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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정기법회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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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참조하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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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뿟따 존자와 제자 빤디따 사미2020년 10월 15일 상수제자의 깨달음 27강
-법문: Ven. 한국마하시 사야도(우 소다나 사야도)
-통역: 우 담마간다 스님
-녹취: 담마시리 님
「상수제자의 깨달음 법문」과 관련해서 오늘 회향법문은 사리뿟따 존자의 덕목을 드러내는 일화로 설해드리겠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라훌라를 연유로 사미 제도가 생겼습니다. 라훌라 사미, 상낏짜 사미, 띳사 사미, 빤디따 사미 등 여러 유명한 사미들이 있는데 오늘은 그중 빤디따 사미와 관련된 일화입니다.
빤디따 사미는 사리뿟따 존자를 은사로 삼아 출가했습니다. 빤디따 사미가 출가한 뒤에 8일째 되던 날, 사리뿟따 존자는 시자인 일곱 살 난 빤디따 사미에게 발우와 가사를 지니게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게 한 뒤 완전히 정오가 지난 뒤는 아니지만 해가 좀 높이 떴을 때에서야 스승과 제자 두 명이 사왓티성으로 탁발을 나섰습니다.
빤디따 사미는 탁발을 가던 도중 논밭을 지나면서 중간에 있는 수로를 보고서 물었습니다.
“존자님, 이것은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물을 대기 위한 수로라고 부른단다, 사미야.”
빤디따 사미는 당시 일곱 살이었지만 지혜 바라밀이 있었기 때문에 이어서 다음과 같이 숙고하면서 물었습니다.
“존자님, 그러면 이 수로로 무엇을 합니까? 이것은 무엇을 위해서 만든 것입니까?”
“사미야, 이 수로로 논이나 밭에 물을 대어서 농사를 짓는 거란다.”
“존자님, 그러면 이 물에 마음이 있습니까?”
“없다, 사미야.”
“마음도 없는 물을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이렇게 끌어갈 수 있습니까?”
“지금 보는 대로 끌어갈 수 있지 않느냐. 그렇게 끌어갈 수 있다, 사미야.”
이렇게 대답을 듣자 빤디따 사미는 ‘이렇게 마음이 없는 물조차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가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각자 그 마음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겨나게 해서 사문의 법을 수행할 수 없겠는가.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숙고했습니다.
또 스승과 제자가 이어서 탁발을 가다가 이번에는 화살 만드는 장인들이 화살대를 불에 구워 눈으로 가늠하면서 바르게 하고 있는 것을 빤디따 사미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질문을 했습니다.
“존자님,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사미야, 화살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화살을 저렇게 만들고 있습니까?”
“불에 구워서 화살대를 지금 바르게 하고 있다.”
“존자님, 그러면 저 화살에 마음이 있습니까?”
“사미야, 화살에 마음은 없다.”
그러자 빤디따 사미는 ‘이렇게 마음이 없는 화살조차 불에 그을려서 바르게 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스스로 원하는 대로 생겨나게 해서 사문의 법을 수행할 수 없겠는가’라고 숙고했습니다.
스승과 제자가 다시 이어서 탁발을 갔고, 이번에는 목수들이 나무로 바큇살, 바깥바퀴, 바퀴 통 등을 깎아서 전체 바퀴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빤디따 사미가 또 물었습니다.
“존자님,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나무를 깎고 있구나, 사미야.”
“나무는 무엇 때문에 깎고 있습니까?”
“마차 등에 쓸 바퀴를 만들고 있구나.”
존자님, 나무에 마음이 있습니까?”
“사미야, 나무에 마음은 없다.”
*이미지 출처: https://www.what-buddha-said.net/files/pics/dhammapada_80.jpg
그러자 빤디따 사미는 동일하게 ‘이렇게 마음이 없는 나무조차 바퀴, 바큇살 등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스스로 원하는 대로 생겨나게 해서 사문의 법을 수행할 수 없겠는가’라고 숙고했습니다.
이렇게 숙고한 뒤에 빤디따 사미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존자님, 존자님의 발우와 가사를 존자님이 이제 직접 들고 가십시오. 저는 정사로 돌아가야 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장로였던 사리뿟따 존자는 ‘이제 갓 사미가 된 녀석이 뒤를 따라오다가 나에게 이렇게 시키다니. 나에게 이렇게 말하다니’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래, 사미야. 그러면 나에게 돌려다오”라고 말한 뒤에 자신의 발우와 가사를 받아서 스스로 지니고 탁발을 계속 나갔습니다.
거룩한 열의, 거룩한 숙고가 있는 빤디따 사미를 그 사미가 바라는 대로 잘 따라주는, 친절하게 하나씩 대답해 주는, 그리고 이렇게 허락해 주는 사리뿟따 존자의 행위는 매우 기억할 만하고 존경할 만합니다.
가치를 알아야 가치가 있습니다. 가치가 매우 높은 빤디따 사미를 그렇게 가치가 있게 여기고 수행하도록 잘 보살펴준 사리뿟따 존자의 마음가짐은 매우 존중할 만합니다. 빤디따 사미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탁발을 계속 나가야지”라고 하지 않고,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을 것을 알 수도 있었기 때문에 사리뿟따 존자는 그대로 잘 따라 주었습니다.
빤디따 사미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예경을 올린 뒤 정사로 돌아가면서 말했습니다.
“존자님, 저를 위해서 공양을 혹시 가져오시려면, 잉어고기 정도만 가져오시면 됩니다.”
아마 잉어찜 정도 됐을 것입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대답했습니다.
“잉어찜을 어떻게 얻는단 말이냐?”
이제 일곱 살 난 사미가 대답하는 것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존자님의 복덕으로 얻지 못한다면 저의 복덕으로 얻을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가십시오, 존자님”이라고 사미가 답했습니다.
웃을 일이 아니라 과거에 쌓은 복덕이 있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확신이 있다고 합니다. 빤디따 사미처럼 ‘저의 복덕으로 얻을 것이다’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미얀마에도 일화가 있습니다. 미얀마 중부 지방에 학문과 경으로 매우 유명한 뻐꼬꾸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 도시에 ‘세이시다이’라는 강원이 있는데, 그 강원 앞에 한 집은 강원 바로 앞인데도 비구 스님들에게 공양청도 하지 않고 비구들도 아침에 탁발을 그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민짠이라는 지방에서 머리에 부스럼이 있는 아홉 살 사미 한 명이 경을 배우러 이곳에 왔습니다. 스님들이 이 사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일 탁발 나가니까 우리하고 같이 가자. 탁발할 집들을 알려주겠다.”
“스님, 저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저 혼자 탁발 나가면 됩니다.”
“그냥 탁발 나가서 음식을 어떻게 얻으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딜 가도 쉽게 탁발을 얻습니다, 스님.”
그 다음 날 아침 탁발 시간이 되자 그 사미는 바로 강원 앞 한 번도 공양 올리지 않는 그 집에 가서 섰습니다. 그 집 안주인은 사미를 보더니 갑자기 밥과 반찬을 공양 올리고서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스님, 어디에서 지내며 공부하십니까?”
“저 앞에 강원에 공부하러 왔습니다.”
“계속 공부하실 겁니까?”
“네, 계속 공부할 겁니다.”
“그러면 스님, 제가 매일 음식을 충분히 마련해 드릴테니 아침마다 가져만 가십시오. 앞으로 힘들게 다른 곳으로 탁발나가지 마십시오, 스님.”
“알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스님들이 탁발을 나가려면 가사를 잘 두르고 맨발로 나가야 합니다. 이 안주인은 사미에게 그런 수고로움을 덜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날 탁발에서 돌아온 스님들이 사미에게 탁발해서 공양은 좀 얻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미는 그날 구한 음식을 보여드리며 “네, 스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음식을 본 스님들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오, 이렇게 좋은 공양을 어디서 얻었느냐?”
“강원 앞 바로 그 집에서 주었습니다.”
“아, 우리 비구들이 몇 년을 한참 지내도 그 집은 공양청도 한 번도 안 하고 탁발 가도 밥도 한 번도 안 올린 집이었다. 그런데 이 사미가 온 바로 다음 날부터 매일 이렇게 공양을 얻게 되다니 과거의 복덕이란 것은 확실히 있는 것이구나. 사미의 복덕이 크긴 크구나.”
다시 사리뿟따 존자와 빤디따 사미 일화로 돌아가서 사리뿟따 존자는 ‘사미가 혹시라도 밖에서 수행하다가 어떤 위험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면서 처소 열쇠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사미야, 밖에서 수행하지 말고 처소 안에서 수행하거라.”
빤디따 사미는 사리뿟따 존자가 당부한 대로 정사로 돌아가서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사용하는 처소 안으로 들어가 다섯 무더기, 분명한 물질·정신을 대상으로 위빳사나 관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빤디따 사미의 복덕으로 제석천왕이 앉는 홍옥보좌가 뜨거워졌습니다. 제석천왕은 ‘무슨 이유로 이 홍옥보좌가 뜨거워지는가’라고 둘러보았고 ‘빤디따 사미가 자신의 은사인 사리뿟따 존자에게 발우와 가사를 건네고 수행하려고 지금 정사로 돌아갔구나. 내가 그곳으로 가서 보호해 주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한 뒤 사대천왕 네 명을 불러서 “정사 주변에 있는 새들이 시끄럽게 하지 말고 모두 떠나도록 쫓아버리고 사방에서 빤디따 사미를 보호하라”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는 달을 관장하는 천신과 해를 관장하는 천신에게 “달과 해를 계속 가게 하지 말고 잠시 멈추게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빤디따 사미가 공양을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제석천왕 자신도 그 처소 열쇠 잠그는 곳에 보초를 서며 서 있었습니다.
미얀마 속담에 “사람 왕 복덕이 크면 천신 왕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사 전체가 조용해졌습니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빤디따 사미는 수행의 힘도 매우 좋아서 삼매도 금방 얻었습니다.
공양 시간이 되기 전에 위빳사나 지혜가 계속 향상되어 존재더미사견·의심·행실의례집착이 사라진 수다원,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많이 줄어든 사다함, 감각욕망 애착·분노가 완전히 없어진 아나함까지 됐습니다.
한편 계속 탁발을 간 사리뿟따 존자는 ‘사미가 처소 안에서 수행하고 있다. 사미에게 적당한 음식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숙고한 뒤 ‘후원하는 신도가 있지. 그곳에 가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신도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의 청신사, 청신녀는 그날 마침 잉어를 구해서 찜을 해 놓고 사리뿟따 존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오는 것을 보고 “존자님, 잘 오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얀마 혹은 빠알리어로는 “스님이 오신 것은 잘 오신 것입니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집으로 모시고 들어가서 죽과 음식 등을 올리고 주요리인 잉어찜도 올렸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신도 집에서 공양하지 않고 그대로 발우에 담아서 가지고 가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존자님, 공양하십시오. 가지고 가실 것은 저희가 따로 보시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공양을 마쳤을 때 존자의 발우에 잉어찜을 비롯한 여러 맛있는 음식 공양물을 가득 담아드렸습니다.
해가 아직 중천에 뜨지 않았지만 사리뿟따 존자는 자신이 공양하느라 시간이 늦어졌고, 사미가 아침 공양도 안 해서 매우 배가 고플 것이고, 만약 사미가 지금 공양을 못하면 오늘은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거룩한 상수제자 사리뿟따 존자가 서둘러서 빨리 정사로 돌아갔습니다. 제자 때문에 사리뿟따 존자가 서둘러서 돌아가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빤디따 사미가 복덕이 매우 큰 것입니다.
한편 부처님께서도 그날 미리 공양을 마치신 뒤 정사를 둘러보시다가 ‘빤디따 사미가 아라한이 될 업이 무르익었는가’라고 숙고하셨습니다. 아라한이 될 업이 무르익었다고 아신 뒤 ‘공양하기 전에 아라한이 될 것인가. 아니면 공양을 한 뒤에 아라한이 될 것인가’라고 숙고하셨고 ‘공양하기 전에 아라한이 될 것이다’라고 아셨습니다.
이어서 또 숙고를 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뿟따가 지금 자기 제자 사미를 위해서 공양을 가지고 서둘러서 오고 있다. 중간에 문을 열면 수행이 끊어져 사미에게 방해가 될 것이다. 내가 문 앞에서 보호하면서 잠시 서 있어야겠다. 그렇게 시간을 벌기 위해서 사리뿟따에게 질문을 할 것이고, 그 질문에 대해서 사리뿟따가 대답하면 그 시간 동안 빤디따 사미가 네 가지 분석지 무애해와 함께 아라한이 될 것이다’라고 아시고는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아신 대로 사리뿟따 존자가 서둘러 왔고 부처님께서는 오자마자 네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리뿟따여, 무엇을 가지고 왔는가?”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부처님. ”
“사리뿟따여, 음식은 무엇을 일으키는가(직역: 무엇을 이끄는가)?”
“음식은 느낌을 일으킵니다, 부처님.”
“사리뿟따여, 느낌은 무엇을 일으키는가?”
“물질을 일으킵니다. 부처님.”
“사리뿟따여, 물질은 무엇을 일으키는가?”
“물질은 접촉을 일으킵니다. 부처님.”
이 네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 빤디따 사미는 네 가지 분석지와 함께 아라한이 됐습니다.
“사리뿟따여, 이제 가거라. 그대의 사미에게 공양을 가져다주어라”라고 부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처소로 가서 문을 두드렸고, 이제 아라한이 된 빤디따 사미는 처소에서 나와서 시자의 의무에 따라 장로에게서 발우를 받아 적당한 곳에 놓고 야자나무 부채로 장로를 위해서 부채질을 해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미가 공양도 안 하고 지금 시간도 없는데 부채질을 하기 시작하니까 사리뿟따 존자가 “사미야, 공양부터 하거라”라고 말했습니다.
“존자님은 공양하셨습니까?”
“나는 벌써 마쳤느니라. 어서 공양하거라.”
갓 피어난 연꽃처럼 일곱 살 난 아라한 사미는 ‘이 공양은 행락을 위해서가 아니다’ 등으로 반조한 뒤 공양하기 시작했습니다.
빤디따 사미가 발우를 씻은 뒤에 적당한 곳에 치워 놓자 달 천신은 달을 놓아 주었고 해 천신은 해를 놓아 주었습니다. 사대천왕도 정사 사방에서 서던 보초를 그만두고 떠나갔습니다. 제석천왕도 열쇠 근처를 지키다가 떠났습니다. 해도 중천에 한참 머물다가 이렇게 천신들이 놓아 버리자 갑자기 오후가 돼버렸습니다.
이 일화에서 삼매가 좋으신 분, 아주 고요하게 지내시는 분, 조용조용하게 지내시는 분, 차분하게 지내시는 사리뿟따 존자가 제자를 위해서 음식을 서둘러 빨리 가져가는 모습을 접하면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것입니다. 평상시와 다른 사리뿟따 존자의 행동은 제자 빤디따 사미에 대한 큰 자애와 연민을 알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부처님의 교단이라는 큰 정원에서 빤디따 사미 같은 아주 작은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도록, 보호하고 돌보는 부처님과 사리뿟따 존자라는 훌륭한 정원사들은 잊을 수 없이, 이렇게 다 표현할 수 없이 매우 훌륭한 정원사들입니다.
빤디따 사미가 아라한이 되는 데 몇 분이 동원됐습니까? 거룩하신 부처님, 사리뿟따 존자, 제석천왕, 사대천왕 네 분, 달 천자, 해 천자, 총 아홉 분입니다.
『빳타나』에 보면 ‘아주 강한 의지 조건upanissayapaccay’, 즉 아주 크게 영향을 미치는 조건에 ‘사람도 강한 의지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처럼 부처님과 사리뿟따 존자 등 아홉 분이 빤디따 사미가 아라한이 되는 데 강한 의지 조건이 됐습니다.
「상수제자의 깨달음」 법문이 계속 어려운 법만 있고 일화도 없어서 마지막 회향 법문은 빤디따 사미가 아라한이 되는 것과 관련해서 사리뿟따 존자의 덕목, 부처님께서 보호하시는 모습 등을 설해드렸습니다. 이 내용은 『법구경 주석서』에 있고(Dhp. 80), 이렇게 다시 정리한 내용은 미얀마의 사마네쬬 사야도의 법문을 인용해서 법문해 드렸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출처] [2021년 2월 정기법회 관련] 사리뿟따 존자와 제자 빤디따 사미 (한국마하시선원) | 작성자 한국마하시선원
첫댓글 사두사두사두
질문에 물질은 느낌을 .느낌은 물질을 일으킵니다 라는답에 전율이.흐릅니다
빤디따 사미의 아라한이 되기까지 동원된 인물이 아홉분이셨다는건 복덕이 많으시다는거.에 감동입니다
제가 존경하신 샤마네죠 사야도님까지 등장하셔서 아주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사두 사두 사두 ~~^^
고맙습니다
사두사두사두~ 법문 잘 읽었습니다.
한국불교 전통법문처럼이나, 미안마 불교의 전통법문은 미안마 큰스님들께는 많이 보유되어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우리나라 테라와다 불자들 또한 이러한 훌륭한 법문들을 자주자주 접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새기고 읽혀두시면
아주 좋으리라 여겨집니다. 직접 프렉티스 와 함께...
아주 오래전 또다나 사야도 모시고 우면산 산행 때의 사진 한점 첨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