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령과 고치령은 소백산을 경계로 주민들이 북쪽과 남쪽으로 오가던 길이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떠도는 장돌뱅이들이나 인근 주민들이 넘나들던 곳이다.
고치령(고치재)이 생활도로로 왕성했던 것은
강원도와 기호지방을 잇던 죽령길이나 마구령길에 비해
고치령이 순흥도호부와 영월을 잇는 최단거리였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신라시대 근처에 절을 지으려고 터를 잡았던 일로 ‘절터고개’라 불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옛고개라는 뜻의 ‘고치’가 되었다.
고치령은 조선시대 때 영월에 유배된 단종의 복위를 꿈꾸던 이들이 넘나들던 길이다.
단종은 영월에, 단종의 숙부인 금성대군은 순흥에 유배되면서 고치령을 통해 양쪽의 소식이 전해졌다 한다.
결국 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 고갯길을 넘던 이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산신각에서 왼쪽으로 30m 가량 올라가면 널찍한 헬기장이 있다.
헬기장에서는 북쪽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분지를 이룬 의풍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치령은 야영하기에 그만이다.
고개마루에서 의풍 방면으로 약 30m 지점에 있는 샘터에는 사계절 마르지 않는다는 시원한 약수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첫댓글 여기도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