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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2주일 [그리스도의 마지막 경고] 김성현 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막 14:53 저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막 14: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막 14: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막 14: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
막 14: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여 가로되
막 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막 14:59 오히려 그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
막 14: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가로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막 14:61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막 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막 14: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막 14:64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막 14:65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는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할 뿐 아니라, 영원한 내일의 소망을 갖게 하는 가장 큰 축복이다.
[십자가 은혜는 유일한 소망의 근거]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 인해, 이 세상 마지막 날을 두려움 없이 고대할 수 있다.
내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견딜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 없이도 나머지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주님이 매일 도와주셔야 한다.
주님이 우리를 매일 삶속에서 도와주셔야 한다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삶속에서 나중에 있을 심판을 대비하여, 계속 나를 구원해 주셔야 한다는 말이다.
[심판 날에 죄인 아닌, 의인으로 판명되야]
우리에게 심판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아직 숨쉬는 동안은 그리스도를 의지할 이유가 있다.
그 날 심판대 앞에서 죄인으로 드러나면 안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그가 내리시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 날에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자로 판정되지 말아야 한다.
그 날에는 의인으로 판명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본래 죄인이다.
어떻게 그날 의인으로 판명나는가.
그리스도 은혜를 받은 후부터는 죄를 범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주의 말씀에 거하면서, 죄를 거절하고, 선한 행실로 주의 교회에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회개한 일생을 삶으로 나머지는 주께서 구속의 은혜로 지켜주셔야 한다.
의롭다고 그가 인정해주셔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절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존재를 마치 그리스도를 섬기듯 따라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자기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있다고, 의지해서는 절대 안된다.
그러면, 진짜 구원을 소홀히 하고, 무시할 수 있다.
우리는 마지막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자들이다.
우리 평생의 삶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가 지배하고, 그 은혜가 보호하고, 받쳐주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은혜로서 유지된다.
이전의 신분이 가리워지고, 주의 속죄하신 은혜로 인해, 의롭다고 유지된다.
일생이 이런 하나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처음 예수 믿은 이후에는 인격과 삶이 주님의 인도 아래서 보전되어야 한다.
내 영혼과 삶이 그리스도의 친히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주의 영향 아래서 보전될 수 있다.
[은혜 받은 인격을 지켜 심판을 준비케 하신다]
그럼에도 고의로 악행을 하는 것은 탐욕이 있기 때문이다.
죄인의 성질을 여전히 드러낸다면, 마지막 날에는 심판의 대상이 된다.
자기가 죄인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죄인은 당연히 멸망한다.
죄인의 행실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한다.
무시하기 때문에, 죄를 행할 것이다.
그런 자는 마귀의 사역자로 자기도 모르게 활동한다.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땅의 삶 동안에 내가 알아서 신앙생활 한다는 개념으로 자기를 홀로 두면 안된다.
예수께서 계속 보호하고, 도와주셔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순종하고, 계속 따른다.
궁극적으로 악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죄인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성질이 죄인이다.
예수 믿고, 변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심판 앞에서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나지 않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이유 때문에 주님의 보호아래 유지된다.
죄인인데, 주님의 공로 안에 숨어있는 것이다.
예수 믿기 전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죄를 범했다.
세상 사람 식으로 죄를 범하고 사는 것이다.
예수 믿고 나서, 자기가 멸망할 존재임을 알고, 회개하고, 그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서 벗어났다.
죄사함을 받은 것이다.
대신 값을 치뤄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범하는 죄도 처리해야 한다.
그 이후부터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변해야 한다.
우리 원래 모습은 멸망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주님의 것으로 덮어야 한다.
주를 순종하는 자가 되어, 우리 죄를 덮어주시는 은혜로 인해, 사는 것이다.
아무리 용서받아도, 원래 인간은 악행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탐욕을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억제하고, 그리스도의 의로 대신 삶을 펼쳐가는 자도 많다.
예수 믿기 전에는 무조건 죄를 범한 자로서 형벌을 받지만, 예수 믿고 나서는 설령 죄를 범한다할지라도, 회개하고, 억제하고, 주의 계명대로 살기 때문에, 주께서 우리 약한 면을 사해주실 수 있다.
우리가 실수로 죄를 범해도, 그 죄를 담당하신 분이 용서하신다.
용서받는 자는 마지막 날이 두렵지 않다.
죄를 제하는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회개한 자도 실수는 한다.
그러나, 대놓고, 범죄하는 자와 회개한 양심으로 주께 용서를 구하는 자는 천지차이다.
주님은 우리 약점을 보완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인생의 의미는 우리 약점이 주께 맡겨진 것이다.
그러나, 고의로 악행을 한다면,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싸구려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에 더해서, 우상을 따른다면, 그리스도보다 자기에게 더 귀한 것이 있다면, 십자가에 연연하지 않고, 다른 구원의 길에 마음을 준다면, 반드시 십자가의 은혜를 경히 여길 것이다.
이 사람은 속죄의 방법이 없다.
이 사람은 절대 마지막 심판의 날을 준비하지 못하고, 마칠 것이다.
그날 주님은 그를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아무리 자기가 훌륭한 공로를 많이 했어도, 그 자는 구원을 도중에 포기한 자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범죄치 않도록 평생 주님의 인도를 받는다.
주께서 우리 삶을 잘 지켜주시도록, 매일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다.
우리를 시험해 들지 않도록, 우리 신앙을 견고케 하시고, 악행을 하지 않도록 하신다.
죄를 짓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고, 악행을 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구해야 한다.
그리고, 주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해 헌신한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주님은 세상 삶을 견디어 갈 이유]
주님은 우리가 세상을 무사히 지나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려 한다.
죄인으로 태어난 자를 이렇게 이끄시는 것은 주님의 놀라운 책임감이다.
주님의 명예를 위해, 성령이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신다.
심판의 날에 서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님의 뜻을 잘 모르고, 무시한다.
그러면서, 예수 믿으니, 육체적인 일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예수께서 모든 죄를 사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 믿으면, 절대 심판받지 않는다고 한다.
요한복음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이 구절을 보고, 심판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많다.
그러나,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온다.
여기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심판받지 않는다는 것은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심판대에 서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심판대에 오르더라도, 형벌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믿는 자는 반드시 주님을 순종하고, 주님의 속죄의 은혜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자는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고, 원래 운명대로 지옥에 갈 것이다.
예수 십자가의 권능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씀이 있는 것이다.
심판은 절대 피할 수 없다.
모두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한번 죽는 것도 정해져 있다. 이와같이 심판도 반드시 있다.
마가복음 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아무리 신자라도, 성령을 훼방하면, 자기 구원을 잃을 수 있다.
자동적으로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고, 죄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복음의 반대쪽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원하는대로 살았지만, 예수 믿은 다음부터는 그리스도에게 직간접으로 악행을 한 것에 대한 모든 것들을 심판받을 날이 온다.
예수께서 선포하셨다.
내가 굶주렸을 때, 나를 돌보지 않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행함에 대해서, 그가 책임을 물으신다.
오늘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행하는가에 대한 삶이다.
지금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해 분명한 자세를 나타낼 시험기간이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아픔, 수모를 당한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으면, 주님은 큰 배반의 아픔을 느끼실 것이다.
우리 자체로는 홀로 나갈 수 없다.
악행을 범하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를 의지해서 나가고 있다.
주께서 우리를 보호하셔서, 앞으로 있을 심판을 면하고, 뚫고 나갈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힘있게 나가는 자들 되자.
[죄인들이 의인을 죽이려 계획하다]
본문의 말씀은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불과 몇시간 전이다.
마가복음 14:53 저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하는 신앙인들의 나쁜 인성으로 엄청 고난을 받으셨다.
예수는 이 땅에 왔다간 자 중에 가장 의로운 분이신데, 신자라고 하는 자들의 고약한 인성에 의해, 불법으로 심판을 받으시고, 죽음을 당하신다.
예수는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체포당하셔서, 전임 대제사장인 안나스에게 심문을 받으셨다.
그리고, 다음에는 현 제사장인 가야바에게로 끌려가셨다.
그 재판은 한밤중에 열리는 불법 재판이다.
거기에는 공회의원들이 비밀리에 소집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알기 전에, 얼른 처리하려고 한 것이다.
유월절 축제 이전에 죽이려고 한 것이다.
이 재판 자체가 이미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정해놓고 시작한 것이다.
죄목을 찾을 수 없어서, 죄목이 없이 시작했다.
죄를 찾아내서, 로마의 법으로 죽여야 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형집행은 할 수 없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만들어야 하는데, 죄를 찾을 수 없었다.
마가복음 14: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이들은 예수에 대해, 죄의 증거를 찾으려고 애쓴다.
[그리스도를 죽이려 거짓 증거를 구하다]
산헤드린은 우리에게 말하자면 대법원이다.
대법원이 죄를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마가복음 14: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안되니까, 거짓 증인을 데려온다.
마가복음 14: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
그런데, 엉터리 재판에서 조차 쓸만한 거짓증언이 나오지 않는다.
이 일이 잘 안되고 있는데, 갑자기 거짓말 잘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마가복음 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이전에 주께서 사역초기에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성전을 파괴하겠다는 말씀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께서 성전을 파괴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증언이다.
주님은 내가 성전을 허물겠다고 하지 않으셨고, 너희가 헐어봐라, 내가 사흘만에 일으키겠다고 하셨다.
주님은 자신의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인데, 이들은 이것을 비틀어, 성전모독죄로 몰려고 했다.
마가복음 14:59 오히려 그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
그런데, 그 증언이 디테일에서 맞지 않는다.
[진리를 악용하여 그리스도를 공격한다]
가야바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갑자기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가야바가 직접 공격한다.
마가복음 14: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가로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냅다 소리치면서, 압력을 주고 있다.
전략을 바꾼 것이다.
압박해서, 아무 말이나 하면, 올무를 걸기 위해서다.
마가복음 14:61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그러나, 주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여기서 주님을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유대사회 최고의 엘리트다.
최고 권력 앞에서 아무 대꾸도 안하고 계시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을 두고, 거짓증거에 대해, 자기를 변호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성경을 이루고 계셨다.
이사야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군중들이 구체적인 사실을 알기 전에, 빨리 죄를 찾아내, 죽이려고 하는데, 쉽게 뜻이 풀리지 않는다.
대제사장은 초초하다.
그는 여기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한다.
여기서 너라고 하는 것은 경멸하면서 하는 말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나타내고 계셨다.
사람들이 그를 메시야라고 생각했다.
이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공격하려고 한다.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를 가르키고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인정하고 있다.
대제사장이 두가지 질문을 함께 묻고 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은 자라는 뜻이다.
선지자, 제사장, 왕 모두 기름부음을 받는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 하고 묻는다. 그런 의미에서 단 하나만 말하는 것이다.
사무엘하 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사무엘하 7: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이 구절을 보면, 다윗의 자손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시편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시편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대제사장은 명예상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편구절도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다윗의 자손에서 나올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부자관계로 믿는 것은 아니고, 명예로 높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마태복음 26:63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게 하려고 한다.
예수님은 완전히 궁지에 몰려있다.
예수께서 긍정하시면, 신성모독죄로 잡힌다. 정치적으로는 반란음모죄로 잡힌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이다.
가이사 외에 왕으로서 로마를 대적한다고 몰 수 있다.
여기 대제사장은 다윗의 자손중에 나오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추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단지 피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수의 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그를 잡아서, 신성모독죄로 씌우려고 하고 있다.
이 때, 예수께서 침묵하시면,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예루살렘에 소문이 퍼질 것이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는데, 더 이상 그리스도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알리려 오셨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맞다고 하시면, 죽으시게 된다.
마가복음 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주님은 이제 죽음을 피하실 수 없다.
주님은 명확히 말씀하신다.
나는 그리스도가 맞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아들처럼 추대된 자가 아니라,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과 권위가 동등한 인자다.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을 보리라.
우편은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문화권에서 우편은 동등함을 말한다.
동등한 권위와 명예를 가진 것이다.
시편 110:1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이 구절은 예수님을 일컬어 말씀하신 것이다.
죽으셔도,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다니엘 7:9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다니엘 7: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여기서 왕좌는 왕좌들이라고 해서, 복수형으로 되어있다.
많은 하늘의 존재들이 보좌하는 엄청난 분이시다.
그는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심판의 증거가 들어있는 책이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오시는 분이시다.
너희가 나를 죽여도, 이후에 하나님 보좌와 나란히 서 있는 자로 보게 될 것이다.
다니엘 7: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다니엘 7: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이 날 주님의 답을 들은 자들은 결코 변망할 여지가 없다.
우리도 들었다.
누구도 이 말씀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제사장은 다윗의 왕국을 다시 일으킬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로 추대되는 메시야를 기대했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심판자라고 하셨다.
이렇게 대답하신 것은 죽음을 앞두고, 세상을 향해 주시는 마지막 경고다.
제자들만 듣고, 세상은 못들어봤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경고다.
인간을 대표하는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내가 너희를 심판하러 오리라 하신다.
주님의 마지막 경고다.
나는 심판자로서 오리라.
너희가 생각하는 메시야 정도가 아니다.
설마하지 말고, 이것은 너희의 현실이다.
[경고에 대하여 범죄로 응답하다]
이 경고를 들은 대제사장은 예수를 잡아죽일 수 있는 근거를 얻었다.
마가복음 14: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이스라엘 최고의 권위자가 거기서 폭력을 행사한다.
마가복음 14:65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우리는 주님이 죽으심을 앞두고, 온세상에 선포하신 경고를 들었다.
곧 주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죽으신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가볍게 취급하는 자에게 하시는 무서운 경고다.
그러나,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환영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나라의 약속이다.
죄를 사하고, 심판을 자신감있게 대할 수 있는 주님의 확신이다.
우리가 마지막 경고를 들었을 때, 회개하고, 변해야 한다.
거듭나서, 새사람 되자.
순종하고, 헌신하여, 그날을 향해 달려가자.
설교요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갇혀 있어서
영원한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단적 속성을 닮은 치명적 약점이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모독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그 저주와 불행에서 구해내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의 책임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영원한 죽음을 대신하여
희생제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는
우리를 구해주실 그리스도이실 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마지막 경고다.
그 경고는
우리 일생동안 한시도 잊지 말고
마음과 삶 속에서 새기고 있어야 할
결정적인 하나님의 계시이며,
구원으로 부르시는 초청의 음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