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율의 토요일
원제 : Violent Saturday
다른 제목 : 난폭한 토요일
1955년 미국영화
감독 : 리처드 플라이셔
출연 : 빅터 마츄어, 리처드 이간, 스티븐 맥널리
버지니아 리, 토미 뉴넌, 리 마빈
마가렛 헤이즈, 어네스트 보그나인, 실비아 시드니
도로시 패트릭, J 캐롤 네이쉬, 빌리 채핀
브레드 덱스터
'전율의 토요일'은 1955년에 만들어진 범죄영화입니다. 칼라 시네마스코프로 완성되었고, 연출은 '해저 2만리' '바라바' '마이크로 결사대' 등 재미난 영화를 여럿 만든 리처드 플라이셔 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도 제법 흥미진진 하지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토요일에 어느 마을의 은행을 털려는 4인조 강도의 범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은행털이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필름 느와르 영화처럼 범죄 자체에 포인트를 둔 내용은 아닙니다.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그 인물들 간의 각자의 이야기를 많이 전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요 내용에 불필요한 부가적 이야기 같지만 교묘하게 이 내용들이 결말 부분에 연결되어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즉 범죄라는 내용을 끌어다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사랑, 질투, 갈등, 불화, 이해, 화해 등을 다룬 지극히 인간적인 내용이지요. 그냥 범죄 부분을 쏙 빼도 여기 나오는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내용으로 몇 부작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브레이든빌 이라는 어느 자그마한 마을입니다. 은행 하나와 경찰 두 명이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죠. 서부영화에서 늘상 보는 마을 하나를 현대물로 옮긴 느낌입니다. 그 마을에 수상쩍은 남자들이 모이는데 바로 은행을 털기 위한 강도들이죠. 그런 와중에 구리 광산을 운영하는 회장의 아들 보이드 페어차일드(리처드 이간)와 실질적으로 그 회사의 관리를 총괄하는 마틴(빅터 마츄어)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틴은 나름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큰 아들 스티브가 단짝 친구인 조지와 주먹싸움을 벌인 사건 때문에 다소 골치가 아픕니다. 페어차일드는 막대한 재산을 가진 아버지를 두었지만 밖으로 겉도는 아내와의 갈등으로 술독에 빠져 절망적으로 지냅니다. 회사일은 거의 마틴이 도맡아 하고 페어차일드는 사진찍기 취미와 술만 좋아하죠. 그리고 마을에 육감적인 간호사 린다(버지니아 리)가 오게 되고 그런 린다를 엿보는 피핑 톰 기질이 있는 소심한 은행 지점장 리브스, 빚에 쪼들려 힘겨워하는 도서관 직원 엘시(실비아 시드니), 아미쉬 종교에 빠진 농부(어네스트 보그나인)과 가족들, 페어차일드의 부인 에밀리(마가렛 헤이즈)와 그를 꼬셔보려는 한량 길(브래드 덱스터) 등이 등장합니다. 대체 이 짧은 1시간 30분 동안의 영화에서 왜 이렇게 등장인물이 많을까요? 그 이유는 후반부에 비로소 끄덕거리게 되죠.
은행강도 측의 이야기도 나름 범죄를 모의하는 내용 외에도 뭔가 불안감을 안고 사는 딜(리 마빈)의 고뇌가 슬쩍 펼쳐지기도 합니다. 은행강도의 리더는 스티븐 맥널리가 연기한 하퍼지만 뭔가 캐릭터를 부여한 것은 리 마빈 입니다. 그들은 은행이 일찍 문을 닫는 토요일 낮에 문 닫기 직전 은행을 털기로 모의하고 토요일에 인근 고속도로 사고를 허위로 신고하여 경찰 두 명을 출동시킨 뒤 셔터가 내려지기 직전 은행에 들어가 범행을 저지르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트럭을 타고 도주할 생각인데 트럭을 주차해 놓을 장소로 종교적 신념 때문에 전화도 없이 자연 친화적으로 농장을 운영하는 아미쉬 종교 가족의 농장을 근거지로 생각합니다. 과연 그들의 계획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은행 터는 이야기에 집중하기도 모자랄 판에 마틴과 아들의 문제에 대한 내용이 꽤 길게 할당되고 그 이후 페어차일드 부부의 오랜 갈등에 대한 내용도 비중있게 다루어집니다. 소심한 유부남인 은행 지점장 리브스의 린다 훔쳐보기에 대한 내용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즉 이 영화에서 은행 강도 사건은 이런 여러 사람들 간의 진솔한 이야기를 다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 정도로만 활용됩니다. 심지어 은행 강도 사건이 맥거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영화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갈등과 문제에 대한 귀결은 결국 은행 강도 사건에서 벌어진 일로 말미암아 제각각 정리가 됩니다. 은행 강도 사건으로 인한 비극도 벌어지지만 그 사건이 각각의 사람들의 참 모습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지요. 특히 마틴이 아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단순히 은행 강도 범죄물이면 그냥 흔한 또 하나의 범죄물일텐데, 여러 사람들의 갈등과 내면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사회물, 부부의 이야기, 가족영화 같은 드라마 장르를 혼합하여 보게 되는 느낌입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매끄럽게 잘 정리한 영화입니다. 확실히 리처드 플라이셔 감독은 50-60년대 젊은 시절 영화가 훨씬 괜찮습니다. 1952년 필름 느와르 흑백영화 '내로우 마진' 부터 이미 범상치 않은 연출을 보여줫고, '해저 2만리'로 일찌감치 능력을 발휘했으며 '바이킹' '바라바' '마이크로 결사대' 등 60년대까지 잘 나갔습니다. 그리고 '도라 도라 도라'를 기점으로 비교적 영화가 평범해지기 시작했는데 원로 거장 역할을 해야 할 80년대에 난데없이 '코난 2 디스트로이어' '레드 소냐' 같은 영화들을 만든 행보는 좀 갸우뚱 합니다.
여러 인간군상들이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등장하다 보니 톱스타 보다는 그냥 주연급 배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삼손과 데릴라' '황야의 결투' 로 알려진 빅터 마츄어가 주인공 마틴 역으로 아주 너그럽고 용감한 가장이지요. 특히 말썽을 피운 아들을 야단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대부분이던 60년대 우리나라에는 배워야 할 모습 같습니다. 물론 요즘 우리나라 젊은 아버지들은 많이 그렇겠지만.
아직 완전한 주연급 배우가 되기 전의 리 마빈이 조연 시절 자주 그랬듯 악당 역할인데 마약을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내면적 고통을 받는 악당입니다. '피서지에서 생긴 일' '츄바스코' '야성녀' '스파르타 총공격' 등 많은 영화에서 선 굵은 역할이 인상적이었던 연기파 리처드 이간이 아내와 갈등을 빚는 부자집 아들로 나오는데 평소 다른 영화에서 상남자 같은 역할을 하던 것과는 다르게 술독에 빠져 번민하는 역할입니다. 어네스트 보그나인이 아미쉬 종교에 빠진 광신도 역할인데 비중이 높진 않지만 이 영화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러 인간관계와 내면에 대해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같은 해 출연한 '마티'에서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기도 했지요. 돌쇠 같은 분위기의 악역이 어울리는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는 평소와 다른 좀 색다른 캐릭터입니다.
여배우 쪽은 남자 배우들에 비해서 인지도가 낮은 배우들을 캐스팅 했습니다. 오히려 30-40년대의 명배우 실비아 시드니가 나이가 들긴 했지만 의외로 비중이 적은 역할이었습니다. 여기 나온 여배우 중에서는 가장 네임밸류가 있는 인물인데도. 육감적인 간호사 린다 역에는 버지니아 리가 나오는데 이 여배우는 나름 괜찮은 마스크와 몸매도 좋은 배우인데 몇 영화에 많이 등장하진 않았습니다. 로버트 와그너가 악역으로 나온 '죽음전의 키스(개봉명 : 비정)'에서 여주인공으로 나름 인상적이었고, 데뷔작인 '공포와 욕망'에서 수난을 당하는 처녀로 등장했습니다. 28세의 늦은 나이로 데뷔한 게 약점이었고 1956년 이후 거의 영화 출연을 안했습니다. 하긴 50년대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이 활동하던 시대에 어지간한 여배우들은 그 대열에서 경쟁하기가 어려웠죠.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라서 아마도 인간관계를 다룬 드라마적 내용이 비교적 내실있게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박진감은 의외로 크지 않습니다. 각 인물 가족들의 이야기를 따로 떼어 내서 각각의 영화로도 만들 수 있을 만큼 각자 사연있는 등장인물 들이죠.
우리나라에는 5년이나 지난 1960년에 다소 늦은 개봉을 했습니다. TV에서 방영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오래도록 완전 잊혀진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리처드 플라이셔 감독의 작품 중 비교적 손쉽게 구해 볼 수 있는 '만딩고' '소일렌트 그린' '레드 소냐' 같은 영화들보다는 나은 작품입니다. 재미있고 볼만한 내용들이 제법 나오는 괜찮은 영화지요.
평점 : ★★★ (4개 만점)
ps1 : 좋은 대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빅터 마츄어가 아들에게 하는 대사들
"모든 아버지는 아들에게 영웅이 되고 싶어한다. 다만 일부는 그렇게 못 되는 것 뿐이야"
"왜 내가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겁을 내는 건 정상적인 인간들의 모습이다"
ps2 : 영화 속에나 등장할 멋들어진 영웅이 나오지 않는 것이 지극히 인간적인 내용입니다.
ps3 : 빅터 마츄어가 이렇게 호감 캐릭터로 나온 경우가 드물 것 같습니다. 어네스트 보그나인이 이렇게 온순한 캐릭터로 나온 것도 드물고.
[출처] 전율의 토요일 (Violent Saturday, 55년) 작은 마을 사람들과 은행강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