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7일(화)
* 시작 기도
(수 9:14-15)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주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기브온 주민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그들이 꾀를 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소문을 듣고 왔는데 그 길이 너무 멀어 신발과 옷은 다 낡아 해어졌고, 떡은 곰팡이가 났으며 포도주 가죽부대는 찢어진 것처럼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와서 자기들과 화친을 맺자고 청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그들의 말을 듣고 나서 여호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그들과 화친을 맺었습니다.
결국 3일이 지난 후에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주 가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과 화친을 맺었기 때문에 그들을 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며 눈에 보이는 어떤 전쟁보다 어려운 전쟁임을 보여줍니다.
이런 우(愚)를 나 또한 얼마나 많이 범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내 생각에 좋은 대로 행하는 것 말입니다.
하여 날마다 더욱 주님의 뜻을 알고자 말씀 앞에 섭니다.
그것이 주님을 알고 그 뜻을 아는 첩경이오니 나를 장악하소서.
오늘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111:1-10
제목 : 영원무궁토록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1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3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
4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6 그가 그들에게 뭇 나라의 기업을 주사 그가 행하시는 일의 능력을 그들에게 알리셨도다.
7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직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8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9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 나의 묵상
히브리어의 알파벳은 모두 22개로 구성되어 있다.
본시의 특징은 짧은 열 개의 구절로 되어 있으나 한 구절이 두세 개의 행으로 이루어졌고 각 행의 초성에 히브리어 알파벳을 배치하여 쓴 시이다.
이런 시를 답관체라고 한다.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기에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린다고 한다.
본 시가 어떤 배경 하에서 쓰여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9절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라고 노래하는 것을 보면 출애굽이나 또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할 때를 배경으로 한 것 같다.
특히 유대인들이 이 노래를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등의 절기에 낭독한 것으로 보면 출애굽을 배경으로 쓴 시가 확실시 된다.
이로 보건대 주께서 행하시는 일, 존귀하고 엄위하신 일,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는 일, 이런 기적을 행하신 일은 속량 곧 구원과 관련된 일임에 틀림없다.
세상 천지에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애굽에서 모진 학대와 수모를 당하는 히브리인들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구원하여 주신 일이나 바벨론의 포로에서 다시 고토인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해 주신 일은 감히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 중의 기적이다.
그야 말로 존귀하고 엄위하신 일이며, 영원히 하나님의 의가 세워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경험하고 깨달은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당신이 기뻐하시는 양식을 주시며 또한 언약을 기뻐하시고 기억하신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와 제사장 나라 그리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면서 너무나 기뻐하셨다(출 19:5-6, 24:10-11).
그리고 그들에게 광야에서 먹을 수 있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다.
이것은 그들을 사랑하시므로 주신 양식이지만 또한 그들이 계명을 잘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출 16:4).
이들은 이 만나를 감사함으로 먹어야만 했다.
광야 어디에서 이런 만나를 먹고 메추라기와 같은 양식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나가는가 하면 맨날 똑같은 만나만 먹는다고 하면서 원망과 불평을 서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런데 그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여 아브라함은 이미 죽었으나 그의 자손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셨다.
이것은 주께서 행하시는 일의 능력을 그들로 알게 하신 것이다.
여기서 찬양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깐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처럼 하다가 가나안의 토속신인 바알과 아세라에게 다 넘어지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확실하여 영원히 정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신실하게 이를 행해 나가신다.
‘진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메트’는 ‘신실하다’는 뜻이며 ‘정의’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심판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이 아닌 다른 양식을 취하려는 이들을 심판하실지라도 그들을 결국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이다.
9절 말씀을 다시 보자.
(9)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이는 1차적으로는 출애굽 구원을 의미하며 또한 더 나아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시키는 구원까지 포함한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과 횃불언약을 체결하신다.
(창 15:17-18)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사실 횃불 언약은 실제로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 당신 혼자만 지나셨다.
아브라함은 그 사이로 지나갈 틈도 주지 않으시고 당신 혼자만 지나가신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언약을 세웠다고 하신다.
여기 창 15:18절에서 언급하는 언약은 히브리어로 ‘카라트’이다.
이 카라트는 쌍무언약을 말하는데 쌍무언약이란 언약 당사자 둘이서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가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비록 하나님 당신 혼자서 지나가셨지만 이를 편무 언약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쌍무 언약 곧 ‘카라트’로 인정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에서 언급하는 언약은 쌍무 언약인 ‘카라트’가 아니라 편무 언약인 ‘차와’를 사용하신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언약은 사실 쌍무 언약이 성립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불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에 설령 언약의 한편 당사자인 우리가 불의하여 언약을 깨트릴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깨트리지 않으시고 갱신하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결국 이 언약이 최종적인 언약인 새 언약이다.
이 새 언약은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하셨고 그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날 밤 제자들과 함께 성만찬을 하시면서 새 언약을 언급하신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귀한 보배피로 새 언약을 성취하신다.
(눅 22:20) 저녁 먹을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결코 세상적인 지혜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창세전의 세계를 아는 지혜요 또한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졌다고 말씀한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름 아닌 새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새 언약 백성이 마땅히 지켜야 할 계명인 것이다.
(렘 31:33-34)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은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새 언약을 알지 못하였고 새 언약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계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미 구약의 모든 언약을 완성하셨고 이제 우리가 행해야 할 새 언약이 앞에 주어졌음에도 여전히 십계명을 지켜야 하느냐 마느냐라는 논쟁을 하곤 했었다.
물론 십계명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고 새 언약 백성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인 법을 알지 못하였기에 행하였던 무지의 소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하신 구약의 계명들을 이제 우리는 감사와 찬양으로 받고 날마다 아들의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 품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그 안에서 주님이 주신 말씀으로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 진정한 생명의 삶임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묵상을 시작할 때는 천근만근이었던 몸이 묵상을 마치려는 이 시간 몸과 영혼이 깃털 같이 가벼워지는 것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무어라 설명이 불가능하다.
날마다 나에게 주시는 생명의 만나를 지겹게 생각하는 불충을 벗어던진다.
그리고 따스하고 안락한 아버지의 품에서 사귐을 갖는 말씀묵상의 시간이 나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생명의 양식임을 고백한다.
그런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린다.
영원히 찬양을 받으소서.
* 묵상 후 기도
주님...
영생이 무엇인지, 새 언약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자꾸만 구약의 모형으로 돌아가려 했던 나의 이 무지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과 더 가까이, 한 걸음 더 깊이 나아가며 들어가는 날마다의 생명의 시간이 되게 하시고 육신의 양식은 건너뛸지라도 생명의 양식은 결코 건너뛰는 일이 없도록 나를 붙잡아 주소서.
오직 주님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하시고 내 영이 기뻐 춤추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기뻐 뛰면서 춤을 추셨던 것처럼(잠 8:29-31), 나 또한 주님 앞에서, 주님의 품안에서 뛰노는 자가 되게 하소서.
삼위 하나님께서 손에 손을 잡고 페리 코레시스, 마치 강강수월래를 추는 것처럼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춤임을 믿습니다.
그 은혜의 춤이 날마다 내 안에서도 우러나오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