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큰꿩의비름
전남매일 한송주칼럼
부판벌레
중국 당나라 때의 저명한 문인이자 사상가인 유종원(柳宗元)의 문집에 '부판전'이란 우화가 있다. 끝없는 탐욕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부판이라는 벌레를 소개하고 있다.
부판벌레는 언제나 등에다 짐을 잔뜩 지고 다니는데 힘에 겨워 끙끙대면서도 짐을 내려놓을 줄을 모른다. 내려놓기는커녕 기어가다 무슨 물건을 맞딱뜨리면 그마저 얹고 비척거리며 나아간다. 그 짓을 반복하다가 결국 짐 무게에 깔려죽고 만다.
어쩌다 사람이 발견하고 짐을 들어내고 살려 놓아도 잠시 몸을 추스른 뒤 또 다시 닥치는대로 물건을 짊어지고 높은 곳으로 도망가다가 끝내 추락해 압사한다는 것이다.
불가에서 인간이 고해를 못벗는 세 가지 원인으로 흔히 탐욕(貪) 분노(瞋) 무지(痴)를 드는데 적당히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이야말로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가장 무서운 독(毒)임에 틀림없다. 유종원은 우언의 말미에서 "사람들은 다른 이가 탐욕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걸 뻔히 보고도 이를 거울삼을 줄 모르니 부판벌레와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고 한탄하고 있다.
게이트 시리즈로 일년 내내 날이 새고 밝더니 급기야 그 불똥이 청와대까지 튀어 대통령의 아들들 얼굴이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토록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직 대통령 아들의 비리 사건이 채 잊히기도 전에 다시 한번 똑같은 드라마를 봐야 하지않나 벌써부터 속이 짜다.
유종원의 우언에 '임강의 사슴'(臨江之鹿)이라는 것도 있다. 임강사람이 사냥 갔다가 사슴 새끼를 주워와 집에서 고이 길렀다. 그는 많은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개들을 묶어두고 사슴 새끼를 노닐게 하며 서로 낯을 익히게 했다.
그렇게 해서 개들도 사슴을 한 식구로 여겨 사이좋게 어울리게 되었고 사슴도 개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지냈다. 사슴은 제가 허약한 사슴임을 차츰 잊어갔다.
어느 날 사슴은 겁 없이 집 밖으로 나갔다가 동네의 개들에게 무참하게 잡혀 먹히고 말았다. 피를 낭자히 흘리고 죽어가면서도 사슴은 왜 자기가 죽어야 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사슴이 동네 개에게 당한 것은 사슴의 어리석음도 있지만 집안 개들이 경고를 하지 않은 탓이 크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허물은 주인이 사슴을 너무 귀여워 해 자신이 사슴인지를 잊게한 데 있다고 하겠다.(2002.4.20.)
첫댓글
부판(負版)은 나라의 토지 또는 예기(禮器) 등을 기록한 판을 짊어지는 관리였다고 합니다. 유종원은 이 부판(負版)에 벌레(蟲)를 합쳐(蝜蝂), 무엇이든 짊어지기를 좋아하는 탐욕스러운 인간에 비유하게 되었다 하네요. 모습이야 건듯 우리가 보아 온 저 날도래나 쇠똥구리의 생태지만 이 '벌레'는 그 생태적 목적도 없어 보여 더 혹독하고 더 처참하군요. 오늘날 검찰깡패들과 그 보스 아무개가 겹쳐보이기도 하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