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대 |
🍂1598년 이순신장군, '노량해전'에서 전사!
▶1598년 오늘, 이순신장군, '노량해전'에서 전사!
정유재란때, 1598년(선조 31년) 11월 18일부터 19일, 이틀사이에 이순신장군과 진린이 이끄는 조,명 연합함대가 노량 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경상남도 남해도와 하동사이에 해협)
1597년 재침한 왜군은 그해 9월 '명량해전'에서 패배한데 뒤이어 육전에서도 계속 고전하였다. 다음해, 8월 도요토미가 병사하자 왜군은 순천 등지로 집결하면서 '철수작전'을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과 함께 1598년 9월, 고금도 수군진영을 떠나 노량 근해에 이르렀다. 명나라 육군장 유정과 수륙합동작전을 펴서 왜교에 주둔하고 있는 왜군 고니시 유키나가에 부대를 섬멸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고니시는 수륙 양면으로 위협을 받게 되자, 명나라 진린에게 '뇌물'을 바치고 퇴로를 열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진린은 고니시가 마지막으로 요청한 통신선 1척을 빠져나가게 하고, 이순신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고니시는 통신선으로 사천 등지의 '시마즈'와 연락해 남해, 부산등지에 있는 왜군 수군의 구원을 받아 조,명 연합수군을 협공하면서 퇴각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 고니시의 전략을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은 진린을 꾸짖고 함께 진영을 재정비해 왜군을 맞아 격멸하기로 하였다.
11월 18일 밤 이순신의 예견대로 노량 수로와 왜교 등지에는 500여척의 왜선이 집결해 협공할 위세를 보였다.
200여척의 조,명 연합수군을 거느린 이순신은 "이 원수만 무찌른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고, 하늘에 빌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19일 새벽싸움은 막바지에 이르고, 이순신과 진린은 서로 위급함을 구하면서 전투를 독려하자, 왜의 수군 선박 200여 척이 불에 타 침몰하거나 파손되고, 100여척은 이순신 함대에 나포되었으며 나머지 패잔선들이 관음포 쪽으로 겨우 달아났다.
이순신은 같은 날 오전 관음포로 도주하는 마지막 왜군을 추격하던 중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은 하지 말라"는 세계 전쟁사상 길이 빛나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 해전에서 명나라 장수 등자룡과 가리포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등이 전사하였다.
한편 순천 왜교에서 봉쇄당하고 있던 고니시의 군사들은 남해도 남쪽을지나 퇴각해 시마즈 군과 함께 부산의 집결, 철수했다. 노량해전을 끝으로 정유재란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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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
🍂05년 일본 특명 전권대사 이등박문 내한
▶1905년 11월 19일 오늘 일본 특명 전권대사 이등박문 내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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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김원붕, 길림성서 의열단 조직 🍂24년 홍명희·박헌영이 참여한 신 사상 연구회가 화요회로 개칭, 연구 단체에서 행동 단체로 전환. 🍂37년 임시정부, 호남성 장사로 이전, 38년7월 광동으로, 10월 광서성 유주로, 40년9월 중경으로 이전 🍂41년 임시 정부, 한국 광복군 행동 준수 9개항 승인 : 광복군의 작전지휘권을 중국이 갖는다 등. 🍂54년 일본정부, 독도 도안 우표가 부착된 한국 우편물을 반송하기로 의결. 🍂60년 북한 최용건, 남북 연방체 구성과 경제ㆍ 문화교류 위한 경제위원회구성 제의 |
🍂69년 미국 아폴로 12호 달 착륙
▶1969년 11월 19일 오늘 69년 미국 아폴로 12호 달 착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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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위수령 해제 🍂75년 한ㆍ이란, 한국의 대 이란 기술자 파견ㆍ 10만호 주택건설 참여 등 10개항 합의서 조인 🍂80년 대한항공 여객기, 김포공항에서 착륙 중 화재로 전소, 사망 15명, 20여명 중경상 🍂81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조사단, 한국의 외채 문제는 한국 경제의 능력으로 극복 평가 🍂82년 한국·나이지리아 합작은행 설립 협정 체결 (서울) 🍂82년 서울대 농대, 식물 성장촉진 호르몬인 트리아 콘타놀에 의한 쌀증산 실험 재배에 성공했다고 발표 🍂84년 노태우 체육회장, 북한 측에 남북한 체육회담 개최를 재촉구하는 서한 보내 🍂85년 한국 , 남극 자원보존협약 가입 🍂85년 게이 고용, 나체 쇼 공연한 퇴폐업소 주인 등 16명 구속 |
🍂87년 삼성그룹 창업자 호암 이병철 세상 떠남-이건희 부회장 승계
▶1987년 11월 19일 오늘 삼성그룹 창업자 호암 이병철 세상 떠남
-이건희 부회장 승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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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철도청, 91년 1월1일부터 장애인들에게 비둘기호 통일호 지하철의 요금을 50% 할인해주기로. 🍂90년 국회, 여야간 지방자치제 합의에 따라 평민당이 등원, 정기국회 개최 이후 70일만에 정상화. 🍂92년 노태우 대통령,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KAL기 피격사건에 관한 블랙박스와 기록 테이프 전달 🍂92년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중국산 우황 청심환에서 무려 5000~1만2000ppm의 수은이 검출 됐다고 발표. 🍂93년 김영삼 대통령, APEC 정상회담 참석중 강택민 중국주석 과 회담 공동 관심사에 관해 의견 교환 🍂93년 외무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타결을 위해 우리측의 공산품 수산물의 관세양허 계획서 가트에 제출 🍂93년 김영삼 대통령,아태경제협력체 (APEC)정상회담 개막연설 🍂93년 환경처, 10년간에 걸쳐 91㎢인 자연생태계 보전 지역을 전 국토의 5% 수준인 5000㎢로 확대 지정키로. 🍂95년 레 푹 토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등 4명 한국 방문(집권당간 친선교류및 공동 관심사 논의) 🍂96년 북한 중앙통신, 북한은 한국측의 대북협력 사업 동결조치에 대응,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대표들 철수 🍂97년 공보처, “북한이 KBS폭파ㆍ살해위협을 공언 경악” 🍂97년 강경식 경제부총리 경질, 개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