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해균이 경찰의 호위와 신호조작으로 20분 만에 아주대병원에 도착하자 즉시 CT 촬영을 마치고 수
술실로 옮겼다. 대한의학회에서 급파된 양한광 박사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최정예 외과의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보건복지부장관, 경기도지사 등도 와 있었지만 기념사진이 필요한 정치인들일 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인물들이었다.
“이 교수. 우리 석 선장 살려낼 수 있겠소?”
경기도지사 김문수였다. 언제부터 석해균이 김문수의 ‘우리’였는지 구역질이 났다. ‘꼭 살려주세요.’
하는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의 멘트도 마찬가지였다. 꼭 살길 바랐더라면 진작 외상외과 시스템부터
만들었어야지, 이제 와서 싸구려 쇼나 벌이며 시간만 잡아먹었다. 돌아서면 잊을 정치인들과 달리 이
국종은 석해균을 살리기 위해 오만까지 달려가지 않았던가.
국내 최정예 외과의사들이 득시글거렸지만 집도는 이국종의 몫이었다. 드레싱을 벗겨내자 총탄 구멍
으로 벌집이 되어 있는 석해균의 몸통이 드러났다. 그 구멍으로 피고름이 뿜어져 나왔다. 왼팔과 양
다리에서는 뼈가 피부를 뚫고 솟아나와 있었다. 저런 몸으로 상굿도 숨을 쉬고 있는 석해균이 새삼
강인한 거인처럼 보였다. 시간이 없었다. 마취가 끝나자마자 이국종은 복부를 열고 정형외과에서는
뼈를 정리하기 위해 팔다리를 절개했다. 엿새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한 이국종의 몸이 심하게 떨려왔
다. 곁에 서 있던 외과의 왕희정 교수가 이국종의 떨리는 손을 잡았다. 수술 마스크 위로 왕 교수의
웃는 표정이 이국종을 위로했다.
“이 교수. 환자 상태는 처음부터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도와줄테니 안심하고
진행해.”
왕희정은 국내 최고 수준의 간 수술 전문의로 이국종에게 처음으로 수술법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이국종은 힘주어 칼을 잡았다.
이국종은 솟구치는 핏속에서 괴사 부위를 잘라내고 부서지고 흩어져 있는 조직을 정리하면서 출혈을
잡아나갔다. 왕희정은 이국종이 흔들릴 때마다 손을 꼭 잡아 격려해주었고, 정경원은 이국종과 한 몸
처럼 움직이면서 수술을 도왔다. 마취과에서도 겨우 붙어 있는 석해균의 호흡과 맥박을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복부 수술이 끝났을 때, 이국종은 완전 그로기 상태였다. 그러나 워낙 감염
이 심해 고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기 때문에 복부를 봉합할 수는 없었다. 이국종은 ‘H’ 자 형태로 열
어둔 복벽에 비닐을 붙이고 정형외과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팔다리 부분의
수술이 마무리되어 석해균을 중환자실로 옮겼고, 그때까지 수술을 지켜보고 있던 대통령 주치의와
서울대 외과과장도 발길을 돌렸다. 아마 그길로 청와대로 직행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이명박 대통
령에게 경과를 보고할 터였다.
병원은 몰려드는 기자들과 정치인들과 관료들로 넘쳐났다. 아주대병원 역사상 최대 인파로서, 모두
가 외상외과를 설치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는 만나주지도 않던 무리들이었다. 청와대에서도 외교안보
수석이 다녀갔지만 대통령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전령일 뿐이었다. 이국종은 속인들의 귀찮은
질문을 피해 중환자실에 틀어박혀 지냈다. 경찰과 검찰 수사관들도 찾아왔다가 석해균의 대답을 듣
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 와중에도 석해균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
다. 때가 되어 정치인과 관료들이 돌아간 뒤에도 기자들은 구석구석에서 칼잠을 자며 소식의 부스러
기라도 건지기 위해 기다렸다. 인요한 박사와 허윤정 전문위원은 이국종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전화 한 통 없이 때를 기다려주었다.
설날이 다가오자 병원 고위층 인사들이 ‘VIP 증후군’에 감염되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국민들에게 희
소식을 알려 아주대병원을 돋보이게 하려는 이기적인 계산이었다. 자칫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도박이지만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는 자들이다.
“국민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석해균 선장이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쇼는 오래가지 못했다. 무리하게 기도삽관을 제거한 석해균은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없게 되었
다. 새벽 한 시, 이국종은 긴급호출을 받고 중환자실로 달려가 기도삽관을 다시 하고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도록 조치했다. 그 바람에 상태가 악화되어 폐부종까지 왔다.
때마침 미국 연수를 마친 호흡기내과 신승수 교수가 돌아왔다. 절친 이국종이 고생하고 있다는 보도
를 보고 기간을 앞당겨 돌아와준 것이다. 신승수는 집에도 들리지 않고 곧장 중환자실로 찾아와 이국
종과 함께 석해균의 CT 사진부터 점검했다.
“이 정도면 일단 기관절개술을 시행해보지 그래?”
석해균에 관한 한 그도 역시 문외한이었다. 그러잖아도 다른 병원에서는 이국종이 아무것도 아닌 환
자를 장기간 데리고 쇼를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이국종은 그러한 오해와 비난에 대비하여 환자의 모
든 상태를 일일이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석해균의 체력이 견딜 수 없기 때
문에 세월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국종은 신승수에게 환자 상태가 기관절개술을 견딜 만큼 양
호하지 않다는 점을 조목조목 설명해주어 이해를 시켰다.
석해균의 상태가 서서히 호전되고 있었다. 괴사성 근막염이 아물어 더 이상 고름이 나오지 않자 이국
종은 비로소 석해균의 복벽을 봉합했다. 폐와 간과 신장의 기능도 서서히 호전되고 있었다. 2월 말에
는 인공호흡기도 떼냈다. 호흡이 돌아오자 기관삽관을 대화가 가능한 것으로 교체했고, 3일 만에 상
태가 급격히 호전되어 일반병실로 옮겼다. 환자들도 자기 일인 듯 반갑게 맞아주었다. 온갖 정치인과
관료들이 똥파리 떼처럼 달려들어 석해균을 피곤하게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활기차게 질문에 응
대했다. 언론은 매일 석해균 기사로 도배를 했다. 그러나 이국종은 한가하게 기자들에게 영웅담을 들
려줄 시간이 없었다. 여전히 종일 다른 중증외상 환자들을 수술하고 집중치료를 하면서 면밀하게 예
후를 살펴야 했다. 누군가 죽어서 병상을 비우면 다음 환자가 곧바로 그 병상을 차지했다. 병원 측은
연일 언론에 자랑하기 바빴지 외상외과에 의사를 충원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명박도 국민여론을 의식하여 석해균을 문병 왔을 뿐 이내 잊었다.
이후에도 정부는 지금껏 에어 앰뷸런스를 도입하지 않았고,
중증외상은 암‧뇌 및 심장 혈관 질환과 함께 상굿도 3대 사망원인으로 남아있다.
3월 초,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인들을 잔뜩 거느리고 석해균을 문병 왔다. 이명박은 석해균에게 해군
동정복을 선사하면서 청와대에서 다시 만나자고 격려했다. 아주대병원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국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을 다시 한 번 고려해달라고 건의했다. 이명박은 즉석에서 고용복지수석에게 검
토를 지시했다. 이명박 일행이 돌아간 뒤 이국종은 이제 석해균을 정형외과로 전과(轉科)시킬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이국종이 할 일은 모두 끝난 것이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의술도 마음으로 다스리는 것 이어서 환자에 대한 극진한 관심과 정성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게 사실 입니다. 외래환자 역시도 간호사,인턴등을 통한 여러차례 환자와 의 사전 상담을 거친후 담당의 가 들어와 최종 진단을 하는 미국 병원의 절차가 그러하였습니다. 이국종 의사, 환자에 대한 혼신 의 열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중증외상이 3대 사망원인인줄 몰랐습니다.
외상의료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군요.
민노총이나 전교조가 강력히 주장해주면 해결될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