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장암리 해안에서
박미정
장암리 해안가, 거대한 바위가 입을 벌린 듯한 동굴 안에서 섣달그믐의 낙조를 마주한다. 이곳은 빛과 어둠이 가장 극명하게 대립하며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공간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시간적 경계와, 동굴이라는 공간적 경계가 겹쳐지는 이 지점에서 나는 ‘봄’과 ‘보임’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 잠긴다.
우리는 흔히 빛을 숭배하고 어둠을 기피한다. 하지만 장암리의 이 기묘한 동굴 샷이 보여주는 진실은 다르다. 검게 그늘진 바위의 실루엣이 없다면, 저 너머의 노을이 그토록 찬란할 수 있을까. 바위는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빛을 더욱 선명하게 조각해 내는 프레임이다. 무한히 펼쳐진 하늘을 네모난 창으로 잘라내었을 때 그 풍경이 비로소 ‘작품’이 되듯, 우리의 삶도 결핍과 한계라는 어둠의 테두리가 있기에 그 안의 순간들이 더욱 밀도 있게 빛나는 법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인간이 그림자만 보고 산다고 한탄했지만, 이곳에서는 그 비유가 전복된다. 나는 지금 어둠(동굴) 속에 서서 빛(실재)을 응시한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바라보는 세상은 더욱 객관적이고 적나라하다. 섣달그믐은 시간의 동굴이다. 지난 365일의 소란스러웠던 기억과 후회, 영광과 상처들이 저 검은 바위처럼 굳어져 나의 시야를 좁힌다. 하지만 그 좁아진 틈새로 비로소 내일이라는, 혹은 새해라는 붉은 희망이 틈입한다.
저물어가는 해는 슬프지 않다. 소멸은 완성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태양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순간은 중천에 떠 있을 때가 아니라, 수평선 너머로 몸을 던지기 직전이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연소시켜 하늘과 바다, 그리고 갯벌의 진흙마저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저 장엄한 최후.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절정이다. 한 해를 보내는 마음도 그러해야 한다. 지나간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가장 붉게 타올라 기억의 지층에 스며드는 것이다.
바다 위로 검게 솟은 작은 섬들이 보인다. 그들은 흔들리는 물결 위에서도 부동(不動)의 자세를 유지한다. 빛이 있으면 있는 대로, 어둠이 오면 오는 대로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함으로써 풍경을 완성한다. 우리의 자아도 저 섬들과 같다. 시간의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오고 쓸려나가도, 결국 남는 것은 ‘나’라는 본질적인 섬 하나다. 섣달그믐의 노을 앞에서 나는 묻는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파도에 휩쓸렸으며, 또 얼마나 굳건히 제 자리를 지켰는가.
이제 곧 해가 완전히 넘어가면, 동굴 안의 어둠과 동굴 밖의 어둠은 하나로 섞일 것이다. 경계는 사라지고 세상은 거대한 묵색(墨色)으로 통일될 것이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별이 돋아나듯, 한 해가 저문 자리에 새해의 서광이 깃들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장암리의 바위 틈은 마치 열쇠구멍과 같다. 묵은 해를 가두고 새 해를 여는 거대한 열쇠구멍. 나는 지금 그 틈을 통해 우주의 섭리를 훔쳐보고 있다. 채움보다는 비움이, 빛보다는 그것을 감싸는 어둠이, 시작보다는 끝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역설을 배운다.
마지막 빛 한 줌이 갯벌의 젖은 등을 어루만진다. 질척이는 삶의 바닥조차 저토록 아름답게 윤색될 수 있다는 위로. 그것만으로도 이 한 해는 충분히 살아낼 가치가 있었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기 전, 나는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갈 것이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의 문턱이기에. 잘 가라, 나의 섣달그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