인도하는
팔정도가 최고로 안전하네.”(*1)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간디야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이고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라.’
라고 이 금언을 읊으셨습니다.
저도 이전의 유행승들의 스승의 전통에서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이고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라.' 라고
설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은 그것과 동일합니다.“
"마간디야여, 그러면 그대가 이전의 유행승들의 스승의 전통에서,
'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이고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라.‘
라고 설한 것을 들은 것에 따르면
무엇이 병 없음이고 무엇이 열반인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간디야 유생승은 손으로 자신의 사지를 문질렀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이 그 병 없음이고 이것이 열반입니다.(*2)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지금 병이 없고 행복하며
어떤 것도 저를 괴롭히지 않기 때문입니다.”(*3)
(*1)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ārogya-paramā lābhā)’이라고 하셨다.
어떤 이는 재물을 얻기도 하고 명성을 얻기도 하고 아들을 얻기도 하지만 그중에서 병 없음이 가장 큰 이득이다.
그보다 더 수승한 이득은 없기 때문에 병 없음을 최상의 이득이라 하셨다.
‘열반은 최상의 행복(nibbāna parama sukha)’이라고 하셨다.
禪의 행복도 있고, 道의 행복도 있고 果의 행복도 있지만 열반이 그중에서 최상의 행복(parama sukha)이다.
그보다 더 수승한 행복은 없기 때문에 열반을 최상의 행복이라 했다.
‘道 가운데서 팔정도가 최고로 안전하다(aṭṭhaṅgiko maggānaṃ khemaṃ).’고 하셨다.
불사로 인도하는(amata-gāmī) 팔정도가 가장 안전하다. 그보다 더 안전한 다른 길은 없다는 말씀이다.
혹은 안전함(khema)과 불사(amata)는 열반을 두고 한 말이다.
안전함과 불사인 열반으로 인도하는 모든 도 가운데 팔정도가 가장 수승하다는 말씀이기도 한다.”(MA.ⅲ.218)
(*2) “그는 머리를 긁기도 하고 가슴을 긁기도 하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MA.ⅲ.218)
(*3) 마간디야의 이러한 이해는 『디가니까야』 제1권
「범망경」(D1)의 62가지 그릇된 견해[邪見] 가운데 58번째 견해인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런 주장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다.
‘존자여, 이 자아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마음껏 충분히 즐깁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자아는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D1 §3.20)와 일치한다.
20. "마간디야여, 예를 들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검은색과 흰색을 보지 못하고 청색, 황색, 적색, 분홍색을 보지 못하고
요철을 보지 못하고 별이나 달이나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눈 있는 사람이 '여보게들, 흰옷은 우아하고 정갈하고 깨끗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가 흰옷을 찾아다닌다고 하자.
이런 그에게 어떤 사람이 기름때가 잔뜩 묻은 조잡한 옷으로
'여보게, 이것이 그대가 찾던 우아하고 정갈하고 깨끗한 흰옷이라네.' 라고 속인다 하자.
그는 그것을 받을 것이고 받아서는 입을 것이다. 입고는 마음이 흡족하여 환호할 것이다.
'여보게들, 흰옷은 참으로 우아하고 정갈하고 깨끗하구나.' 라고.
마간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이 그 기름때가 잔뜩 묻은 조잡한 옷을 받아 입고 마음이 흡족하여
'여보게들, 흰옷은 참으로 우아하고 정갈하고 깨끗하구나.'라고 환호한 것은
그 사람이 알고 보면서 그렇게 한 것인가,
아니면 눈이 있는 자에 대한 믿음으로 그렇게 한 것인가?“
"고따마 존자시여,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이
그 기름때가 잔뜩 묻은 조잡한 옷을 받아 입고 마음이 흡족하여
'여보게들, 흰옷은 참으로 우아하고 정갈하고 깨끗하구나.' 라고 환호한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여 단지 눈 있는 자에 대한 믿음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21. "마간디야여, 그와 같이 다른 외도 유행승들은 장님이고 눈이 없는 자들이라
병 없음을 알지 못하고 열반을 보지 못하면서도 이런 게송을 읊는다.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이고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라.' 라고.
마간디야여, 옛적의 아라한·정등각자들이 이 게송을 읊으셨다.
"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이고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라.
도 가운데 불사로 인도하는
팔정도가 최고로 안전하네.”
그것이 서서히 지금 범부들에게도 전해진 것이다.
마간디야여, 이 몸은 병이고 종기이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질병이다.
그대는 이처럼 병이고 종기이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질병인 이 몸을 두고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이 그 병 없음이고 이것이 열반입니다.'라고 말한다.
마간디야여, 성스러운 눈(*4)이라야 병 없음을 알고 열반을 볼 수 있는데,
그대에게는 그런 성스러운 눈이 없다.“
(*4) “‘성스러운 눈(ariya cakkhu)’이란
청정한(parisuddha)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ā-ñāṇa)와
도의 지혜(magga-ñāṇa)를 말한다.”(MA.ⅲ.219)
22. "저는 고따마 존자께 '고따마 존자께서는 제가 병 없음을 알고 열반을 볼 수 있는
그런 법을 제게 설해 주실 수 있을 것이다.'라는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마간디야여, 예를 들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검은색과 흰색을 보지 못하고 청색, 황색, 적색, 분홍색을 보지 못하고
요철을 보지 못하고 별이나 달이나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의 친구나 동료나 일가친척들이 그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데려올 것이다.
의사는 그를 치료하고 약을 처방해 줄 것이다.
그가 그 약을 복용했지만 시력이 생기지 않고 눈이 밝아지지 않는다고 하자.
마간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의사는 피로해지고 실망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간디야여, 그와 같이 내가 비록 그대에게
'이것이 그 병 없음이고 이것이 그 열반이다.' 라고 법을 설해도
그대가 병 없음을 알지 못하고 열반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것은 나를 지치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23. "저는 고따마 존자께
'고따마 존자께서는 내가 병 없음을 알고 열반을 볼 수 있도록
법을 제게 설해 주실 수 있을 것이다.'라는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마간디야여, 예를 들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검은색과 흰색을 보지 못하고 청색, 황색, 적색, 분홍색을 보지 못하고
요철을 보지 못하고 별이나 달이나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눈 있는 사람이 '여보게들, 흰 옷은 우아하고 정갈하고 깨끗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가 흰옷을 찾아다닌다고 하자.
이런 그에게 어떤 사람이 기름때가 잔뜩 묻은 조잡한 옷으로
'여보게, 이것이 그대가 찾던 우아하고 정갈하고 깨끗한 흰 옷이라네.' 라고 속인다 하자.
그는 그것을 받을 것이고 받아서는 입을 것이다.
그의 친구와 동료들과 일가친척들이 그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데려올 것이다.
의사는 그에게 토사제와 하제와 연고와 고약과 코에 대한 치료약을 처방해 줄 것이다.
그는 그 치료를 받아서 시력이 생기고 눈이 밝아진다고 하자.
그에게 시력이 생김과 동시에 그 기름때가 잔뜩 묻은 조잡한 옷에 대한 탐욕이 없어질 것이다.
그 대신 '오랜 세월 이 사람은 기름때가 잔뜩 묻은 조잡한 옷으로
'여보게, 이것이 그대가 찾던 우아하고 정갈하고 깨끗한 흰 옷이라네.'라고
나를 속이고 기만하고 현혹했다.'라고 여기면서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적의가 타오를 것이고
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버리리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24. "마간디야여, 그와 같이 내가 만일 그대에게
'이것이 그 병 없음이고 이것이 그 열반이다.'라고 법을 설하면
그대는 병 없음을 알고 열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대가 눈이 생김과 동시에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에 대한 탐욕이 없어질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오랜 세월 이 마음(*5)에 의해 속고 기만당하고 현혹되었구나.
왜냐하면 나는 참으로 물질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느낌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인식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심리현상들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알음알이를 취착하면서 취착했다.
그런 나에게 취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512] 생겨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겨난다.'(*6)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25. "저는 고따마 존자께 '고따마 존자께서는 내가 눈먼 것을 고쳐주시어
이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도록 법을 제게 주실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마간디야여, 그렇다면 그대는 바른 사람을 섬겨라.
마간디야여, 그대가 바른 사람을 섬기면 바른 법을 듣게 될 것이다.
마간디야여, 그대가 바른 법을 듣게 되면 그대는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을 것이다.
마간디야여, 그대가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으면
그대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다.
'취착의 [대상인] 이 다섯 가지 무더기들은 병이고 종기이고 화살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병과 종기와 화살이 남김없이 소멸한다.
그런 나의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한다.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한다.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적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라고.“
(*5) “여기서 ‘마음(citta)’은 윤회를 따르는 마음(vaṭṭe anugata-citta)을 뜻한다.”(MA.ⅲ.220)
(*6) 여기서 세존께서는 오온에 대한 ‘취착[取, upādāna]을
12연기의 9번째 구성요소인 취착[取]과 연결 짓고 계신다.
그래서 이와 같은 현제의 오온에 대한 취착이 존재[有]와 태어남[生]과 늙음·죽음[老死],
즉 윤회를 떠받치는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를 말씀하시고
아래 §25에서는 윤회의 괴로움의 소멸구조를 말씀하시고 계신다.
26.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간디야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고따마 존자의 곁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27. "마간디야여, 전에 이교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수습 기간을 가져야 한다. 넉 달이 지나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를 허락하고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준다. 물론 여기에 개인마다 차이가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세존이시여, 만일 전에 이교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기를 원할 때,
넉 달의 수습 기간을 가져야 하고, 넉 달이 지나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를 허락하고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주신다면 저는 4년의 수습 기간을 가지겠습니다.
4년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를 허락해주시고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주십시오."
28. 마간디야 유행승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간디야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꿰뚫어 알았다.
마간디야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마간디야 경 (M75)이 끝났다.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3권 117~1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