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보다 안전하고 재미있게’
“우리 학교 ‘큰빛 11기 티볼야구부’는 11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합니다. 현재 썬더타이거스와 리틀드래건스 두 팀이 활동하고 있고, 티볼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화이팅’을 외치며 2시간씩 연습하고 있습니다.”서울 문백초등학교 “우리 학교는 인천 문학야구장 바로 옆에 있어서 평소 야구 경기를 자주 관람하고, 다른 학교 학생들 보다 티볼에 관심이 많아 평소 즐겁게 운동하고 있습니다.”인천 승학초등학교
지난 8일 서울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제5회 한국티볼협회 총재배 전국초등학교 티볼대회에 참가한 학교들의 출사표다. 이 대회에는 전국에서 18개 팀이 참가했는데, 티볼 역사가 짧은 지방 초등학교들의 열기도 절대 뒤지지 않았다.
전교생이 90여 명인 전북 정읍 서신초등학교는 2008년 여름 무렵 티볼을 처음 접했지만 어린이들의 뜨거운 관심과 열의로 티볼을 즐긴단다. 어린이들을 지도하는 김병희 선생님은 “아이들이 체육시간은 물론 점심 때나 방과 후에도 옹기종기 모여 티볼을 즐긴다”며 “티볼은 야구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야구라는 어려운 스포츠를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12년 개교해 역사가 100년에 가까운 강원도 정선초등학교는 지난해 티볼을 시작한 뒤 전교생 600여 명이 정규 수업시간에 티볼을 배우고 있다. 문현영 선생님은 “학생들의 관심이 많아 지난해 교내 티볼 대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티볼의 매력은 무엇일까. 안전하고 재미있게 야구와 비슷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야구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나 여학생들이 접하기엔 위험하고 부적절하다. 하지만 티볼은 우레탄으로 만든 배트와 공을 사용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안전하고 흥미롭다. 티볼용 글러브가 따로 있지만 우레탄 공을 사용하기 때문에 맨손으로 즐겨도 된다. 특히 티볼에서는 슬라이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칠 염려가 거의 없다. 한 팀에 남학생과 여학생이 고루 섞여 함께 즐기는 장점도 있다. 30~40대 이상 남성들은 ‘티볼’하면 어린 시절 동네 꼬마들과 함께 고무공을 주먹으로 치고 달리던 ‘찜뽕’을 연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을 주먹 대신 배팅 티(Tee) 위에 올려놓고 배트로 치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티볼 경기장 및 수비수 위치 |
티볼이란
티볼의 기본 규칙은 야구와 비슷하지만 야구와 다른 점도 많다. 우선 경기장 규격부터 살펴보자. 야구장 내야 다이아몬드는 한 면의 길이, 즉 베이스간의 간격이 27.43m인 정사각형으로 이뤄져 있다. 티볼은 연령대에 따라 10~18.29m로 이보다 훨씬 짧다. 외야 담장까지의 거리도 연령대에 따라 30m부터 55m까지 다양하게 만들어 놓을 수 있다.
배팅 티는 홈플레이트의 모서리(홈베이스 포수쪽 꼭짓점)에 놓는다. 타자 서클은 홈플레이트 모서리를 중심으로 반경 3m의 원이다. 야구는 9명이지만 티볼은 10명이다. 수비 위치는 본루수(홈베이스 맨), 1루수, 2루수, 3루수, 제1유격수, 제2유격수, 좌익수, 제1중견수, 제2중견수, 우익수로 이뤄진다. 2루수는 2루 베이스에 위치하고, 제1유격수는 1루와 2루 사이, 제2유격수는 2루와 3루 사이에서 수비한다. 본루수는 타자가 타격할 때까지 타자 서클 밖에 있어야 한다.
공격과 수비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공격측 타자 10명이 모두 타격을 마친 뒤 공수를 교대하고, 규정 이닝(보통 3~5회)을 끝냈을 때 득점이 많은 팀이 이긴다. 이 경우 잔루의 주자는 다음 이닝으로 이어진다. 다만 마지막회에는 이전 이닝 잔루를 적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A팀이 1회초 공격에서 9번 타자까지 9명이 모두 아웃되고, 10번 타자가 2루타를 쳤다고 가정했을 때 A팀은 이 상황에서 1회초 공격을 마친다. 그리고 2회초 공격 때 주자를 2루에 두고 1번 타자부터 공격을 시작한다. B팀이 1회말 공격에서 1번 타자부터 10번 타자까지 연속 안타를 쳐서 8득점을 하고 주자가 1루와 3루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B팀은 일단 이 상황에서 1회말 공격을 마치게 된다. 그리고 8-0으로 앞선 상황에서 2회초 수비를 한 뒤 2회말 공격 때 주자를 1·3루에 두고 1번 타자부터 공격을 한다.
둘째, 첫째 방법과 같지만 공격측 타자 10명이 아니라 7명이 타격을 마친 뒤 공수를 교대한다. 나머지는 첫째 방법과 같다.
셋째, 야구처럼 쓰리아웃이 되면 공수를 교대한다. 이 세 가지 방법 가운데 초등학교 티볼 경기에서는 첫째 방법을 가장 많이 적용한다. 티볼이지만 스트라이크 아웃도 있다. 10초 이내에 타격을 하지 않거나, 축이 되는 발을 1보 이상 움직이거나, 헛스윙을 하거나, 배팅 티를 치거나, 파울 볼을 치거나, 번트 또는 푸쉬 번트를 시도했다고 구심이 판단했을 때 스트라이크를 선언 당한다. 스트라이크 3개면 스트라이크 아웃이다. 소프트볼과 비슷한 점도 있다. 바로 주자의 리드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자는 타자가 타격한 뒤 비로소 루(베이스)에서 출발해 다음 루로 향할 수 있다. 위반하면 ‘루 반칙’으로 아웃이 선언된다. 슬라이딩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1루는 물론이고 2루와 3루에서도 베이스를 지나가도(이른바 ‘오버 런’) 아웃되지 않는다. 다만 다음 베이스로 진루할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티볼은 안전한 공과 배트, 작은 경기장, 쉬운 기술 등을 이용해 남녀노소 누구나 야구의 매력과 즐거움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경기다. 이렇게 흥미로운 티볼은 도대체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980년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 야구를 시작하려는 6~12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보급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88년 미국에서 국제야구연맹(IBA)과 국제소프트볼협회(ISF)가 공동으로 야구와 소프트볼을 배우려는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티볼은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1993년 일본을 거쳐 1997년에는 마침내 한국에 첫선을 보이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2008년부터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에 티볼이 정식으로 도입돼 전국적으로 400개가 넘는 초등학교에서 서울에만 100여 개 초등학교에서 티볼을 가르치고 있다.
티볼은 무엇보다 야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서는 티볼을 배운 3개 초등학교 학생들로 리틀야구팀을 창단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특기적성교육 때 티볼 지망 학생이 축구부 지원 학생의 두 배를 넘는 경우도 있었다. 티볼을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넘쳐나 한 학교에 두 팀을 만든 경우도 많다.
한국티볼협회 박철호 전무는 “티볼은 남자 어린이는 야구, 여자 어린이는 소프트볼을 시작하기에 앞서 8~9살 어린이부터 시작하면 딱 좋은 스포츠”라며 “어린이들이 자라나 야구선수가 되거나 야구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야구형 리드 업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스볼 클래식 | 글. 김동훈 한겨레신문 스포츠부 차장(야구팀장) / 사진. OSEN, SK 와이번스, 한국티볼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