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영화 ‘가족의 탄생’에 대한 소고)
‘가족’이라는 말을 들을 때 퍼뜩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따뜻함, 포근함, 사랑... 이런 건가요? 아니면 귀찮음, 짜증... 이런 건가요?
폭력, 내 인생의 짐... 뭐 이런 걸 수도 있겠지요.
긍정적인 단어 군과 부정적인 단어 군이 뒤섞여 있을 겁니다. 부정적이라고 해서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뭐... 어쨌거나 가족은 참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그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특별한 영화 한편이 있습니다. '
여고괴담2'의 메가폰을 잡았던
김태용 감독이 만든 '가족의 탄생'입니다. 흥행은 그리 시원찮았기에 내용을 잠깐 소개합니다. 세 가족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가족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분식집을 하는 노처녀 누나(
문소리)에게 군대 제대 후 몇 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애인과도 같은 남동생(
엄태웅)이 찾아옵니다. 문밖에는 ‘엄마’라고 불러도 좋을 듯한 ‘무신 씨’(고두심)라고 부르는 여자가 수줍은 얼굴로 서 있습니다. “누나, 나 결혼했잖아.” 어색한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한 여자아이가 나타납니다. “아, 얘는 무신 씨의 전남편의 딸인데, 무신 씨가 낳은 건 아니고...” ‘무신 씨’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려 하지만 누나는 그들을 붙잡습니다.
두 번째 가족입니다.
딸(
공효진)은 ‘그 나이 먹도록’ 사랑만 쫓는 엄마(김혜옥)가 지긋지긋해서 혼자 나와 삽니다. 엄마의 끊임없는 연애질(?) 때문에 항상 뒷전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엉겨 붙는(?) 엄마, 그리고 엄마가 웬 유부남 아저씨와 연애해서 낳은 어린 남동생을 피해 일본으로 뜨는 겁니다. 이제 겨우 일본에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죽고 어린 남동생은 자신의 몫이 됐습니다.
기차에서 두 젊은 남녀가 눈이 맞습니다. 남자는 소심합니다. 여자는 활달하고 정이 넘쳐 누구에게든 퍼주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소심한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한 그녀가 못마땅해 이별을 선언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화해 비슷한 걸 하게 되고 고향집으로 가는 그녀의 기차여행에 동행합니다. 고향집에서 여자는 ‘무신 씨’의 어린 의붓딸이고 남자는 일본행을 포기한 딸의 씨 다른 동생이라는 게 드러납니다. ‘무신 씨’와 ‘누나’는 자신들의 딸과 그녀의 남자친구를 반깁니다. 여기서 세 번째 가족이 탄생합니다.
평범한 가족의 모습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 가족의 모습은 그러나 사실은 너무나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입니다. 끈끈하다 못해 징글징글한 인연의 실타래, 그래서 운명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묶임 말이죠. 가족 구성원의 어느 한 사람도 소외 되지 않는, 비록 핏줄로 연결되지 않았어도, 너와 나는 별개의 인간이지만, 하나의 이름으로 묶였을 때 가슴이 벅찬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집합체, 가족 말입니다.
새삼 말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가족의 탄생’입니다. 처음부터 혈연으로 묶였던 가족이었지만 이들은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인생은 관여하기 싫은 짐 같은 것이었고, 가족이라는 이름은 벗어나고 싶은 굴레일 뿐입니다. 서로의 진심을 알았을 때, 속마음과 속마음이 하나의 전선으로 연결돼 전류가 흐르듯 하나의 광선이 이들의 가슴을 관통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족은 탄생합니다.
두 번째 가족의 딸이 죽은 엄마가 남긴 가방 속에서 엄마의 진심을 발견했을 때, 세 번째 가족이 함께 TV 앞에 앉았을 때, 다시 말해 가족이 탄생하는 순간 감독은 판타지적 장면을 통해 이들에게 따뜻한 축하와 격려를 보냅니다.
‘가족’은 사실 영화의 단골 소잽니다. 스필버그의 주제는 언제나 가족애였고, ‘가족’이라는 조폭영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가족의 탄생’은 지금껏 우리가 봐온 가족 영화의 지경을 한꺼번에 뛰어넘는 경이로움을 선사합니다. 안 본 분들은 꼭 보시기 바랍니다.
‘괴물’도 가족을 다룬 영?니다. 곧 개봉할 ‘천하장사
마돈나’도 가족에 대해 또 다른 접근을 보여줍니다.
‘괴물’의 가족은 앞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엔 ‘천하장사 마돈나’를 중심으로 가족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것은 ‘나’입니다. 그렇죠?
(성장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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