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두고
최남선
나는 꽃을 즐겨 맞노라.
그러나 그의 아리따운 태도를 보고 눈이 어리며
그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코가 반하여
情神(정신)없이 그를 즐겨 맞음 아니라.
人情(인정) 없는 殺氣(살기)를 깊은 사랑으로써
代身(대신)하여 바꾸어
뼈가 저린 얼음 밑에 피도 얼릴 눈 구덩에 파묻혀 있던
億萬(억만) 목숨을 건지고 집어 내어 다시 살리는
봄바람을 表章(표장)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맞노라.
나는 꽃을 즐겨 보노라.
그러나 그의 平和(평화)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홀리며
그의 富貴(부귀) 氣像(기상) 나타낸 盛(성)한 모양 탐하여
主着(주착)없이 그를 즐겨 봄이 아니라.
다만 겉모양의 고운 것 매양 실상이 적고
처음 서슬 壯(장)한 것 대개 뒤끝 없는 중
오직 혼자 特別(특별)히
若干(약간) 榮華(영화) 苟安(구안)치도 아니하고, 許多(허다) 魔障(마장) 겪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億萬(억만) 목숨을 만들고 늘려 내어 길이 傳(전)할 바
씨 열매를 保育(보육)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보노라.
(‘소년’ 7호, 1909.5)
[어휘풀이]
-표장 : 표창(表彰)
-구안 : 한때의 편안을 꾀함
-마장 : 일이 되어 가던 중에 나타난 뜻하지 않은 탈.
[작품해설]
이 시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통해 제기된 우리 시가의 근대성 획득 문제가 그대로 대두되고 있는 작품으로 1,2연의 자수율이 동일할 뿐 아니라 표현도 진부한 설명의 차원에 머물렀으나, 시적 발상과 행간의 처리 등에 있어서 전대에 비해 한결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분히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내용의 이 시는 1연에서는 꽃을 즐겨 맞는 이유를, 2연에서는 꽃을 즐겨보는 노래를 하고 있다. 시적 자아가 꽃을 즐겨 맞는 이유는 ‘아리따운 태도’와 ‘향기로운 냄새’라는 꽃의 표면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더운 기운’과 ‘깊은 사랑’으로 대표되는 꽃의 내면적 의미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꽃은 ‘칼날 같은 북풍을 더운 기운으로써’ 대신해 주고, ‘인정 없는 살기를 깊은 사랑으로써 대신하여’ 주는 존재로서 따스한 기운과 깊은 사랑으로 우주 만물을 소생시켜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꽃을 즐겨 보는 이유는 ‘평화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부귀 기상 나타낸 성한 모양’이라는 꽃의 순간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씨 열매’가 표상하는 꽃의 구원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꽃의 두 가지 속성, 즉 ‘아리따음’ · ‘형기로움’ · ‘평하로움’· ‘부기함’ 등이 갖는 현상적 아름다움과 ‘더운 기운’· ‘깊은 사랑’· ‘씨 열매’ 등이 갖는 본질적 아름다움 중세서, 본질적이고 심층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꽃이 새로운 서구 문명을 상징하고 있다면, 이 시의 주제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참다운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개화라는 거센 물결에 편승하여 여과 없이 유입되고 있던 서구 문명에 대하여 시적 자아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최상급의 수식어로써 예찬하고 있다. 아울러 서구 문명의 수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합리화하는 비주체적, 비역사적 시대 의식을 준다. 이것이야말로 육당이 가지고 있던 현실 인식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잣대요, 육당을 위시로 한 그 당시 개화론자들의 한계를 짐작하게 해 주는 점이라 하겠다.
[작가소개]
최남선(최남선(崔南善)
별칭 : 대몽최(大夢崔), 공륙(公六), 육당(六堂), 일람각주인(一覽閣主人), 한샘
1890년 서울 출생
1904년 일본 동경부림 제일 중학교 입학, 2개월 만에 귀국
1906년 와세다 대학 고등사범 지리역사학과 입학
1908년 종합 월간지 ‘소년’ 창간
1914년 종합 월간지 ‘청춘’ 창간
1919년 3.1운동시 ‘독립선언서’ 기초, 체포되어 다음해 출옥
1922년 ‘동명’ 발간
1938년 만주 신경에서 ‘만몽일보사’ 고문 역임
1949년 해방 후 친일 반민족 행위로 기소, 수감되었다가 병으로 보석 출감
1957년 사망
첫댓글 꽃을 보노라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무한 건필, 건승, 건강과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