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꽃 오얏꽃이 비록 고우나다소 천박한 듯해 믿기 어렵고 소나무 잣나무는 특별한 교태 없으나
추위를 견디므로 귀히 여기는구나
여기에 좋은 꽃을 키워내는 나무가 있어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네 알고 보면 잣나무보다 나의 동백이란 이름이 맞지 않구나”
고려 중기 문인인 이규보의 시 <동백꽃>이다.
동백(冬栢)을 글자 그대로 풀면 ‘겨울 잣나무’가 된다.
잣나무처럼 겨울 내내 푸르면서 꽃까지 피워내니 잣나무보다 윗길이다.
동백꽃은 불처럼 붉으면서도 수줍다. 향기는 거의 없지만 꽃 아래쪽에 진하고 많은 꿀을 저장한다.
동박새가 이 꿀을 빨아 먹으며 동백꽃의 수분을 돕는다.
중국에서는 동백나무속의 종들을 산다화(山茶花)라고 한다.
‘다화’는 차나무과 식물을 일컫고 ‘산’은 ‘야생’을 뜻한다.
차나무과를 대표하는 식물이 동백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동백을 춘(椿)으로 쓰고 ‘쓰바키’라고 읽는다.
하지만 춘은 참죽나무로, 동백과는 계통이 전혀 다르다. 일본식 표기의 영향을 받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장편소설 <춘희>(椿姬)는 <동백 아가씨>라고 해야 정확하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는 ‘노란 동백꽃’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꽃은 초봄에 피는 생강나무 꽃일 가능성이 크다.
소설의 무대인 강원도에서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으로 부른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있다.
동백꽃이 질 때는 처연하다.
형태의 색깔이 모두 선명한데도 꽃송이가 송두리째 뚝 떨어진다. 그래서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섬 지역에서는 동백나무를 집 안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
춘사(椿事)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이라고 풀이돼 있기도 하다.
동백은 따듯한 남쪽 지방에 많지만 해안지역에서는 깊숙이 올라온다.
휴전선에 가까운 옹진군 대청도에도 자생지가 있다.
立冬부터 초봄까지 꽃을 피우는 동백이 없다면 어떻게 긴 겨울을 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