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名 - 名實과 名分 -
만인유명(萬人有名)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기 고유의 이름이 있다.
이 세상에 제 이름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나의 이름은 나의 존재와
나의 인격을 표시한다. 우리는 저마다 천상천하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세계의
유일자(唯一者), 우주의 단독자(單獨者)로 이 무변광대(無邊廣大)한 대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 존재는 한없이 소중하고 내 생명은 더할
수 없이 존귀하다. 천하만물 중에서 인간의 생명처럼 존엄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이름을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한문에서는 이것을 자중자애(自重自愛)라고 하고, 자존자경(自尊自敬)이라고 한다.
그와 반대로 자기자신을 업신여기고 멸시하고 학대하는 것을 자학자멸(自虐自蔑)
이라고 하고 자모자비(自侮自卑)라고 한다.
네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라. 네 이름 석자에 오점을 찍지 말라.
죄악과 부패와 추행으로 네 이름을 추악하게 만들지 말라.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중국의 선철(先哲) 왕언장(王彦章)의 말이다.
"표사유피 인사유명(豹死留皮 人死留名)" 동물의 가죽 중에서 가장 선명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표범의 가죽이다. 인간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자기의 이름을 남긴다. 더러운 이름은 오명(汚名)이요, 추한 이름은 추명(醜名)이요,
악한 이름은 악명(惡名)이요, 허망한 이름은 허명(虛名)이다.
세상에 이런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아름다운 이름은 美名이요, 고귀한 이름은 高名이요, 훌륭한 이름은 英名이요,
성대한 이름은 盛名이요, 향기로운 이름은 방명(芳名)이요, 용감한 이름은 勇名이요,
높이 들어 난 이름은 저명(著名)이요, 위력을 떨치는 이름은 威名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름을 남겨야 한다. 물려주신 이 소중한 생명을 애지중지 잘
보존하는 동시에 올바른 뜻을 세우고 바른 길을 걸어, 입신양명(立身揚名),
세상에 훌륭한 이름을 남기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극치(孝道極致)라고
공자는 갈파했다. 이것이 효의 논리다.
子曰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孝經)
명진사방(名振四方), 자기의 이름을 널리 세상에 떨치고, 명전후세(名傳後世)
자기의 이름을 후세에 오래 전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인간은 누구나 명예욕이 있다. 세상에 명예욕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명예욕이 있기 때문에 저마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한다.
명예욕은 인간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요, 사회를 발전시키는 추진력이다.
무명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유명인이 되기를 원한다.
자기의 이름 석자에 '名'字가 붙기를 원한다. 학자가 되면 名敎授가 되고 싶고,
의사가 되면 名醫가 되고 싶고, 임금이 되면 名君이 되고 싶고, 서예가가 되면
名筆이 되고 싶고, 가수가 되면 名唱이 되고 싶고, 배우가 되면 名優가 되고 싶고,
야구선수가 되면 名投手가 되고 싶고, 중이 되면 名僧이 되고 싶고, 장인匠人)이
되면 名匠이 되고 싶다.
일찍이 춘원 이광수는 우리에게 名人主義를 강조했다.
저마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名人이 되자는 것이다.
名人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一일심불란(心不亂)의 자세로 십년적공(十年積功)을 해야 한다.
백련천마(百練千磨)의 정신으로 자기 일에 다년간 정성과 정열을 쏟아야 한다.
名人은 피와 눈물과 땀의 산물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말이 있다. 이름이 널리 퍼진다는 것은 그만한 실력과
노력과 實실적 있었기 때문에 퍼지는 것이다. 명성과 이름은 결코 헛되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名實相符', '名實兼備', '名實雙全', '名實兼全'이라는 말이 있다.
대학교수라는 이름(名)을 가졌으면 교수다운 인격과, 교수다운 實실력, 교수다운
교양과, 교수다운 자질과, 교수다운 권위와, 교수다운 품위를 가져야 한다.
名이 있으면 반드시 그 名에 부합하는 實相과 實力과 實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명싱상부하는 교수가 될 수 있다. 교수다운 實力과 實踐과 實相이 없으면
나는 유명무실한 교수로 전락한다.
아버지라는 名을 가졌으면 아버지다운 人品과 資質과 權威와 品位가 있어야 한다.
名과 實이 둘 다 완전한 것이 쌍전(雙全)이요, 겸비(兼備)다. 유명무실, 名만 있고
實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자격부족이다. 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實이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유명무실이 너무나 많다.
名만 요란하고, 實이 빈약하다. 외화내허(外華內虛),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비고
허망하다. 유명무실은 한국사회의 중병이다. 우리는 有名有實, 名과 實이 서로
부합하는 건전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名分'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뜻이 깊은 말이다. 名이 있으면 반드시 그 名에
상부상응(符相應)는 본분과 책임과 의무가 수반(隨伴)되어야 한다. 인생에서
본분과 직분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本分이란 무엇이냐. 사람이 마땅히 지키고
실천해야 할 職分이요, 義務요, 道理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本分과 職分이 있다. 인간은 責任的 存在요, 職分的 存在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날마다 자기의 職分을 다하고 本分을 수행(遂行)하는 것이다. 네 本分을
지키어라. 네 職分을 다하여라. 이것이 인간의 실천논리의 근본이다
. 눈의 職分은 사물을 보는 것이요, 귀의 職分은 소리를 듣는 것이요, 입의 職分은
말하고 식사하는 것이다. 신체의 각 기관이 자기의 職分을 수행하지 못하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生이란 무엇이냐. 職分의 遂行이요, 本分의 완수(完遂)다.
그러므로 儒敎는 大義名分을 가장 강조한다. 大義名分이란 무엇이냐.
사람이 人倫的 存在로서 道德的 주체로서 마땅히 지키고 行해야 할 義務와
本分과 職分과 道理다.
孔子의 수제자의 한 사람인 子路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번에 위(衛)나라에 가시게 됩니다. 만일 위나라의 임금님이
선생님에게 정치를 맡기시면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子曰 必也正名乎(論語 子路篇)
"반드시 名分을 밝히는 것부터 하겠다."라고 孔子는 대답했다.
正名은 孔子思想의 核心原理요, 儒敎의 根本理念의 하나다.
正名이란 무엇이냐. 名分을 바로 잡는(正) 것이요, 명분을 밝히는 것이요,
명분을 遂行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맡은 本分과 責任과 道理를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正名思想 근본이다. 지극히 평범한 말이지만 正名은 인간의 중요한
생활윤리요, 실천도덕이다.
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臣臣父父子子
논어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孔子의 이 유명한 말은 正名思想을 가장 간결명료하게 설명한 것이다.
제(齊)나라의 경공(景公)이 孔子에게 "정치를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었을 때 孔子는 지극히 평이한 말로 이렇게 대답했다.
"임금님은 임금님 구실을 잘 하고, 신하는 신하노릇을 잘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구실을 잘 하고, 아들은 아들 노릇을 잘 하면
수신제가(修身齊家)가 잘 되어 나라는 저절로 잘 다스려진다."
정치의 根本原理는 결코 먼 데 있는 것도 아니요, 어려운 것도 아니다.
사회의 구성원인 국민 각자가 자기의 本分과 責任과 道理를 다하면
治國은 잘 될 수 있다.
道在爾 (孟子 離婁上)
일찍이 孟子는 "길은 가까운 데 있다"라고 말했다. 爾는 가까울 이 字다
. 邇와 같은 뜻이다. 道와 眞理는 먼 데 있는 것도 아니요, 높은 데 있는 것도 아니다
. 가까운 데 있다. 우리는 道와 眞理를 고원(高遠)한 데서 찾지 말고 매일 매일의
비근(卑近)한 일상생활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옛날의 先哲은 이렇게 말했다.
平常心是道.
우리는 道와 眞理를 평상시의 마음, 평상시의 생활에서 찾아야 한다.
날마다 성실한 마음으로 자기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고 직분과 도리를 다하는 생활,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