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비 천지간
고재종
안개비 뿌옇고
천지는 가뭇없네
다만 어렴풋한 건
아직 느낀 적도, 받아들인 적도 없는
무언가 아득한 것의 냄새
저며 오네
이미 지나간 날들, 내일의 기억들도
무던히는 뒤섞이는
무언가 우릿한 것의 빛깔
누군가는 떠나가고
남아서는 감쳐무는
안개비 천지간의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하는
그것의 만져지지 않는 이름과
문득 선득선득한
커다란 적막의 음절들 밟네
고재종 :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동구밖집 열두 식구」 등 7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바람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꽃의 권력』, 『고요를 시청하다』, 『독각』과 육필시선집 『방죽가에서 느릿느릿』이 있고, 산문집으로 『쌀밥의 힘』, 『사람의 길은 하늘에 닿는다』, 『감탄과 연민』과 시론집 『주옥시편』, 『시간의 말』, 『시를 읊자 미소 짓다』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송수권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