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간이역에서
고속철도 시대다. 부산에서 두 시간 반이면 서울에 도착한다. 이제 지상에서 달리는 것 중에 가장 빠른 것이 기차가 되었다. 그것을 자주 이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탈 때마다 신기하다. 예전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네 시간 반 걸려 가던 시절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예전대로 네 시간 반 거리의 부산이 한 나절 거리처럼 가깝게 느껴졌었는데 고속철로 그 거리가 더욱 짧게 느껴진다.
며칠 전엔 버스를 타고 춘천에 갔다가 올 때는 일부러 전철을 이용해 돌아왔다. 젊은 시절 학교 다닐 때는 경춘선 열차를 정말 많이도 탔었다. 나뿐 아니라 1970년대와 1980년대, 그 시절 청춘들이 그랬다. 봄부터 가을까지 청량리역 광장에는 경춘선 열차를 타기 위한 젊은이들로 들끓었다. 회사마다 또 학교마다 젊은이들의 야유회거나 동아리의 엠티는 경춘선 열차가 지나는 북한강변의 대성리와 청평 멀리는 강촌이었다.
그때는 서울에서 춘천까지 꼬박 두 시간 기차를 타고 갔었다. 팀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야외전축을 틀곤 했다. 그게 다른 승객들의 여행을 방해한다는 생각도 거의 없었다. 경춘선 열차에 젊은이들이 오르면 으레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젊음을 그렇게 발산하고, 나이든 어른들은 때로 불편해도 그것을 이해해 줬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경춘선 열차에서는 하나의 풍속도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그런 경춘선이 복선 전철로 놓이며 한 시간 거리가 되었다. 좌석에 앉아 책 몇 장 읽으면 어느새 서울이고 또 춘천이다. 열차 내 방음 시설도 좋고, 냉난방시설도 그만이다. 젊은 시절 경춘선 열차를 타던 때와 비교하면 참 많이도 달라졌다.
추억이 추억을 부르듯 나는 부산으로 가는 고속철도를 탈 때에도 그렇고,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경춘선 전철을 탈 때에도 내 나이 열대여섯 살 시절의 일들이 늘 떠오른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침마다 기차를 타고 보다 남쪽에서 강릉으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멀리서는 삼척과 동해(묵호)에서 오고, 가깝게는 옥계와 정동진에서 왔다.
그 중에 정동진은 한적한 바닷가 마을인 동시에 한때는 또 은성하던 탄광지대이기도 해서 다른 곳보다 통학생의 수가 많았다. 지금은 그곳의 초등학교 전체 학생수가 1백명 남짓하지만 탄전지대로 이름을 떨칠 때는 1천명도 넘는 학생이 그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에 입학하며 그들 모두 강릉으로 중학교를 다녔던 셈인데, 학교마다 통학반장이 있었고, 선후배 사이에 기차 안에서의 규율도 제법 세다고 들었다.
그때 강릉과 정동진 사이에 ‘시동’이라는 작은 역이 있었다. 말 그대로 간이역이었다. 역이 작아서만 간이역이 아니라 오고가는 기차가 서로 비켜지나갈 교행선도 없이 외길 기찻길 옆에 임시 플랫폼을 깔고 표를 끊어주던 역무원 한사람만 근무하던 간이역이었다. 어린 시절 외길 기찻길에 이쪽 저쪽에서 마주 오는 기차가 서로 비켜지나가는 교행선도 없는 그런 간이역이 퍽이나 이상해 보였다.
이쪽으로 가는 기차든 저쪽으로 가는 기차든 어떤 기차가 그 역을 지날 때 다른 기차는 앞쪽 역에서 그 기차가 교행선으로 들어올 때까지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얼마전까지 디젤 기관차가 다녔던 경춘선 열차 역시 그런 단선 열차였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강릉에 가면 이따금 시동 마을에 가본다. 내가 길을 낸 강릉지역의 트레킹 코스 바우길이 지나는 마을이기도 해 배낭을 메고 그곳에 갈 때마다 예전의 기차역 자리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차역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 전국에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진 기차역들이 많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 효율과 실질을 앞세워 수인선의 협궤열차도 없어지고, 또 하루 전체 승객이 쉰 명도 되지 않던 시동역 같은 간이역들도 없어지고 이제 그 위를 달리는 것은 오직 빠른 기차뿐인 세상이 되었다. 큰 역이든 작은 역이든 역마다 서던 비둘기호가 없어지고 통일호가 없어지고, 이제 그 시절에 대한 우리의 추억은 어느 간이역, 어느 대합실에 가면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봄빛에 문득 옛날 기차역이 그립다.
첫댓글 수인선의 협궤철도...간의역, 모두 추억속에서만 남아 있네요
지금 젊은이들은 나이들어 무엇을 추억하고 살까요?
선생님~~~동감합니다.
추억이 없는 삶은 얼마나 팍팍하고 먼지가 날릴까요...선생님의 글을 읽으며...저도 추억 하나를 풀어 봅니다...감사합니다.^^
정선에서 청량리역까지 숱하게 다녀봤지만 경춘선은 한 번도 못타봤습니다.
버스타고 강촌, 대성리, 청평은 이십여년전에 가 본 기억이있지만요.
선생님의 글 읽고 추억여행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경춘선은 옛날 비둘기호 타고 다닐때에 낭만열차였지요.
선생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어린시절 부모님께서 공부 좀해라 공부 좀해라 하실 때 괜히 깝짝 거리면서 날뛰어 다니던 일... 가기 실은 학교를 가기 위해서 토요일날 집에 왔다가 비오날 제천에서 영주로 가는 밤 열차를 타고 죽령터널을 빠져 나갈때 정말 가기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비가 주룩주룩 내리 날이 였지요.저는 원래 비를 좋아합니다.내리는 비를 차창으로 보면서 왠지 어린 마음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이순원 선생님과 우리 광재사랑 좋은 님들을 뵙지를 못했을 텐데 이렇게 좋은 분들을 뵐수 있는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가 참 잘했지요? 선생님!
기차는 정말 그걸 타고 다니던 사람마다 만 가지 추억을 주는가 봐요. 저는 경춘선 열차가 늘 애닯답니다. 삼척에서 강릉으로 올라오는 동해북부선(영동선) 열차도 그렇고요. 그리고 정선에서 구절로 들어오는 기차를 한번 타 본 기억이 있는데, 일본영화 <철도원>을 볼 때 자꾸만 그 기차 생각이 났답니다.
전철이 생기면서 젊은이들의 추억과 낭만이 깃든 옛 강촌역이 사라져서 오가면서 아쉬움을 느낍니다.
이걸 어느 신문 문화칼럼에 실었더니 기차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연락해 왔습니다.
춘천의 어떤 분은 춘천에 오면 꼭 전화를 해달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요.
기차가 또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정거장처럼 이어주는가 봅니다.
기차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정거장 이라....정말 맛있는 표현 인거 같아요.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만감이 교차 됩니다. 너무나 감사 합니다.즐건 주말 되셔요~~~
괜시리 가슴이 따땃해지고 정겨움이 물씬묻어나네요 7살때 처음으로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부모님과 멀리 여행가던 추억이나네요 기차바닥에 삶은계란,귤껍질,잔뜩쌓아가며 신나게 먹었던 꿈만같던여행~ 선생님덕분에 멋
진추억속으로 잠시 다녀왔습니다. 감사여^^
열 일곱살에 사북에서 원주로 가는 기차를 첨으로 탔었습니다. 아버지랑 동행한 길이였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이되었던 이별여행이였지요.
그래서 그런지 기차를 보면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먼저 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