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의 귀환 행적
(에스라 8장 21-36절)
21-23.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아나)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타프)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데레크 야샤르)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에스라 일행이 하나님께 금식기도하면서 가졌던 영적 태도이다.
아나는 괴로움을 당하다, 낮추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자신을 낮추어서 절대자에 대해서 지극히 순종적 자세를 나타내는 것을 가리킨다.
타프는 여자와 노인, 어린이로서 능력이 떨어지는 자를 의미한다.
데레크 야샤르는 문자적으로는 올바른 길이지만, 의미상으로는 안전한 길을 의미한다. 고대에는 길을 지키고 있다가 약탈을 일삼는 무리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은금을 소유했고 또한 유약자들을 동반했던 에스라의 일행에게 있어 매복해 있을 도적 떼는 큰 위협일 수밖에 없었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 하나님의 손(야드)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토브)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아프)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야드는 보호, 지배, 권능 등으로 사용된다. 토브는 선하다, 더 낫다라는 의미로, 하나님 안에 있는 자가 선한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늘의 복을 주시는 것이 선이다. 아프는 분노, 코, 호흡에서 나오는 분노의 콧김 등이다. 그러므로 진노는 하나님을 벗어나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다.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에스라는 자신의 귀환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임을 확신하였으므로, 위험한 귀환 여정을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의지하여 감행하고자 결단했다.
24-27.그 때에 내가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중 열두 명 곧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의 형제 열 명을 따로 세우고 그들에게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또 그 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그릇들을 달아서 주었으니 내가 달아서 그들 손에 준 것은 은이 육백오십 달란트요 은 그릇이 백 달란트요 금이 백 달란트며 또 금잔이 스무 개라 그 무게는 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 같이 보배로운 놋 그릇이 두 개라
“내가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중 열두 명 곧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의 형제 열 명을 따로 세우고(바달)”
곧이라는 표현은 그리고 라는 표현을 잘못 표기한 것이다. 한글 개역을 그대로 따른다면, 세레뱌와 하사뱌는 제사장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세레뱌와 하사뱌는 레위인이다.
바달은 나누다, 구별하다 라는 의미로서, 합해져 있던 둘을 구별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제의적 맥락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에스라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함께 구별시킨 이유는 제사장들은 거룩한 물건들을 취급하는 책임자라는 점에서, 레위인들은 그것들을 운반하는 등의 부수적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책임자라는 점에서 함께 구별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또 그 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그릇들을 달아서 주었으니”
은금에는 바벨론 사람들로부터 얻은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는 에스라와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지 않은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그때에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바벨론 및 페르시아 땅에 남아 있었다.
“은이 육백오십 달란트요 은 그릇이 백 달란트요 금이 백 달란트며 또 금잔이 스무 개라 그 무게는 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 같이 보배로운 놋 그릇이 두 개라”
은과 금이 대단히 많은 양이었음이 분명하다. 금잔은 성전에서 사용되던 금기명이 아니다. 천 다릭은 약 11,000파운드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 놋그릇은 구리와 아연의 합금인 황동으로 만들어진 그릇으로 추정된다.
28-30.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그릇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 너희는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앞에서 이 그릇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은과 금과 그릇을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가려 하여 그 무게대로 받으니라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코데쉬) 자요 이 그릇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자는 제사장 및 레위인들이 특별히 일반 백성들과 구별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진 신분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코데쉬는 봉헌하다, 구별하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카다쉬에서 온 형용사로서, 하나님께 특별히 바쳐짐으로써 인간들에 의해 함부로 다뤄질 수 없게끔 된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은과 금이 거룩히 구별되었음을 말해주는 표현이다. 이런 거룩성은 구별되었다는 표현으로,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 및 레위인만이 그것들을 다뤄야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오늘날 성도 역시 거룩히 구별된 자로 여김을 받는다. 그 이유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신약에서 성도가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이유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기 때문이다.
“너희는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앞에서 이 그릇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여호와의 성전 골방은 성전의 건물 양편에 위치한 방들로서 한 쪽에는 제사장들이 쓰는 방이, 그 반대 편에는 창고가 있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의 우두머리(사르)들은 책임자를 의미한다. 제사장의 우두머리는 제사장의 업무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던 제사장을 가리킬 것이다.
삼가 지키라는 말은 깨어있어 지키라는 의미이다. 지킨다는 것은 보호하다라는 말로서, 도적을 맞거나 혹은 탐심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야심한 틈을 타 훔쳐가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이 예물들은 귀환 여행의 마감 시점에 이르러 재차 점검되고 계수되었다.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은과 금과 그릇을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가려 하여 그 무게대로 받으니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들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등 에스라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운반에 관한 총체적 책임은 제사장들에게 있지만, 이 일은 실제적으로 레위인들에 의해 담당되었다.
31-34.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서 삼 일 간 머물고 제사일에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은과 금과 그릇을 달아서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의 손에 넘기니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과 레위 사람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과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가 함께 있어 모든 것을 다 세고 달아 보고 그 무게의 총량을 그 때에 기록하였느니라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유대인들은 그때 아하와 강가를 집결지로 삼아 첫째 달 초하루에 거기에 모였었다. 그들은 거기서 삼일간 인원을 파악하던 중 레위인들이 한 사람도 없음이 밝혀지자 그들을 불러오는 등의 일에 9일을 소비하고 12일에 그 강가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나짤)”
나짤은 구하다, 찾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위기에서 구출하거나 위급한 재앙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적극적 행위를가리킨다.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서 삼 일 간 머물고”
에스라 일행이 먼길의 여행 후 몸과 마음의 휴식 기간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제사일에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은과 금과 그릇을 달아서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의 손에 넘기니”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은 느헤미야 3장 4절에서는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으로 나온다. 그런데 학고스 자손들은 자신들의 혈통을 증명치 못함으로 해서 제사장 직분의 수행이 유보되었던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여기서는 그 후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고 있음을 볼 때, 그들이 자신들이 제사장의 후예임을 증명된 것이다. 우리아는 여호와는 빛이시다의 뜻이고 므레못은 거만이란 뜻이다.
“모든 것을 다 세고 달아 보고 그 무게의 총량을 그 때에 기록하였느니라”
내부 및 외부의 도적을 만나지 않음으로써, 일체의 물품 손실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손이 에스라의 일행에게 함께했다는 사실에 대한 표현이다.
책에 기록한 것은 성전 재산의 도난 및 횡령 방지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에스라는 그 물품 목록을 아닥사스다 왕에게보내서 모든 물품들이 제대로 인계되었음을 증명하였을 수도 있다.
35-36.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두 마리요 또 숫양이 아흔여섯 마리요 어린 양이 일흔일곱 마리요 또 속죄제의 숫염소가 열두 마리니 모두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이라 무리가 또 왕의 조서를 왕의 총독들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넘겨 주매 그들이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느니라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사로잡혔던 자손은 거의 대부분이 바벨론에 의해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간 것으로 포로가 된 유대인 및 그 사건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방에서 돌아온 자는 포로 생활로부터 돌아온 자이다. 이들은 곧 에스라의 일행들이다.
번제는 하나님께서 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신 데 대한 감사와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헌신 등의 의미를 담는다.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두 마리요 또 숫양이 아흔여섯 마리요 어린 양이 일흔일곱 마리요 또 속죄제의 숫염소가 열두 마리니”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것은 에스라와 함께 온 새로운 귀환자들이 제사의 주관자들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최초의 귀환자들도 바벨론에서
귀환한 직후 이 같은 제사를 드렸었다.
수송아지가 열 둘에서 열 둘은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
숫양이 아흔 여섯에서, 아흔 여섯은 매 지파당 여섯 마리씩에 해당되는 숫자이다.
어린 양이 일흔 일곱은 완전한 희생 제사를 드린 것을 의미한다.
속죄제는 포로지에서의 신실하지 못했던 삶을 회개하며, 또 그 죄악들을 사함받기위해 드려졌을 것이다.
“또 왕의 조서를 왕의 총독들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넘겨 주매 그들이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느니라”
왕의 조서는 에스라와 그 일행을 도우라는 명령을 가리킨다.
왕의 총독들은 광활한 정복 지역을 왕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관리를 가리킨다. 유프라테스 강 서편에는 단 한 명의 총독 밖에 없었다. 여기의 총독들이 유프라테스 강 서편의 총독 한 사람과 애굽을 다스리던 총독 등 두 명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도왔다는 것은 왕의 명령이 그대로 이행되었음을 시사한다. 어떤 물질 등을 제공함으로써 성전 예배가 권위를 회복하고 원활히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요약 정리)
에스라 8장 21-36절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인간적인 군사 보호 대신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를 구한 모습이다. 철저한 금식 기도와 헌물에 대한 청지기적 사명, 그리고 안전한 도착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실하심을 보여준다.
귀환 길에는 대적과 강도들이 많아 왕에게 군사적 호위를 요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스라는 평소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신다"고 선언했던 것을 기억했다. 왕의 군대(세상)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혜)을 더 신뢰한 영적 결단이었다. 이를 위해 아하와 강가에 모여 금식하며 간절히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다.
에스라는 왕과 백성이 성전을 위해 드린 막대한 은과 금, 그릇들을 제사장 12명에게 구별하여 맡겼다.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예물을 목적에 맞게 안전하게 운반하는 것은 영적 청지기의 사명이었다. 철저히 달아 무게를 재어 맡기고 삼가 지키게 한 것은, 주님의 것을 훼손 없이 온전히 드리려는 영적인 엄중함과 투명성을 보여준다.
대적의 손과 길의 위험에서 건짐을 받아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하여, 삼 일간 머문 뒤 성전에 나아가 예물을 달아보고 번제를 드렸다. 이는 금식하며 간구했던 평탄한 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한 응답이었다. 또한 모든 귀환을 마치고 감사의 번제와 속죄제를 드림으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새 출발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성도 역시 인생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심령속의 성전을 세우는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고 널리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