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날짜:2026년7월8일 수요일
1본문: 詩篇 112:1-10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4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5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6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7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8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2시작기도
아버지….
계속해서 묵상을 기록하며 조금씩 한글 자판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좋은 의미도 있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제게 주신 생명의 은혜에 익숙해져 그 풍성한 은혜와 기쁨이 무뎌지지 않도록 오늘도 예수님의 보혈로 저를 씻어 주시고 제 안에 정결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어제는 저희가 살고 있는 이세사키 지역에서 한 아버지가 여섯 살과 세 살 된 자신의 자녀를 죽이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장래에 대한 불안과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이러한 비극이 일본에서 점점 낯설지 않은 일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또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하며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아버지….
성령님, 저도 그들과 함께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게 하옵소서. 복음을 통하여 사람들을 주님이 주시는 영생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저를 준비시켜 주옵소서. 혹시라도 답답한 마음 속에서 아무런 돌파구를 찾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다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전하고 영생의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제게 지혜의 말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 삶이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절망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주님의 생명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본문주해
시편 111편과 112편은 짝을 이루는 시이다. 111편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 사역을 찬양한다면, 112편은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다. 흥미로운 점은 111편에서 하나님을 묘사하던 표현들이 112편에서는 거의 그대로 "경건한 자"에게 옮겨진다는 것이다. 그것도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 즉 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 단수의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담아낸 존재,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며,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 충만함을 나누어 받는 성도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인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를 복 있다고 선언한다. 이 경외함은 종교적 형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구속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존귀한지를 깊이 깨달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반응이다. 이런 사람의 신앙은 후손에게까지 복으로 이어지는데, 그 원형은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이다. 하나님을 경외한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었고, 이 약속은 결국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성취된다.
경건한 자는 어둠 속에 빛을 비추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의로우며, 가난한 이에게는 긍휼로, 자신의 일에는 정의로 대한다. 이런 삶은 흔들리지 않기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원수의 비방과 위협 앞에서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 담대함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함에서 오는 선물입니다. 그는 조용히 원수의 최후를 지켜볼 뿐입니다. 반면 악인의 욕망은 결국 허무하게 스러진다.
이 모든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분께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요 1:14). 그분은 십자가의 고통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셨고, 그 순종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히 5:7-9). 흑암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비추셨고,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자신을 아버지께 맡기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빌 2:9-11).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루신 일이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영적 현실이 됩니다.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오래 참음이 우리 안에 채워질 때, 우리 역시 어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작은 빛이 된다. 날마다 옛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 — 이것이 시편 112편이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삶의 모습이다.
4나의묵상
오늘은 이 시를 읽는 중에 4절이 눈에 들어온다. 서목사님의 주해를 토대로 묵상을 이어간다.
4절에서는 하나님의 본성과 동일한 경건한 자의 본성을 구체적으로 진술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한 자들에 대하여는 어둠 속을 비추는 빛과 같으니 그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의로우도다." 경건한 자는 '단수'(그는)로, 그를 통해 복을 받는 자들은 '복수'(정직한 자들)로 표현된다. 경건한 자 한 사람은 어둠을 비추는 빛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른 이들에게 축복이 된다. 그는 하나님의 본성인 자비와 긍휼과 의로움으로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한다. 이렇게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공의를 생생히 보여주는 살아 있는 지표로 존재한다.
경건한 자가 어둠 속을 비추는 빛이라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어제 이세사키에서 있었던 그 가슴 아픈 사건이 다시 떠오른다. 한 아버지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결국 자기 자녀들을 해치고 만 사건이었다. 이 일은 시편이 말하는 "어둠"이 얼마나 짙고 실제적인지를 새삼 보여준다.
사람은 불안 앞에서 무너지고, 두려움 앞에서 극단으로 치닫기 쉽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정직한 자,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 대해 이렇게 노래한다.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이 확정되었도다"(112:7). 이 담대함은 자기 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앞날을 붙드신다는 신뢰에서 흘러나오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 세상에 만연한 불안과 두려움은 결국 사람을 어둠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 어둠 속에서도 빛으로 부름 받은 존재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와 의로움이 내 삶 속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날마다 나 자신을 그분께 내어드리는 것, 그것이 내가 빛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불안 가운데 있는 이웃에게, 미래를 두려워하는 누군가에게, 내 안에 있는 영생의 기쁨이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는 작은 통로가 되기를 원한다. 경건한 자는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빛을 잔잔히 반사할 뿐이다. 나 역시 오늘, 내 힘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기를 원한다.
5묵상기도
아버지….
오늘 시편 111편과 112편을 통해, 경건한 자가 어둠 속에서 빛으로 부름 받았음을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세사키에서 있었던 그 슬픈 사건을 떠올릴 때, 제 마음이 여전히 무겁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소망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아버지….
저를 자비롭고 은혜롭고 의로운 자로 빚어 주옵소서. 제 힘과 의지로는 그런 자가 될 수 없음을 압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제 안에 채워질 때만, 저도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마음을 확정하여 주시고, 흉한 소식과 불안한 소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의뢰하게 하옵소서.
아버지….
오늘 제 곁에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는 이들을 보게 하시고, 그들에게 다가가 그리스도의 소망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함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 삶이 절망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주님의 생명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