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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군대의 철새같은 신세
유비의 고향인 유주의 탁현으로 가려면 스승인 노식 장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광종을 지나가야 한다.
광종을 눈앞에 둔 어느 산모퉁이를 지나려니 문득 고개 너머에서 요란스런 함성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세 사람은 말을 멈추고 군사들과 함께 귀를 기울였다.
"와아... 와아..."
고개 넘어 들리는 함성소리는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장비! 자네가 얼른 알아보고 오게."
"넵, 금방 알아보고 오죠!"
조금 전까지 침울했던 장비가 별안간 신바람을 내면서 언덕위로 말을 달려 올라갔다.
그러더니, 건너편 언덕 아래를 뚫어져라 바라 보던 장비가 말을 달려 불같이 달려오며 외친다.
"형님들, 큰일났소이다.
광종 방면에서 관군들이 형편없이 도망쳐 오는데, 그 뒤에는 황건적 총수인 장각의 대현량사(大賢良師)라는 깃발을 치켜 든 적들이 관군을 맹렬히 추격해 오고 있소.
이대로 가면 관군이 전멸하게 될 것 같구려."
하고 본대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 유비와 관우의 얼굴
에는 돌연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그러면 광종의 관군이 장각에게 참패를 당하는 모양인가?
죄없는 노식 장군이 낙양으로 붙들려 가는 바람에 적들이 그 기회를 노려서 총공격을 가하는 모양일세 그려!"
유비는 칼집을 움켜잡으며 탄식하였다.
"형님 ! 어떡하시렵니까?"
관우가 유비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관군이 황건적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자, 이제 우리가 나가서 싸워야 할 때인 것 같네..."
유비는 그렇게 대답을 하기 무섭게 군사들을 향하여,"전군은 즉각 전투 태세를 갖추고 총진군하라!"
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천 오백명에 달하는 유비군은 기마병을 필두로 언덕 위를 향하여 구름떼처럼 치달아 올랐다.
그리하여 산상에서 살펴보니 관군과 황건적이 한덩어리로 엉클어져 격전을 벌이는데,
그중에 <천공장군(天公將軍)>이라고 쓴 깃발이 눈에 띠었다.
"저놈이 장각이구나! 우리도 빨리 내려가 저놈들을 무찌르자!"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군사를 휘몰아치며 말을 달려 싸움터에 뛰어들었다.
북소리.
징소리.
꽹과리소리.
쫒고 쫒기는 고함소리에 아우성소리.
유비의 쌍고검이 번쩍번쩍!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휘잉휘잉!
장비의 장팔사모가 이리 번쩍 저리 번쩍!
무기가 번쩍거릴 때마다 황건적 무리가 수없이 거꾸러진다.
이렇게 유비, 관우, 장비가 앞장을 서서 생사를 무릅쓰고 날쌔게 싸워대니 휘하의 군사들도 용기 백배하여 적들을 닥치는 대로 후려 갈긴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적장 중에 대장인 듯한 한 놈이 다급히 소리를 치는데,
"관군의 수많은 원군이 나타났다! 빨리 후퇴하라! 빨리 빨리 ...!"
이렇게 관군을 맹렬하게 추격해 오던 황건적들은 유비군의 벼락같은 공격을 받고 오십 리 뒤로 황급하게 패주하고 말았다.
유비, 관우, 장비는 그제서야 무기를 거두며 싸움을 그쳤다.
적의 사상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유비군의 사상자는 거의 없는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관군의 대장 동탁은 사지에서 구출되었다.
동탁은 진지로 돌아와 부하들에게 물었다.
"산상에서 우뢰와 같이 쏟아져 내려
와 우리를 도와 준 군사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군사들이냐?"
"어디서 온 군사들인지 저희들도 잘 모르옵니다."
"그들의 정체를 아무도 모른단 말이냐? 그러면 내가 직접 알아볼 테니, 대장을 이리로 불러들여라."
유비는 동탁 앞에 불려 나왔다.
"오, 당신이 지휘관이오? 위험한 순간에 나타나 구해 주어서 고맙소이다.
그런데 그대와 그대의 두 장수는 어디서 무슨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오?"
동탁은 유비를 보자 고마워 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유비는,
"저희들은 아무 벼슬도 없는 평민입니다. 탁현 누상촌에서 황건적으로 인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자 뜻있는 동지들이 모여서 만든 의용군입니다."
"뭐라고? 그럼 잡군(雜軍) ...?"
유비의 말을 듣는 순간, 동탁의 얼굴에는 실망의 빛과 함께 냉소의 기색이 뚜렸하게 번졌다.
"아무튼 좋아. 잡군치고는 아주 잘싸웠다.
앞으로 우리 군을 따라
다니면서 공을 세워준다면 후하게 대접하겠다."하며 동탁의 태도는 그때부터 매우 달라졌다.
이렇게 말한 동탁의 자(字)는 중영
(仲潁)으로 농서 임조(臨兆)태생으로 벼슬은 하동 태수(河東 太守)를 지내
다가 노식을 대신하여 중랑장에 발탁된 자로서 몸이 비대하고 천성이 게이르고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천성이 오만하기로, 황건적의 공격으로 다 죽게 된 목숨을 살려주고 큰 전공을 세운 유비군을 이렇게나 천대할 수가 있을까?
"형님을 보고 뭐라고 합디까?"
유비가 매우 불쾌한 안색으로 진중에
서 나오자, 장비가 다가오며 묻는다.
"우리더러 지금 무슨 벼슬을 하냐고 묻더군."
"그래서 뭐라고 했소?"
"아무 벼슬도 없는 평민이라고 했지."
"그러니까 뭐래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면서 나가 있으라고 하더군."
"뭐요? 다 죽어가던 제놈 목숨을 살려 준 사람이 누군데, 고맙다고 발밑에 없드려 눈물을 흘려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그놈이 우리를 그렇게나 홀대 하다니 말이나 되는 수작이오?"
"...."
유비도 내심 무척 괘씸하게 생각하였다.
그러자 장비는 더욱 화를 내면서,
"형님! 우리가 죽기로 싸워서 겨우 살려 주었는데,
그자가 그렇게 나온다면, 아예 내 손으로 그놈을 죽여 없애리다!"
장비가 칼을 뽑아들고 진중으로 달려 들어가려는 것을 유비가 얼른
가로막았다.
"형님! 비키시오. 이젠 정말 못 참겠
소.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대접을 받으란 거요?
관군이라면 다야? 의용군은 사람도 아니라는 거야 뭐야!"
"이 사람아! 왜 이러는가? 동탁이 사람은 돼먹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명으로 내려온 중랑장이 아닌가."
"그러니 어쨌다는 말이오? 공을 세우고도 상을 못 받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우리를 무시하는 저런 놈은 가만 둘 수가 없소!"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지
만 우리가 천자에게 반기를 드는 것
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분하지만 참아 주게!"
"관우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나도 현덕 형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네.
비위에 거슬린다고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야 세상이 제대로 되어 가겠나.
나도 자네만큼 분하지만 참아 두기로 하겠네."
"나 원 참, 형님들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소. 두 분 형님이 기어코 그러신다면 나는 차라리 다른 데로 가버리고 말겠소."
그러자 유비는 얼른 장비를 끌어 안고, 등허리를 정답게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이보게 아우! 우리가 생사를 같이
하기로 천지신명께 함께 맹세를 올렸는데,
자네가 우리를 떠나겠다니 말이 되는가? 나도 여기 머물러 있을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 우리 다 함께 이곳을 떠나세." 세 사람은 즉시 동탁의 진지를 떠났다.
어디를 가나 싸움은 무섭게 싸워 이기면서도 아무런 공명도 남기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가는 곳마다 관군을 도와 기사회생의 전공을 세우면서도 누구 하나 알아주
는 사람이 없는 방랑길의 의병대였던 것이다.
(그래도 천지신명만은 우리의 대의를 알아 주시겠지!)
유비는 군사를 거느리고 광야를 지나면서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느덧 가을이 왔는지, 저물어 가는 하늘에는 기러기 떼가 줄지어 날아
가고 있었다.
유비, 관우, 장비는 자기네의 신세가 노을지는 가을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 떼와 같아 보여서, 창공을 우러러보며 한숨을 지었다.
삼국지(三國志)제17편
※ 철문협(鐵門峽) 戰鬪 (上)※
일행은 며칠 만에 황하를 건넜다.
유비는 오륙년 전에 차를 구하러 왔을때에 처음으로 구경한 황하였다.
황하의 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이렇듯 천만 년의 대자연은 조금도 변함이 없건만, 백 년도 채 못사는 사람의 인생에는 너무도 많은 파란만장한 일들이 벌어진다.
(아아! 세상만사를 모두 접어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늙으신 어머니나 봉양하면서 살아갈꺼나?)
필부야인(匹夫野人)으로 구국제세(救國濟世)를 꿈꾸며 오백여 명의 의용군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온 것이 이제는 어리석게만 여겨졌다.
한편, 지난번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한 번 다녀온 바 있는 주전 장군이 악전고투하고 있는 영천에서는 황건적의 지공장군 장보(地公將軍 張寶)의 10만 대군과 연일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라, 주전은 군막 밖에서 넓은 황야를 바라보며 큰 걱정을 하였다.
(또 패했구나! 싸울 때마다 지기만하니 이러다가는 좌천(左遷) 될 지도 모르겠다...!)
그때, 멀리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연락병이 있었다. 그는 말을 내리기가 무섭게 주전 앞에 무릅을 꿇어 세우며 보고를 한다.
지레 짐작을 한 주전이 침통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또 나쁜 소식이냐?"
"아니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듯 급히 달려왔느냐?"
주전은 눈살을 찌프려가면서 물었다.
"의용군 대장 유비 장군의 병력이 우리 진지 외각을 지나고 있어보고 드리옵니다."
"무엇이? 의용군 천 오백 명으로 황건적을 몰아냈던 그 유비 말이냐?"
"그렇습니다. 여기저기서 황건적들과 싸우다가 이곳을 지나 유주 탁현으로 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 부장, 소평(蘇平)
은 어디 있느냐? 소평 말이다!"
주전은 자신의 부장(副將) 소평을 급히 찾았다."
"불러 계시오니까?"
"그래, 자네는 부하 몇을 데리고 유비군이 행군하고 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가서 유비 장군을 이곳으로 정중히 모셔오도록 하라!"
주전의 명령을 받은 부장 소평은 부하 너댓을 거느리고, 연락병을 앞세우고 급히 말을 몰아갔다.
(휘유, 다행이다. 때마침 잘 왔다... 이런 싸움에는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고 덤비는 놈들이 필요하지...)
"어이구 유비 장군 마침 잘 와 주었소!"
주전이 유비를 대하는 태도가 지난번과는 여간 딴 판이어서
모두가 놀랄지경이었다.
"지나는 길에 들렀습니다."
그러나 유비의 태도는 언제나 공손했다.
"장군은 물론이고 두 아우님 장군들도 모두 여기저기서 황건적들과 싸우느라고 고생이 많으셨소.
군사들에게도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하라고 일렀는데, 소홀치나 않은지 모르겠소..."
"융숭한 대접에 제가 거느린 군사들이 매우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
유비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거느린 군사에게 푸짐한 술과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관우, 장비와 함께 크게 놀란바 있었으나, 자신은 관우, 장비 두 동생들과 함께 인사차 주전의 군막으로 먼저 찾아왔던 것이었다.
"하하하, 고생을 많이한 휘하 군사들이 즐거워한다니 기분이 매우 좋소이다!"
주전은 통쾌하게 웃고 나서,
"자, 장군과 두 아우 장군을 위한 음식은 이쪽에 따로 준비가 되어 있소이다."
하고 말하면서 자신의 군막 옆에있는 다른 군막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따로 차린 술과 고기가 가득 올려진 푸짐한 상이 있었다.
"자 자리에 앉으십시다."
한쪽 중앙에는 주전의 자리가 있었고 각각 마주 보며 상이 모두 네 개가 차려져 있었는데, 유비, 관우, 장비, 소평의 자리였다.
"내일은 서쪽에서 해가 뜨려는 모양이오?"
지난번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주전의 태도를 의아스럽게 여기던 장비가 관우에게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차려놓은 상이니 오랜만에 실컷 먹고나 보자."
관우가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자. 반가운 손님들을 위해서 건배합시다!"
주전이 일동을 돌아보며 술잔을 치켜들었다.
"건배!"
장비는 오랜만에 푸짐한 상을 보고,
"그럼 사양하지 않고 먹겠습니다."
하면서 상에 있는 기름진 음식을 <쩝쩝> 소리가 나도록 먹어치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비가 그토록 좋아하는 술도 그득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영웅 호주불사(英雄豪酒不捨) 라, 술도 자기 앞에 있는 동이를 단박에 비워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를 본 주전이 크게 웃으며,
"하하하, 과연 음식도 호걸답게 드시는구려! 여봐라 술을 더 내오거라!"
하며 명령하였다.
이렇게 주전이 준비한 한바탕 융숭한 음식잔치는 한참이 지나서야 끝났고,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각자 숙소로 안내되어 오랜만에 발을 뻣고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이튼날, 주전은 숙소로 부하를 보내어 세 사람을 자기 군막으로 불렀다.
주전이 세 사람을 향해 말한다.
"세 장군이 찾아와 주셔서 내가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
우리가 지금 적들과 악전고투를 하고 있으니, 세 분들은 나를 크게 도와주어야 되겠소."
주전의 말을 듣고, 장비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어쩐지 너무 친철하다 싶더라니...)
유비가 대답한다.
"우리도 힘 자라는 데까지 주전 장군님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오, 그렇게 선선하게 대답해 주시니 고맙기 그지 없구려. 우리 진지 앞에는 철문산(鐵門山)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는 황건적 괴수인 장각의 동생인 장보가 진을 치고 있소.
그 산을 공격하여 놈들을 궤멸시켜야 할 텐데 우리가 여러번 공격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소.
이제 세 장군에게 내 부하 3천 명을 지원해 줄 테니 이들을 데리고 가서 그놈들을 박살내 주었으면 하오."
"알겠습니다.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유비는 두말없이 승낙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주전이 부리나케 밖으로 나와 부장 소평(副將 蘇平)에게 명령한다.
"세 장군에게 각각 군사 천 명씩을 딸려보내라!"
유비, 관우, 장비는 자신의 군사에 물경 삼천의 군사를 합하여 오천에 이르는 군사를 거느리고 철문산으로 향했다.
철물산은 양쪽 협곡이 무척이나 가파르게 깎아지른 좁은 협곡을 통과하여야 했다.
협곡으로 접근할 수록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협곡위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일고, 협곡 반대편에서는 세찬 바람이 몰려왔다.
그러자 이미 이곳에서 여러번 전투를 치뤄 본 주전의 군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응? 왜들 그러지?"
선두에서 병력을 이끌던 장비가 ,
"병사들의 태도가 이상한데 가보고 오겠습니다."
하며 뒤따라 오다가 걸음을 멈추고 웅성거리는 주전의 군사들에게 다가갔다.
"웬 소란들이냐?"
장비가 큰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한 병사가 말하는데,
"장군님! 이건 황건적 대방인 장보가 요술을 부리기 시작한겁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뭐라고? 도적놈 두목이 요술을 부린다고?"
장비는 듣도보도 못한 소리를 듣고 놀라 물었다.
그러자 주전의 군사들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예, 지금까지 우리 군사들이 공격할 때마다 장보가 요술을 부리는 바람에 저 산에 접근했다가 전멸을 당하곤 했습니다."
"으음!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자 그렇게 통나무처럼 서있지 말고 전진하라!"
"하지만 요술때문에 죽을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주전의 군사들은 겁을 집어먹고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러자 장비가 호통을 내질렀다.
"잘 들어라! 요술 때문에 죽는다는 소리를 들은적 없다.
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이자리에서 내가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이렇게 호통을 지른 장비는 장팔사모를 머리위로 힘차게 한바퀴 휘둘러 보았다.
"이크!"
주전의 군사들 사이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자, 요술따위에 겁내지 말고 전진하라! 아직까지 요술로 천하를 손아귀에 넣었다는 사람이 있다는 애기는 듣지 못했다!"
장비는 주전의 군사를 앞장 세워 철문산 협곡으로 전진하였다.
그러나 계곡으로 접근해 갈수록 눈을 뜨고 걷기도, 몸을 가누고 걷기도 어려울 정도의 맞바람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세차게 불어왔다.
"휘..잉~"... "휘~잉~"...
그러자 주전의 부하를 이끄는 한 장수가 유비에게 나서며 말한다.
"장군님! 저기가 철문협(鐵門峽)이란 곳인데, 관군은 저기를 통과하지 못하고 매번 당하기만 했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되돌아가는 것이..."
하고 말끝을 흐린다.
장비가 이 말을 듣고 발끈하며 말한다.
"그건 공격하는 쪽이 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라!"
그러자 유비는,
"좋다! 그렇다면 우리 의용군부터 돌격하기로 하겠다."
유비는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선두는 유비군이, 후미는 주전의 군사들이 따르게 하고 돌격을 명하였다.
눈을 뜨기 어려운 바람은 조금도 잦아들지 않았지만, 유비군은 앞장서서 협곡을 통과하는 선두에 섰다.
이렇게 선두가 협곡 중앙에 이르렀을 때, 불현듯 협곡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괴성(怪聲)을 질러댔다.
"우하하하하 ... 저승 사자가 붙어 다니는 놈들이 지옥이 그리워서 다시 몰려왔구나...! 자아, 그럼 지옥의 문을 열어 주마...!"
그 소리는 협곡의 바위에 반사되어 메아리처럼 음산하게 울려퍼졌다.
"장보다!" ..."어이쿠 ...! 드디어 요술을 부리려는가봐 ! ...."
주전의 군사들은 공격할 자세를
멈추고 뒤로 도망칠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를 본 장비가 호통을 내질렀다.
"이 겁쟁이들아! 달아나지 말고 전진하라! 전진하지 않으면 내가 베어버리겠다!"
그러나 역시 그들은 그자리에서 꼼짝도 하지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비는 자기 군사들 만이라도 돌격을 명했다.
그리고 잠시후, 협곡 위에서는 아래쪽으로 낙엽과 함께, 돌과 화살이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으악~"..."우르쾅" ...
수많은 유비군이 협곡위에서 쏟아져 내린 화살과 돌에 맞고 부딪쳐 나딩굴었다.
그러자 관우가 유비에게 급히 말한다.
"형님!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일단 군사를 뒤로 물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군사를 속히 퇴각합시다."
"퇴각하라!"
장비는 전군에 퇴각명령을 내리고 군사는 협곡입구까지 후퇴하였다.
삼국지(三國志)제18편
※ 철문협(鐵門峽) 戰鬪 (下) ※
협곡 입구까지 군사를 퇴각시킨 뒤 관우가 말한다.
"주전의 군사들이 싸우기도 전에 겁을 집어먹는 걸 보니 장보의 요술을 무시할 수만은 없겠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꼭 우리가 표적이된 기분입니다."
장비도 이제는 반신반의 하며 말한다.
"아니다. 저건 요술이 아니야."
유비가 이렇게 말하자. 관우와 장비는,
"예에?"
하며 놀란 모습을 보이며 유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유비는 손을 들어 협곡의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협곡에는 항상 구름과 안개가 서려있소. 이것은 협곡의 지형보다 반대편의 지형이 현저하게 낮은 것 때문인데,
그로인해 아래쪽 기류가 거센 바람이 되어 철문협의 좁은 틈새로 몰려드는 것이 틀림없소.
장보는 이런 자연현상을 마치 자신이 요술을 부리는 양 이용하고 있는 것이오."
"오호, 제법 머리를 쓴 거로군요."
관우가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걸 병사들에게 말해줘도 믿지않을 것입니다."
장비는 병사들이 방금 전에 겁을 집어먹고 꼼짝도 하지 않았던 일이 생각나서 말했다.
"협곡위 절벽위로 올라갈 수는 없을까? 올라갈 수만 있다면 적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공격을 할 수 있을텐데..."
유비가 협곡 입구의 절벽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그러자 장비는 무릅을 <탁>치며,
"적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의 공격이라,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저 절벽을 타고 기어오르면 되지않겠소?"
"하지만 저 가파른 절벽을 어떻게 오른단 말인가?"
"형님, 오를 수 있는 길이면 기습이 안됩니다.
아무나 오를 수 없는 길을 올라야 방심하고 있는 적들을 기습해서 칠수 있죠."
"장비, 자네도 가끔 신통한 소리를 할 때가 있구나."
관우가 빙긋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가끔이라뇨, 거 섭섭한 소리 말아요."
장비는 관우를 보며 웃었다.
"좋아, 그렇다면 한 번 해보자."
장비는 날렵한 군사들을 동원하여 밧줄을 짊어지고 절벽을 기어오르도록 시키고, 관우는 군사를 시켜 굵은 밧줄을 한 자 간격으로 촘촘히 그물처럼 엮도록 시켰다.
이윽고 절벽위에 올라간 병사들에 의해 위에서 밧줄이 내려지고 그 밧줄에는 두 장(丈) 길이로 촘촘히 엮인 그물이 끌어 올려져서 절벽 위에 덮혀졌다.
그물을 타고 절벽을 오르기는 맨 몸으로 절벽을 기어 오르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칼과 창등 무기는 별도의 밧줄에 묶여 따로 올라갔다.
유비와 장비도 의용군 오백 명과 함께 그물을 타고 절벽 위로 올랐다.
"어떻소 형님, 이렇게 하니까 어렵지 않게 절벽을 오르지 않았소?"
"그래, 자네의 생각이 참으로 훌륭하구먼."
유비의 칭찬에 장비는 소년처럼 기뻐했다.
"그럼, 이제 조그맣게 불을 피우도록 하게"
"기껏 놈들의 뒤쪽으로 왔는데 뭘 하시려구요?"
"불을 피우면 알게 될 걸세."
이윽고 조그만 불이 피워자자, 유비는 나뭇가지를 꺾어 두 손으로 받들 듯이 들고 불앞에 다가 가서 의식을 치르 듯, 나뭇가지를 둥그렇게 여러번 휘저으며 불 앞에서 경건하게 배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병사 모두가 유비의 의문의 행동을 보고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윽고 유비가 군사들을 향하여 돌아서며 말했다.
"모두들 잘 보았나? 이건 귀신을 내쫒는 기도였다.
이것으로 장보의 요술은 사라졌다.
봐라, 철문협에서 본 하늘은 흐렸지만 여기 하늘은 맑지 않으냐? 모두 두려워 하지 말고 마음껏 싸우자!"
유비의 이상스러운 행동에 의문을 가졌던 장비는 그제서야,
(역시 형님은 위대한 인물이야! 군사들의 공포심을 씻어주려고 그랬구먼 ...?)
공격 개시 신호는 절벽 위에서 커다란 천을 한 장 던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계곡 아래 남아 있던 군사를 이끌던 관우는 약속대로 소수의 군사만을 데리고 철문협 계곡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 시작하라!"
관우가 명령하자 , 무기도 들지 않고 징과 꽹과리, 피리와 북, 나팔 등을 가진 선봉에 선 병사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징징~ 쾡쾡~ 둥둥~삐리리~" ...
철문협 계곡이 떠나가라 시끄러운 소리가 협곡을 가득메웠다.
그러자 계곡위에 적들의 시선은 온통 아래로 쏠려있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비와 장비는 적들의 뒤로 돌아가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공격은 대성공이었다. 절벽 위에 있던 수천의 적들은 불시의 공격을 받고 협곡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화살을 맞은 자, 발을 헛디딘 자를 비롯하여 퇴로가 차단된 적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절벽위의 적들을 처치한 유비군은 산상에 만들어진 적들의 본거지로 향했다. 적의 본거지는 목책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한편, 장보는 본진에 있다가 정찰병의 급보를 받았다.
"대체 무슨 일인데 협곡아래가 이리도 시끄러우냐?"
"갑자기 계곡 뒤쪽에서 적들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뭐라고? 적들이 어떻게 가파른 계곡뒤에서 나타났다는 말이냐?"
"그것은 저희도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뭐라고? 어서 말을 끌고와라!"
장보는 황급히 말을 타고 목책을 빠져 나와 철문협 방향으로 향했다.
그 순간, 일 발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목책 정면으로 나오던 장보의 목덜미 사정없이 관통했다.
"황건적 두목 장보가 쓰러졌다!"
"나, 유비가 장각의 동생 지공 장군 장보를 처단하였다!"
유비가 큰소리로 외치자, 5백 명에 이르는 유비군은 함성을 올리며 적의 목책을 향하여 달려갔다.
"지공 장군이 적의 화살에 절명했다...."
순식간에 적들에게는 장보의 죽음이 알려졌다.
"뭐라고? 지공 장군이 당했다고?"
"그렇다면 이제는 틀린 것이 아닌가?"
"어서 도망가자 ...!"
적들은 일대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러자 장비는, "그렇게는 안된다! 네놈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장비의 장팔사모는 바람개비처럼 그의 손에서 번쩍였다. 그럴때 마다 장비의 앞에 있는 적들은 풀처럼 쓰러졌다.
산은 적들의 아우성으로 울부짖었고, 적의 군막에 붙은 불은 산으로까지 번져 밤낮없이 타올랐다.
적의 잔당은 산 아래로 도망을 치다가 협곡을 통과한 관우가 이끄는 군사들에 의해 모두 전멸하다시피 해버렸다.
이렇게 장보가 이끌었던 수만 명의 황건적들은 유비가 지휘하는 보잘 것없는 숫자의 의용군에 의해 철저하게 섬멸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