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며칠후 민혁은 진양식품 허이사란 작자와 검찰청 인근의 커피숍에 마주앉아있었다.
"특허권 문제로 재판에 계류중인 사건에 끼어든 조폭들한테 끌려가서 공갈협박을 당했다구예?"
"글쎄 그렇다니까요....그날은 얼마나 겁이 나던지....대한민국이 무법천지도 아니고....
다른 경로를 통하기보다는 강검사님께서 곧 우리 진양그룹의 로얄페밀리가 되신다기에....
확실히 처리해주실것같아 검사님께 부탁을 드리는겁니다.....아무쪼록 검사님께서 이참에
경제계를 좀먹는 조폭들을 뿌리뽑아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예....나와 관계없는일이라도 응당 수사에 착수해야할 사건인데....하물며
나회장님의 회사일을 모른척해서야 되겠심니꺼?...."
"검사님께서 그러실줄알고 만사제쳐두고 강검사님께 달려왔습니다....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그렇고....그 조폭이 어느 조직입니꺼? 이사님을 협박했다는 조폭두목은 누구구예?....."
"예....제가 끌려간곳이 역전파 조폭사무실이었습니다....저를 협박한 조폭두목에 대해서
심부름센터에 의뢰해서 알아봤더니....이렇게 조사해서 자료를 가져왔더군요...."
허이사가 넘겨주는 자료를 무심코 넘겨다보던 민혁은 안경을 고쳐쓰며 다시한번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름: 강수혁 나이: 28세 역전파의 조폭두목으로서 조직에 들어온지 일년여만에
구오야붕을 몰아내고 조직을 접수한 특이한 이력으로 조폭계에 명성이 드높은자임"
우연의 일치일까? 부산의 수혁이와 이름도 같고 나이도 같다....아무리 그렇다해도....
부산에서 뱃일하며 기껏 술이나 퍼마시고있을 수혁이놈이.... 서울에 올라온지
일년여만에 조폭두목이 되어있을 까닭이 없지않은가......
민혁은 뭔가 미심쩍은 마음에 허이사에게 다시한번 확인한다.
"그 조폭두목이란놈 말투는 어떻든가예? 혹시 사투리는 안쓰던교?"
"아~!! 검사님하고 똑같은 경상도 사투리였습니다. 왜요? 혹시 아시는분이라거나...짐작되는일이라도..."
"천만에예~~!!지가 그런 깡패놈을 우예 알겠심니꺼....암튼 알겠심더....지가 좀 더 알아보고
조치하겟심더....암튼 고생이 많으셨겠네예....고마 드가시소....."
허이사가 정중히 인사하고 먼저 자리를 뜬뒤 가슴이 두근거려 미칠지경이된 민혁은
그래도 믿기지않는 마음에 즉석에서 폰으로 부산의 봉필에게 전화를 건다.
"아부지!!....저 민혁입니더....그간 별고엄쓰신교?....죄송함니더....워낙 일이 바쁘다보이
한번 찾아뵙지도 몬허고....근데...수혁이는 요즘 우예지냅니꺼....뭐라구예?
새벽에 몰래 보따리싸가지고 도망간지 일년정도됐다구예?....서울로 간다고했다구예.....
야~~알았심더....조만간 함 찾아뵙께예....이만 끊심더...."
더 들어볼것도없이 분명한 수혁이놈이었다.....
국으로 다소곳히 다대포에 처박혀 뱃일이나하지않구서....서울로 끄대올라와 하필이면
조폭두목이되어 내 창창한 앞길을 가로막고 나서다니.....
민혁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문채 결연한 표정으로 커피숍을 박차고 나간다.
민혁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달려온 허이사가 민혁에게서 밀봉된 편지한통과 함께
모종의 지시를 받은뒤 역전파 사무실을 찾아와 수혁과 다시 마주앉은것은
그 다음날 오후였다.
"갑자기 웬일로 다시 오셨능교....내캉 약속한건 제대로 이행하고 있것지예?"
"그야 당연하죠....감히 어느분 분부시라고....그런데....저희회사의 고문변호사와
항소취하건을 협의하던중에....저희 고문변호사가 두목님께 이걸 전해드리라기에....."
"뭐라꾸예? 고문변호사가 내한테 뭔 편지를 주더란말인교?....."
수혁은 의아스런 마음에 밀봉된 봉투를 열어 편지를 읽어본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고문변호사가 아닌 민혁의 편지였다.
"수혁아!! 나 민혁이다. 너와 조용히 할 얘기가있다.
일단 좀 만나자.
오늘저녁 서초동 스카이아파트 508호로 저녁 8시까지 와주기 바란다."
-형 민혁이가-
틀림없는 민혁의 필체였다.
민혁과 진양그룹의 연결고리를 알지못하는 수혁은 의아스런 마음에 허이사에게 묻는다.
"강검사가 와 나를 보자능교? 강검사가 이번사건하고 무신 관련이 있능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다만....저희 고문변호사와 친분관계가 있는걸로만...."
허이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민혁이 지시한 말만 앵무새처럼 종알종알 늘어놓는다.
"암튼 알겠심더.....고만 가보이소...."
민혁의 편지를 읽은 수혁의 가슴도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서울에 올라온지 일년여만에 민혁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될줄이야....
그런데....도대체 민혁이 무슨일로 날 만나자고하는것일까?
수혁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깊은 상념에 빠져든다.
저녁무렵이되자 외출준비를 서두르는 수혁이 걱정스러운듯 짝귀가 다가와 말한다.
"오야붕~!! 낮에 찾아왔던 꼰데와 말씀하시는걸 들으니....검사가 만나자고하는거같던데....
혹시 짐작가는 일이라도??....정 가시려거든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가시죠...."
"아입니더....형님!....별일 아니니 걱정마시소....금방 댕기올깁니더...."
수혁은 짝귀의 걱정스런 제의를 가볍게 일축하고 휑하니 밖으로 향한다.
실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두 형제... 민혁과 수혁...검사와 조폭두목...빛과 그림자의
운명적 만남이 피할수없는 외나무다리에서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