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군 죽도(竹島)
소재지 : 경북 울릉군 울릉읍 죽도길 52
요약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에 위치하는 울릉도의 또 다른 섬으로 면적은 207.9m2, 높이는 106m이며 인구는 1가구, 2명이다. 울릉도 부속섬 중 가장 큰 섬이다.
면적 : 207.9m2
높이 : 106m
인구 : 2명(1가구, 2021년 기준)
목차
죽도 개요
죽도 둘러보기
죽도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죽도와 어울리지 않는 피아노와 컴퓨터
죽도 노총각 결혼하다.
죽도 개요
죽도는 경북 울릉군 북면에 딸린 섬으로 면적 207.9m2, 높이 106m이다. 저동항에서 북동쪽으로 4km, 도동항에서 7km 떨어진 해상에 자리잡고 있다. 울릉도 부속섬 중 가장 큰 섬으로,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대섬, 대나무섬 또는 댓섬이라고도 한다. 1가구 2명이 살고 있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 위에 평평하게 수평을 이루면서 직육면체 모양을 나타내며, 절벽은 여러 가지 형태의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져 있다.
죽도에는 한때 4가구 30여명이 살았지만, 전기가 없는 등 생활 불편으로 주민 대부분이 본섬으로 이주했다. 울릉도의 부속섬인 죽도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지난 2006년 2월의 일이다. 풍력 및 태양광 복합발전시스템을 완공하여 불을 밝힌 것인데 전기공급을 계기로 그동안의 불편이 해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의 숙식도 가능하게 되었다.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꼭 한 번씩 들렀다 가고 싶은 곳이지만 정기선은 없는 실정이다.
물이 항상 부족하여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식수로 사용한다. 집 앞에 커다란 물통이 여러 개가 놓여있는 모습은 죽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섬 풍경이다. 죽도는 수직에 가까운 절벽 위에 평평하게 수평처럼 직육면체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울릉군은 1993년 관광개발사업에 착수하기 위하여 선착장 형태를 만들고, 유일한 진입로에는 나선형의 달팽이 계단을 건설하였다. 이 나선형 계단의 숫자는 무려 364개에 이른다. 섬 안에는 쉼터 2곳과 전망대 2곳, 야영장, 피크닉장, 헬기장, 향토음식점, 낚시터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전망대에서는 경관이 빼어난 울릉도 북동 능선과 절벽, 관음도, 삼선암을 볼 수 있다.
특산물로는 단맛이 많이 나는 수박과 더덕, 울릉도에서만 나는 산마늘(명이)과 초지에서 방생하여 키운 약소 고기가 있다.
죽도 둘러보기
필자는 1994년도에 울릉도를 방문하여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천부령 고개를 넘어서 태하 마을 등 골고루 둘러 볼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독도와 죽도는 가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2006년도에 두 번째 탐방에 나섰다. 날씨가 좋아서 독도에도 상륙하고 답사를 했지만 저동 바로 앞에 있는 죽도는 방문할 길이 없었다. 관광선은 손님이 없다고 가지 않고 단독으로 사선을 빌려야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참 난처한 입장이었다. 그래서 울릉군수를 찾아가서 명함을 내밀고 사정 이야기를 하였더니 조사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여 죽도를 돌아 볼 수 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선착장에 닿자마자 나선형으로 된 364층계를 돌고 돌아 죽도에 올라갔을 때 땀이 옷을 적셨다.
죽도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언덕 위에 위치한 하얀 집에는 김유곤씨 부자가 살고 있었다. 6년 전에 어머니는 산나물을 캐다가 절벽에서 추락하여 그만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필자가 방문한 그 날 아버지는 더덕 농사를 짓기 위하여 경운기로 부지런히 땅을 갈고 있었다. 김유곤씨는 울릉도로 외출 중이어서 만나지 못하였다. 그때 열심히 쟁기질을 하던 아버지도 몇 년 전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나중에 소식을 접하였다. 지금도 죽도를 무인도로 남겨 둘 수 없다면서 혼자 섬을 지키는 김 씨는 삼십대 중반의 노총각이었다.
그는 더덕을 직접 생산하여 울릉도에 내다 팔아 생활한다. 부모님이 50여 년 전에 죽도로 이사 와서 아들 두 명, 딸 다섯을 낳았다.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면서 찾아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농산물을 파는 등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한다.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딸들은 모두 육지로 출가를 하고, 작은 아들도 공무원이 되어 본섬인 울릉도로 나갔다. 김씨는 섬에 남아 아버지와 함께 더덕 농사를 지으면서 아버지와 단 둘이서 살다가 결국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혼기를 놓친 김유곤씨의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5부작 프로그램인 ‘인간극장’에 방영되었다. 무공해 순수 총각의 섬 생활이 알려지자 수많은 대중매체들은 그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부자의 섬’이란 제목으로 제작 ·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파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섬 생활의 단절과 교통의 불편함과 적막함은 가려지고 아름답고 낭만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때문에 TV를 보고 섬 생활을 동경한 각지의 미혼여성들이 죽도를 찾아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하지만 편리함과 문명에 길들여진 여성들의 꿈은 그야말로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결혼을 전제로 여러 차례의 만남을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결실은 맺지 못하였다. 죽도에 살고 있는 아들과 아버지를 한 편의 소설처럼 낭만적으로 그려 놓았지만 실상 농촌보다 더 힘들고 적막한 곳이었다.
해가 뜨면 날마다 수천 평의 더덕밭으로 나가서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한다. 해가 지면 다른 사람은 없고 오직 어둠과 파도소리만 들린다. 별장 같은 낭만적인 섬의 생활을 꿈꾸고 섬을 찾은 여성들은 현실과 이상을 두고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죽도는 때 묻지 않은 섬이다. 무엇보다도 이 섬을 지키고자 한 노총각의 품성은 더 없이 순수하다. 이들은 매년 더덕농사를 마친 후 12월이면 파도가 거센 섬을 떠나 구미로 거처를 옮기고 살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죽도로 들어간다. 여름철이면 관광성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도를 찾을 것이다. 그때 김씨의 일손이 바빠지면서 손님을 맞이한다. 독도에 주민등록 인구가 계속 늘어난 것처럼, 죽도에도 주민등록상이라도 인구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죽도와 어울리지 않는 피아노와 컴퓨터
울릉도의 부속섬인 죽도에는 김유곤씨가 혼자 섬 지킴이를 자처하면서 평생을 살아오고 있다. 학창 시절과 군대 시기를 제외하면 30년간 이 섬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곳을 떠나왔어도 되는데 자신마저 이 섬을 떠나 버리면 죽도는 무인도가 되기 때문에 지금도 혼자서 이 섬을 지키고 있단다. 죽도를 방문하여 김씨의 집을 찾았다. 거실에는 피아노 한 대와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틀림없이 피아노는 장식품이고 인터넷은 들어오지 않고 usb를 통해 컴퓨터를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지없이 그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육지와 유일한 소통은 인터넷이며 혼자 일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틈틈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서 즐긴다고 했다. 이 피아노는 본섬인 울릉도에서 홀로 자취하면서 공부할 때 아들을 위하여 어머니가 선물해 준 것이다. 학업을 다 마치고 다시 죽도로 건너오면서 가져왔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피아노를 배우지 못하여 전문가들처럼 연주 실력은 안 되지만 악보가 있는 노래는 혼자 부르면서 건반을 두드리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사람이 올라가기에도 벅찬데 이 절해고도의 거실에 피아노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피아노의 운반은 일반선이 아니라 바지선에 싣고 와 선착장에 내려놓은 후, 백 미터가 넘는 산 위로 도르래를 이용해 끌어올려서 집까지 운반했다고 한다. 그 피아노는 장식품이 아니라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사람이 그립고 때로는 한 달 가까이 사람을 만나지 못해 너무 외롭기 때문에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피아노를 수시로 치는 게 유일한 낙으로 변하였다. 그러던 중에 2013년 6월 1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아내 윤정희(배우)를 데리고 죽도에 들어가 이곳에 사는 김씨를 위하여 특별한 피아노 연주를 해주었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였다.
백건우 선생은 김씨에게 듣고 싶은 노래가 무어냐고 물었고, 김씨는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애창곡인 미국민요 ‘매기의 추억’이라 답했다고 한다. 백건우씨 피아노 연주로 ‘매기의 추억’을 들은 김씨는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다”면서 “평생 자녀들을 위해 고생만 하시다가 가신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 너무 생각난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백건우 선생이 그토록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줄 몰랐다고 했다. 김씨는 피아노 연주에 감동을 받아 감탄사를 거듭했다. 연주가 끝난 다음 김씨는 백 선생 부부를 위하여 바다의 게를 우린 국물로 라면을 끓이고, 고추장을 바른 생더덕을 대접했다. 연주를 마친 백 선생 부부가 죽도 선착장을 떠날 때 혼자서 쓸쓸히 손을 흔들었다.
백건우 선생은 2010년 북한이 연평도에 포탄을 쏜 후 1년이 지난 다음 연평도를 찾아 콘서트를 하고, 울릉도를 찾아와 연주회를 앞둔 상황에서 단 한 사람이 사는 죽도에 잠시 와서 피아노 연주를 한 것이다. 백건우 선생은 2013년 6월 3일 울릉도 주민들을 위해 재능 기부를 했는데 ‘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공연도 그 중 하나였다. 쇼팽의 ‘야상곡’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그리고 리스트의 ‘베네치아와 나폴리’등 주옥같은 피아노곡을 이곳 울릉도 주민들에게 선사했다. 그 외에도 통영의 욕지도와 사량도 등 섬을 찾아다니면서 문화에 굶주린 그들의 정서를 어루만져 주었다고 한다.
죽도 노총각 결혼하다.
지금까지 노총각으로 살던 죽도의 김유곤씨가 신문에 나왔다. 죽도에서 태어나서 혼자 더덕 농사를 짓는 노총각 김유곤씨가 2015년 2월 8일, 대구 신천동 샹제리제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신부는 대구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이윤정씨이다. 이들은 지인의 소개로 10년 전 만난 다음, 서로 잊고 살다가 지난해 연말 다시 만나 호감을 가지면서 드디어 결혼에 골인한 것이다. 이날 결혼식은 양가 가족ᆞ친지들과 친구들, 김관용 경북도 도지사를 비롯한 경북도청 실국장 등 하객들의 축하 속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김 지사는 신랑 김씨가 울릉도의 부속섬인 죽도를 평생 홀로 지키면서 살아온 강한 의지의 사나이라고 소개한 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신부 이윤정 씨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은 하늘이 내려준 최대의 선물”이라며 “죽도에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 달라”고 덕담을 건넸다. 신랑 · 신부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추위가 풀리는 3월 말이 되면 죽도에 들어가 신혼살림을 차릴 예정이란다.
울릉군 죽도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